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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걷고 | 공해마을 - ▲파리봉 - 1망루 - 망미봉 - 남문 - 2망루 - 대륙봉 - 산성고개 - 동문 - 3망루 - 부산과학고등학교 1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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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걷고 | 공해마을 - ▲파리봉 - 1망루 - 망미봉 - 남문 - 2망루 - 대륙봉 - 산성고개 - 동문 - 3망루 - 부산과학고등학교 2 - Daum 카페
자리를 바꿔가면서
올려다보고
잠시 올라본다.
▶▶
◆ - 1
◆ - 2
◆ - 3
자리를 옮겨
● ●
● ● ●
● ● ● ●
● ● ● ● ●
토끼 귀처럼 보이는데!!
아래 보이는
저 바위를 확인하기 위해
희미한 등로를 벗어나서
허리를 돌아 확인하러 간다.
살짝 당겨보고
"회동수원지" 도 당겨보고
잠시후
선바위
3분 후
공기돌바위 라고 할까??
조금 전 기암을 당겨보고
▶ 산 허리를 조심조심 돌아간다.
3분 후
"망미봉" 에서 내려오는
정상적인 등로에 합류하여
좌측으로 내려간다.
3분 후
"남문" 이 보이면서
주변에 바위 - 1
주변에 바위 - 2
군함처럼 보이네!!
"남문"
♠ 좌측- 내려온 "망미봉" 코스
♠ 우측 1시- "수박샘" 방향
♠ 우측 3시- "남문연못" 방향
반대편으로 나와보면
♠ 좌측- "케이블카" 방향
♠ 우측 직진- "만덕고개" 방향
"금정산성ㅣ金井山城"
금정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1703년(숙종 29)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바다를 지킬 목적으로
금정산에 돌로 쌓은 산성으로
성벽의 길이는 18,845m,
성벽높이 1.5~3m,
총면적은 약8.2km²에 이르는
국내 산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산성이다.
처음 산성을 쌓은 시기는
문헌상으로는 확실하지 않으나,
남해안과 낙동강 하류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신라시대부터 성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1667년 (현종8) 통제사 이지형(李枝馨)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고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703년 이전에 산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산성의 기초는
1703년(숙종29) 경상감사 조태동(趙泰東)의 건의로
동래부사 박태항(朴泰恒)이 성을 쌓았고,
1707년(숙종33)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중성(中城)을 새로 쌓았으며,
1808년(순조8)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이
무너지고 없어진 성을 고쳐 쌓았다.
산성의 보수정비는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인
1972년부터 복원을 하여
금정산성 정비계획에 의거
연차적 지속적으로 보수 정비하고 있다.
금정산성은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에 대비하기 편리한
낙동강 하구와 동래지방이 내려다 보이는
요충에 위치하고 있어
조선후기 부산지방의 국방상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금정산성 남문ㅣ金井山城 南門"
남문에서는
북쪽으로 고당봉이
정면으로 올려다 보이고
남쪽으로는 백양산이 보인다.
백양산과 남문사이는
만덕고개와 만덕동이 자리한다.
그리고 금강공원에서 출발하는 케이블카 종점이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금정산성부설비>의 기록에는
"1808년 초봄에 기둥과 들보를 백리 밖에서 옮겨오고,
벼랑 끝에는 험준한 바위를 깎아내어
메고 끌어당기는 사람이 구름처럼 많이 모여 들어서
만(萬)사람이 일제히 힘을 쓰니
149일만에 남문의 초루(譙樓)가 완성되었다" 고 한다.
남문은 평거식문(平居式門)으로
문의 상부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익공계 팔작지붕의 단층문루이며,
문폭은 290cm,
높이는 280cm이다.
다시 안으로 들어와서
우측 직진으로 올라간다.
♠ 좌측 9시- "남문연못" 방향
♠ 좌측 11시- "산성고개" 방향
갈맷길 7코스 종합안내도
이정표 - 1
이정표 - 2
"2망루 400m" →
잠시후
♠ 뒤돌아 보며
"망미봉" 아래
험한 능선의
기암을 당겨본다.
너른 쉼터에서
좌측으로 올라간다.
♠ 성벽따라 가도 상관없음
1분 후
좌측으로 꺽고 →
잠시후
좌측으로 올라가본다
♠ 직진으로 가도 된다.
2분 후
포장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올라간다.
잠시후
성벽 앞에서
갈림길들이 만나면
좌측으로 꺽어 들어간다.
"대륙봉 1km" →
잠시후
바위 뒤로 보이는
"2망루"
반대편에서
주변- 1
주변- 2
주변- 3
주변- 4
"2망루"
"금정산성ㅣ金井山城"
금정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1703년(숙종 29)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바다를 지킬 목적으로
금정산에 돌로 쌓은 산성으로
성벽의 길이는 18,845m,
성벽높이 1.5~3m,
총면적은 약8.2km²에 이르는
국내 산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산성이다.
처음 산성을 쌓은 시기는
문헌상으로는 확실하지 않으나,
남해안과 낙동강 하류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신라시대부터 성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1667년 (현종8) 통제사 이지형(李枝馨)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고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703년 이전에 산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산성의 기초는
1703년(숙종29) 경상감사 조태동(趙泰東)의 건의로
동래부사 박태항(朴泰恒)이 성을 쌓았고,
1707년(숙종33)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중성(中城)을 새로 쌓았으며,
1808년(순조8)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이
무너지고 없어진 성을 고쳐 쌓았다.
산성의 보수정비는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인
1972년부터 복원을 하여
금정산성 정비계획에 의거
연차적 지속적으로 보수 정비하고 있다.
