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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때, "희생 제물"이라는 소리를 들어 봤을 것입니다.
미사 때마다 희생 제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치는 것이라고 하는데,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단 한 번 바쳐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시는 분은 자세한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다른 대사제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치고
그다음으로 백성의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으십니다.
당신 자신을 바치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히브 7,27)
만일 그렇다면 세상 창조 때부터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쳐 죄를 없애시려고 단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히브 9,26)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고대하는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죄와는 상관없이 두 번째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히브 9,28)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히브 10,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히브 10,12)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히브 10,14)
사실 그리스도께서도 죄 때문에 단 한 번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여러분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시려고,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1베드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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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답 : 교회는 그분의 자기 봉헌으로 들어간다
https://namu.wiki/w/%EC%84%B1%EC%B2%B4%EC%84%B1%EC%82%AC
ANGLICAN/ROMAN CATHOLIC JOINT PREPARATORY COMMISSION
PREFACE TO THE FINAL REPORT
The Report which follows is the outcome of work begun at Gazzada, Italy, on 9
January 1967. A Joint Preparatory Commission met there, in fulfilment of a joint
decision by Pope Paul VI and Archbishop Michael Ramsey, expressed in a Common
Declaration during their meeting in Rome in March 1966. Meeting three times in less
than a year, that Commission produced a Report which registered considerable areas
of Roman Catholic - Anglican agreement, pointed to persisting historical differences
and outlined a program of ‘growing together' which should include, though not be
exhausted in, serious dialogue on these differences. It proclaimed penitence for the
past, thankfulness for the graces of the present, urgency and resolve for a future in
which our common aim would be the restoration of full organic unity.
That Report was endorsed in substance by a letter of Cardinal Bea in June 1968 and
by the Lambeth Conference a few weeks later. In January 1970 the signatories of the
present Report met first as ‘The Anglican-Roman Catholic International Commission'.
성공회/로마 가톨릭 공동 준비 위원회
최종 보고서 서문 다음 보고서는 지난 9일 이탈리아 가자다에서 시작된 작업의 결과이다. 1967년 1월. 공동 준비 위원회가 그곳에서 소집되어 공동 합의를 이행했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와 마이클 램지 대주교의 결정은 공통 문서로 표현되었습니다. 1966년 3월 로마 회의에서 선언. 짧은 시간에 세 번 회의 1년여 만에 해당 위원회는 상당한 지역을 등록한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성공회 합의, 지속적인 역사적 차이 지적 그리고 포함해야 하는 '함께 성장' 프로그램의 개요를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차이점에 대한 진지한 대화에 지쳤습니다. 에 대한 참회를 선포했다. 과거, 현재의 은혜에 대한 감사, 미래에 대한 절박함과 결의 우리의 공통 목표는 완전한 유기적 통일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 보고서는 1968년 6월 비 추기경의 편지를 통해 실질적으로 승인되었으며, 몇 주 후 램베스 회의에서. 1970년 1월 서명국들은
현재 보고서는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위원회'로 처음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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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therefore one historical, unrepeatable sacrifice, offered once for all by Christ and accepted once for all by the Father.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바치시고 아버지께서 단 한 번 받아들이신, 역사적이며 반복될 수 없는 단 하나의 희생이 있습니다.
In the celebration of the memorial, Christ in the Holy Spirit unites his people with himself in a sacramental way so that the Church enters into the movement of his self-offering.
기념 거행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성령 안에서 당신 백성을 성사적 방식으로 당신과 결합시키시어 교회가 당신 자신을 봉헌하는 운동에 동참하게 하십니다.
In consequence, even though the Church is active in this celebration, this adds nothing to the efficacy of Christ's sacrifice upon the cross, because the action is itself the fruit of this sacrifice.
결과적으로, 비록 교회가 이 거행에 적극적이라고 할지라도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의 효능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행위 자체가 이 희생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The Church in celebrating the eucharist gives thanks for the gift of Christ's sacrifice and identifies itself with the will of Christ who has offered himself to the Father on behalf of all mankind.
