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브릭의 영화를 시간에 관한 영화와 공간에 관한 영화로 수평-수직분할을 한다면 <샤이닝>은 명백하게 공간에 관한 영화가 될 것이다. <샤이닝>의 공간은 서서히 미쳐가며 도끼를 들고 아내와 아들을 죽이러 쫓아 다니는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 가장을 통해 가부장제와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품는 알레고리인 동시에, 폭설로 하얗게 덮여버린 눈밭과 미로와 같은 정원, 그리고 고딕풍의 호텔등의 물리적인 공간을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대한 기술적인 질문을 포함하는 것이다. <배리 린든>을 완성하고 5년이 지난 뒤, ‘흥행’여부를 고려하며 작품을 고르고 있던 큐브릭이 스티븐 킹의 원작과는 별 상관 없이 완성한 <샤이닝>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외디푸스적 종말을 선고한다. 함께 있기 위해 그녀의 ‘대리’아버지가 되는 <로리타>의 햄버트,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된 방랑과 그 과정에서 만나는 아버지의 대리자들, 그리고 스스로가 의붓 아버지가 되는 <배리 린든>의 배리 린든처럼, 그리고 부권의 위치에 놓여있던 하트만 교관을 살해하는 <풀 메틀 자켓>의 레나드처럼 큐브릭의 영화 속에서 언제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욕망의 대립이었고 갈등이었으며 욕구불만의 기능부전을 가져오는 무엇이었다.
의붓 아들에 의해 결국 다리가 잘리고 떠나는 대가로 연금을 지불받는 <배리 린든>의 가짜 아버지는 이제 자신의 창작활동을 방해하는 아들에게 손찌검을 하는 미덥지 않은 아버지가 되어 도끼를 들고 어린 아들을 향해 달려든다. 잭과 웬디, 그리고 대니라는 지극히 미국적인 이름을 가진, 그러나 그 발랄한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불안한 이미지의 중산층 가족은 눈(자연)에 의해 고립되고, 곳곳에 스며드는 유령들을 목격하거나 미쳐가고(초자연적 능력), 가부장의 억압과 폭력으로 산산히 부서진다(사회구조). 폭력과 광기로 뭉쳐진 가장의 억압에 맞서 어린 아들은 샤이닝이라는 초자연적 능력으로 불안을 감지하지만 달아날 길은 없다. 의식을 잃고 서서히 미쳐가는 인간의 광기, 집안은 말 그대로 피바다가 되고, 죽은 넋이 떠도는 시체더미 속에서 가정은 순식간에 전쟁터가 되어버린다. 창작과정의 히스테리와 가장의 독단에 지쳐있는 귀신 같은 엄마 웬디(선생님이자 작가지망생인, 그리고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화신인 잭의 취향과는 다르게 그녀가 읽고 있던 책은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다)와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어린 아들 대니는 그 미로와도 같은 덫에서 결국 빠져나오지만, 잭은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얼어죽는다.
돈과 명예를 위해 남의 집에 들어가 ‘가짜 아버지’가 되고(결국에는 ‘진짜 아버지’가 되기에는 실패하고) 떠나오는 배리 린든의 이야기와, 완벽한 고립을 위해 남의 집에 들어와 주인이 되고 새로운 유령가족으로의 편입을 위해 가족들을 죽이려 뛰어다닌 <샤이닝>의 잭은 200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서로를 완성한다. 남의 땅에 들어가 아버지가 되려했지만 실패한 베트남전의 기억이 사그러질 때 쯤, 레이거노믹스의 장미빛 환영이 막 봉오리를 피울 때 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잔인한 추적극으로 끝나는 핵가족의 붕괴는 큐브릭이 80년대에 던지는 저주에 찬 예언인지도 모른다. 플라스틱 오노밴드에서 존 레논이 노래한 「인스턴트 카르마 Instant Karma」의 후렴구(“We all shine on”)에서 인용한 제목 ‘샤이닝’으로 초자연적인 존재와 록키 산맥을 시퍼렇게 물들이는 폭설이라는 자연의 섭리, 그 안에서 서서히 존재감을 상실해가는 인간의 모습은 영화 밖의 최첨단 하이테크에 의해 완성된다. 끊임없이 이 세가족들로 향한 ‘시선’을 암시하는 도입부의 헬리콥터 촬영을 제외한 모든 촬영은 언제나처럼 영국의 스튜디오의 세트에서 촬영되었지만 좁디좁은 복도의 현란한 무늬와 깍아지른 듯이 서있는 오버룩 호텔, 그리고 미로와도 같은 정원의 폐쇄적인 공포감은 새로운 공간에 의해 완성된다.
<배리 린든>에서 전기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는 18세기의 뿌연 실내공간을 찾아내기 위해 전대미문의 빛(촛불조명)을 창조해낸 스탠리 큐브릭은 눈과 미로 속에 갖힌 잭의 광기와 웬디의 불안, 그리고 대니의 ‘샤이닝’을 강조하기 위해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내었다. 그것은 죽어있는 사각지대를 카메라 앞으로 끌어들인 부피의 공간감이 아니라 운동의 리듬감, 새로운 속도로 만들어낸 정서적인 공간감이다.
길게 뻗은 복도와 미로같은 정원, 수평의 이미지를 유영하는 스테디캠과 수직의 시선을 만들어내는 헬리콥터 촬영의 결합은 연속과 단절, 그 사이에 위치하는 새로운 정서를 발견해 낸 것이다. 착시효과보다는 영화의 시각적인 표현의 진보를 원했던 큐브릭은 스테디캠으로 발견된 공간감의 리듬을 또 다른 방법으로 확대해갔다. 호텔 안에서부터 눈밭으로 이어지는 잭과 대니의 추격 시퀀스에서 보여지듯 세트의 내부뿐만 아니라, 세트의 외부환경, 즉 자연적인 세팅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세트로 만들어 버린 큐브릭은 자연환
경까지 그의 영향 아래 둘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을 쓰려고 들어오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 잭의 심리적 부담감과 창작가로서의 고뇌는 이상하게도 스탠리 큐브릭의 눈매와 훤하게 벗겨진 이마를 닮아가는 잭 니콜슨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묘한 잔영을 남긴다. 그것은 예술이란 광기와 이성의 타협 안에서 완전할 수 있다는 큐브릭적인 세계관의 반영일까? 아니면 <샤이닝>의 잭처럼 완전히 미쳐버리기 위해서 스스로의 성 안에 자신을 감금하면서까지 편집증적인 미학을 얻어내려는 시네아스트의 고약한 히스테리였을까?
제작- 워너-써클 컴패니
원작- 스티븐 킹
각본- 다이안 존슨, 스탠리 큐브릭
촬영- 존 알코트
스테디캠- 가레트 브라운
헬리콥터 촬영- 짐 프리만
음악- 웬디 카를로스, 라헬 엘카인드
편집- 레이 러브조이
출연- 잭 니콜슨, 셀리 듀발, 대니 로이드
상영시간- 146분(영국개봉 오리지날 버전, 미국개봉 버전),
119분(삭제 버전)
상영일자- 1980년 5월 23일 개봉
화면 사이즈- 와이드 스크린 (칼라)
비디오- 미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