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예수 성탄 대축일 메시지
[서울대교구]
“나는 그들과 함께 살며 그들 가운데에서 거닐리라.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2코린 6,16)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성탄을 맞이했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가 충만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특별히 버림받은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사람들에게 더 큰 희망과 기쁨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은 외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모든 인류에게 닫혀 있던 구원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 가장 낮고 비천한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함께하신다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성탄은 우리 인간에 대한 무한한 하느님 사랑을 보여주시면서 모든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가 성탄을 맞이하며 가장 깊이 묵상해야 할 부분은 “인류 공동체”라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만민의 구원을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현대는 온 인류가 서로 영향을 깊이 주고받으며 살 수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하여 온 인류가 하나라는 공동체 정신의 회복이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올바른 삶의 자세입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로 창조되었기에 우연히 서로 모여 사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의 존재의 가장 깊은 원천으로 인식하고 하느님 앞에서 책임 있는 태도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가 한 공동체라는 것을 깊이 인식한다면 평화로운 인류 건설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는 사람들로 구성된 여러 가지 형태의 공동체들이 있을 수 있지만 어떠한 사회 공동체도 그 주체와 목적이 인간이어야 합니다.(사목 헌장 25항) 왜냐하면 세상에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보다 더 앞선 가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예전에 비해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의 산업화 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있지만, 비인간화가 거리낌 없이 성행되는 개탄할 풍조에 휩쓸려 살면서 인간이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물질적인 가치를 인생의 최고 가치로 인식하는 한 함께 사는 공동체 의식보다는 집단과 개인의 권리 주장, 집단적 이익 추구에 더 몰두하게 합니다. 이러한 배타적인 자세는 사회적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다양한 계층 간의 갈등을 가져오며 상호 간의 소통을 어렵게 합니다. 우리 공동체가 하나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무엇보다 먼저 다른 이들의 고통과 아픔을 진정으로 느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도록 고통 받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어떠한 생명도 소외되거나 경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다행히 우리 사회에 많은 사람이 자기 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봉사와 기부, 나눔의 문화가 점점 더 확산되고 있는 것은 희망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부터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절감하고 국민 전체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참 봉사자로 태어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오늘날과 같은 가치관이 혼란스런 시대일수록 교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교회는 단순한 전례나 신앙의 공동체일 뿐만 아니라 사랑의 공동체로서 세상의 빛이(마태 5,13-16) 되어야 하는 사명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빛이 된다는 것은 이 사회 안의 어두운 곳을 찾아서 어둠을 없애고 공동체가 함께 나가야 할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들도 우리 사회를 개인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모든 이가 사랑과 행복의 공동체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세상의 모든 사람이 사랑 가득한 새로운 마음으로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성탄의 은총이 이 시대 모든 사람, 특히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충만하게 내리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합니다.
2011년 12월 25일 성탄절을 맞이하여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춘천교구]
“인간이 되신 하느님, 임마누엘”
사랑 안에 하나 되는 춘천교구 공동체의 교형자매 여러분. 그리고 사랑과 평화의 축제인 성탄을 기뻐하고 계신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마태 1,23)는 성경 말씀대로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오늘, 저는 대림시기 동안 주님의 강생을 기다리며 보속과 희생의 삶을 살아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마음을 다해 감사와 축복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성실하게 살아온 지난 한 해를 잘 마무리 하고, 다시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은총의 시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이 당신께 충실하지 못했음에도 언제나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성탄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가장 극명한 표현이며 구원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작고 나약한 모습으로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통해, 세상 창조 때부터 준비하신 주님의 구원과 영원한 사랑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며, 하늘과 땅이 맞닿아 모든 것이 완성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강생이 크신 사랑의 결과였기에, 성탄을 지내는 우리도 그 사랑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탄의 기쁨을 노래하는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갖가지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런 이웃의 고통과 어려움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사랑의 축제인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이며, 나아가 주님 강생의 참된 뜻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성탄을 기뻐하고 계신 여러분 모두가 그 기쁨을 이웃들과, 특별히 어렵고 힘들고 소외된 이웃들과 나누는 성탄이 되시기를 진정으로 기원합니다.
성탄절은 교우들뿐 아니라 선한 마음을 지니고 사는 모든 이들의 축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탄절을 지내면서 다시 한 번 세상의 평화와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평화와 행복이 이 세상 모든 이에게 널리 퍼져나갈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정성을 다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최선을 다해 살아오신 사랑하는 교형자매들, 그리고 모든 이웃들에게 다시 한 번 온 마음으로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여러분 모두와 그 가정에 아기 예수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강복합니다.
2011. 예수 성탄 대축일 천주교 춘천교구 교구장 김운회 루카 주교
[대전교구]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친애하는 형제자매님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사랑이 여러분 모두와 늘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삶이 어렵고 고달픈 가난한 이들에게 힘과 용기, 위로와 희망을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입시 전쟁”을 치루며 학교에 입학하고서도 졸업한 후 직장을 구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도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취업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아기 예수님께 청합니다.
