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공양(燒身供養)
유당 이정경
깡마른 하늘에 뜨거운 열기가 공중 회전하는 불볕더위 삼복이다. 이글거리는 불기가 얼굴에 자연 화상을 입힐 것 같다. 아스팔트를 달군 도로 위의 햇살은 무서울 정도로 위협을 느끼게 한다. 거대한 태양의 불덩이를 피하여 햇볕을 가려주는 그늘에 몸을 숨겨 이 위기를 피해야 한다. 더위와 추위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곳으로 집보다 더 좋은 공간은 없으리라.
내 몸을 언제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편안한 안식처, 소중한 우리 집이 있다. 이만 평이 넘는 넓은 대지에 인공으로 조성한 사철 푸른 소나무 숲과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폭포로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는 아름다운 공원이, 바로 우리 집 아파트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인 가난 때문에 미래를 예측하고 가늠할 수 없었던 막막한 젊은 시절의 나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남의 집 셋방에 살았던 초라한 아줌마였다. 묵묵히 우리 삶을 지켜보며 안쓰러워했을 양가 부모님의 따뜻한 보은의 사랑이 없었으면 오늘 누리는 이 행복이 어찌 올 수 있었겠나. 매일이 꿈속 같다.
병오년 적토마에 나는 칠십 고개를 맞이하였다. 일흔셋에 모든 걸 다 버리고 떠나신 우리 아버지가 왜 그리 간절하게 그리워지는지. 내 나이에 대비해서 아버지 가신 날을 비교하면 불과 삼 년의 여유밖에 없다. 어찌 무심하게 하루를 즐기며 부모님 사랑을 잊을 수 있으랴. 간절하게 차오는 울대의 목마른 그리움이 내 온 마음을 다 적신다.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시원한 내 공부방에 아버지를 모셔놓고 친구같이 다정한 얼굴로 당신을 마주 보며 옛 얘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평생 가난에 찌들다 가신 한을 자식이 누리는 것을 보며 대견해하셨을 얼굴이 보고 싶어진다.
올해 음력 춘삼월, 어머니 생신을 맞이하여 우리 남매 부부는 오지의 고향집을 찾아 나섰다. 이제는 구름 바람만이 화마로 사라진 빈터를 그림자로 오락가락 비출 뿐, 우리의 체온이 담긴 그 초가집은 흔적조차 없다. 하늘이 지켜보는 봄날에, 무성하게 솟아난 잡풀만 수북할 뿐, 우리가 밟아서 때 묻혀 놓은 작은 흙 마당도 야산 아래 덮여서 자취가 없다. 허공에 떠 있는 햇살만 쳐다보다 뒤돌아 발길을 옮겼다. 우리들 오 남매에게 유산을 남겨주려고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몸을 태운 초가삼간! 불타버린 보상으로 가난한 농부 자녀들의 마음을 두둑하게 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유산처럼 받은 보상금을 나는 책 출판비에 보태고, 형제들은 각자 유용한 쓰임이 있었으리.
화마의 재앙이 불러온 뜻밖의 대반전 기적의 유산은, 상심의 끝에서 고마운 선물로 변했다. 이런 선물을 주시려고 이글거리는 불길의 공포에 우리 터전이 녹아내리는 슬픔의 시련을 주시었나. 빈 하늘 마른 추억에 환하게 웃고 계시는 우리 부모님 얼굴이 달처럼 떠 있다.
이정경(유당) 프로필
방송대 국문과 · 영문과 졸업
2011년 수필시대, 2017년 수필과비평 신인상 수상
수필집 : 『길 따라 꿈 피어나고』 한·영 수필집 출간
인문학 책 : 『 영미문학 향연』 출간
kyung63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