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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차 히말라야오지학교탐사대 후기
오 황 균
1. 신의 땅 네팔!
김영식 대장님이 이끄는 ‘히말라야오지학교탐사대’! 올해가 14차 탐사대라니 정말 놀랍다. 오래 전부터 소문을 들어 익히 알고 있었고, 이미 10차에 참가한 절친 김이동, 하이용 샘으로부터 여러 가지 재미있는 히말라야 여행 얘기도 들었다. 여러 해를 고민하다가 평소 존경하는 윤석주 선생님께서 권유하셔서 망설임 없이 이번 14차 탐사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우리는 두 차례에 걸쳐 충주에서 사전 훈련을 거친 후 본격적으로 준비에 돌입하였다.
네팔의 공식 국가명칭은 Federal Democratic Republic of Nepal(네팔연방민주공화국)이고 국기는 두 개의 삼각형이 겹쳐 있는 독특한 모양으로 청색 테두리는 바다와 하늘, 적색 바탕은 네팔, 달은 평화 그리고 태양은 빛을 상징한다고 한다. 인구는 2800만이고 면적은 한반도의 2/3이며 힌두교가 국교인 나라다. 기후는 위도상 아열대 기후 정도가 되겠다.
2.누가 네팔을 춥고 위험하다고 했나?
내가 드디어 히말라야에 간다고 하니 옆집에 사는 친구 김이동 화백이 죽지 않으려면 준비 철저히 하라고 귀띔을 해준다. ABC(안나프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자는데 고산병 증세로 머리는 깨져 나갈 정도로 아프고, 준비가 소홀하여 침낭도 얇은 데다 핫팩도 없어 헬기까지 부르려다 말고 간신히 살아왔다는 것이다. 전신이 덜덜 떨리고 ‘아 이러다 죽는구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하니 나도 겁이 더럭 났다. 환갑을 넘은 나이니 만큼 아무리 잘 준비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원칙으로 임했다. 특히 땀이 찰 것을 대비해서 등산용 내복을 서너벌 준비하고 고어텍스 소재인 상의 T도 몇 벌을 준비하고 핫팩도 20여 개 준비했다.
그런데 막상 네팔 카투만두에 도착하니 더워서 입고 간 내복은 물론 다운 자켓 상의는 벗어 던져야만 했다, 맞어. ‘네팔’은 위도 상으로 아열대 지방이지. 우리가 늘 ‘네팔’하면 흰 눈 덮인 높은 설산에서 숨을 몰아쉬며 정상을 오르는 산악인들만을 보아온 탓에 착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더구나 이번 겨울, 아니 건기(아열대 기후는 우기와 건기로 나눈다)는 이상난동 현상으로 유난히 무더운 한 낮의 기온을 기록한다고 한다. 가게에는 토종 귤에다 바나나에다 온갖 과일이 쌓여 있다. 사람들은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거리를 활보한다.
3. 오우! 삶의 현장 카투만두는 공사 중!
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우와 그야말로 콩나물시루다. 바글바글하다. 치열한 삶의 열기가 공사로 파헤쳐져서 마른 흙투성이인 도로에서 피어오르는 먼지와 뒤 섞여 숨이 가쁘다. 점점 고령화되고 결혼도 포기하고 아이 낳는 것도 포기한 우리 한국의 실정에 비추어 바글바글한 카투만두가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몇 년 전에 비하면 지금의 카투만두는 양반이라는 말에 얼마 전에 다녀온 인도의 바라나시가 떠올랐다. 남한 면적 쯤 되는 네팔은 인구가 3000만이 넘고 도시라고는 수도 카투만두와 휴양도시 포카라 외에는 주민들이 대부분 산골짜기에 드문드문 거주하는 탓에 도시 지역에 인구가 집중될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4.포카라! 옛날 왕의 휴양지!
카투만두 Tribhuvan International Airport 바로 옆 국내선 공항에서 25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포카라로 가는 여정은 참으로 정겹고도 스릴이 있다. 버스로 하루종일 터덜거리며 시달려 갈 거리를 단 30여 분만에 갈 수 있으니 행복하다. 도한 포카라에 내리면 공기도 맑고 풍경 또한 환상이니 금상첨화라. 히말라야 트레킹 붐에 힘입어 활기와 여유가 느껴지는 도시다. 지금은 평민으로 내려앉았다지만 왕정시절에 왕이 들러 쉬고가는 휴양지라니 더욱 흥미가 당긴다. 우리는 쉴 사이도 없이 푼힝 전망대와 안나프르나 트레킹 코스로 가기 위해 버스에 짐과 몸을 싣고 나야플을 향해서 출발이다. 트레킹 끝나면 또 보자 포카라여!