한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아기 예수님의 탄생으로 어두운 세상이 빛의 세상으로 밝혀졌습니다. 세상의 백성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맞아들이지 않았지만, 그분을 받아들이는 우리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오심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우리들은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요한 1,1-5.9-13 참조). 욕망으로 가득 차 있던 이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맞아들이지 않고 어둠의 길을 걸었습니다. 오직 마음이 착하고 겸손하며 열려져 있던 목자들과 시메온만이 그분을 세상의 빛이신 구세주로 알아보고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믿는 빛의 자녀들만이 말씀이 사람이 되시고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요한 1,12.14 참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매우 어렵습니다. 가장 소중한 생명이 경시되고, 돈이 중심이 되며, 거짓이 많고, 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절제할 줄 모르는 인간의 탐욕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환경을 파괴하며, 무한 경쟁으로 인해 인간 사회를 파멸의 길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함께 살아야 할 인류가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나 혼자만 행복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은 나를 불행하게 하고, 모두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목숨을 내어주면서까지 사랑의 본보기가 되어주시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받아들이면서 빛의 자녀답게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릴 때 세상 한가운데서 더불어 사는 새로운 삶의 기쁨을 시작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아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로마 13,13 참조).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망각하는 것, 배반, 도둑질, 살인, 자만심, 분노, 다른 이를 경멸하는 것, 그리고 물질주의, 소비주의, 쾌락주의, 허영심 등도 경계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의 처지에 비추어 본다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해 본능적인 것이나 파괴적인 것에 너무도 쉽게 집착하는 것이나, 이와 관련된 신문기사나 영화를 보고 읽는 것도 어둠의 행실에 속합니다.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에페 6,11.13 참조). 사도 요한은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녀들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합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1요한 2,10-11)
우리는 항상 무언가 큰일을 이루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작은 일들을 포함한 모든 행위에 사랑을 넣으면 모든 것이 크고, 위대한 것으로 변화됩니다. 세상의 눈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 사랑의 눈을 지녔을 때에 가능해집니다. 사랑으로 다시 오신 아기 예수님의 마음과 눈을 본받도록 합시다. 그럴 때에 이웃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됩니다(1요한 1,7 참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둡다고, 썩었다고, 말을 하고 소리를 질러도 어둠이 사라지지 않고 썩은 냄새도 계속됩니다. 작은 촛불을 밝히면 어둠은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 옆의 이웃과 사랑과 어려움을 나누는 소통의 삶을 통하여 이 시대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어둠 속에서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길임을 기억하기로 합시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습니다.”(요한 1,9)
천주강생 2011년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대전교구 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
[인천교구]
2011년 성탄 메시지
친애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성탄을 맞아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아기 예수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비추는 참 빛”(요한 1,9)으로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6-7) 감사하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이 가득한 성탄절입니다. 우리 모두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기뻐 용약해야 하겠습니다. 그분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오셨습니다. (마태 20,28 참조)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시 8,5)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기에 세상은 평화스러워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여 안타깝습니다. 많은 이들이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은 화해의 길을 멀리하고 대결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으로 남북문제는 더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남북문제가 대결에서 화해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그리고 평화로 발전하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대로 이 세상과 우리 사회가 사랑과 평화로 변화되기를 소망하면서 우리가 변화의 선봉에 서야 하겠습니다.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경제 위기는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고 하고, 청년실업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날이 갈수록 짙어져가고 있기에 걱정입니다. 비정규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수효가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가난한 이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비천한 모습으로 말구유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예수님께로부터 배워, 우리 모두가 나보다 못한 사람, 나보다 약한 사람을 돌봐야 하겠습니다. 사랑만이 우리의 존재이유를 알게 하고 참 행복으로 안내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을 닮기 위해 이기심과 오만, 차별의식과 권위의식을 멀리하고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대로 자비와 사랑, 겸손과 상호 존중의 마음을 가질 때 우리 사회는 보다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닮아 우리도 사랑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미래가 어둡고 슬프다 해도 슬퍼 만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희망을 주시려고 오셨고, 새 기운을 북돋는 원동력으로 우리에게 오셨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주시려고 오신 예수님, 예수님의 오심을 우리 모두 기뻐하며 이 기쁨을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야 하겠습니다.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이사 62,5)는 말씀대로, 하느님 아버지께서도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십니다. 오늘의 이 기쁨을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비록 어둡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린 끝까지 희망의 빛을 가꿀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킬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필리 3,20-21)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과 같은 영광된 모습으로 변화시켜, 영생을 주시러 오신 예수님을 찬미하며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올해의 성탄은 인천교구 설정 50주년에 맞이하는 특별한 의미의 성탄입니다. 기뻐 용약하고 감사하며,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을 여러분 모두에게 전해 드립니다. 예수님의 크신 축복을 기원합니다.
2011년 12월 성탄대축일에, 천주교 인천교구 교구장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
[수원교구]
“베들레헴으로 가자!” (루카 2, 15)
+ 희망의 땅, 복음으로! 청소년과 함께 교회의 미래를!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하는 수원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경축하며 구세주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늘 함께 하기를 빕니다.
가난과 겸손으로 우리 안에 오신 구세주 베들레헴의 고요한 밤에 주님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늘날 고도의 물질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운 한 아기에게서 구세주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별을 보고 먼 길을 찾아 온 동방의 박사들처럼, 그리고 깊은 밤 천사의 인도를 받은 목자들처럼 우리도 베들레헴으로 가서 그분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합시다. 가난하고 겸손한 아기의 모습은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과 같은 분이셨지만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 6-7). 병자와 죄인을 부르러 오셨으며(마르 2, 17), 가난하고 잡혀가고 눈멀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해방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루카 4, 18). 그리고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 돌아가실 때가 되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며 사랑의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요한 13, 34). 그분은 십자가상 죽음을 통해 몸소 그 계명을 실천하셨습니다(요한 19, 28-30). 그래서 이 아기는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실 구세주이십니다.
인간 존엄성의 회복을 가져다준 강생의 신비 오늘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빛이 온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새롭고 놀라운 방법으로 구원을 이루시기에 그분의 섭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소위 ‘죽음의 문화’가 팽배해 있어 고유한 인간의 존엄성이 갈수록 위협받고 있습니다. 하느님 없는 삶을 살려는 세속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삶은 나날이 황폐해져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탄은 세상을 위한 진정한 기쁨과 희망의 소식이요, 신자로서의 참된 소명을 되새기도록 초대하는 장입니다. 우리 모두는 성탄으로 “사람이 되신 성자의 신성”에 참여할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며,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과 본래의 품위가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백성’, ‘주님의 구원을 받은 이들’ 이라 부르리라!” (이사 62, 12) 세례를 받은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베들레헴으로 향하는 길은 잃어버린 우리의 얼굴,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고귀한 모습을 되찾는 여정입니다. 주님의 탄생을 경축하는 우리의 눈은 그분의 빛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향합니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급속한 산업화와 정보화로 인해 여러 방면에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는 옳고 그른 것, 정의롭고 불의한 것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소중한 전통과 종교 문화유산, 그리고 성스러운 것을 외면하게 합니다. 사회적 부도덕과 윤리의식의 결여 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삶의 방향을 잃게 하였고, 여러 유사 종교들과 신흥 영성운동들은 그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풍조는 교회 안에서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쉬는 교우 증가, 주일미사 참례자 수 감소, 청소년 신앙생활의 어려움 등은 불확실성 시대에 좌표를 잃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신자들은 존엄한 인격과 참 생명을 잃을 위험에, 그리고 성직자들은 형식주의와 기능주의로 빠질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성탄 대축일은 우리에게 ‘희망의 땅, 복음의 빛’이 빛나는 베들레헴으로 돌아와 새로워지고,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다시 살라는 ‘부르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길을 함께 걸으며 우리 안에 이미 깊이 스며든 ‘죽음의 문화’로부터 탈출하라는 초대입니다.
