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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신부님은 탐정》
## 제20화 ― 「종탑에 걸린 빨간 목도리」
주일 교중미사를 한 시간 앞둔 아침.
은솔성당 마당에 들어선 오미자 안나는 종탑을 올려다보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저게 뭐예요?”
종탑 꼭대기, 십자가 바로 아래에 빨간 목도리 하나가 걸려 있었다.
아침 바람이 불 때마다 긴 목도리가 깃발처럼 펄럭였다.
오미자가 성당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신부님! 종탑에 사람이 올라갔어요!”
사제관에서 나온 김맑음 프란치스코 신부가 고개를 들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목도리가 있잖아요.”
“목도리와 사람이 반드시 함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없는데 목도리가 혼자 올라갔겠어요?”
장태식 요셉 관리장도 공구함을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는 종탑을 한참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네요.”
“그렇죠? 누군가 날아서 올라간 게 분명해요.”
“사다리를 이용했겠죠.”
“사다리는 최 사무장님이 관리하잖아요.”
그 말에 최병철 베드로 사무장이 성당 사무실에서 비품 대장을 들고 나왔다.
그는 사다리 대여 기록을 확인하다가 얼굴이 굳어졌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오미자가 물었다.
“범인의 이름이 적혀 있어요?”
“사다리 한 개가 사라졌습니다.”
장태식이 물었다.
“어제 창고에서 확인하지 않으셨습니까?”
“어제 오후 여섯 시에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오미자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럼 범인은 밤에 성당에 들어와 사다리를 훔친 다음 종탑에 올라간 거네요.”
김맑음 신부가 종탑과 창고 사이의 거리를 살펴보았다.
“그렇게 단정하기에는 이른 것 같습니다.”
“신부님, 사다리까지 없어졌잖아요.”
“종탑 꼭대기에 오르려면 그 사다리 하나로는 부족합니다.”
은솔성당의 종탑은 지상에서 십오 미터가 넘었다. 사라진 사다리는 창고 전구를 교체할 때 사용하는 짧은 접이식 사다리였다.
오미자가 자신 있게 말했다.
“짧은 사다리를 여러 번 옮겨가며 올라갔을 수도 있죠.”
장태식이 고개를 저었다.
“사다리를 밟은 채로 사다리를 위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마음이 간절하면 가능할 수도 있어요.”
“마음과 중력은 별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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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맑음 신부는 미사 준비를 위해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제의방 문 앞에 작은 빨간 실밥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종탑의 목도리와 같은 색이었다.
김맑음 신부가 실밥을 집어 살피고 있을 때, 복사를 맡은 중학생 이준서가 다가왔다.
“신부님, 제의 입으셔야 합니다.”
“준서 군, 어제 제의방에 들어온 사람이 있었습니까?”
“저랑 하늘이 누나가 미사 준비하러 왔어요.”
“다른 사람은요?”
“종을 고치러 온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은솔성당의 종은 일주일 전부터 고장 난 상태였다.
정오와 저녁 여섯 시에 울리던 종이 갑자기 멈췄고, 장태식이 몇 번이나 살펴보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종을 수리하러 온 분이 종탑에 올라갔습니까?”
“아니요. 아래쪽 조종 장치만 보고 갔습니다. 부품을 가져와야 한다고 했어요.”
그때 성당 문밖에서 오미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부님! 목도리에 쪽지가 달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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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식이 긴 막대 끝에 갈고리를 달아 목도리 끝을 끌어내렸다.
목도리에는 가느다란 끈으로 작은 쪽지가 묶여 있었다.
‘오늘 열두 시, 종이 울리면 약속을 지켜주세요.’
최병철은 쪽지를 보존용 투명 봉투에 넣었다.
“우선 지문이 남아 있을 수 있으니 함부로 만지면 안 됩니다.”
오미자가 물었다.
“사건으로 신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 범죄가 발생한 것은 아닙니다.”
“사다리가 없어졌잖아요.”
“그것은 비품 분실입니다.”
“종탑 무단침입도 있어요.”
장태식이 말했다.
“누가 들어갔는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오미자가 수첩을 펼쳤다.
“그러니까 확인해야죠. 은솔성당 탐정단을 소집하겠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우선 미사부터 봉헌하겠습니다.”
“사건이 진행 중인데요?”
“사건이 있다고 해서 미사를 미룰 수는 없습니다.”
복례가 오미자에게 성가책을 건넸다.
“탐정단장은 입당 성가부터 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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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가 시작되었다.
