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우리를 싫어하나
연합뉴스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가운데서 세 번째로 세계화에 잘 대응하고 있는 나라로 평가 됐다고 한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에 입수한 덴마크 산업연합회의 ‘글로벌 벤치마크 리포트 2008’에서는 한국이 스위스, 아이스랜드에 이어서 세계화 적응력에서 종합 3위에 올랐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특히 우수한 성적을 낸 분야는 ‘지식과 능력’ ‘비용과 세제’로 각각 전체1위를 차지했으며, ‘성장과 발전’은 전체2위이고 ‘국제화 및 개방성’ 항목에서 신흥시장에 대한 수출이 1위에 올라있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가 마치 선진국 대열에 이미 올라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뿐인가. 한국은 이미 세계 제13위의 경제대국이란 위치를 확보했고 지난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회에서는 세계 제7위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 실력은 있으나 미움 받는 한국인?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우리나라의 대외 이미지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최하위에 머물고 있거나 오히려 하락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국가브랜드 평가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안홀트 GMI가 한국의 이미지를 조사대상국 38개국 중 32위로 낮추어 평가한 거라던가 미국의 국가 이미지 조사기관으로 유명한 East West Communications은 그래도 좀 낫게 보아서 한국의 국가브랜드를 세계 28위로 발표하고 있다.
한마디로 머리도 좋고 능력도 있고 잘 살기도 하는데 호감이 가는 국민이 아니라는 말도 되고 별로 가깝게 하고 싶지 않은 별난 사람들이라는 말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한국사람 마음 상할까 봐 ‘한국을 잘 몰라서 그러는 거라’면서 어떻게 하던지 한국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일에 힘써달라는 충고를 점잖은 친구들이 해주곤 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만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왜냐면 요즘 우리가 자주 듣고 있는 우리에 대한 비판적 논조는 한국이나 한국사람을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잘 알지만 싫다 또는 좋아하지 않는다…에 가? 超?때문이다.그러기에 혐오(嫌惡)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이다. 그들이 혐오라는 표현을 쓸 때는 ‘잘 모르고 있다’고 할 경우에 쓰는 말이기보다는 알만큼 알고 사귀기까지도 해봤는데 ‘혐오’를 느낀다 또는 ‘싫다’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는 뜻에 가깝다.
말하기 거북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이 소위 혐한론(嫌韓論)은 지금 세계적인 여론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패턴이 한때 성했던 한류(Korea Wave)의 그것과 비슷하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일본의 혐한론은 벌써 오래 전부터 있었던 반한 감정으로 그 본질에 가서는 양국간의 견해차이는 있지만 우리가 별로 놀라지 않고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단, 우리가 놀라는 것은 일본에서 혐한론에 관한 책이 발간 될 때마다 (내가 알기로도 10권 이상이다) 거의 다가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영락없이 오른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일본의 혐한 감정은 심오하고 체계적이다.
베이징 올림픽은 전반적으로 보아 매우 성공적인 올림픽이었다고 본다. 내용에 가서 여러 가지 비판론도 있긴 하지만 우리 한국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세계7위라는 예상외의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고 수영, 역도 등 종목에서 세계신기록을 기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좋게 평가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충격을 준 것은 중국군중들의 한국에 대한 비우호적인 태도였다. 한국과 중국간의 경기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이 가졌던 모든 경기마다 예외 없이 상대국가를 응원했다고 하니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중국을 잘아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인의 한국에 대한 혐오감정은 벌써 중국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역사적 문화적 또는 지정학 이유를 들어 중국인의 전통적인 반한 감정을 설명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한국의 SBS 방송이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 장면을 몰래 찍어 중국당국의 허락 없이 한국에서 미리 방영하여 올림픽대회의 효과를 고의적으로 폄하시켰다는 여론이 미디어를 통해서 중국 전반에 파급된 결과라고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금번 중국군중이 세계인들 앞에서 노출시킨 ‘일사분란’한 반한 응원태도는 내가 아는 바로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란 점에서 그냥 넘겨버릴 문제가 아니다.
