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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21) 2019. 1. 2
사무엘의 책망과 두 가지 약속
삼상 12:6-25
<지난 시간 요약>
사무엘은 암몬과의 전투에서의 승리한 후 이스라엘 백성을 길갈로 모이도록 했습니다(14절). 거기서 아주 중요한 일을 수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고 했습니다. 나라를 새롭게 하는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체제교체입니다. 신정체제에서 왕정체제로의 체제교체입니다. 또 하나는 사무엘에서 사울로의 세대교체입니다. 이것을 위해 ‘길갈’이라는 역사적인 장소로 모이게 한 것입니다.
길갈에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고, 화목제를 지낸 사무엘은 은퇴를 위한 고별설교를 합니다(물론 사사의 역할, 곧 정치 분야에 한하여, 제사장의 역할은 계속).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양심고백’을 하였습니다.
3절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
놀랍게도 단 한 사람도 사무엘 선지자의 타락을 지적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사무엘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을 가졌기에 마지막까지 부끄러움이 없는 지도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코람데오’의 신앙 - 하나님 앞에서).
이제 사무엘은 고별 설교의 뒷부분에서(본문)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한 권면과 경고를 남깁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을 갱신’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구원의 은혜 회고>
사무엘은 먼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간의 특별한 관계를 설명합니다.
6-8절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을 세우시며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는 여호와이시니/ 7 그런즉 가만히 서 있으라 여호와께서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행하신 모든 공의로운 일에 대하여 내가 여호와 앞에서 너희와 담론하리라/ 8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후 너희 조상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사 그 두 사람으로 너희 조상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곳에 살게 하셨으나.”
하나님은 과거 애굽에서 억압 받고 학대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친히 지도자를 세우시고(모세와 아론), 그들의 인솔 하에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신 분이십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참된 구원자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민족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살고 있는 것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의 망각증입니다. 은혜는 곧 잊어버립니다.
9-11절 “그들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은지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솔 군사령관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넘기셨더니 그들이 저희를 치매/ 10 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범죄하였나이다 그러하오나 이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 11 여호와께서 여룹바알과 베단과 입다와 나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너희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사 너희에게 안전하게 살게 하셨거늘.”
은혜를 잊어버린 증거로 사무엘은 과거의 한 사건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9절). 그들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고 이방의 우상들을 섬기자 하나님은 하솔 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그들을 넘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부르짖자 여호와께서 여룹바알(기드온)과 베단과 입다와 나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너희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셨다는 것입니다(‘베단’이란 사사는 성경에 나오지 않음).
사무엘이 이 예를 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 하나님의 은혜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음을 말하면서,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음을 가르치고 싶은 것입니다.
<인간 왕을 구한 백성들을 향한 책망과 경고>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기보다 ‘열방과 같은 왕’을 요구한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에 금이 간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12-15절 “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13 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14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마는/ 15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이스라엘이 불순종하여 환난 가운데 처했을지라도 그들이 회개하면 구원하여 주셨는데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이 암몬 족속의 침공에 대응하기 위해 왕을 구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암몬의 침입과 관련하여 왕을 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같은 환난의 근본 원인인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열방의 왕’과 같은 인간 왕을 요구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의 요구를 따라 왕을 세워주시기는 하시지만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너희의 구한 왕’, ‘너희의 택한 왕’(9절)이란 구절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사무엘은 분명한 경고를 합니다. 인간의 왕이 세워졌을 지라도 궁극적인 왕은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왕과 백성들 모두 자신들의 최고 통치자 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여전히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왕을 세워 왕정 체제를 구축했을지라도, 이스라엘의 역사는 여전히 하나님과 백성간의 관계에 의하여 흥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
사무엘의 말씀에 하나님은 분명한 경고를 내려 응답하십니다.
16-18절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서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 17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서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에게 밝히 알게 하시리라/ 18 이에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이스라엘에서 보리는 대개 3-4월경에 베고, 밀은 5-6월에 벱니다. 이때는 늦은 비(신11:14)가 그치고 건조기가 시작되는 때로서 봄 추수의 적기입니다.
