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사언과 길재의 시조를 읽으며
남진원
태산이 높고 높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이 시조는 양사언의 시조이다. 태산은 중국의 동쪽에 있는 오악의 하나이다. 양사언은 태산을 높은 산으로 생각하였지만 사실 험하고 높은 중국의 황산에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태산의 '태산'은 그 뜻도 높은 산이 아니라 큰 산이란 뜻이다. 크다는 것을 높다고도 해석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태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다. 중국의 천자들은 이 태산에 올라 하늘에 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이 시조는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할 때 포기하지 말고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해보라는 도전정신을 불러 일으키는 면에서는 좋은 시조이다. 나도 이 시조에 대해서는 작은 추억이 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오대산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 오대산 사고사에서 한 스님을 만났는데 그 스님은 담배도 맘대로 피우며 방에 들어서니 온통 붓으로 달마도를 그려놓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때 그 스님에게 도를 구하였는데 그 스님께서 나에게 한 말이 양사언의 '태산이 높다하되'였다. 그 후로 내 마음 속에는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 시조를 떠올리며 집념을 불태우곤 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 시조를 대할 때마다 좀 찜찜한 것은 산을 미적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정복의 대상으로 본 점이었다. 그래서 문학성은 별로 없고 교훈성만 있다고 보여진다.
우리의 옛 시조가 대부분 임금에 대한 충정을 애정으로 표현하였거나 교훈적인 시조들이 많다. 이는 시조의 작가들이 사대부와 권신들이었기에 그 계급이나 권력을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욕심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문학성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임제의 '청초 우거진 골에'나 황진이의 시조들은 문학성이 높은 시조에 속한다.
이밖에 내가 참 좋아하고 손뼉을 치는 시조 한 편이 있다. 바로 길재의 '오백년 도읍지를' 이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란가 하노라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나는 늘 길재의 '오백년 도읍지를'을 떠올린다. 지금 80회 째를 맞고 있는 강릉의 바다시 낭송회 모임에 가 보면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의 얼굴이 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제 나왔던 사람들이 오늘은 보이지 않고 오늘 나왔던 사람들 중에는 내일 또 보이지 않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장소에서 시를 낭송하는 것은 같은 데 그 때 마다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르다. 그것을 보면서 전에 만났던 사람들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새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며 반가움에 잠기기도 한다. 그 모습을 딱 그려 놓은 것이 오백년 도읍지이다. 병원에서 한 일년 간호를 하면서 들락날락거렸는데 전에 있던 병실의 환자들은 온데 간데 없고 둘러보면 낯선 사람들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쓸쓸함에 잠기기도 한다. 바로 길재의 '오백년 도읍지를'이란 시조가 이미 그런 내면을 담아놓은 것을 생각하면서 시조의 포괄성에 놀라곤 한다. 물론 길재는 고려의 수도 개성을 둘러보면서 고려 왕조의 멸망에 대한 안타까움과 한탄을 노래했으리라. 그러나 그 시조는 시공을 초월하여 지금도 생명의 눈을 반짝이며 내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사람살이는 변화무쌍하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인생사이다. 그런 속에서 길재의 시조 한수를 다시 되뇌이며 쓸쓸함과 고뇌를 생각해 보고 한 잔의 소주로 평화로움에 잠겨 본다. 또한 시끌벅적한 인생길에서 덤덤하고 어리석게 살아가는 연습을 하며 저 무욕의 숲을 닮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