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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19) 2023. 4. 12
언약을 기억하는 다윗
삼하 9:1
다윗의 통치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정의와 공의’의 통치였습니다. 다윗은 혈통을 따지지 않고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했습니다(15절). 모든 사람에게 차별을 두지 않고 동등하게 대했고, 특히 굽은 재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나라는 단지 정의와 공의로만 이루어지는 나라는 아닙니다.
사랑과 은총의 단계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나라가 단지 정의와 공의로만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라, 그 바탕 위에서 사랑과 은총이 넘치는 나라였음을 잘 보여줍니다.
<요나단과의 언약을 기억한 다윗>
왕권이 안정된 어느 날, 다윗은 요나단과 언약을 맺은 것을 기억합니다.
1절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다윗은 신하들을 불러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1절)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듣기에 따라서는 매우 무시무시한 말입니다.
처음 다윗의 신하들은 아마도 이 말을 듣는 순간 등골이 서늘했을 것입니다(또 한 번의 피바람이 부는 것은 아닌지).
왜냐하면, 당시 이방 세계에서는 왕위가 바뀌면 그 왕권을 수호하고 강화하기 위해 이전 왕가의 사람과 그 세력을 철저히 제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울의 후손들을 남김없이 완벽히 제거했느냐는 말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사울의 후손에게 은총을 베풀겠다는 것입니다.
요나단이 누구입니까? 사울 왕의 첫째로서, 왕위를 이을 후계자였습니다.
도대체 요나단과 다윗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그 내용이 삼상20:14~16에 나옵니다.
삼상20:14~16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15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16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요나단은 다윗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하나님께서 사울 왕가를 버리셨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사울의 후계자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다윗’에게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사울 왕보다 앞서 다윗을 죽이려고 덤벼들었을 텐데,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이 다윗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기꺼이 다윗에게 왕위를 양보하였습니다. 대단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한 가지 언약을 맺자고 합니다. 아버지 사울의 다윗을 죽이려는 계획이 사실임을 확인하자, 다윗을 피신시키면서 특별한 언약을 요구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네가 왕이 된 후에 나와 내 집에 대해 손을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요나단과 그리하겠다고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 후, 사울 왕과 요나단을 비롯한 왕자들은 모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고 맙니다.
드디어,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 언약은 한지 대략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굳이 그 언약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그 언약은 문서로 한 약속도 아니고 구두로 맺은 ‘말 그대로 언약’입니다. 또한, 당사자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습니다. 증인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둘만의 비밀 언약입니다. 그냥 무시하고 안 지켜도 그만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요나단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지키기 위해, 사울의 집안에 살아남은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만일 남아 있다면, 그에게 은총을 베풀겠다는 것입니다.
<언약을 지키는 이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요나단에게 받은 은총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삼상18:3~4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4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다실 다윗이 받은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었습니다.
신분의 차이가 있습니다. 요나단은 사울 왕의 첫째 아들이었고, 왕위 후계자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였습니다.
나이 차이도 있습니다. 다윗보다 요나단은 상당한 연상이었습니다(거의 20세).
그런데도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친구로 언약을 맺었습니다.
혹시나 부하들이 다윗의 출신성분을 들어 무시할까 봐, 자신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를 주어 그의 권위를 세워주었습니다. 왕자의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상상할 수도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왕자의 생명같이 사랑받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왕자와 친구가 되었고, 그의 권위를 물려받았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을 때도 요나단은 적극적으로 그를 보호하여 주었습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다윗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심지어 요나단은 다윗을 살려둘 경우, 자신이 누려야 할 권세, 즉 왕위가 위협받을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요나단에게 받은 은총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서부터 받은 은총을 기억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을 사랑하시되, 독생자 아드님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위로부터 임한 일방적인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삼아 주셨고, 그의 권위를 물려받았습니다(요나단은 다윗에게 자신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를 주어 그의 권위를 세워주었지만, 예수님은 ‘예수님의 이름’이라는 사탄에게 맞설 수 있는 무기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기도하고, 귀신을 쫓아냄).
그리고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천국 백성)가 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다윗이 요나단에게 받은 은총을 잊을 수 없듯, 우리도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께서 주신 계명을 기억하고, 지켜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새 계명’은 우리가 지켜야 할 언약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께로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내 주변의 사람부터 용서하고, 사랑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요나단과의 언약이 단순히 사람 사이의 언약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은 언약이었기 때문입니다.