- 중국을 떠나는 한국기업
한국수출입 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이 최근 들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2002년에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수는 1382개였다. 2006년에 2301개까지 증가했다가 2008년 6월 현재 790기업체로 급강하 한 것이다. 생산원가 절감을 위해 중국진출에 나선 한국 중소기업들이 고비용 쇼크에 직격탄을 맞는가 하면 2008년에 들어와 예상치 못한 ‘세금 날벼락’을 맞고 있다. 그래서 현재 정상가동중인 기업은 790개 중 182개사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청산절차를 밟거나 휴업중인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중국의 급격한 경제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빈부격차와 외국기업 우대에 대한 중국 내 여론이 악화돼서 불가피하게 취하게 된 중국 정부 정책이어서 주로 외국기업에만 적용되고 있다”는 삼성경제연구소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최근 중국을 떠나온 기업가들은 하나같이 중국이 유독 한국을 겨냥한 조직적인 반한 정책의 발로라고 토로하고 있음에 주목하여야 한다. 과거 어느 올림픽에서도 볼 수 없었던 주최국 관중들의 노골적인 ‘반한 응원’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보기에는 타이밍이 너무나 절묘하게 일치되고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아시아 특히 동남아 전반에 걸쳐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규모나 표현방식이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반한’ 또 ‘혐한’ 감정의 본질에 있어서는 다 같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태국, 하다못해 베트남까지도 이 범주에 들어가고 있다. 베트남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덧붙인다면 베트남은 우리와 여러 면에서 아주 잘나가는 나라로써 1500개나 되는 한국기업이 진출해있고 베트남에 대한 제1위의 투자국(2007년 통계기준 교역액 약 66억불)인데 최근 들어 반한 감정이 급속도로 번지면서 우리기업들이 속속 그 나라를 떠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 한류가 ‘혐한류’로 변질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 모든 나라들이 한때는 한류(Korea Wave)의 거점역할을 하면서 ‘한국의 것(Things Korean)’들을 좋아하고 동경하기까지 한 나라들이 다. 또 있다. 한국관광객들이 많이 찾아가는 나라들이다. 한국관광객들의 동남아 지역에서의 추태는 벌써 이 지역에서 악평이 난지 오래며 심각하기까지 해서 금년에 있었던 ASEAN(동남아시아 국가 연합)공식 회의에서까지 논의된바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그 결과 명성이 높은 동남아 지역 학자들이 국제 유력지에 ‘한류의 허상’이란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한 것을 필자가 입수하여 읽어본 일도 있다. 공통점 한가지가 더 있다. 한국에 합법이던 불법이던 간에 노동자로 입국하여 별일 별꼴 다 겪고 좋은 감정보다는 나쁜 감정 품고 이를 악물고 아직도 일하고 있거나 이미 추방되어 본국에 돌아가서 한국사람이라면 ‘기어이 원수 갚고 말겠다’는 수심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나라들이기도 하다.
이런 ‘혐한 감정’이 일본, 중국, 동남아 국가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동맹인 미국사람들에게도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대국(大國)이니까 관용하고 친구니까 참아왔을 뿐이다. 10년간의 좌파정권과 말도 안 되는 ‘미국 소고기’파동 등을 겪으면서 미국도 이젠 옛날 같지 않아 참는데도 한계가 있는 듯, 요즘 와서 심심치 않게 감정을 노출하는 경우가 눈에 띈다. 그 얘기를 여기서 다 늘어놓을 수는 없다.
아주 작은 것 한가지만 예를 든다면 미국의 LPGA가 영어회화능력이 되는 외국 선수에게만 참가자격을 주도록 정한 최근의 소위 ‘New U.S LPGA Tour Policy’는 무더기로 들어와서 그 많은 상금을 ‘도리’ 해가는 ‘한이 맺힌’ 한국여자 골프 선수들을 의식한 속 좁은 조치임을 누가 부정하랴.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스포츠맨 쉽’ 에서 벗어난 졸속 정책이라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쯤 말하면 독자들도 필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눈치챘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에게 있다. 그런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고질병이 우리에게 있어 문제다. 듣기 싫어하고 피하고 자기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무시해버린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그러다가는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더 급하다고 하겠지만 그보다 더 급한 것은 우리가 좀 덜 먹고 좀 덜 입고 살더라도 국제사회에서 신용 있고 호감이 가는 국가로 서 인정받고 대접받는 일이다.
외톨이가 된 후에 우리만 잘 먹고 잘살아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남들이 도와서 그래도 이만큼 살게 됐는데 이제 와서 내가 잘나서 여기까지 온 것처럼 국제사회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멋대로 소리지르고, 길 막고 드러눕고, 때려 부시고, 퍼져 울고, 멱살잡고 싸워대고, 턱 없이 사치하고 무례하고, 남 돕는 일에 인색하고, 외국인 노동자 차별하고 학대하고 그러면서도 내 자랑만 해대고, 누구 말마따나 “이불 속에서 만세 부르는” 지금 우리의 사고방식 행동양식 가지고는 앞으로 우리 앞에 냉엄하게 다가올 국제적 현실을 헤쳐나가기가 얼마나 어려울지 깊이 깊이 생각하고 각성하고 시급히 고쳐나가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을 말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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