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소한 감동 이야기
박 동조
감동이야 말로 내게는 일용할 양식이다. 하얗게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에 눈물이 핑 돌고, 살랑 부는 미풍에도 가슴이 뛰논다. 작은 들꽃에 코끝이 아리고 비온 뒤 하늘에서 피어나는 뭉게구름이 예뻐서 소리를 지른다. 내게는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자연현상이 기적이고 감동이다.
위의 글은 사춘기 때 쓴 일기에서 발췌했다.
결혼을 하고 나자 내 감수성은 현실적인 생활에 매몰 당했다. 자식을 기르고, 먹고 사는 문제 말고는 모두가 사치로 여겨졌다. 열렬한 문학의 애호가 역할에도 눈을 닫았다.
두 아들을 둔 새댁일 때, 사시사철 대문이 열려있는 주택에서 세를 살았다. 하루는 세 살짜리 둘째를 재워놓고 가게를 다녀왔다. 그 잠간 사이, 자고 있어야 할 아기가 보이지 않았다. 네 살인 첫째가,
“아기가 물에 퐁당 빠졌다”고 말했다.
집 가까운 곳에 폐쇄된 우물이 있었다. 달려가 우물을 내려다보니 깊고 깊은 원형의 적막이 숨을 죽이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무섬증이 몰려왔다. 절대로 아닐 거야, 도리질하며 우물을 떠나 아기를 찾아 나섰다. 그때가 오전 10시였다.
이웃까지 동원해 마을 골목골목을 뒤졌지만, 아기는 흔적이 없었다. 봤다는 사람도 없었다. 경찰서에 신고하고, 온갖 나쁜 생각으로 망연해 있는데 아기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성안동 다리 위에서 울고 있는 아기를 방위병 청년이 발견했다고 했다. 그때가 오후 세 시였다. 다섯 시간 동안 아기는 혼자 울며 헤맸던 것이다. 집에서는 경사진 길을 한참이나 올라가야 나오는 산으로 이어진 다리여서 설마 아기가 그 방향으로 갈 거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 작은 아장걸음으로 그곳까지 갔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아기를 품에 안았을 때 눈물만 흘렀다. 그 기분을 표현할 말을 지금껏 찾지 못했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라거나 감사의 눈물 같은 그런 말 말고 마땅한 표현이 있을 것 같은데 지금껏 찾지 못했다.
그때 내 나이 서른두 살이었다.
큰 아들이 S대에 합격했다는 발표에 아들과 남편은 감격하여 펄쩍펄쩍 뛰었으나 나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며칠 뒤, 내가 합격증과 입학안내서를 받으러 갔다. 서울까지 가는 내내 아들의 이름이 없으면 어쩌나, 심장이 떨리고 간이 조마거렸다.
합격증 교부처에 들어섰을 때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합격증을 받아들고 건물 밖으로 나와서 손을 벌벌 떨며 아들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제야 기쁨이 차오르며 눈물이 흘렀다.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몸이 둥둥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희한한 체험이었다.
그 무렵, 우리 가족은 태산 같은 큰 시련과 마주하고 있었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기적일 만큼 물심양면으로 힘든 시기였다. 죽음에 유혹을 느낄 만큼 힘들 때여서 합격의 기쁨은 배가 되었다. 우리 집에 희망의 동아줄을 보내준 신께 감사했다. 사방이 꽉 막힌 절망에 빠져 허우적일 때여서 합격의 기쁨은 배가 되었다.
어리거나 젊었을 때, 나를 감동케 한 대상은 주로 자연이었다. 결혼해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이루고부터는 삶 자체가 희로애락의 연속이었다. 진창에 빠져 허우적이고, 눈물로 밤을 새는 괴로운 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인생은 살만 하다는 데 방점을 찍는다. 감동할 일이 많았다는 뜻이다. 세상을 위해 한 일도 없는데 받은 게 많다. 그 또한 내게는 감동이며 감사할 일이다.
<2021년 한국에세이포럼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