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은 좀 힘들고 몸도 좋지 않았어요.
간 밤에 잠을 잘 이룰 수가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이젠 부모님이랑은 이런 얘기를 할 수 없어요.
죄송하기도 하고, 이해를 못 하시니까요. 기성세대는 어쩔 수 없어요.
오늘 아침에 너무 힘들어서 학교 여기저기를 혼자 돌아다녔어요.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말이죠.
아침이 일찍 학생들도 별로 없는 나무 그늘에서 하늘 보고 놀았어요...
이것저것 간만에 한가로이 구경도 하고.
그리고 이런 저런 생각을 담아서 성철님에게 편지를 썼어요.
잘은 모르지만 늦어도 다음 주 월요일 쯤에는 성철님 두손에 받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젠 제겐 성철님이 계시잖아요. 그죠?
제가 좋아하는 시중에 가장 가슴에 와닿는 부분이 있어요
그 중 하나가 이렇게 끝나죠.
"....네게 필요한 그 마지막이었으면 했다."
그래요. 전 성철님이 힘겨울 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힘겨워 질땐 성철님이 일으켜 세워주세요.
성철님이 힘겨워 질땐 제가 도와 드리죠.그런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그럼 다음에 또 쓸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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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와 현정이는 갈수록 대화의 시간도 길어졌고 둘이서 잠수방을 찾아서
같이 해매는 시간이 많아졌다.
철수는 지금 대화하는 사람이 성철이가 아닌 철수라고 밝히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수 없었다.괜한 혼란으로 지금의 행복이 깨어질 수는 싫었기 때문이었다.
철수는 성철이로 되기를 간절히 원했고 간혹 학교에서 친구들이 성철이를 부를때
자신이 가끔씩 대답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갈수록 철수는 성철이가 자신인것처럼 착각하였고.
또한 그렇게 행동하기를 원했다.
성철이는 철수의 그런 행동에 무관심하였고 다른 애와 사귀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이제는 둘이서 만난지 반년이 지났을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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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99431 ) 오늘 일본어 학원에서
이현정(99431 ) 새 암호를 배웠답니다...
이현정(99431 ) 요새 일본에서 삐삐에 쓰는 거라나요,...
이현정(99431 ) 성철님도 맞춰보세요...
이현정(99431 ) 14106
김철수(KimChSu ) [성철] 아...
김철수(KimChSu ) [성철] 모르겠는데요..^^;
이현정(99431 ) 모르시겠어요?
이현정(99431 ) 1은 영어로 읽고...
김철수(KimChSu ) [성철] 네..
이현정(99431 ) 10을 영어로 읽고...
이현정(99431 ) 나머지는 일본어예요,.
이현정(99431 ) 내일까지 숙제...
김철수(KimChSu ) [성철] 네..
이현정(99431 ) 그런데 1과 10을 읽는 법이 다르고...
김철수(KimChSu ) [성철] 네..
이현정(99431 ) 10은 발음을 변형하는 거죠..
이현정(99431 ) 힌트 드릴까요?
김철수(KimChSu ) [성철] 네....에
이현정(99431 ) 1을 보면 어떤 글자가 연상되죠?
이현정(99431 ) 그리고...
이현정(99431 ) 4를 일어로 어떻게 읽죠?
김철수(KimChSu ) [성철] し
이현정(99431 ) 맞아요,..
이현정(99431 ) 그리고 10은 어떻게 읽죠?
이현정(99431 ) 영어로,...
이현정(99431 ) 고기서 받침을 빼면 되는데...
이현정(99431 ) 6도 일어지만 좀 변형을 해야하죠..
김철수(KimChSu ) [성철] 그런데..
이현정(99431 ) ?
김철수(KimChSu ) [성철] 리포트 몇장으로 내야되나요?
이현정(99431 ) 숙제......^^
이현정(99431 ) 히히..
이현정(99431 ) 그럴 거 없어요..
이현정(99431 ) 다 알았잖아요.
이현정(99431 ) 제 마음 이해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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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무슨말인지 잘몰랐다.
현정이에게 인사를 하고 들어와서 갈무리한것을 분석해 보았다.
