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홍당 오지열 동호인댁 탐방기 02.08.05.
다음은 본인에 대하여 알아보자.
본인은 아주 열심히 탐석을 다니는 탐석광으로 너무 열심히 다니다 보니 주변에서 수석가게 주인으로 오해할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간혹 욕도 듣게 되는 모양이다. 일반적으로 수석가게 주인은 별로 욕을 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하도 열심히 하니까 시기심인지(?) 주의의 눈총을 받기도 하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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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과 수석 |
본인은 수석취미를 하다가 나름대로 뜻을 갖고 이것저것 하지 않고 문양석은 모든 사람이 알기 쉬우니 한가지라도 전문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그 이후로는 수석에서 문양석을 전문으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은 주로 자탐을 하지만 구매도 하신다. 현재 소장석이 문양석 1,800점, 경석 200점 정도이며 그 중 대략 200점 정도가 구매한 수석이다. 문양석에 뜻을 둔 이후로 목계에서 이포까지 전 수석가게를 다니며 마음에 드는 문양석을 구매하기 시작했으며 그곳 수석가게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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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불우이웃 돕기 결과가 궁금하여 물으니(이 부분은 필자가 한돌연에 가입한 후 필자에게 물으시는 분이 많다.) 전시회 비용과 수익을 계산하니 300만 원 정도 적자를 보았다고 한다.
그래도 사회에 약속했기 때문에 포대당 20kg 50포대 250만 원 상당의 쌀을 관악구청 도움을 받아 난곡동의 독거 노인에게 도움을 드렸다고 한다.
언론에 홍보도 하였지만 주로 비홍당 오지열님의 지인들이 구매해 주셨고 그것도 전각이 대부분이었으며 수석은 10여 점 정도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90년도 스포츠 서울에서 한번 크게 다루었었고 이번에 언론에서 크게 다룬 것이 두 번째라고 한다.
이것은 개인 수석인에 있어서도 영광이겠지만 우리 수석계에서도 자랑스러운 일이라 그 기사를 정리하여 아래에 링크해 놓았다.
앞으로 제2, 제3의 오지열 원장이 나와서 우리 수석계의 빛을 밝혀 주었으면 한다.
(스포츠 조선 기사, 조선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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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장식장의 수석 |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기어 그렇게 수석계에서 24년 정도면 오래된 편인데 왜 후배라는 이야기를 자주 사용하는지 궁금해 필자가 물으니 본인은 꽤 젊어서 수석을 시작하게 되어 수석계 생활은 오래되었지만, 연장자에게 예우 차원에서 후배라고 본인을 낮춘다고 한다.
거실에 가득 찬 수석을 보며 지금도 이렇게 수석이 많은데도 계속 탐석을 하시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냐고 물으니 나름대로 큰 뜻이 있다고 한다. 수석도 돈이 된다고 보면 돈이 되므로 가족과 협의가 필요하겠지만 자연사 박물관 같은 것이 있어 본인의 소장석이 그대로 영구 보존이 가능하다면 사회에 기증하시고 싶다고 한다. 이는 일부 선배 수석인도 기증한 바가 있지만 비홍당 오지열 원장도 뜻을 같이하고 계신 것이다.
다음 수석계에 관한 이야기로
과거 중대부속 이찬수 교장 선생님은 선생님들의 수석 전시회 때에 한 시간에 한 반씩 돌아가면서 학생들에게 수석감상을 하게 하여 학생들이 존경하는 선생님들의 수석 작품을 감상하면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수석을 배울 수 있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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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 장식장의 수석들 |
지금도 수석 동호인으로 교육기관에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교육자분들이 나서서 교육한다면 어려서부터 쉽게 수석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비홍당 원장 자녀분도 지금 군대가 있지만 어려서부터 함께 탐석을 다니다 보니 집에 있는 수석들의 석명을 대부분 알고 있다고 한다.
지금 수석 붐이 죽어가는 것은 초자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하시며 '참다운 선비란 학문만 닦는 것이 아니고 그 학문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우리나라 수석단체가 하나의 공익단체가 되어서 운영되어야 하고 모든 운영을 투명하게 한다면 누가 따르지 않겠느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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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취미는 낚시터에서 낚시를 드리워놓고 난 후라야 낚시 이야기를 할 수 있듯이 수석취미는 탐석을 가야 진정한 수석취미라고 한다.
산지가 고갈되었다고 한 달에 한 번도 탐석 가지 않고 옛날이야기만 하면서 올바른 수석취미를 한다고 할 수 없다.
본인이 지금도 부족하지만, 열심히 탐석 다니며 사이트에 올리는 것은 아직도 수석이 나온다는 것을 알리며 희망을 주기 위함이라는 말씀이다.
왕성한 수석취미 활동에도 틈틈이 시도 쓰시고 전각이나 서각도 하시고 박사 과정도 밟으시는 다재다능하신 분이라 사실 이번에도 갑자기 필자가 제안하여 탐방기 형태로 간단히 수석 사진이나 찍으려고 했는데 그분의 이야기 보따리를 감당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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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등에 새긴 옛 중국문자 |
내용이 많아서 2편으로 탐방기를 나누어 올렸다. 우리나라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것이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정서 속에 일부는 남이 잘되면 깎아내리고 싶은 것이 있나 보다. 그러나 서양은 남이 잘하면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쳐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더 나아가 잘 하는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어 주는 문화다.
필자도 처음에는 비홍당 오지열 원장께서 젊으시어 일부 신뢰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어 필자가 '왜 이런 일을 하는가'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자꾸 이야기를 나누면서 처음에는 확실치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 그분이 왜 문양석을 주로 하시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수석을 모으시는지 그 이유를 명쾌히 알게 되었고 이의 뒤 배경에는 아주 큰 뜻이 숨어 있었다.
수석 관련하여 생각이 같은 부분도 있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따라 할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우리 보통사람은 일반적으로 개인적인 생활에 초점을 맞추어 생활하는데 사회에 헌신하시려는 생각과 끝없이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활동력에는 우리 일반사람과는 달라 어찌할 방도가 없다. 단지 우리 수석계에 도움이 되고 사회에 공헌하는 보람된 일을 한다면 우리 동호인들은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것이고 서로 한 부분을 나누어 맡아서 같이 노력해야 한다.
거실 수석장 앞에서의 비홍당 오지열 원장, 우측에 직접 서각하신 비홍당 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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