진리의 빛이 사회 속에서 성탄은 신앙인들만의 축제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상과 온 인류는 참된 빛과 평화를 갈망하고 있으며, 신앙인들의 확신에 찬 실천적 신앙행위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성탄이 모든 이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 위해 교회는 자신의 예언자적 소명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여러 매체를 통해 인권 유린의 실태, 약자에 대한 무관심과 더불어 한국사회 각층에 어지럽게 실타래처럼 엮여 있는 비리, 부정과 불의, 도덕성의 부재 등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문제들은 우리 신앙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사회 안에서 살고 활동해야 하며 사회문제를 떠나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회문제들에 대해 여러 방식으로 의견을 표명하는데, 그것이 ‘교회의 의무요 사명이며 신앙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내어놓는 사랑의 행위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 사랑의 행위는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사회교리의 핵심에 자리합니다. 교회는 사회교리를 통해 신자들이 ‘새 복음화’를 위해, 그리고 정의와 사랑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도록 천명하고 있습니다. ‘인권존중, 생명사랑, 환경사랑, 소외된 이들에 대한 보살핌’ 등은 신앙인들이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지켜내야 할 중요한 그리스도교적 가치들이기 때문입니다.
교구 설정 50주년을 향해 우리 수원교구는 지금 교구 설정 50주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50주년이 일회성의 행사로 끝나지 않고, 교구민들이 하나 되어 영적으로 쇄신되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정신적이고 영적으로 메마른 이 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전해주기 위해 신앙인들 각자가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거룩함에로 초대되었음을 상기하고 “믿음의 빛이 행실에서도 빛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수원교구 설정 50주년’이 모든 이를 향한 참된 희망의 메시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수원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유다의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신앙 여정에 늘 함께 하시기를 간청합니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아들 예수님과 일생을 함께 하셨듯이 여러분과 함께 하여 위로와 용기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11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수원교구 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27항. 2) 예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본기도 참조. 성 대 레오, 강론 21, 3. 3) 성 대 레오, 강론 27, 6. 4) 베네딕토 16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3항. 5) 베네딕토 16세, 회칙 「진리안의 사랑」 1-2항. 6) 제30회 인권주일 담화문 참조. 7) 예수 성탄 대축일 새벽 미사 본기도.
[원주교구]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0-11)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주는 기쁨과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믿음의 기초이신 하느님’이라는 주제로 “선교의 해”를 시작하는 때에, 성탄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성탄은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그 사실에 기뻐하는 축제의 때입니다. 그렇기에 그 축제를 참으로 기쁨으로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에게 오신 하느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신 ‘임마누엘’을 체험할 때 참다운 성탄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요한 1,14)라고 고백하는 성경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로만 머물러 있다면,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내가 만날 수 없다면, 우리가 성탄이라 부르는 이 기쁜 날은 그저 세상에 태어나는 수많은 아기 중에 한 아기의 생일에 불과 할 뿐 어찌 성탄이라 부르겠습니까?
우리 믿음을 전하는 ‘선교’를 위해서라도 그 믿음의 기초이신 하느님을 내가 먼저 만나야 합니다.
세상 많은 곳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기적’이라는 이름의 신기한 현상으로 유혹하는가 하면, ‘영적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신비한 황홀체험을 부추기며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를 권유합니다. 또한 혼자만의 고고한 은둔으로 이끌기도 하고 세상사에 대한 무관심이나 세상으로부터의 단절에 하느님과의 만남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재물과 번영을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인한 축복의 증거로 제시하고, 고난과 시련은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증표라고도 이야기 합니다.
성탄을 맞아 다시 한 번 구원의 역사를 되뇌어 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심을 기념하는 이 때에, 그 하느님을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었던가를 말입니다.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이신 아기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난 사람들은 목자들과 동방의 박사들이었습니다.
목자들은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고 있었고 그 밤에 성탄의 기쁜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그들은 유다인이었고, 당연히 유다인이면 누구나 행하는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하고 순례기간 중에는 하느님이 계시다는 성전에 머무르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하는 동안에 아기 예수님을 만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아기 예수님 탄생의 기쁜 소식을 듣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뵌 것은 그들이 목자로서 양을 돌보는 본래의 일을 행하고 있을 때였습니다(루가 2,8-20).
동방의 박사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하늘을 관측하는 본연의 연구에 몰두해 있을 때, 별을 보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깨닫고(마태 2,2), 먼 길을 떠나 마침내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늘 성전에 머무르며 기도하던 시메온과 한나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섬기며 살아가던 본연의 일에 성실했을 때, 그들은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누립니다(루카 2,25-39)
세례자 요한은 예언자로서의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중에(요한 1,29-39) 그리고 세례자로서 세례를 주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고(마태 3,13-17),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들의 일상 속에서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중에 예수님을 만납니다(마태 4,18-22).
이 모든 것이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우리가 있는 바로 그 자리, 우리가 맞닥뜨리는 일상의 상황 안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기적을 찾아 헤매거나 황홀한 체험 속으로 도피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사에 무관심해야 하거나 세상과 단절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오늘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로 인해 따르는 고난과 시련이 있다 해도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고난과 시련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때가 되면 하느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만난 때는, 민족이 번성하여 나라를 세우고 떵떵 소리치며 살 때가 아니라 이집트 민족 아래 노예로 살며 고통 중에 아우성 칠 때였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실은 고난과 시련보다도 재물과 번영을 경계해야 합니다.
재물이 가난한 이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부자의 탐욕으로 이어질 때, 번영이 모두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버릴 때, 하느님의 손길은 따사로운 구원의 손길이 아닌 매서운 회초리가 되었음을 구원의 역사 안에서 배워야 합니다.