"무슨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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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아무래도 이 암호를 알수가 없었다. 일본어를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어를 잘하는 친구에게 물어보기로 하였다.
늦은 밤이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철수는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한참만에 받았고 그속에선 짜증이 담겨져 있는 친구의 목소리가 나왔다.
"여보세요,응 나야 철수. 밤늦게 전화해서 미안해..한가지 물어 보려구"
"뭐야 지금 몇시인줄 알아? 이래서 통신하는 족속들은 싫다니깐."
"응...나중에 한잔살께..미안."
"음...뭔데?"
"리포트인데....음...막히는 부분이 있어서 그래..
14106이라고 암호 비슷한 부분인데 혹시 아는가 싶어서.."
"그게 뭐야? "
"응..1은 일어고 4도 일어 10은 영어 6은 일어로 발음을 해.."
"아이시텐로쿠?"
"응..그곳에서 텐은 받침을 빼고 6은 다른 발음이고..해석이 가능해?"
"아이시테로쿠..무슨뜻인지...잘.."
"참 6은 약간 발음을 달리해"
"아이시테로쿠..아이시테로..문장이니?"
"응 그런것 같애.."
"아이시테로..아...愛しでる구나"
"응..그게 뭔데?"
"사랑합니다란 뜻이야."
순간 철수는 가슴이 뛰었다.
"그참..희안한 문제도 다있네..그 리포트... 너 일어 교양듣니?"
철수는 친구의 말이 끝나기 전에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이얏호~~~~~~"
철수는 너무 기뻐서 껑충 뛰었다.
"야..철수..흑 그렇게 좋아?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 형님이 문제를 풀어주니까 좋지? 짜사 술이나 사.."
"응...고마워 당연히 사주지..하하하"
전화기를 내려놓고 철수는 한동안 방안을 빙빙돌았다.
너무 기뻐서 옆에 누가 있으면 껴안고 춤을 출것만 같았다.
철수는 자신에게 이런 행복이 오리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그냥 친구들이 애인을 자랑하거나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소리를 들으면
먼 나라의 이야기 처럼 들리곤 하였는데 이렇게 생길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그동안 대화중에 그런 말을 하고 싶지만 현정이의 마음도 몰랐기에
망설였던 것이었다. 약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것은 곧 잊어버렸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 지도 몰랐다.
다음날 철수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 위하여 일찍 부터 대화방에
비방을 만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현정이가 들어오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마음이 급하기 때문에
더이상 기다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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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곱사리(ggsarida)님이 입장했습니다.##
김철수(KimChSu ) [성철]안녕하세요
곱사리(ggsarida) 아직도 비방인가요?
김철수(KimChSu ) [성철] 죄송해요..
곱사리(ggsarida) 헉 그런데 왜 또 초대했나요?
김철수(KimChSu ) [성철] 5분이내 아무도 안오면 짤려서 ^^;
김철수(KimChSu ) [성철] 아는 사람이 지금 이시간에 사리님밖에 없어서..
죄송합니다.저랑 이야기 해줄수 있으신가요?
곱사리(ggsarida) 그러지요 뭐..음냐..벌써 20번째이군요..==;
김철수(KimChSu ) [성철]사리님은 마음도 좋으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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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현정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길어서 미칠지경이었다.
편지를 보낼려고 했으나 직접 이야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답장을 기다리기에는 마음이 너무나 조급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결과를 얻고 싶었다.
하지만 항상 만나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질않자 철수는 불안감에 쌓였다.
방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버렸고 비방이라고 만든 제목은 사람들의 항의를 받아서
잠수방으로 바꿔어 버린지 오래전이었다.
쓸쓸히 움직이지 않는 화면은 철수의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휴..내가 왜이렇지..."
이미 시간은 흘러 철수가 접속한지 6시간이 흘렀을때였다.
느려진 화면이 빠르다고 느꼈을때 현정이가 들어왔다. 철수는 너무나 기뻤다.
하지만 그것은 곧 불안으로 바뀌어 버렸다.
현정이가 직접 만나자고 하는 것이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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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99431 ) 성철님 죄송해요 늦어서..
김철수(KimChSu ) [성철]괜찮아요..
이현정(99431 ) 아빠가 일찍오셔서 못들어왔어요 많이 기다렸어요?
