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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고려) 三重大匡(삼중대광) 門下府(문하부) 都僉議左侍中(도첨의좌시중) 忠勤亮節(충근량절) 同德補理公臣(동덕보리공신) 金寧府院君(금녕부원군) 諡忠簡公(시충간공) 諱普(김보) 묘제 시행
일시 : 2008년 10월 30일(음10월초2일) 오전 11시
장소 : 영천시 북안면 도유리 충간공 묘소.
묘제(墓祭)의 순서는 대개 ① 진찬(進饌) ② 참사자서립(參祀者序立) ③ 강신례(降神禮) ④ 참신례(參神禮) ⑤ 초헌례(初獻禮) ⑥ 독축(讀祝) ⑦ 아헌례(亞獻禮) ⑧ 종헌례(終獻禮) ⑨ 유식례(侑食禮) ⑩ 음복례(飮福禮) ⑪ 사신례(辭神禮) ⑫ 망료례(望燎禮) 순서로 진행된다.
▼ 초헌례 중 독축하는 장면: 축관은 초헌관 좌측에서 축문을 낭독하고 모든 참제자는 부복한다.
▼ 제물을 진설하는 등 제례를 준비하고 있다.
▼ 제물이 차례져 있고 모든 참제자들이 도열하여 있는데 최종적으로 제물 진설을 확인하나 아뿔사! 메(밥)와 갱(국)이 보이지 않는다. 메와 갱을 준비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인데 걱정이다. 유사는 반드시 제물이 빠짐없이 준비되었는지 확인하여야 한다.
▼ 초헌관이 알자(찬인)의 행사를 진행하겠다는 보고를 받고 알자(찬인)의 안내로 진설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고 내려가고 있다. 진설을 확인한바 메(밥)는 놓여있으나 갱(국)과 탕이 보이지 않는다. 옆에 숭늉(물)만 준비되어 있다. 제물을 담당 유사가 직접 챙기지 않고 맞춘 것으로 생각된다. 제물을 맞추더라도 메와 갱, 탕은 별도로 준비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생선의 진설은 예년과 달리 반대로 배가 신위(묘) 반대로 진설되어 있다. 이는 그 지역 또는 집안의 가가례례(家家禮禮)일 것이다. 뒤에 들은 바로는 제물은 산신제물을 포함하여 50만원에 맞추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이라면 가격대비 다소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의 흐름이 이러하니 어떠하랴!
▼ 초헌관이 강신례를 행하고 있다.
▼초헌관이 초헌례를 행하고 있다.
▼초헌관이 초헌례를 행하고 있다.
▼초헌관이 고비전에 초헌례를 행하고 있다.
▼초헌관이 고비전에 초헌례를 행하고 있다.
▼ 초헌례를 행하는 장면: 축관은 초헌관 좌측에서 축문을 낭독하고 모든 참제자는 부복한다.
▼ 아헌례를 행하고 있다.
▼종헌례를 행하고 있다.
▼ 유식례를 행하고 있다.
▼음복례(飮福禮)를 행하고 있다. 초헌관은 신위(묘) 앞 동쪽에서 서쪽을 향하여 앉고 축관은 헌관 왼편에 앉는다. 헌관은 축관으로 부터 잔을 받아 음복한다.
▼음복례(飮福禮)를 행하고 있다.
음복례 후에 사신례(辭神禮)와 망료례(望燎禮)가 행하여 진다. 사신례에서는 참제자 전원이 부복 후 국. 궁 국. 궁 구령에 따라 재배를 한다. 망료례는 알자(찬이)이 초헌관과 축관을 묘의 서쪽으로 인도하여 축문을 불사르는 예인데. 형식만 취하고 축문을 사르지 않아도 무방하다. 이어 모든 집사자가 제자리에 서고 알자(찬인)가 초헌관 앞에 나아가 예필(禮畢)을 고하면 제례가 종료된다.
▼ 墓祭(齋室)笏記{시제(묘제) 홀기}
執禮先就墓(神位)前再拜就位(집례 선취묘(신위)전 재배취위)
집례는 먼저 묘(신위)앞에 나가 재배하고 제자리로 가시오
獻官以下在位者皆序立(헌관이하 재위자 개~서립)
헌관 이하 참례자 모두 차례로 서시오
謁者引初獻官點視還出(알자 인 초헌관 점시환출)
알자는 헌관은(을 인도하여) 제수를 점검하고 돌아오시오.