그런데 시절에 맞지 않게 하나님께서 우레와 비를 내리신 것입니다. ‘우레’(콜 : קול)는 성경에서 종종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 주는 현상으로 언급됩니다(출 9:33, 시18:24). 여기서도 비가 내리지 않는 건조기에 ‘우뢰와 비’가 내린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앞으로도 저들이 불순종하면 받게 될 징벌을 경고하기 위한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본 백성들은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어 하나님과 그의 선지자 사무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사무엘의 위로와 권면>
두려움에 사로잡힌 백성들은 ‘회개하며’, 사무엘에게 자신들을 위하여 기도를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19-23절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20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21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22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19절)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이에 사무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두 가지를 부탁합니다.
첫째,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21절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성경에서는 우상을 말할 때 아무것도 아닌 허망하고 헛된 것이라고 합니다(사44:9, 고전8:4). 그러므로 여기서도 ‘헛된 것’은 우상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상만이 허무하고 헛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방백’과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허무하며 아무 것도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시146:3-4). 이런 점에서 세상의 방백과 이방 우상은 같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 시작하는 왕정에 한껏 매료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암몬 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자신들이 요구해서 세운 ‘왕정 제도’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경험하였습니다. 이제는 이방 나라와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바로 거기에 경종을 울리고자 결국 왕도 하나님을 제쳐두고 의지할 때에는 이방 우상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이 실망만 안겨주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둘째, 오직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20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오직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긴다면 결코 두려워 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22절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이것은 이스라엘이 단순히 하나님께서 당신의 필요에 따라 선택된 도구가 아님을 말해줍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쁨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7:6-11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10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11 그런즉 너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참고 – 출19:5-6)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것은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 성도들에 대해서도 동일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성도들을 향해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15:9) 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사무엘은 하나님이 ‘그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합니다. ‘하나님의 신실성과 불변성을 인하여’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과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저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같은 자신의 언약에 신실하기 위해서도 끝까지 자기 백성들을 반드시 지켜주실 것임을 확증하여 주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두 가지 약속>
이제 사무엘은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서 선지자의 사명에 임하는 자신의 각오를 밝히고 있습니다.
23절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비록 세속의 권세인 사사의 직분을 내려놓았지만, 그는 여전히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영적 지도자 즉 선지자의 직분을 맡은 자였습니다. 두 가지 각오를 밝힙니다.
첫째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해 왔듯 앞으로도 그러하겠다는 사무엘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는 기도 쉬는 것을 ‘죄’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그가 선지자로서 백성들을 위한 기도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음을 증거해 줍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주는 귀한 교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결심은 지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결심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이 해야 할 결심입니다.
사실 기도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기도는 체력을 요하고, 인내를 요하는 어떻게 보면 중노동을 동반합니다.
그럼에도 왜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하지 않으면 몸은 편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몸이 편하면 영은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충만한 영적인 공급이 끊어집니다. 우리는 비록 육신을 입고 있지만 영으로 사는 자가 아닙니까? 그런데 만약에 기도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끊어져 버리면 크리스천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는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치겠다”고 하십니다.
마땅히 가야 할 ‘선하고 의로운 길’,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들을 가르치겠다는 것입니다.
에스라 7장에서도 2차 귀환자들을 데리고 바벨론에서 귀환한 율법학자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했다”(스 7:10)했습니다.
말씀을 맡은 영적 지도자들은 이 말씀을 항상 연구하고 스스로 준행하며 또 가르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맺는 말씀>
사무엘은 설교의 결론을 맺습니다.
24-25절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25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하나님의 명령을 어길 경우 따르는 비극적 결과에 대하여 최종적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개인과 국가의 흥망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백성들의 자세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주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비록 이스라엘에 왕정 체제가 수립되었을지라도 여전히 그들을 통치하시는 최고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재천명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 제도, 새 시대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확립입니다.
사무엘은 왕정제도라는 새 제도, 사울이 열어갈 새 시대가 열리는 시점에서 흥분과 기쁨의 팡파르를 울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약갱신에 앞서 지금까지 지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회고하면서, 하나님께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고, 그들의 배역을 경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정제도가 시작되더라도 과거의 범죄를 되풀이하지 말고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계명을 따라 살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를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헛된 것’, 곧 우상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고, 늘 말씀을 따라 ‘선하고 의로운 길’로 행하여,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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