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초고] LH가 만드는 노마드촌을 상상한다─ 인구절벽 시대, 국토를 살리는 공유부의 실천적 전개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대한민국은 지금 인구 절벽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지방의 중소도시와 농어촌은 빠르게 비어가고, 빈집은 늘어나며, 한때 사람으로 북적이던 마을은 점점 생기를 잃고 있다. 2023년 기준 전국 빈집은 약 151만 호에 이른다. 이 수치는 단순한 주거 문제를 넘어, 국토 관리의 실패를 보여주는 경고음이다.
빈집은 비어 있는 건물이 아니다. 그 주변에 이미 깔려 있는 도로, 상하수도, 전기, 통신 같은 공공 인프라가 함께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국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조성한 기반시설이 사람이 떠났다는 이유로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이는 단지 미관의 문제가 아니라, 국토 자산이 방치되고 공유부가 훼손되는 일이다.
발상의 전환을
이제 주택정책은 정주 인구만을 겨냥해서는 안 된다. 주민등록상 주소를 옮기지 않더라도 일정 기간 지역에 머물며 일하고 소비하고 관계를 맺는 이른바 관계 인구가 중요하다. 인구가 완전히 고정되지 않더라도, 지역의 생활 인프라를 유지할 만큼의 사람은 있어야 한다. 사람이 살아야 마을이 유지되고, 마을이 유지돼야 공공시설도 숨을 쉰다.
이 지점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 즉 LH의 새로운 역할을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LH는 이제 신도시를 짓는 기관을 넘어, 전국에 흩어진 빈집을 매입해 생활편익과 보건 기능을 갖춘 군집형 노마드촌을 조성하는 국토 재생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집을 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의료·복지·공유 업무공간·생활편의 시설을 함께 묶어 마을 단위의 생명력을 되살리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미 법적 토대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은 공공의 빈집 매입과 활용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는 철거와 단기 정비에 치우쳐 있다. 이제는 빈집을 단순히 없애는 정책을 넘어, 장기적으로 공유 자산화하고 거주와 활동이 결합된 새로운 생활공간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봐야 한다. LH에 국토 공유 자산 관리자라는 명확한 책무를 부여하는 입법적 전환도 필요하다.
일본과 유럽이 보여주는 사례
해외에는 참고할 만한 사례가 적지 않다. 일본의 '어드레스'와 '리빙애니웨어'는 빈집을 네트워크화해 월 정액제로 거주할 수 있는 구독형 주거 모델을 실험했다. 이들은 '가모리(家守)'라 불리는 상주 관리인을 두어 외지인과 원주민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고 마을의 활력을 유지한다. 이탈리아의 '알베르고 디푸조'는 마을 전체를 하나의 호텔처럼 운영하며 빈집을 객실로 활용한다. 독일은 폐교나 유휴시설을 디지털 노마드 거점으로 바꾸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 사례는 모두 흥미롭지만, 민간이나 소규모 지자체의 힘만으로는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 한국에서는 공공기관인 LH가 더 큰 실행력을 가져야 한다.
노마드촌이 성공하려면, 누구를 위한 공간인지부터 분명해야 한다. 수요층은 크게 세 층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취업 준비 중이거나 진로를 바꾸려는 청년 유동층이다. 이들에게 노마드촌은 낮은 비용의 주거와 전환의 공간이 된다. 소규모 작업실과 공유 오피스가 핵심 인프라다. 둘째, 은퇴 이후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중·고령 활동 인구다. 이들에게는 의료 접근성과 복지 연계가 입주를 결정짓는 조건이다. 셋째, 원격근무를 하는 프리랜서와 디지털 노동자다. 안정적인 고속 인터넷과 사생활이 보장된 작업 환경이 필요하다. 이 세 층위에 맞게 시설 구성과 운영 방식을 각각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이 관건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공간은 결국 아무도 머물지 않는 공간이 되기 쉽다.
시범지구부터 착실히
물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원주민과의 공존이다. 외지인의 유입은 언제나 환영받는 것이 아니다. 소음, 생활 방식의 차이, 공간 사용을 둘러싼 갈등은 실제로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노마드촌은 처음부터 갈등 관리 구조를 내장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장치가 필요하다. 일본의 '가모리'를 한국화한 마을 코디네이터를 법제화하여 외지인과 원주민 사이의 양방향 중재를 맡기는 것이 첫째다. 둘째는 입주 전에 이장과 마을회의를 공식 의사결정 주체로 포함하여 공간 사용과 행동 규범에 대한 상호 협약을 문서화하는 것이다. 셋째는 농번기 노동 지원, 마을 행사 참여, 독거 노인 돌봄 연계 등 노마드 입주자가 지역에 기여하는 호혜적 활동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마을은 외지인을 견디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를 조정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어야 한다.
재원 설계도 중요하다. 이런 정책이 성공하려면 선언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구조가 필요하다. 우선 기존의 빈집 매입·정비 예산을 통합하고, LH와 지자체가 분절적으로 집행하던 자원을 노마드촌 조성으로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운영 단계에서는 공공임대료 수준의 이용료, 지역 생태농업과 직거래 수익, 탄소 흡수와 토양 회복 활동에 연계된 탄소 크레딧 같은 기후 재원을 결합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LH의 부채 구조를 감안할 때, 전국 동시 추진보다는 3~5개 지역을 선도 시범거점으로 삼아 성과를 축적한 뒤 단계적으로 확산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노마드촌은 단지 집을 마련하는 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머무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일이며, 버려진 국토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드는 일이다. 더 나아가 토양을 살리는 생태농업과 주거 복지를 연결하고, 주거를 상품이 아니라 공유된 권리로 바라보는 전환이기도 하다. 높은 월세에 쫓기지 않고, 지역과 관계를 맺으며, 환경 회복에 기여하는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기본소득과는 구별되는 현물 형태의 주거 공공재이지만, 삶의 자유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그 복지적 의미는 분명하다.
새로운 국제적 모델이 될 수도
이 모델은 내국인과 외국인의 공존 문제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공동체의 기반은 먼저 우리 국민이 다져야 한다. 초기에는 국내 노마드가 정착하며 커뮤니티의 토대를 만들고, 이후 공동체의 성숙 속도에 맞춰 단계적으로 외국인에게 문을 여는 것이 갈등을 줄이는 길이다. 국내인이 완충 지대 역할을 할 때, 장기 체류를 원하는 외국인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
이제 LH의 역할을 다시 묻자. 땅을 팔아 수익을 내는 기관이 아니라, 방치된 국토를 연결하고 관리하는 공유 자산 관리자로 바뀌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서는 LH의 성과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얼마나 팔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공간에 사람이 돌아왔는가'가 진정한 성과의 척도가 되어야 한다. 국토는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의 삶을 떠받치는 공유부다. 그 공유부 위에서 사람이 머물고, 땅이 살아나고, 다시 사람이 힘을 얻는 순환이 시작되어야 한다.
LH가 만드는 노마드촌은 인구 절벽 시대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다. 소멸 위기의 지방을 살리고, 주거의 자유를 넓히며, 국토를 다시 사람의 공간으로 되돌리는 실천적 구상이다. 나아가 이 모델이 정착된다면, 장차 민족 연합의 시대가 올 때 남북과 대륙을 잇는 노마드형 정착촌의 구상도 가능해질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수사가 아니라, 버려진 공간을 다시 쓰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