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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강해(21)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본문 : 살전 5:1-11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지지난 시간에는 주님이 재림하신다면
먼저 세상을 떠난 성도들의 위치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여 궁금해 하고 있는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이 땅에 살아 있는
성도들만이 그 잔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면....
먼저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염려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저들은 다 잠을 자고 있기 때문에......
주님 다시 오실 때 저들이 먼저 일어나고 ....
살아 있는 사람이 나중에 공중에 끌어올려
주님의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었습니다<5:14-15절>
14절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절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자는 것일 뿐입니다.
그 ‘소망의 근거’는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고전15:20)가 되셨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14절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그래서 바울 사도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말라”(13절)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앞에 두고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세상 사람들의 슬픔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절망 가운데 슬퍼합니다.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
의 슬픔은 소망이 있는 슬픔입니다.
육신적인 사랑과 정으로 일시적인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것일 뿐,...
영원한 이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절망적인 슬픔이 아니라 소망이 있는 슬픔인 것입니다.
<재림의 때와 시기>.....
그런데 그들에게 남아있는 질문 하나가 더 있었습니다.
예, 주님께서 재림 하시는 날짜는
도대체 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주님이
언제 다시 오실 것인가 하는 것은 모든 성도의 관심입니다.
이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1절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대답입니다.
쓸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셨지만
그 날은 비밀에 붙이셨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날과 그 시를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행1: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막13: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것을 알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불신앙입니다.
주님께서 “너희의 알 바가 아니라”고 하셨으니
알 수 도 없고, 알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
종종 주님의 재림의 날짜를 계산해 가지고 말함으로 ...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현혹이 되어 따르고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허망한 자리에
들어간 사람들이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이장림이란
사람이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라”고 하는 뜻의
‘다미선교회’를 만들어 1992년 10월 28일 12시에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여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지 않습니까?
한 사람의 잘못된 주장이 한국교회에 얼마나
큰 상처와 손해를 가져왔는지 모릅니다.
선교에 큰 장애가 되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잊어버릴 만하면 또
어떤 형태로든지 예수님 다시 오실 날짜를 말하면서....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 사람이
나타나리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두 가지 비유>......
우리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날짜가 아니고, .....
그 날이 언제 임하든지 부끄럽지 않도록
준비된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 날을 대비하는 성도들의
자세를 가르치기 위해 두 가지 비유를 사용하여 경고하십니다.
먼저 주의 날이 임하는 것을
‘도둑이 침입하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2절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주의 날’ - 구약에서 ‘여호와의 날’로 사용.
심판의 날을 의미(암5:18).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승리하시고
역사를 마무리 하실 날로 묘사됩니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주로서
재림하시는 날로 이해하였습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의 날의 예측 불허성을
강조한 비유입니다. 도둑이 예고하고
오는 것 보았습니까? 도둑은 예고 없이
들이닥칩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들이닥칩니다.
그럼으로 최선의 방법은 미리 대비를
하는 것입니다.(방범창, 문단속, 창문 단속, CC-tv).
이와 마찬가지로 ‘주의 날’도 도둑이
침입하는 것과 같이 갑자기(예고 없이) 임하기 때문에...
철저히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막13: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마24:43-44>
43절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절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도둑이 안 올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만일 도둑이 안 온다면 그 동안의 대비는 헛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한 가지 비유를 더 하셨습니다.
바울도 오늘 본문 이 예수님의 비유를 언급합니다.
3절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임신한 여인이 해산하는 비유’를 통해
주의 날의 불가피성에 대한 강조합니다.
올지 안 올지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임산부에게 오는 해산의 고통은
피할 수 없이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도둑은 언제 올지 알 수 없지만,
임산부에게 오는 해산의 때는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두 가지 비유를 통해서
주의 날이 언제 올지 그 때와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임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재림의 징조>....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
주의 날이 언제 올지 그 때와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그 징조는 예측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임산부도 해산의 날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해산의 때가 다가옴을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는 왜 분별치 못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마24:32-33>
32절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어떤 분이 성경을 조사해 본 결과 예수님과
사도들과의 말씀에서 29가지 징조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 시간 그것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고
가령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몇 가지를
볼 수 있는데, “그때에는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자기가 그리스도라 하며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지막 때에는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주장하면서 많은 사람을...