경제가 제일의 화두가 되어버린 요즘, 그 이름 아래 잃어버린 것이 없는지 돌아봅시다. 오로지 경제적으로 잘 살기 위해서 정말로 잘 사는 삶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를 말입니다. 고 물가 행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민 경제에 밀어닥친 한파는 물러갈 줄 모릅니다. 어려운 살림살이를 반영하듯이 가계 빚이 늘어나고 생계형 범죄가 증가하고 인생 한 방을 위한 로또 열풍이 뜨겁습니다. 그러나 위대하고 화려한 것만 찾는 시선에 초라한 구유에 아기 예수님으로 다가오신 하느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말씀은 초라한 구유에 사람이 되어 누워계십니다.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이에게 아기 예수님은 다가오십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현실이 힘겨울 때 한 번 더 힘을 내자고 당부드립니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성실한 노력을 기울이며 내 주위를 돌아봅시다. 그 가운데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이 계십니다.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오늘의 이 성탄이 여러분 모두에게 따뜻한 희망과 기쁨이 되기를 기도하며,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를 빕니다.
2011년 성탄절에 천주교 원주교구 교구장 김지석 야고보 주교
[의정부교구]
예수 성탄 대축일 교구장 메시지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오늘 성탄을 맞이한 우리들의 마음은 마치 어두움으로 가득한 긴 터널을 지나온 것같이 밝고 기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0-11).” 천사들이 전해준 기쁜 소식은 세상의 소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소식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실 구원자에 관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둡고 두려움 가득한 세상을 살면서 참된 희망을 가져다 주실 구세주를 기다렸듯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역시 평화와 희망을 전해 줄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신문지상이나 TV화면을 통해서 우리는 지구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두운 소식들을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가 하면 뼈만 앙상한채 죽어가는 자식을 안고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아프리카 어머니들의 슬픈 눈빛도 바라다 봅니다.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 가난한 이와 부자들, 평화와 풍요를 누리고 있는 사람과 고통으로 가득한 사람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큰 격차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여러 가지 형태로 이러한 어두움과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현실들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건널 수 없는 수 많은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강에 우리는 사랑과 나눔의 다리를 놓아야합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사랑의 다리를 놓아야 할 우리 교회도 힘을 잃고 있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젊은이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감수해야하는 극도의 절망감 속에서 희망의 빛을 찾고 있습니다. 지난 8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렸던 세계청년대회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빛을 찾아 희망을 찾아 전세계에서 모여든 백만명이 넘는 청년들이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청년대회를 하며 그들은 위대하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갈망하며 자기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고자, 하느님에 관한 말씀을 들었고, 성찬례를 거행했으며, 서로의 삶을 나누며 기도하였습니다. 청년대회 주제 말씀인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콜로 2,7)”라는 말의 의미가 인생을 준비하는 그들에게 큰 힘과 희망이라는 것을 느끼고 가게 되기를 온 교회가 기도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성탄은 우리 삶의 반석이었고 희망이 되었던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뢰와 믿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며 예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희망의 축일입니다.
어두움과 절망이 드리워져있던 우리에게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이야기는 소중한 삶을 찾다 좌절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삶의 희망을 두었던 두 제자가 희망을 잃고 터털터털 어딘가를 향해 걸어갑니다. 두 제자들처럼 삶에 지치고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삶의 좌절과 함께 새로운 희망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갈증이 깊이 감추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사도 2, 37)”라는 말도 차마 꺼내지 못할 만큼 힘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주님께서는 그들과 동행을 하였습니다. 제자들에게 하셨듯이 주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지만 우리는 그 분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의 눈이 닫혀있기 때문입니다. 눈을 열어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제자들은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루카 24, 31)” 그들은 서로 말하였습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 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루카 24, 32)”
주님을 만나고자 애를 쓰고 있는 우리에게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이야기는 기도와 성경 읽기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주님과 대화를 나누고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뜨거운 감동과 함께 찾아오신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장소이자 주님을 만나는 소중한 자리입니다. 성경을 가까이할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주님께 맡기기 시작하는 것이고 그 분안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 잡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생의 인도자이시며 참다운 친구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삶의 여정을 그분과 함께 할때 우리는 반석위에 튼튼한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 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과 문제에도 맞설 수 있고 어떠한 시련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내년도 우리 신앙생활의 이정표는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에 귀기울이는 데에 두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쓰고 묵상하는 기쁨을 체험하며 우리도 목자들처럼 아기 예수님을 만나도록 합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본 감격과 기쁨을 전하도록 합시다.
2011년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의정부교구 교구장 이기헌 베드로 주교
[대구대교구]
사람이 되어 오시는 하느님
형제자매 여러분, 사람을 위해 사람이 되어 오신 주님의 성탄을 함께 기뻐하며, 여러분 모두에게 아기 예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또한 교구 100주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100년의 첫걸음을 준비하는 우리들 마음에 주님께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한 해는 우리 모두에게 큰 은총의 해였습니다. 교구 10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가지 의식과 행사가 주님의 도우심과 많은 분들의 노고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치러진 것도 감사드릴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마음에 복음을 위한 열정과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활기를 불어넣어 주신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드릴 수 있는 것 자체가 또한 큰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탄은 사람을 위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신비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그분께서 당신 나라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요한복음 1,9 참조) 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느님과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의 국가들이 선택한 제도가 민주주의라면 무엇보다 민의를 알고 민의를 받드는 것이 민주주의일 터인데, 모두들 민의는 생각지 않고 자리다툼, 세력다툼만 일삼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이 나라 정치가 어디로 갈지 참으로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왜 정치를 걱정하느냐 하면 정치가 바로 서야 이 나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이 바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해법이 없을까요? 우리 모두가 주님 성탄의 신비를 살면 됩니다. 성탄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강생의 신비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 높은 영광된 자리를 떠나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 오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가난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얼마나 엄청난 낮춤이며 겸손입니까! 그래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계신 그분을 알아본 사람은 밤새 양을 지키던 가난한 목동들뿐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이 모범, 이 낮춤과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주변의 힘들게 사는 이웃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 한 몸의 영광과 평안만을 찾고 있다면 우리 가운데 오시는 주님을 결코 알아 뵙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에 싸여 있는 세상을 비추는 빛이시고, 위선과 속임수를 깨치는 진리이십니다. 자기를 높이려고 이웃의 아픔과 어려움을 모른 체 하는 것이 바로 어둠이고 위선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빛을 비추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시어, 당신의 겸손을 배우고 당신께서 본을 보여 주신 참사랑을 실천하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청합시다. 여러분 모두의 가정과 우리나라에 성탄의 기쁨과 평화가 늘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2011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장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
[부산교구]
2011년 성탄절에
한 해를 지내오신 모든 분들에게 성탄의 사랑과 희망을 전합니다.