김철수(KimChSu ) [성철]아뇨..그동안 다른 사람들과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었어요.
이현정(99431 ) 성철님 내일은 참 좋은 날이에요
김철수(KimChSu ) [성철]뭔데요?
이현정(99431 ) 내일 학과 수업이 휴강이거든요
김철수(KimChSu ) [성철]아...네
이현정(99431 ) 훗 ^^
김철수(KimChSu ) [성철]그런데요
이현정(99431 ) 성철님 제 부탁 한가지만 들어주실레요?
김철수(KimChSu ) [성철]네 말씀하세요
이현정(99431 ) 성철님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보고 싶어요
김철수(KimChSu ) [성철]아....네...
김철수(KimChSu ) [성철]현정님..제친구랑 같이 나가면 안될까요?
이현정(99431 ) 전..혼자 나가는데....
김철수(KimChSu ) [성철]친한 친구이거든요 현정님을 소개시키고 싶군요..
이현정(99431 ) 네?
이현정(99431 ) 저랑 만나기 싫으시면 싫다고 말씀하세요
김철수(KimChSu ) [성철]아..아닙니다. 자랑할려구요 ^^
이현정(99431 ) 훗..정말요?
이현정(99431 )
그럼..그렇게 하세요
김철수(KimChSu ) [성철]그런데 괜찮겠어요? 실례는 아닌지..
이현정(99431 ) 괜찮아요. 성철님이랑 친한 친구시라면 좋으신 분일꺼에요
김철수(KimChSu ) [성철]그럼요 아주 좋은 친구에요 순진한 녀석이지요.
참 제가 어떻게 현정님을 알아볼 수 있나요?
이현정(99431 ) 하얀 모자와 흰브라우스를 입고 나갈께요
김철수(KimChSu ) [성철]현정님을 볼수 있다니 정말 좋아요
김철수(KimChSu ) [성철] 참! 현정님..
이현정(99431 ) 네..
김철수(KimChSu ) [성철] 장소는 어디인가요?
이현정(99431 ) 마로니에 공원 앞의 칸타타루. 시간은 2시 괜찮겠어요?
김철수(KimChSu ) [성철] 네...
이현정(99431 ) 시간을 임의로 정해서 죄송해요 시간이 그때밖에 없거든요..
김철수(KimChSu ) [성철]알고 있어요..현정님 ...
이현정(99431 ) 미안해요 고집을 부려서..저 못됐죠....
김철수(KimChSu ) [성철] 미안해 하실것 없어요..
김철수(KimChSu ) [성철] 현정님은 제게 아주 소중한 사람입니다.
이현정(99431 ) 네..꾸벅~
## 이현정(99431)님이 퇴장했습니다.##
김철수(KimChSu ) [성철]전 현정님을...헉~
/fi 99431
## 이현정(99431)님은 지금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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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이가 갑자기 나간 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들어와서 현정이가 컴퓨터 스위치를
꺼버렸기 때문이었다.
현정이의 아버지는 처음에는 뭔지 모르고 단지 컴퓨터에 붙어있는
현정이가 보기 좋았지만 차츰 이상한 낌새를 채고 있었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올때마다 현정이는 무엇인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며
켜져 있으리라고 생각했는 컴퓨터는 꺼져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현정이의 아버지는 걱정을 하였다.
신문상에 오르내리는 컴퓨터를 이용한 음란물을 현정이가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석연찮은 의심은 벗어버릴수 없었다.
"현정이 힘 안드니?"
"아니에요, 아빠 지금 잘거에요"
현정이는 불안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아버지가 상냥하게 대할때는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던 것이었다.
철수는 그런 현정이의 사정을 잘알고 있었다.
"아.."
철수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마치 잘못을 저지르다가 발각된 아이처럼 얼굴이 달아올랐다.
고백을 못한것이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곧 내일 현정이를 만난다는 걱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휴....어떻게 하지...성철이에게 부탁해야 겠어..
그런데 성철이 이 녀석은 왜 아직 안들어오는거야..."
철수는 속이 무척 상했다.
괜히 성철이에게 채팅을 보여줘가지고 이런 일을 당하는 것 같아서
후회가 막심하였지만 곧 체념해 버렸다.