현혹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고 그런 사람을
따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문선명 집단이나 박태선 집단,
그 밖에 사이비 기독교 지도자가 얼마나 많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따르고 있습니까?
요즘에는 하나님의 교회(장길자),
신천지(이만희) 등의 새로운 이단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징조도 있어요.
“전쟁과 전쟁의 소문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황하지 말라 그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겠지만 아직 끝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
2000여 년간 이 세상에 평화가 있었던 것은
300년도 못됩니다. 말세로 갈수록
더욱 민족(종족)간, 나라간, 종교 간의 전쟁이 끊이질 않습니다.
무기도 최첨단화 되어 한순간에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요즘의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IS의 잔인성을 보면
주님의 재림의 때가 더욱 가까이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때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이방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또 많은 사람이 믿음을 잃고 서로 배반하고
서로 미워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마 그것은 정신 문제가 내포된 것 같습니다.
오늘의 현상 가운데 하나는 정신병 환자가
해마다 격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불안, 공포, 미움, 시기, 초조,
좌절 같은 정신 문제에서 온다고 합니다.
좋은 집, 부드러운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아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이 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더구나 그때는 노아의 때와 같겠다고 했습니다.
노아의 때는 어떠했습니까?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부인을 바꾸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생활을 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의 징조입니다.
그래서 노아의 때는 홍수로 심판을 받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마지막 때 징조 중에는
“하늘나라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어
모든 백성에게 증거될 때에야 세상의
끝이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데 ...
전파하는 이가 없어서, 복음을 듣지 못해서
믿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책임은
아니잖습니까?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면
믿지 않은 그 사람의 책임입니다.
그래서 이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야
마지막 날이 온다는 말인데 ....
사실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매스 미디어를 통해서 복음에 접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일이 있을 때 세상 끝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
문제는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영안을 흐리게 합니다.
징조를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 – 부패한 현실에 안주하게 함.).
3절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 거짓 선지자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
<겔13:7-10>
7절 “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
8절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허탄한 것을 말하며
거짓된 것을 보았은즉 내가 너희를 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절 그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쳤으니 내 손이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도 기록되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0절 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어떤 사람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을 하는도다.”
거짓 선지자들의 “평안하다, 안전하다”하는
현실 안주의 말에 속지 말고...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어 준비하는 삶>...........
깨어 준비하는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그 내용을 4절 이하에서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4-8절>
4절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절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절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예, ‘빛의 아들’과 ‘낮의 아들’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모든 일에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정정당당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숨길 것이 없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음침하고 어두운 곳은
죄를 짓기 위해 찾는 곳입니다.).
그러한 삶의 구체적인 내용은 8절입니다.
8절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1:3과 평행)
예, 믿음, 사랑의 호심경,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고(하나님의 전신갑주-엡6장)
영적인 전쟁에서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빛의 아들로,
낮에 속한 자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9-10절>
9절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10절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불러내신 목적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목적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목적입니다. ‘주의 날’은
공포의 날이 아닙니다. ‘구원의 날’입니다.
또한 구원은 미래적인 것이 아니고 현재적인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모든 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에 참여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서 구원의 감격과 감사
그리고 기쁨이 있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나만 신앙생활 잘하면 무슨 소용입니까?
11절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워야 합니다.
<고전10:32-33>
32절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절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벧전4:7-11>
7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절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절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절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절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맺는 말씀>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그 날과 그 시”에 대해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을
경계하셨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빛의 자녀답게
항상 깨어 기도하고 준비하는 현재의 삶에
충실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때와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말세(재림)의 징조는 알 수 있습니다.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깨어 기도하고,
서로 격려하고 덕을 세워 ...
우리 모두가 주의 날에 구원의 은혜에
참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