5. 푼힐 전망대
우리는 디케퉁가에서 하루 자고 울레리를 거쳐 드디어 고라파니에 도착하여 다음날 새벽 푼힐 전망대 공략을 준비한다. 새벽에 일어나 수많은 트레커들이 붐비는 푼힐 전망대 오르막길을 헐떡이며 올라갔다. 해발 3200여 미터의 높이에서도 고산 증세가 드물지 않다. 전망대에 오르니 히말라야의 준령이 쫙 펼쳐져 과연 장관이다. 날씨도 좋고 사람도 많고 사진을 왕창 찍어댔다. 이제 본격적으로 말로만 듣던 히말라야의 넉넉한 품에 들어온 느낌이 들어 가슴이 두근거린다.
6. 탐사대장 김영식!
허허허! 소박한 웃음을 날리며 아무리 급박하고 위험스런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대원들을 다독이는 오십대 중반의 사나이! 허공에 퍼져 나가는 그의 너털 웃음은 모든 대원들의 산악 트레킹 피로를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마력이 있다. 전 세계 안다녀 본 곳이 없고 위험한 고비를 수없이 넘어온 그를 탐사대장님으로 모신 것 자체가 영광이고, 나 또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다부진 어깨에 울울한 허스키 보이스가 매력인 그는 대원들의 폐부를 찌르는 훈시와 아무리 미운 짓을 하는 대원도 뜨끔한 질책을 하는 한편으로는 따스하게 감싸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녔다. 인간을 강조하는 철학과 나보다는 남을 배려하려는 자세와 늘 겸손한 태도는 드높은 자신감의 상징이며 그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불러일으킨다. 그를 아는 네팔 사람들은 그를 ‘김샵’으로 부른다. 극존칭 샤부! ‘김샵’님을 비롯한 모든 14차 탐사대 스텝 여러분들, 그리고 우리 오지탐사대 가족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7.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어휴! 다리가 질질 끌린다. 아침 먹으면 걷고 가서 점심 먹으면 또 걷고 또 가서 저녁 먹고 자고를 열흘 이상 지속한다. 아무리 조심을 해도 고산지대라서 그런지 설사를 해대고 머리가 아프고 낮에는 덥다가 금방 추워지고. 대원들 각자가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느껴보는 좋은 기회였다. 어떤 때는 계단을 한나절씩이나 내려가는 코스도 있다. 마의 계단! 그 깊은 언덕에 위부터 아래까지 계단식 다랑이 논밭을 만들어 일구고 사는 골짜기 마을 사람들! 위대한 네팔인들의 처절한 삶의 투쟁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저 아래 밭에 가자면 한나절인데 가자마자 되짚어 올라와야 한다면 농사는 언제 짓나. 그러니 그들은 아무리 험한 계단길에서도 뛴다. 맨발에 슬리퍼 신고 뛴다. 지고 일어나기도 힘든 무거운 짐을 이마에 걸친 끈으로 지고 달린다. 다시 태어나면 절대로 인간으로 태어나지 말게 해주세요라고 마차푸차레 시바신께 빌면서 뛴다. 눈물과 땀이 뒤범벅이 되어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달밧 한 접시 덜덜 떨며 비우고 잘 곳이 없어 롯지 구석에 기대어 밤을 지새운다.
8. 롯지 - 산악의 오아시스!
그 높고 깊은 산 속에 만약 롯지라는 숙박시설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도 하기 싫다. 좁은 방에 좁은 나무침대 두 세 개를 들여 놓고 지친 트레킹족이나 등산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물론 간단한 먹거리도 판다. 고마운 시설이다. 전에는 산악인이 붐비는 계절엔 방 구하기가 하늘애 별따기였다고 한다. 방을 구하지 못하면 밤을 도와 아래 혹은 윗마을까지 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요즘은 거기에서 불편하나마 WiFi가 터지고 카톡으로 고국의 가족과 무료통화도 한다. 그 롯지 화장실에서 우리 대원들은 좀 불편함을 느꼈을 터이다. 청소년 대원들은 좌변기가 없어 고생하고 성인 불사조 대원들은 무릎이 아퍼서 간신히 일어났다. 끈을 달아 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9.마차푸차레-신의 산
ABC 바로 아래 MBC가 있다.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다. 어떤이는 SBS나 EBS는 어디에 있냐고 조크를 던진다. 안나프르나 맞은 편에 우뚝 솟은 마차푸차레! 네팔 사람들이 신성시하여 올라가는 것도 금지하고 그 근처 지역에서는 고기도 먹지 못하게 하는 신의 산이다. 과연 웅장하고 날카로우면서도 멋지게 솟아오른 산이다. 히말라야 제일봉은 아니지만 위치가 그래서인지 어디서든 눈에 확 들어오는 신기한 산이다. 우리는 마차푸차례를 배경으로 수없이 많은 사진을 찍었다.
10. 아! 안나프르나여!