제대 앞에 선 김맑음 신부는 평소처럼 차분하게 미사를 집전했다.
그러나 교우들은 자꾸만 창문 너머 종탑을 힐끗거렸다. 빨간 목도리가 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작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강론 시간이 되자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오늘 복음은 약속에 관해 생각하게 합니다.”
교우들의 시선이 신부에게 모였다.
“우리는 지키기 쉬운 약속은 잘 기억합니다. 하지만 오래 기다려야 하는 약속, 내게 손해가 되는 약속, 이미 늦었다고 생각되는 약속은 자주 잊어버립니다.”
김맑음 신부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누군가는 우리가 잊은 약속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오늘 하루, 내가 지키지 못한 말이 없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오미자가 옆자리의 최병철에게 속삭였다.
“신부님은 벌써 빨간 목도리의 의미를 아시는 것 같아요.”
최병철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강론 중에는 조용히 하십시오.”
“의견을 나누는 중이에요.”
“미사 중입니다.”
복례가 두 사람을 돌아보자 오미자는 즉시 성가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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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가 끝나자 성당 마당에 교우들이 모였다.
낮 열두 시까지 남은 시간은 오십 분이었다.
그때 종탑 중간 창문에서 김하늘 안젤라의 얼굴이 나타났다.
“신부님!”
김맑음 신부가 놀라 위를 바라보았다.
“하늘 양은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종탑 안쪽 계단을 확인하러 올라왔어요. 여기 낡은 도시락통이 있어요!”
이도현 형사가 마침 성당에 도착하다 그 말을 들었다.
“김하늘 학생,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있으세요. 혼자 내려오지 마십시오.”
하늘이 대답했다.
“내부 계단은 안전해요.”
장태식이 다급히 말했다.
“중간 계단까지만 그렇습니다. 위쪽 나무판은 썩어서 위험해요.”
김맑음 신부가 이도현을 바라보았다.
“이 형사님께서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종탑에 누군가 침입했다는 신고를 받았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오미자에게 향했다.
오미자가 말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신고했습니다.”
이도현은 종탑 꼭대기의 목도리를 올려다보았다.
“신부님, 종탑에 직접 올라가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확실합니까?”
“이번에는 정말 없습니다.”
“그럼 여기 계십시오.”
이도현은 장태식과 함께 내부 계단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김하늘과 낡은 양은 도시락통을 데리고 내려왔다.
도시락통 뚜껑에는 희미한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경순이와 태호의 약속.’
통 안에는 빛바랜 사진 한 장과 오래된 묵주, 버스표 두 장이 들어 있었다.
사진에는 삼십 년 전 은솔성당 마당에 서 있는 젊은 남녀가 찍혀 있었다.
여자는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고, 남자는 성당 종탑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진 뒷면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1996년 11월 3일, 정오. 다시 돌아오면 이곳에서 만나자.’
김맑음 신부가 사진을 살피며 물었다.
“이 도시락통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김하늘이 대답했다.
“종탑 중간의 나무계단 아래에 끼어 있었어요. 먼지가 많았지만 뚜껑 한쪽은 깨끗했습니다.”
“최근에 누군가 열었다는 뜻이군요.”
“네. 그리고 이것도 발견했어요.”
김하늘이 짧은 파란색 실을 내밀었다.
종탑 내부의 낡은 도르래에는 파란 실이 감겨 있었다.
이도현이 물었다.
“빨간 목도리는 누가 걸었습니까?”
“꼭대기까지 올라간 사람이 걸어놓은 게 아니에요.”
김하늘은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목도리는 십자가에 직접 묶여 있지 않았다. 종탑 안쪽의 오래된 종줄과 연결되어 있었다.
누군가 아래에서 종줄을 당기자 목도리가 도르래를 타고 위로 올라간 것이다.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그러니 아무도 종탑 꼭대기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미자가 감탄했다.
“역시 범인은 날지 않았군요.”
장태식이 대답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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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여자는 은솔시장 국숫집을 운영하는 한경순 마리아였다.
한경순은 성당으로 불려오자 빨간 목도리를 보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목도리가 아직 남아 있었군요.”
김맑음 신부가 사진을 내밀었다.
“사진 속 남자분을 아십니까?”
“제 오빠입니다. 한태호 요셉이에요.”
한경순이 열아홉 살이던 해, 부모를 일찍 잃은 남매는 서로 다른 친척 집에서 살아야 했다.
오빠 한태호는 일자리를 찾아 먼 도시로 떠났다. 두 사람은 떠나는 날 은솔성당 마당에서 약속했다.