"그래 이렇게 채팅만으로 이야기 하는것도 호강이지..."
철수는 성철이를 기다리다가 그만 자버렸다.
다음날 수업중에 성철이를 만나자 철수는 어제의 이야기를 하였다.
성철이는 예외였다는 얼굴로 철수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흥미있는 표정으로
철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물론 기꺼히 도와드리지.."
철수와 성철이는 칸타타로 향했다.
"성철아..알지?"
"응 그래 알았어..내가 철수의 애인을 뺐어간다면 그건 친구도 아냐...
훗 그런데 어떻게 해야되지? 그리고 언제까지 그렇게 해야 되니?"
"응....그냥 만나기만 하면 돼.. 난 채팅만으로 족해..."
철수가 부끄러운듯이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하하...여기 숭고한 사랑의 전사가 있군... 그런데 정말 그애를 좋아하니"
"응...."
철수는 조그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칸타타루에 도착할동안 철수는 현정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하지만 현정이의 신상에 대한 이야기와 집안에 대한 이야기만 해주었고
현정이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는 하기 싫었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보물이기에 성철이에겐 알려주기 싫었던 것이었다.
칸타타루에 들어가니 향긋한 커피내음이 철수의 마음을 더욱 부채질 하였다.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철수를 성철이가 말렸다.
"야..철수..이런..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수 없잖아. 한번 만나보자.."
철수는 두리번거렸다.
한쪽 구석에 하얀 모자를 쓰고 앉아 있는 여학생의 뒷모습이 보였다.
철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성철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성철이도 그애를 본것 같았다.
"성철아..저애인것 같애.."
"응...내가 어떻게 여자애들이랑 이야기 하는지 잘봐"
성철이는 아주 익숙한 듯이 그애한테로 걸어갔고 철수는 성철이 뒤로
졸졸따라 갔다.
"혹시 현정님아니세요?"
"네..그럼...성철님?"
그때 그 여학생이 뒤를 돌아보았다. 철수는 현정이를 보자 가슴이 뛰었다.
그애는 무척 귀여운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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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이도 현정이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기색이었다.
철수는 순간 성철이가 미워졌다.
자신이 성철이라고 한것이 이렇게 후회스러운 적이 없었다.
철수는 후회를 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처음뵙겠습니다.현정님"
"네"
성철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현정이는 가만히 고개를 숙인채 조그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현정이의 목소리는 약간 상기된듯 떨렸으며 철수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이앤 저의 친구 철수이고 제가 사용하는 아이디의 주인입니다."
"안녕하세요 철수님"
철수는 대답을 하지못했다.
현정이의 얼굴을 바라본다고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정이는 고개를 들어 철수를 바라 보았다.
현정이의 눈과 마주치자 철수는 얼굴이 빨개졌다.
'현정님..사실은 제가 현정님이랑 채팅을 하던 사람이에요'
철수는 순간적으로 말을 할뻔하였다. 당황한 철수는 물잔을 들고 물을 마셨으나
물컵이 탁자위로 엎질러졌다..
"이런...앤 조심성이 없어서...미안해요 현정님 "
성철이가 손수건으로 테이블을 딱으면서 현정이에게 말하였다.
"괜찮아요.."
현정이는 목소리도 좋았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이성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것일까?
철수는 안절부절하여 컵을 만지작거렸다.
성철이도 현정이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성철이는 재미있게 이야기 하였고 현정이는 가만히 듣고 있었지만 즐거운듯
미소를 계속 띄우며 성철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철수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대화에 끼어들수 없었다.
그저 속무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한심스러웠고 부끄러웠다.
현정이는 성철이가 무척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지만 그의 친구를 데리고
온것을 매우 섭섭하게 생각했다.
성철이와 철수는 어울리지 않은 친구라고 여겼다.
생김새와 행동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친구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모처럼 시간이 나서 이렇게 만나는데 철수가 마치 방해꾼처럼 느껴졌다.
"현정님..현정님이 이야기좀 해보세요"
"아...전 듣는것을 좋아해요..."
성철이는 철수가 안중에 없는것 같았다.
철수가 계속 성철이의 옆구리를 찔렀지만. 성철이는 무시를 하고 이야기를
자신에게 맞추어 이끌어갔다.