‘자기를 낮추고 비워서 우리에게 오신, 성탄의 그 ’자기비움‘의 신비’를 되새겨, 더욱 충만한 삶의 길이 열리기를 기원합니다.
환경위기, 금융위기, 에너지위기 등의 위기 사회에 대한 말들이 빈번해지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근원에는 끝없이 ‘올라가려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려오고 비우는’ 성탄절의 메시지가 우리 사회의 희망과 빛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가오는 해에는 우리 신앙인들이 먼저 사회의 희망과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곧 복음의 실천이며 그 실천은 곳곳에서 풍성한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부산교구가 2012년을 ‘새 신자 초대의 해’로 정한 것도 이러한 실천을 지향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분들을 복음적 삶으로 이끌어 주시어, 다가오는 해에도 참된 행복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천주교 부산교구 교구장 황철수 바오로 주교
[청주교구]
‘참빛이 세상에 왔다’
1. 오늘, 구세주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성탄의 기쁨과 평화가 신자 여러분과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예수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요한복음은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2. 오늘 탄생하신 예수님은 구원의 참빛이십니다. 성경에, 어두움은 ‘사악’(예레 23,11-12), ‘나쁜 행실’(로마 13,12), ‘죽음’(욥기 10,21-22)을 상징한다면, 빛은 ‘구원’(이사 60,1-2), ‘선’(요한 3,19-20), ‘생명’(요한 1,4)의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 어두움이 악의 세력(에페 6,12)을 상징한다면, 빛은 의인과 하느님의 자녀들이 상속받을 하느님의 나라를 상징합니다(콜로 1,12 참조). 따라서 예수님께서 ‘구원의 참빛’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은 거짓과 오류, 죄와 죽음을 몰아내는 ‘진리요 생명’의 참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요한 14,6 참조). 또한 예수님이 구원의 참빛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죄와 죽음의 법에서 당신 백성을 해방시켜 하느님 나라로 옮겨주시러 오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로마 8,1-2; 콜로1,13 참조). 예수님은 “빛으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당신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요한 12,46)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탄생하신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3. 오늘 탄생하신 예수님은 온 세상을 당신의 빛으로 환히 밝히십니다. 구약의 이사야 예언자는 구세주의 탄생을 고대하며 이렇게 내다보았습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 9,1). 오늘 성탄 대축일에 우리가 희망하고 기뻐하는 것은, 우리 가운데 오신 “모든 민족의 빛이시며 구원이신 그리스도”(가톨릭교회교리서, 1202항)께서 암흑의 땅을 비추시고, 어둠 속을 걷는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최근 세계는 지진과 홍수 등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전쟁과 분쟁, 경제대란과 경기침체 등으로 불안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가까운 북녘 땅은 굶주림과 인권유린으로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 사회도 경제난과 빈부의 양극화, 권력투쟁과 이념적 갈등 등으로 어둠이 짙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어두움의 저변에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주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두움 속에서 교회는 거듭 “인류의 빛은 그리스도이시다.”라고 선언합니다(교회헌장, 1항). 그 빛은 애주애인(愛主愛人)의 빛, 즉 하느님 공경과 이웃사랑의 빛입니다(마태 22,34-40 참조).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사랑의 빛으로 세상의 어두움을 몰아낼 것이며, 어떠한 어두움도 결코 이 빛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요한 1,5 참조). 4. 오늘 탄생하신 예수님은 당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 역시 세상의 빛이 되라고 촉구하십니다(에페 5,8). 예수님께서는 마태오복음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등불은 켜서……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4-16)고 명하셨습니다. 착한 행실이란 무엇보다도 사랑의 행위이며(마태 25,31-46 참조),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자유로운 증여(贈與)의 행위입니다(진리의 광채, 89항). 이는 곧 ‘내어줌’을 통하여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에페 5,9)을 열매 맺는 것이며,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빛처럼”(필리 2,15) 빛을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 때 받은 촛불은 바로 우리가 빛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빛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에가 저절로 자라서 고치를 짓지 않듯이, 신앙인도 저절로 “빛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누에가 매일 뽕잎을 먹고 자라야 고치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주일을 거룩히 지키며 기도생활에 충실하고 성경을 읽고 실천해야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특히 교회는 언제나 성경을 주님의 몸처럼 공경하여 왔고(계시헌장, 21항), 하느님 말씀을 통하여 바른 길을 걸어왔습니다(시편 119,105). 그러므로 성탄을 경축하는 우리 모두는 성체와 말씀 안에서 예수님을 늘 만나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정과 사회에서 “주님만을 섬기고 사람을 도우며”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함으로써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5. 성탄을 경축하는 우리 모두는 참빛이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세상의 빛이 되어, 선하고 아름답고 정의로운 사회를 함께 만들어나가야 하겠습니다. 가정에서부터 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각자 본연의 사명에 충실하고, 이념과 세대 간의 갈등, 그리고 빈부격차의 갈등을 ‘내어줌의 빛’으로 극복하고 특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기꺼이 다가가 사랑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성탄을 경축하며 신자 여러분의 가정과 교구 공동체, 그리고 지역사회에 성탄의 기쁨과 평화가 가득히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2011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청주교구 교구장 장봉훈 가브리엘 주교
[마산교구]
빛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
빛과 어두움 인간의 모습으로 강생하시는 하느님께서 교구의 모든 형제자매, 수도자, 성직자 여러분에게 풍요로운 은총을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신앙 공동체는 다시금 주님의 성탄 축일을 경축하고 자축합니다. 하느님은 빛이십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그분의 아드님께서도 “빛으로서 이 세상에”(시편 84,12) 오십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습니다.”(요한 1,5) 하지만 어둠은 이 빛을 깨닫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으나,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요한 1,9-10). 실상 빛은 어둠 때문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분명 여러 가지 어둠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두움이 빛을 이겨본 적은 없습니다.