“오빠가 돌아오는 날 정오에 성당 종을 세 번 울리겠다고 했어요. 저는 빨간 목도리를 하고 기다리기로 했고요.”
“다시 만나지 못하셨습니까?”
“몇 년 동안은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사를 한 뒤 연락이 끊겼어요. 오빠가 외국으로 갔다는 소문만 들었습니다.”
“도시락통은 왜 종탑에 있었습니까?”
“떠나는 날 함께 먹은 도시락과 사진을 넣어뒀어요. 오빠가 돌아오면 찾을 수 있게요.”
한경순은 목도리 끝에 매달린 쪽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글씨는 오빠 글씨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가 약속을 알고 있었을까요?”
“저와 오빠 말고는…….”
한경순은 무언가 떠올린 듯 고개를 들었다.
“그날 사진을 찍어준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당시 복사였던 고윤재 베드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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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재는 현재 은솔시에서 전기수리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날 은솔성당의 종을 점검하러 온 사람도 바로 그였다.
이도현 형사가 사람들 앞에서 물었다.
“고윤재 씨, 빨간 목도리를 종탑에 올려놓으셨습니까?”
고윤재가 고개를 숙였다.
“제가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을 하셨습니까?”
“태호 형님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고윤재는 며칠 전 한태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한태호는 오랫동안 해외에서 생활하다 삼십 년 만에 은솔시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는 동생 한경순의 연락처를 찾지 못했다. 대신 오래전 약속을 기억하는 고윤재에게 도움을 부탁했다.
“태호 형님은 오늘 정오에 성당으로 오겠다고 했습니다. 약속대로 종을 세 번 울려달라고 했어요.”
“그렇다면 직접 한경순 씨에게 연락하면 되지 않았습니까?”
“형님이 놀라게 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한경순이 눈물을 닦으며 웃었다.
“나이 일흔이 다 되어가면서 무슨 깜짝 놀라게 할 일이래요.”
“빨간 목도리는 어디에서 구하셨습니까?”
“경순 누님이 예전에 두고 간 목도리가 도시락통 안에 있었습니다. 종탑 안쪽 종줄에 묶어 올려놓았습니다.”
“쪽지도 고 선생님께서 쓰셨습니까?”
“네.”
이도현이 물었다.
“그런데 왜 종이 고장 났다고 하셨습니까?”
고윤재의 얼굴이 난처해졌다.
“종은 고장 나지 않았습니다.”
장태식이 놀랐다.
“고장이 아니라고요?”
“자동 타종 장치의 시간이 잘못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어제 고쳐놓았지만 정오까지 시험하지 않으려고 전원을 꺼뒀습니다. 태호 형님이 도착할 때 종을 울리려고요.”
오미자가 물었다.
“그럼 사라진 사다리도 고 선생님이 가져가셨어요?”
“아닙니다. 저는 사다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최병철을 바라보았다.
사다리의 행방만은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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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열두 시까지 십 분이 남았다.
그러나 한태호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경순은 성당 입구에 서서 길을 바라보았다.
“혹시 또 못 오는 건 아닐까요?”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아직 약속 시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열두 시까지 오 분.
멀리서 버스 한 대가 성당 앞 정류장에 멈췄다.
하지만 내리는 사람은 없었다.
한경순의 얼굴에 실망이 번졌다.
그때 김맑음 신부가 버스정류장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은색 택시 한 대가 천천히 성당 앞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차에서 백발의 노인이 내렸다. 그는 낡은 여행가방을 들고 있었다.
노인은 성당 종탑의 빨간 목도리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경순아.”
한경순은 그 자리에 선 채 노인을 바라보았다.
“오빠…… 맞아요?”
한태호가 웃었다.
“많이 늦었지?”
“삼십 년이나 늦었어요.”
“미안하다.”
“편지라도 했어야죠.”
“보냈는데 모두 돌아왔어. 내가 은솔로 돌아올 용기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고.”
한태호는 동생 앞에 조심스럽게 섰다.
“그래도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한경순은 눈가를 훔쳤다.
“약속은 제시간에 와야 약속이에요.”
“그럼 나는 실패한 건가?”
“아니요.”
한경순이 오빠의 여행가방을 받아 들었다.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왔으니까 반쯤은 지켰어요.”
그 순간 성당 종이 울렸다.
댕―.
첫 번째 종소리가 은솔성당 마당을 가득 채웠다.
댕―.
두 번째 종소리에 남매는 서로의 손을 잡았다.
댕―.