"밖으로 나갈까요? "
"네 좋아요"
성철이가 이말을 꺼내자 현정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났다.
철수는 재빨리 카운터로 가서 계산했다.
이것만은 성철이에게 빼앗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철이와 현정이는 서로 이야기 한다고 밖으로 먼저나갔으며
철수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밖은 화창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나 철수는 혼자 고립되어 있는 것 같았다.
정적만이 그를 감쌓았으며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지경이었다.
"현정님 노래 좋아하시나요?"
"네..."
마로니에광장의 스텐드엔 아마추어들이 나와서 노래자랑을 하고 있었다.
사회자가 관객중에서 한명을 지목하면 그 사람이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하하하...정말 재미있게 부르는군요..저사람"
"네...전 가끔 이곳에 와요.....하지만.."
현정이는 성철이랑 이야기하다가 문뜩 철수를 바라보았다.
철수의 눈동자가 너무 슬프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왜 슬픈눈을 할까? '
현정이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만났던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철수님 어디 언짢은 데라도...."
"아....아닙니다..."
철수는 얼굴이 빨개졌다.
"현정님 잠시 마실것좀 사올께요...야..철수야..같이 가자.."
"..응...."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으면서 성철이가 심각한 얼굴로 철수를 바라보았다.
"철수야....인상이 왜그래?"
"으응?"
"음...어떻게 하지..이젠? 현정이에게 사실대로 말해야 되는 것 아냐?"
"아..아냐...그냥 이대로 하자.."
철수는 지금 이 상태에서 사실을 현정이에게 이야기 하면 앞으로
못 만날것 같았다.
현정이를 속이고 채팅을 하였다는 것은 그녀를 가지고 놀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훗...그런데 말이야.....나...현정이 마음에 들었어.."
철수는 순간 들고 있던 캔커피를 떨어뜨릴뻔 하였다.
"음...그래서 말인데...솔직하게 이야기 할께 현정이는 너한데 어울리지 않아....
내가 너한테 어울리는 애 소개해줄께...싫니?
"..........."
"그럼 현정이에게 말할까?"
"..........아니..."
"좋아 그럼 그렇게 한다"
"하지만..현정이에게 더이상의 감정은 가지지마...이건 부탁이야.."
"음..좋아..사랑한다는 말은 안할께..하하"
철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부정을 할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대로 사실이 밝혀져서 헤어진다면 영영 채팅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스텐드로 왔을땐 현정이가 사회자에게 지목이 되어서 쩔쩔매고 있었다.
현정이보고 노래를 시켰는데 현정이가 나가질못해서 사람들이 야유와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현정이는 노래를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들앞에서 부른적이 한번도 없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성철이와 철수가 오지 않아서 그렇게 하지도 못하였다.
"하하..여러분 다시한번 박수를 보내줍시다. 에잉 왜그래에~~~내숭 떨고있어엉~
사회자의 짖궂은 질문에 현정이는 어쩔줄 몰라했다.
"제가 대신 부르께요"
"아..저 아가씨와 어떻게 되는 관계인가요? 애인이 아니면 안되는데..."
"전 애인이에요"
현정이가 놀라서 고개를 들자 무대에는 성철이가 서있었다. 철수는 경악하였다.
'아니..이녀석이..정말....으.노래를 부르면 ....난..이제 끝장이닷'
성철이는 성악을 전공하기때문에 그의 노래솜씨는 정말 끝내주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부르는 일은 없었지만 단 성철이가 정말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을 때 가끔씩 그애를 위하여 부르곤 하였다.
"노래 제목은?"
"이상우의 비창...그녀에게 바칩니다."
성철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시장바닥같이 떠들썩한 마로니에 광장은 순간 정적에 감쌓이고 그의 목소리는
멀리 메아리쳤다.
현정이는 완전히 넋이 빠져있었으며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철수는 그런 현정이의 모습을 보자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철수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뛰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서 미칠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모든것이 멈추어져 있었다. 철수는 빈 공간속을 한없이 뛰어갔다.
뒤에선 노래가 끝났는지 환호와 앵콜소리가 철수의 뒷머리를 휘어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