교회는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의 희생이라는 선물에 감사를 드리며, 온 인류를 대신하여 성부께 자신을 바치신 그리스도의 뜻에 자신을 일치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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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iestly sacrifice of Jesus was unique, as is also his continuing High Priesthood.
예수의 제사장적 희생은 독특했으며, 그의 지속적인 대사제직도 독특했습니다.
Despite the fact that in the New Testament ministers are never called ‘priests' (hiereis) Christians came to see the priestly role of Christ reflected in these ministers and used priestly terms in describing them.
신약에서 성직자들이 결코 '사제'(hiereis)라고 불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성직자들에게 반영된 그리스도의 사제적 역할을 보고 그들을 묘사할 때 사제적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Because the eucharist is the memorial of the sacrifice of Christ, the action of the presiding minister in reciting again the words of Christ at the Last Supper and distributing to the assembly the holy gifts is seen to stand in a sacramental relation to what Christ himself did in offering his own sacrifice.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 만찬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다시 낭송하고 회중에게 거룩한 예물을 나누어주는 주례 성직자의 행위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희생을 바치심으로써 행하신 일과 성사적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So our two traditions commonly used priestly terms in speaking about the ordained ministry.
그래서 우리의 두 전통은 성직자 직분에 대해 말할 때 일반적으로 사제적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Such language does not imply any negation of the once-for-all sacrifice of Christ by any addition or repetition.
그러한 언어는 어떤 추가나 반복으로 그리스도의 단 한 번 영원히 드려진 희생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There is in the eucharist a memorial (anamnesis)5 of the totality of God's reconciling action in Christ, who through this minister presides at the Lord's Supper and gives himself sacramentally.
찬례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화해 행위의 총체성을 기념(기억) 하는 것이 있으며, 그리스도는 이 성직자를 통해 주님의 만찬을 주재하고 자신을 성사적으로 바칩니다.
So it is because the eucharist is central in the Church's life that the essential nature of the Christian ministry, however this may be expressed, is most clearly seen in its celebration;
따라서 성찬례가 교회 생활의 중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사역의 본질적 성격은,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든, 그 거행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for, in the eucharist, thanksgiving is offered to God, the gospel of salvation is proclaimed in word and sacrament, and the community is knit together as one body in Christ.
왜냐하면 성찬례에서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구원의 복음이 말씀과 성례전으로 선포되고, 공동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결합되기 때문입니다.
Christian ministers are members of this redeemed community.
그리스도교 성직자들은 이 구속된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Nor only do they share through baptism in the priesthood of the people of God, but they are ‘particularly in presiding at the eucharist’ representative of the whole Church in the fulfilment of its priestly vocation of self-offering to God as a living sacrifice (Rm 12:1).
그들은 세례를 통해 하느님 백성의 사제직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특히 성찬례를 주재함으로써’ 하느님께 살아있는 제사로서 자기를 바치는 사제적 소명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온 교회를 대표합니다(로마서 12:1).
Nevertheless their ministry is not an extension of the common Christian priesthood but belongs to another realm of the gifts of the Spirit.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역은 공통된 그리스도교 사제직의 연장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의 또 다른 영역에 속합니다.
It exists to help the Church to be "a royal priesthood, a holy nation, God's own people, to declare the wonderful deeds of him who called them out of darkness into his marvelous light" (1 Pt 2:9).
그것은 교회가 "왕 같은 사제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 백성이 되어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 기이한 빛으로 인도하신 이의 기이한 행적을 선포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2:9)는 목적으로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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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파일 링크 참조
The Final Report (anglicancommunion.org)
https://www.anglicancommunion.org/media/105260/final_report_arcic_1.pdf
첫댓글 제사는 하나이고
그 십자가상의 예수님이 달리신
그 때의 제사에 참여하는 것,
예수님의 희생을 현재화해서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