세 번째 종소리가 작은 도시 은솔의 지붕 위로 멀리 퍼져나갔다.
성당 마당에 있던 교우들이 조용히 박수를 쳤다.
오미자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나는 이런 사건에는 약해요.”
최병철이 물었다.
“아까는 범인을 잡아야 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잡았잖아요. 약속을 삼십 년이나 늦게 지킨 범인.”
한태호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제가 잡힌 겁니까?”
장태식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 회장님께만 잡히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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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 성모상 앞에서 함께 기도했다.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지만 두 사람은 같은 모습으로 성호를 그었다.
김맑음 신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기도를 마친 한태호가 신부에게 인사했다.
“신부님, 늦게 돌아온 사람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오는 데 늦은 시간은 있어도,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시간은 없습니다.”
한경순이 오빠의 팔을 잡았다.
“우선 우리 집에 가요. 국수부터 먹여야겠어요. 얼굴이 왜 이렇게 말랐어요?”
복례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가족은 만나면 식사부터 챙겨야 해요.”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어머니께서도 늘 그러십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건강하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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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돌아간 뒤 이도현과 김맑음 신부는 종탑 아래에 남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자 이도현이 물었다.
“맑음아, 처음부터 고윤재 씨가 목도리를 올려놓은 걸 알았어?”
“아니. 제의방 앞에 떨어진 빨간 실밥 때문에 성당 안을 드나든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럼 왜 목도리가 누군가에게 길을 알려주는 표시라고 했어?”
“쪽지에는 ‘종이 울리면 약속을 지켜달라’고 적혀 있었어. 그런데 약속을 지켜야 할 사람이 이미 성당에 있었다면 굳이 종탑 꼭대기에 목도리를 걸 필요가 없잖아.”
“멀리서 오는 사람이 찾아볼 수 있게 걸었다는 거구나.”
“그래. 빨간 목도리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보내는 신호가 아니라 돌아오는 사람이 알아볼 표지였어.”
이도현이 종탑을 올려다보았다.
“삼십 년을 기다린 약속이라…….”
“늦게 지킨 약속도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 있겠지.”
“그런데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게 하나 있어.”
“사라진 사다리?”
“그래.”
그때 성당 뒤편에서 최병철의 목소리가 들렸다.
“찾았습니다!”
두 사람이 창고 뒤로 가보니 접이식 사다리가 감나무 아래에 놓여 있었다.
사다리 위에는 빈 바구니가 하나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복례에게 향했다.
복례가 헛기침했다.
“어제 감을 따고 잠깐 둔다는 걸 깜빡했네요.”
최병철이 비품 대장을 펼쳤다.
“대여 기록이 없습니다.”
“감 몇 개 따는데 무슨 대여 기록까지 써요?”
“성당 비품은 사용 목적과 반납 시간을 기록해야 합니다.”
복례가 팔짱을 꼈다.
“최 사무장님, 오늘 점심 안 드실 거예요?”
최병철이 조용히 비품 대장을 덮었다.
“구두 보고로 처리하겠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웃었다.
“사다리 사건도 해결됐군요.”
이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오늘 가장 빨리 해결된 사건이 가장 늦게 발견됐네.”
종탑의 빨간 목도리가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그 아래로 삼십 년 만에 함께 걷는 남매의 뒷모습이 멀어지고 있었다.
은솔성당의 종은 오랫동안 기다렸던 약속을 축복하듯 한 번 더 울렸다.
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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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회 예고
### 제21화 ― 「미사책 속에서 나온 열쇠」
평일 아침미사가 끝난 뒤.
김맑음 신부의 매일미사 책에서 처음 보는 작은 열쇠 하나가 떨어진다.
열쇠에는 번호 대신 짧은 문장이 새겨져 있다.
‘가장 먼저 온 사람에게.’
그런데 그날 성당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다섯 명이나 나타난다.
“제가 새벽 다섯 시에 왔습니다.”
“아니에요. 저는 네 시 반부터 성당에 있었어요.”
“두 분 다 늦었어요. 저는 어젯밤부터 있었습니다.”
최병철이 출입기록을 확인하지만 새벽 두 시부터 성당 문은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다.
잠긴 문.
제대 아래에 놓인 빈 신발 한 켤레.
그리고 열쇠가 맞는 곳을 알고 있다는 낯선 노인.
김맑음 신부가 열쇠에 묻은 하얀 가루를 살피며 말한다.
“이 열쇠를 숨긴 분은 오늘 아침 성당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고해소 안에서 누군가 기침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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