사랑의 사회성 이 어두움은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지구촌이 다시금 금융 위기의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 역시 어둠의 모습입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독점이라는 탐욕을 부수어 나눔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너를 위해 사는 길이 바로 나를 위해 사는 길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나와 너를 살리는 공생과 상생의 길을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것을 이웃과 나누고, 탐욕으로 어지러워진 사랑의 질서와 너까지도 포함하는 사랑의 사회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스승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부단하게 이웃을 위해 살아가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벗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말씀하셨음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나만을 위한 삶이 이제는 무너지고 깨어지고 망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너를 위한 삶으로 우리의 길을 바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을 바꾸는 길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의 아들에게서 우리는 너를 위한 삶의 길을 만납니다. 철저히 무력하고 연약한 존재가 되는 아기 예수에게서 세상을 바꾸는 길을 발견합니다. 강생의 신비가 바로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말구유에서 보여주시는 연약함과 무력함이 인간을 구원하십니다. 어둡고 추운 겨울 외양간에서 구유를 요람 삼아 누워있는 아기는 세상을 구하러 오신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구유에서 한 가지 위대한 힘이 생겨납니다.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힘입니다. 그래서“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 사랑의 힘으로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태어나십니다. 그 결과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1요한 4,16) 계시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본질 자체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밖에 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사랑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과 실천으로부터 세상을 바꾸는 힘을 찾아냅니다. 그분과 가장 가까이에서 삶을 나누었던 한 제자는 그 힘과 관련하여“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1요한 3,16) 라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처방은 아주 간단하고 명료합니다.“그러므로 우리도 우리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1요한 3,16) 사랑의 힘을 믿는 사람은 적어도 자기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어려운 변화는 자기 자신을 바꾸는 일입니다. 자신을 변화시키면 세상 역시 변화됩니다.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삶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안다면 하느님 없이 사는 삶을 버리고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삶을 선택할 것입니다.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알고, 믿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그분께서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을 위해 나의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본보기로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 없이 살아 온 우리의 삶을 이제는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삶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결단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공멸뿐입니다.
기쁨에 가득 찬 성탄을 맞이하여 여러분 모두에게 한없는 사랑으로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사랑이 풍성히 내리시길 기도합니다. 아울러 다가오는 새해에는 강생하신 우리 주님, 곧 인류 구원을 위해 순교의 원형이 되신 주님을 더욱 충실히 따르기 위해 함께 기도와 정성을 모아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교구는 2012년도에도“순교 영성으로 세상의 복음화를!”이라는 사목지침을 계속 이어갑니다. 순교 영성에 따라 사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주님께서 함께하여 주십니다. 금년 한 해 기도와 헌신으로 본당과 교구를 위해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다시금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는”(시편 96,11) 성탄을 경축 드립니다.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의 모습으로만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 속에 다가오는 새해 그리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결코 만나지 못할 새해를 행복하게 맞이하시기를 빕니다. 새해에는 많은 결실을 기대하면서 희망의 씨앗을 뿌리시기를 기도합니다.
2011년 성탄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천주교 마산교구 교구장 안명옥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
[안동교구]
강생과 나눔의 신비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요한복음사가는 주님 성탄의 벅찬 기쁨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표현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표현과 같은 의미입니다. 말씀이 바로 하느님이셨기 때문입니다(요한 1,1 참조). 하느님께서 이토록 자신을 낮추시고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신 것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하느님에게까지 오를 수 없는 비천한 우리들을 들어 높이기 위해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 많은 우리 인간들을 한 사람도 구원에서 놓치지 않기 위하여 가장 누추하고 버림받은 자리인 마구간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서 친히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신 ‘강생과 나눔의 신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처럼 놀랍고 오묘합니다. 그러면서도 지극히 겸손하고 단순합니다. 오로지 상대방의 처지에서 상대방과 함께하는 사랑, 내려갈 때까지 내려가는 지극히 겸손한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이기에 겸손하다고 말할 수 있고, 그 낮은 자리에서 상대방을 위해 내놓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내놓는 지극히 단순한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이기에 단순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슴지 않고 “하느님은 사랑”(1요한 4,8.16)이라고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주님 성탄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이 바로 이러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드러내신 그 사랑의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강생과 나눔’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강생과 나눔’으로 우리 인간이 구원되고 하느님과 하나 되는 소통과 친교를 이루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 성탄의 놀라운 축복이요 은총입니다.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이러한 주님의 성탄을 어떻게 함께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기쁨을 어떻게 이웃과 함께 나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이 사람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은 그분이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시니 우리들도 그분을 맞갖게 더 잘 사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작고, 약하고, 힘없는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우리가 주님을 더 잘 알아보고, 주님을 섬기듯 그들을 극진히 섬기며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면서 ‘강생과 나눔의 신비’를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성탄을 기리는 천사들의 노래 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이 가진 자들과 가지지 못한 자들을 가르고 가지지 못한 자들의 대열에 있는 사람들을 점점 더 주변으로 밀려나게 하여 사회 갈등의 심각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그 해결 방법을 뚜렷이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1대 99 사회’라는 말이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데, 그 말은 최상위 1%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반면 나머지 99%는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에 시달리고 있음을 비유한 말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말입니다.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는 ‘반 월가 시위’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이 분노해 거리로 나서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1대 99 사회’로 대변되는 극단적 양극화 현상에서 찾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나라 서울에도 반 월가 시위의 바람이 불긴 했지만 다른 양상으로 우리에게 과제를 던져주었습니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양극화와 빈부 격차, 불어나는 가계 부채와 고물가는 서민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누르고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에 시달리게 하고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먹고 사는 경제문제만을 부각시키는 정치문화는 우리 국민들을 물질중심의 가치판단주의로 내몰고, 물질중심의 생활문화와 사고방식은 결국 하느님의 설 자리를 앗아가 사람들을 탐욕과 이기심만 가득한 파멸의 길, 죽음의 길로 내몰아 물질중심의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 비천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시어 당신의 사랑을 보여준 것은 물질중심의 악순환을 끊고 서로 돕고 나누는 사랑의 행위를 통해 ‘강생과 나눔의 신비’를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조건과 처지가 아무리 보잘것없고 비참하더라도, 아무리 죄스럽고 악하다 하더라도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구원해주는 분이십니다. 오히려 가장 보잘것없고 비참하고 죄스럽고 악한 이들 가운데 거처하시면서 그들을 구원하는 분이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이 바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셔서 모든 것을 함께 나누신 사람이 되신 하느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 성탄 메시지의 핵심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 성탄의 축복과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2코린 8,9)