금정산성은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에 대비하기 편리한
낙동강 하구와 동래지방이 내려다 보이는
요충에 위치하고 있어
조선후기 부산지방의 국방상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성벽따라 내려간다.
"파리봉", "고당봉"
"대륙봉" 뒤로
"동쪽 능선"
잠시후
좌측 갈림길 지나고
직진 →
잠시후
"대륙봉 800m" →
2분 후
성벽을 넘어면
"대륙봉 700m" →
2분 후
사거리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올라간다.
"대륙봉 0.3km" →
1분 후
묘한 분위기 !!
1분 후
햄버거바위 !!
3분 후
우측 갈림길 지나고
직진 →
♠ 우측 - 지도상으로는
"무위암" 방향 같은데??
5분 후
"북문 4.9km, 동문 1.4km" →
잠시후
▶▶
▶▶▶
잠시후
암릉을 지나면
곧 이어서
"대륙봉(평평바위)/ 520m"
"산성고개" 방향부터 ~
"윤산" 뒤로
"아홉산"
"동래" 일대
해운대 "장산"
지나온 "2망루" 방향
"1망루, 파리봉" 방향
"파리봉" 뒤로
희미한 "토곡산"
한바퀴 둘러보고
아래
일명 "예수상바위" 를
살짝 당겨본다.
빠른 시일 내에 꼭 가봐야겠다.
당겨본 "파리봉"
"동문 1.2km" →
너른 반석의 바위
주변 바위들 - 1
주변 바위들 - 2
주변 바위들 - 3
1분 후
우측 갈림길이 있는 듯??
직진 내림 →
바위 - 1
바위 - 2
"산성고개 550m" →
1분 후
고깔바위 !!
3분 후
좌측 갈림길에서
직진 →
곧 이어서
우측 갈림길에서
직진 →
3분 후
"산성고개"
"금정산성 동문고개 성곽잇기"
금정산성은
길이가 18,845m,
성내 면적이 8.2km²,
높이가 1.5 ~ 3m 가량의
국내 산성 중에서
가장 규모가 광대한 성곽이다.
1958년 산성로 도로개설로 인해
산성고개의 성곽이 단절되었으나
금정산성 복원 정비계획에 의거
2011년 6월 1일 성곽잇기 사업으로 준공하였다.
(높이 5m 길이 13m 폭 4m)금정산성 성곽잇기는
산성을 일주하는
등산ㆍ탐방객의 통행안전과
야생동물의 생태계를 보호하고
산성로의 평거문(문의 윗부분이 평평한 형태)을 지나다니면서
선인들의 축성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금정산성의 얼굴이다.
"金井의 문화유산"
금정산 (金井山)
Geumjeong Mountain
금정산은 부산의 진산으로
주봉인 고당봉(801.5m)을 중심으로
북으로 장군봉(727m),
남으로 상계봉(638m)으로
길게 이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원효봉, 의상봉, 대륙봉, 파류봉 등의
많은 봉우리와 나비바위, 부채바위 등
천구만별의 기암괴석으로 되어 있는 명산이다.
동쪽으로 금정구, 북구,
남쪽으로 동래구,
북쪽으로 경남 양산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적 제215호 금정산성(18,845m)이
능선을 따라 축성되어 있다.
금정산의 유래는
"산마루에 우물이 있어
한 마리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 속에서 놀았다" 하여
산 이름을 금정산이라 전하고 있다.
(東國輿地勝覽 권23 東來縣 山川條)
천 마리의 거북과 만 마리의 자라가 뒤덮고 있다하여
천구만별(千龜萬鱉)이라고 불리우는 금정산에는
등산객의 마을을 사로잡는 범어3기, 금정8경 등
천혜의 자연경관과 신라시대(678년)에 창건된
천년고찰 범어사가 자리잡고 있고,
등나무군락(천연기념물 제176호)과 함께
부산의 역사와 문화, 민속이 살아 숨쉬는 관광명소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금정산성 (金井山城)
Geumjeong Mountain Fortress
금정산성은 사적 제 215호로
길이 18,845m, 높이가 1.5 ~ 3m, 총 면적은 약 8.2km²로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성이다.
행정 구역상 금정구, 북구, 동래구, 경남 양산시와 성벽을 기점으로
경계(境界)하고 있으며,
산 능선을 따라 성을 쌓았다.
금정산에는
언제부터 성(城)을 쌓았는지는
문헌상으로는 알 수 없으나
남해안과 낙동강 하류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신라때부터 이미 성(城)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으나
분명치 않다.
현존하는 산성은
경상감사 조태동의 건의에 의하여
숙종29년(1703)에 동래부사 박태항이 성을 쌓았고,
숙종33년(1707)에 동래부사 한배하가
중성을 새로 쌓았으며,
순조8년(1808) 동래부사 오한원이
무너지고 없어진 성을 고쳐 쌓았다.
금정산성을 자기는 일은
동래부사가 맡았으며,
유사시에는 동래, 양산, 기장 삼읍(三邑)의
군인과 승려들이 차출되어 방어하였으며,
평상시에도
산성 내에 있는 국청사, 해월사(현재는 존재하지 않음)의
승려 100여명과 범어사 승려 300 여명으로
성을 지키도록 하였다.
산성의 보수정비는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인 1972년부터 복원을 하여
금정산성 정비계획에 의거
연자적, 지속적으로 보수 정비하고 있다.
금정산성은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이 깃든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시민 모두가 아끼고 가꾸어 나가야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동문 800m" →
"온천장" 방향으로 가는
"203번 좌석버스"
♣ 나머지 사진은 4페이지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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