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하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42.195km를 달리는 경기란 것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마라톤의 유래나 왜 42.195km인지는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달리기 및 마라톤 포탈 사이트를 꿈꾸는데 빠뜨릴 수는 없는 일. 긴 역사, 긴 거리를 달리는 마라톤임에도 불구하고 짧게 요약을 해보았다.
마라톤의 유래
BC 490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대왕이 보낸 그리스 원정군(遠征軍)은 낙소스 ·델로스섬 등을 정복한 후 아테네를 공략하기 위하여 아티카(Attika)의 북동 해안에 있는 마라톤 광야에 상륙하였다.
아테네의 장군들은 밀티아데스의 제안에 따라 마라톤에서 적을 맞아 싸울 작전을 세우고, 최고무관 칼리마코스 지휘하에 약 1만의 중장 보병군(重裝步兵軍)을 급파하여 마라톤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포진하였다. 양군의 대치상태가 수일간 계속되던 중 페르시아군은 주력부대를 승선시켜 해상으로부터 아테네를 직접 공격하려고 하였다.
기회를 엿보던 아테네군은 즉시 공격으로 나서 페르시아군을 크게 무찔렀다. 페르시아군은 배로 달아났다가 다시 아테네시(市)로 쳐들어가려 하였으나, 아테네군이 이미 육로로 해서 돌아와 있다는 말을 듣고 공격을 단념하고 본국으로 철군하였다.
이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이 6,400명의 병사를 잃은 데 반하여, 그리스측의 전사자는 192명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그리스의 용사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 전장에서 아테네까지 약 40 km를 달려 “우리는 이겼노라”고 아테네 시민들에게 알리고 절명하였다는 고사(故事)가 있는데, 마라톤 경주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
마라톤 거리 42.195km의 탄생
이러한 고사에서 유래되어 1896년 근대올림픽 제1회 아테네대회부터 육상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고, 마라톤에서 아테네의 올림픽 스타디움까지의 코스를 달렸다. 이 때의 거리는 후일 실측해 보니 36.75km로 밝혀졌으나, 제7회 올림픽까지는 대회 개최지의 여건에 따라 통일된 거리가 아닌 40km 전후를 달렸다.
1924년 제8회 파리 올림픽대회를 앞두고 마라톤경기의 거리를 일정하게 통일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고, 1908년 제4회 런던 올림픽대회 때 윈저궁전에서 올림픽 스타디움까지의 거리 42.195km가 마라톤의 정식 거리로 채택되었다.
세계 신기록이란 없다. 다만 최고만이 존재할 뿐이다.
마라톤 기록은 코스마다 조건이 약간 다르기 때문에 세계기록은 공인되지 않으며, ‘세계 최고’라는 말이 쓰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계 기록’이라는 말이 통용되며, 1999년 10월 24일 모로코의 할리드 하누치가 시카고 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5분 42초로 세계신기록을 수립하였다.
이것은 1988년 에티오피아의 딘사모가 2시간 6분 50초의 세계기록을 작성한지 11년만에 2시간 6분 벽을 깨뜨리는 쾌거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여성 마라토너도 많이 배출되었는데, 1993년 9월 노르웨이 선수 크리스티안센이 2시간 21분 6초의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코스와 경기규칙
코스는 크게 편도코스, 왕복코스, 순환코스 등으로 구분된다. 한국에는 국제육상연맹에서 공인한 경주·춘천의 마라톤코스가 있다.
경기규칙은 공로를 달리며, 참가자는 전문의사의 건강진단서를 제출하여야 하고, 음식물은 주최측이 준비하되, 코스의 출발점에서부터 11km의 지점에 준비하고, 5km마다 두도록 되어 있다. 선수는 자기가 희망하는 음식물을 신청하여 허락을 받으면 지정된 공급소에서 이용할 수 있고, 이 밖에는 경기 내용상 규제되는 규칙이 있다.
유명한 마라톤 선수
올림픽대회에서 마라톤을 2번 제패한 선수에는 에티오피아의 아베베(사진)와 독일의 치에르핀스키가 있다. 아베베는 1960년 로마대회와 1964년 도쿄[東京]대회에서, 치에르핀스키는 1976년 몬트리올 대회와 1980년 모스크바 대회에서 각각 2연패하였다. 아베베는 로마대회에서 맨발로 풀 코스를 뛰어 화제를 뿌렸다. 1952년 헬싱키대회 때 마라톤은 물론 트랙종목인 5000m와 1만m에도 우승하여 ‘장거리 3관왕’으로 명성을 떨친 체코슬로바키아의 '인간 기관차' 자토페크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