천주교 안동교구 교구장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광주대교구]
주님께서는 참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오늘은 영원하신 창조주께서 ‘암흑의 땅에서 어둠 속을 걷던 백성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신 거룩한 날입니다. 썩지 않으실 분이 썩을 육신이 되시어 우리와 하나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기 시작한 고맙고 은혜로운 날입니다. 하느님은 온갖 금은보화가 가득한 부자나 막강한 권력을 지닌 황제로 위풍당당하게 오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분은 가난한 집안의 평범하고 여린 아기로 오셨습니다. 그것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이 천대받고 억눌려 살아온 세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소중하게 사랑받는 새로운 세상이 되게 하시려고 '평화의 군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절망이 희망으로 채워진 날이며, ‘하늘에서는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땅에서는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참 평화가’ 시작된 기쁜 날입니다. 이 뜻 깊은 구세주의 성탄을 맞이하여 아기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가 온 누리와 여러분 가정에 가득하기를 빌며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성탄의 기쁨과 축하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우리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출산의 진통 속에도 숙소를 찾아 헤매다 결국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낳아 구유에 눕힐 수밖에 없었던 성모 마리아와 요셉처럼 집이 없어 헤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며칠 전 난방비가 없어 이동용 부탄가스로 추위를 견디던 집에서 가스가 폭발해 지체장애를 앓고 있던 어린 손자가 목숨을 잃은 사건을 접하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는 어떤 위안과 격려조차 없이 우리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며 외로움과 깊은 상처 속에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짊어지려는 따뜻한 마음이 점점 줄어들어 사람들의 마음이 겨울바람보다 더 매서워진 듯해 안타까울 뿐입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실의와 좌절에 잠겨있거나 원망과 미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 더욱 걱정됩니다. 젊은 나이에 직장을 잃거나 취업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이 늘어 생계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일부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까지도 생명의 가치와 존엄을 포기하며 자살까지 선택하는 사회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 시급한 사회적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런 생명문화의 퇴보와 물질주의,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만연하게 된 원인으로 여러 가지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근본적인 원인이 가정의 붕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가진 것이 없어 어렵게 살더라도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며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위로해주는 포근한 가정이 있다면 미움과 분노에 사로잡히거나 삶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결코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가정의 소중함이 훼손되고 가정의 역할이 올바로 실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로인해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회 구성원이 사회로 배출될 수 없게 된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따라서 가정이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희망의 첫 단추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2012년 교구 설정 75주년을 기점으로 100주년을 향해 새롭게 출발하면서 “가정”을 첫 주제로 삼아 3년 계획으로 사목교서를 발표하였습니다. 가정은 하느님 사랑의 신비, 곧 성탄의 신비가 그 어느 곳보다 가장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져야 할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인간이 참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그 기반을 배우고 인격을 키우는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첫 출발은 부부애로부터 시작되고 부부 상호간의 완전한 자기봉헌을 통해 일치가 실현됩니다. 그리고 혼인을 통해 주어지는 하느님의 최고의 선물인 출산을 통해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게 됩니다. 하느님 대리인으로서의 사명을 자각하는 부모들은 자녀들을 존중하고 사랑으로 가르침으로써 하느님 창조사업의 영역이 확장되게 합니다. 사랑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부모와 함께하며 성장한 자녀는 하느님 창조사업의 협력자로서 이 세상에 참 생명과 평화가 넘치도록 활동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성탄의 신비가 가정을 통해 실현되고 확장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참다운 생명과 평화가 가정으로부터 출발하여 실현되고 확장되길 바라십니다. 그래서 당신께서 직접 가정을 선택하시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성탄의 신비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처지에 당신을 맞추셨던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함께하는 가족들과 이 사회의 상처받은 모든 이들 곁에 자신을 맞추어 머물 때 체험되고 완성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머무는 자리는 참 생명과 평화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보여준 가난과 비움,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희생의 깊은 뜻을 깨닫고 남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것이 나와 가정과 세상을 구원하는 삶임을 고백합시다. 그래서 소외받고 절망하는 이들, 장애인, 이주민들이 성모 마리아와 요셉처럼 들어갈 자리가 없어 헤매는 일이 없도록 우리가 그 자리를 마련해주는 사랑과 너그러움을 실천합시다. 예수님 성탄의 기쁨이 우리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이들의 것이 될 수 있도록 합시다.
사랑의 완전함을 우리 안에서 실현하신 이 경이로운 성탄의 신비가 교우 여러분들의 가정 안에 가득하길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2011년 12월 25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
[전주교구]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실재보다는 꿈으로 살아갑니다. 동물은 밥이 있고 짝과 둥지가 있으면 그만이지만, 인간은 그 너머 어딘가를 향한 꿈과 이상이 있어야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살 수 있습니다. 그 <너머>라고 한 것은 반드시 공간적인 의미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내가 어떤 처지에 있든 상관없이, 나는 항상 그보다는 나은 처지를 꿈꿀 수 있을 때, 그 때에만 나는 자유의 숨을 쉬고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 같은 분이셨다…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그러나 그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요한 1장 : 성탄 낮 미사 복음에서). 인류 역사상 이렇게 장대한 꿈의 표현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을 이렇게 간단히(?) 이어주는 선언도 없었습니다. 이제 인간은 사람이 되신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 곧 하느님처럼 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되신 그 말씀께서는 인간의 꿈을 서슴없이 하느님의 높이에까지 올려 주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48). 과연,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신 것은 사람의 자녀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시려는 것이라고 옛 교부들은 가르치셨습니다.
기쁜 소식은 바로 이것입니다. “반가와라. 기쁜 소식을 안고 산등성이를 달려오는 저 발길이여!”(이사 52, : 성탄 낮 미사 제1독서에서). 모든 예언을 완성하고 기쁜 소식의 정수가 되신 분은 바로 하느님의 아들 그분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시켜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그 아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이시요, 하느님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신 분이시며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셨고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히브 1,1-3).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히브 4,14), 곧 우리를 위해서 변호해 주실 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제는 연약한 우리의 사정을 몰라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유혹을 받으신 분입니다”(히브 4,15).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처지에 있든지, 용기를 내어 하느님 은총의 옥좌로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하나 하나와 인류 전체는 이 분께 대한 믿음 하나만으로 결코 우리를 속이지 않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우리는 이미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로마 8,24).