작전을 바꾸어 MBC에서 자고 새벽 4시에 기상하여 ABC를 공략한다. 전에는 ABC에서 잤는데 대원들의 고산병 증세가 심해서 작전변경이 불가피했다고 한다. 나는 MBC에서 조차 숨이 가빠서 한숨도 못잤다. 폐기종이 있는 나는 다른 대원들보다 유난히 숨이 찼다. 숨이 턱에 닿도록 걸어서 ABC에 도착하니 어지럽고 머리가 띵하다. ABC롯지 저 위로 돌탑이 대여섯 군데 서 있는데 그 중 우리 대한민국의 산악인들을 기리는 곳이 세 곳이다. 박영석, 지현옥, 박종성, 민준영 대원 등 히말라야를 오르다 희생되신 산악인들의 위대한 발자취를 되새기고 기리는 탑이다. 우리는 조촐한 제물과 소주를 부어 그 분들을 마음 속에 영접했다. 마침 그 분들이 우리를 반기듯 태양이 불끈 솟아올라 머리 위를 비추어 우리 대원들의 노고를 축복해 주는 듯했다. 나마스떼! 오시느라 고생들 했어요! 우리 나이든 불사조 대원들은 어떤 성취감에 들떠 내려오면서 흥이 나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겅중댔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도 공연 한꼭지를 맡아서 펼쳐 보이게 되었으니 우연찮게 밥값을 한 셈이 되었다.
11. 바라부리 초등학교와 바니빌라스 세컨더리 학교 방문
산악 트레킹을 무사히 마치고 포카라로 돌아와 버스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바라부리 초등학교를 방문하였다. 우리는 가지고 간 물감으로 학교 건물 전면에 벽화를 그렸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서 전통악기를 연주하고 만남의 기념식을 엄숙히 거행한 후 함께 춤을 추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서른 세 명 전원 학생들에게 푸짐한 선물을 주고 장학금으로 새끼염소 다섯 마리를 전해 주었고 임시 교사 두 분의 일년치 봉급을 지원하였다. 너무도 뿌듯하고 보람찬 하루였다. 교장선생님이 뛰어나오셔서 주민들과 고유의 전통춤을 추시던 모습과 순박하고 히말라야를 닮은 그 분들의 눈빛이 또렷이 떠오른다.
포카라에서 이틀간 쉬면서 여독을 푼 우리는 다시 안개를 뚫고 카투만두로 돌아왔다. 다음날 우리는 네팔에서의 마지막 여정-바나빌라스 세컨더리스쿨 방문 일정에 돌입했다. 학생수가 600여명이라는 것에 놀랐고 그들의 전통춤에 놀랐고 네팔 교사들의 자유로운 교육 방식에 놀랐다. 좀 어수선하긴 해도 부드럽게 행사는 잘 진행되었고, 단 한 번도 종용히 하라느니 똑바로 줄을 맞추라느니 하는 큰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운영위원장은 연설 대신 음악을 틀고 학생들과 춤을 추었으며 교사들도 일어나 마구 몸을 흔들어댔다. 순서가 바뀌거나 혹은 준비한 춤을 출 기회를 놓친 학생들은 울상이 되어 진행하시는 선생님께 달려가 호소를 한 끝에 무대 공연의 소중한 기회를 되찾기도 하였다. 권위주의에 찌든 우리 한국의 교육은 그 무겁고 부자연스런 덕석을 언제나 벗어 던질라나?
12. 순박하고 고마운 분들 네팔 사람들
무려 14년을 탐사대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해 오신 장정모 사장님 부부 그리고 핀죠 씨와 키솔님, 리마님, 피마님, 찬드라 주방장님을 비롯한 포터, 셸파 모든 분들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특히 핀죠 씨는 우리보다 더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시면서 탐사대를 도와 주셨다. 어느 기회에 그가 영어로 문장을 쓰는 것을 볼 기회가 있었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영어 문장을 휘갈겨 쓰는 모습을 보고 영어 선생을 했던 내가 무척 초라해진 기억이 있다. 그는 늘 겸손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로 맡은 일을 멋지게 수행하는 분으로 나로서는 배울 점이 많은 분이었다. 그 분 댁에서 마시던 네팔전통주 퉁바의 은근한 맛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오지탐사대는 단 한번의 참가에 그치지 않고 여러 번 거듭 참가하는 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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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갈 것인가 - 파슈파티낫 사원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없어지고 그저 산 것이 죽은 것이요, 죽은 것이 산 것이라. 그렇다고 인생은 부질없고 허무한 것이 아니요, 살아 생전에 열심히 살고 선한 일 많이 하는 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 아니겠는가. 죽은 사람의 얼굴과 발을 강물에 잘 씻기고 여럿이 어깨에 메고 가서 장작 위에서 화장을 하는 광경을 보며 다들 숙연해져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나도 많은 생각을 해본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야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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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방콕에서 10시간 대기하면서 선생님께서 다른 외국사람들과 엄청 편하게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영어를 배워야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목적의식을 주셔서^^ 감기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