삼상20: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여호와의 이름으로’ 언약을 세웠습니다. 이는 단순히 요나단과 다윗 사이의 언약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맺은 언약입니다. 즉 하나님을 증인으로 삼고 맺은 언약입니다.
여러분! 다윗 왕의 위대함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존중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계약서가 없고, 계약 당사자가 죽었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성품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반드시 그 언약을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예를 하나 보겠습니다.
출6:5 (출애굽 당시 모세에게 소명을 주시며 하신 말씀)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4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람과 세 가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① 아브람에게 큰 민족을 이루는 복을 주겠다는 언약입니다. 창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② 고향을 떠난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그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언약하셨습니다. 창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③ 그들이 이 땅을 상속으로 받기까지 거쳐야 할 단계가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창15:13~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제사장 나라’를 만들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정이 필요합니다. ‘바로’로 상징되는 제국주의 애굽의 오만과 억압을 체험하게 하신 후, 그들에게 인간의 힘이 주관하는 ‘제국’이 아닌, 하나님이 다스리는 ‘제사장 나라’를 꿈꾸도록 훈련시키신 것입니다(출 19:5~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맺은 언약을 잊고 지내시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그래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이 있었지”라면서 그 언약을 기억해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을 잊었던 적이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의 과정을 겪을 때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들이 견디다 못해 신음 소리를 내고, 부르짖을 때, 드디어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할 때가 되었음을 아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를 인도자로 세우시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민 23:19(발람의 고백)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반드시 당신이 맺으신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직접 맺으신 언약뿐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은 언약도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은 언약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보겠습니다(수9:3-27).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기적적으로 이기고, 더불어 아이 성까지 지혜롭게 승리하는 것을 보자, 가나안에 살던 민족들은 더욱 긴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수의 민족들이 서로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브온 사람들은 생각을 달리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이스라엘과 싸우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이스라엘과 화친 조약을 맺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화친 조약을 맺을 방법이 없자 꾀를 내었습니다.
수9:3~6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4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5 그 발에는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가 난 떡을 준비하고/ 6 그들이 길갈 진영으로 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하니.”
그래서 사신을 보내고, 속여서라도 목숨을 부지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먼 나라의 사신인 것처럼 분장하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속인 것입니다. 결국, 길갈 진영까지 찾아와 거짓을 말하는 기브온 사신들에게 속아 그들과 화친을 맺게 됩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여호와의 뜻을 묻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수9:14).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들이나 그 신들과 언약을 맺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출34:12). 그러니 만일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면 당연히 그 조약을 맺지 못하게 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가시 역할을 하게 되고, 또한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가나안 족속을 영원히 몰아내지 못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비록 속아서 조약을 맺은 것이라 할지라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맺은 언약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3일 후에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속은 것을 알았지만, 기브온 거민과 맺은 화친 조약을 파기하지 못했습니다. 변개치 못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기브온 족속은 가나안의 다른 족속들이 진멸 당할 때에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서 레위인을 도와 나무 패며 물 긷는 일을 하며 하나님 백성 안에서 보호받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수9:21).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은 언약을 중요성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를 어겼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삼하21:1-14)
이스라엘에 3년간 기근이 임하자 하나님께 간구한 다윗은, 그것이 여호수아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은 언약"(수9:3-27)을 무시하고, 기브온 족속을 학살한 '사울의 범죄 때문'이라는 응답을 받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을 위한 열심으로(2) 그 일을 행했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판단을 앞세운 채’ 언약을 파기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한 만행으로, 반드시 그에 대한 속죄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에 기브온 사람들에게 사울의 자손 7명을 내주어 처형하게 하고(속죄, 공의 실현), 그 유골과 함께 사울과 요나단의 유골을 베냐민 땅에 묻어주고 나니 기근이 멈추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루어진 언약은 경솔한 언약일지라도 반드시 지켜야 함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잊었을지라도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것을 잊지 않으시고 바로 잡게 하시는 것입니다.
‘서원’도 ‘하나님과의 언약’과 같은 것이기에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대표적인 예 – 입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흔히 세상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약속을 해 놓고도 자신에게 불리하면 쉽게 말을 바꾸고,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닮아 한 번 맺은 언약에 대해서는 끝까지 신의를 지킴으로, 그리스도인의 신실함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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