천주교 전주교구 교구장 이병호 빈첸시오 주교
[제주교구]
‘평화의 군왕을 영접하십시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어둠의 장막이 걷힐 때가 온다고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이들이 짊어진 멍에와 어깨에 멘 장대와 부역 감독관들의 몽둥이를 부수실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땅을 흔들며 저벅거리는 군화도 피 속에 뒹군 군복도 모조리 화염에 싸여 불꽃의 먹이가 된다.’ 라고 소리쳤습니다. 주님께서 평화의 군왕을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옛 예언자의 외침대로 한 아기가 우리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분은 모든 멍에를 벗기고 몽둥이를 부수러 오셨습니다. 오로지 공정과 정의로 세상을 다스리는 평화의 군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천사들도 노래하였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예수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을 때 세상은 참으로 어둠에 싸여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으로 세상을 호령하고, 시리아 총독과 권력자들이 그 명을 받들었습니다. 백성들 어깨에 무거운 세금의 멍에를 씌우고 거역하는 이들은 장대와 몽둥이로 다스렸습니다. 그럼에도 유다의 지도자들은 자기 밥그릇 챙기느라 충성하고 타협하고 침묵하였습니다. 힘없는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도 의지할 곳도 없이 짓눌리고 빼앗기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백성들의 벗이 되고 형제가 되어 주러 오셨습니다.
오늘의 세상도 어둠이 걷힐 줄 모릅니다. 얼마 안 있으면 한미 FTA가 발효된다고 합니다. 한미 FTA는 경제적으로 두 나라 사이의 모든 장벽을 철폐하는 일입니다. 미국의 초국적 자본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어 이제 겨우 발전도상국을 벗어나려는 한국을 휩쓸게 생겼습니다. 한국의 몇십 배의 땅에서 생산되는 농수축산물이 무관세로 밀려들면 이 땅의 농어민들은 버티어낼 길이 없습니다. 한미 FTA 아니라도 이미 세계화로 인한 경쟁체제는 이 나라 근로자의 반 이상을 온전한 일자리에서 쫓아냈고 가정주부의 반 이상을 맞벌이로 몰아냈습니다. 주5일만 근무하는 복 받은 사람들도 있지만, 훨씬 더 많은 이들이 휴일도 없이 밤늦도록 일해야 겨우 가족을 먹여 살립니다.
무한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이 나라 백성의 혼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폭행하고 죽이는 일까지 일어납니다. 자녀가 있어도 혼자 쓸쓸히 사는 독거노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제주에도 12,600여 명의 어르신들이 혼자 살고 해마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고독사하는 노인이 급증합니다. 사람들은 인간다움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어둠에 짓눌려 빛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빛이신 그리스도의 도우심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목숨까지 내놓으신 분입니다. 그분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세상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온 세상이 잠든 밤중에, 어둠 속에 오셨습니다. 밤중에도 일하던 비천한 목자들 곁에 먼저 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가장 어두운 곳에 있는 이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 가장 힘겨워하는 이들 곁에 먼저 오실 것입니다.
밤새도록 일하는 대리 운전기사들, 택시 기사들, 식당 주방에서 한밤중까지 그릇 씻는 이들, 캄캄한 새벽에 우유 배달, 신문 배달하는 이들, 병실에서 홀로 고통으로 지새우는 환자들, 성적 압박과 경쟁 때문에 죽음으로까지 내몰리는 청소년들, 이 사회의 가장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이주노동자들, 땀 흘려 키워낸 배추를 갈아엎는 농부들, 엄동설한에 노숙하는 이들, 이러한 이들 곁에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찾아오실 것입니다. 불의한 세력과 편파적인 권력에 온몸으로 항거하며 정의와 평화를 위해 힘겹게 싸우는 이들 곁에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찾아와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 28-30)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아무리 칠흑 같은 어둠이 우리를 에워싸도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짓누르는 모든 멍에와 굴레를 부수러 오십니다. 주님을 의심하지 말고 주님께 의지하며 주님의 내림을 기다리십시오. 그분께서 당신의 굳센 팔을 내밀어 주실 것입니다.
2011년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 강우일 베드로 주교
[군종교구]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1)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도 칠흙같이 어둡고 살을 에는, 매서운 바람이 부는 전후방 각지에서 묵묵히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육˙해˙공 모든 장병과 가족 여러분들에게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기뻐하고 축하드리며, 또한 축복합니다.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루카 2,8)
어둠 속의 빛으로 오시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제일 먼저 만난 사람들은 지금 GP/GOP철책과 소초에서, 함상에서, 기지에서 국가방위를 위해 밤을 지새우는 우리들처럼 밤새 들판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동들이었습니다.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루카 2,10)
♬♪저들밖에 한밤중에 양 틈에 잠자던 목동들 한 천사가 전하여준 주 나신 소식 들었네 Noel Noel Noel Noel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 Noel Noel Noel Noel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
목동들은 거칠고 황량한 들판에서도 양 떼를 지키기 위해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인 양 떼의 생명을 지키고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그들은 때로는 추위에 떨고, 집에서의 따뜻함을 잊고 들판에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사랑하는 군종사제, 수도자, 그리고 교구민 여러분! 우리 모두는 주님의 충실한 목동들입니다. 60년 넘는 군선교의 역사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소임을 너무나도 충실히 잘 수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소임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지금도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두려워 떨고 있는 양들을 찾아 복음의 빛을 비추어 그들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해야 합니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루카 2,15)
그러기 위해 “믿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로”라는 목표를 세운 2012년도 사목교서에서 저는 우리 모두가 ‘믿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갑시다. 믿음으로 굳건해집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선 각 본당에서의 노력이 중요합니다. 본당신부와 수녀, 사목위원을 중심으로 전 신자가 믿음의 경주를 계속하도록 합시다.’라고 했습니다.
천사의 말을 들은 목동들은 믿음 안에서 서둘러 길을 떠나 베들레헴에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뵙고 기뻐하고 찬미 찬양하였듯이, 우리도 믿음 안에서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만나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믿음은 더욱 굳건해 질 것이며, 우리의 삶은 기쁨과 찬미 찬양이 항상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삶에 빛과 희망으로 찾아오시어 참 기쁨이시며 찬미 찬양의 원천이 되시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탄생하셨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세상 곳곳에 크게 전하도록 합시다. “메리 크리스마스”
2011년 성탄절을 맞으면서 천주교 군종교구 교구장 유수일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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