謁者進初獻官之請行事(알자 진 초헌관 지청 행사)
알자는 초헌관에게 제사 시작을 청하시오 <청행사>
祝官及諸執事盥手就位(축관급 제집사 관수 취위)
축관과 제 집사는 손 씻고 정해진 자리로 가시오.
※參神을 먼저 하기도 하고, 降神을 먼저 하기도 한다.
○行降神禮(행강신례)
강신례를 하시겠습니다.
謁者引初獻官詣盥洗位(알자인 초헌관 예간세위)
알자는 초헌관을 인도하여 관세위로 나가시오
盥手帨手仍詣升自東階(관수세수 잉예승 자~동계)
관수 세수 하시고 동쪽계단으로 올라가시오
初獻官仍詣墓前(神位前)跪(초헌관 잉예 묘전{신위전} 궤)
초헌관은 묘전(신위전)에 나가 꿇어 앉으시오.
奉香奉爐 初獻官左右跪(봉향봉로 헌관좌우궤)
봉향과 봉로는 초헌관의 좌우에 꿇어 앉으시요
初獻官焚香三上香俯伏平身(초헌관 분향 삼상향 부복평신)
초헌관께서는 향을 세 번 피우시고 일어나시오.
初獻官少退再拜復跪(초헌관 소퇴 재배 복궤)
초헌관은 조금 물러서서 재배하시고 다시 꿇어앉으시오.
奉香奉爐降自西階復位(봉향봉로 강 자서계 복위)
봉향과 봉로는 제자리로 내려가시오.
奉爵奠爵 初獻官左右 跪(봉작전작 헌관자우 궤)
봉작과 전작은 초헌관 좌우에 꿇어앉으시오.
司樽祭酒斟酒以爵授奉爵(사준 제주 짐주이작 수~봉작)
사준은 제주를 잔에 따르시어 봉작에게 주시오
奉爵受以爵授初獻官(봉작 수이작 수~초헌관)
봉작은 제주를 받아서 초헌관에게 주시오
初獻官受酒盞三灌于茅上(초헌관 수주잔 삼관 우모상)
초헌관은 제주를 받아서 세 번 나누어 모사위에 퇴주하시오.
初獻官小退再拜興平身降復位(초헌관 소퇴 재배 신평신 강~복위)
초헌관은 재배하시고 일어나서 내려가 제자리로 가시겠습니다.
○行參神禮(행참신례)
참신례를 하시겠습니다.
獻官以下在位者皆再拜(헌관이하 재위자 개 재배)
헌관 이하 참례자 모두 재배하시겠습니다<국궁>
鞠躬 拜興拜興 興平身(국궁 배 흥 배 흥 흥평신)
○行初獻禮(행초헌례)
초헌례를 하시겠습니다.
謁者引初獻官神位前跪(알자 인 초헌관 신위전 궤)
알자는 초헌관을 인도하여 신위전에 꿇어앉으시오.
司樽詣祭酒斟酒以爵授奉爵(사준 예제주 짐주이작 수~봉작)
사준은 제주를 잔에 따르시어 봉작에게 주시오
奉爵受以爵授初獻官(봉작 수~이작 수~초헌관)
봉작은 술잔을 받아서 초헌관에게 주시오.
初獻官受盞祭酒授奠爵(초헌관 수잔제주, 수~전작)
초헌관은 제주를 받아서 전작에게 주시오.
奠爵受以爵奠于考位前(전작 수이작 전우~고위전)
전작은 제주를 받아서 고(考)위전에 올리시오.
初獻官次詣妣位前跪(초헌관 차예 비위전 궤)
다음에 초헌관은 비(妣)위전에 꿇어앉으시오.
司樽詣祭酒斟酒以爵授奉爵(사준 예제주 짐주이작 수~봉작)
사준은 제주를 따르시어 봉작에게 주시오
奉爵受以爵授初獻官(봉작 수~이작 수~초헌관)
봉작은 제주를 받아서 초헌관에게 주시오.
初獻官受盞祭酒授奠爵(초헌관 수잔제주 수~전작)
초헌관은 제주잔을 받아서 전작에게 주시오.
奠爵受以爵奠于妣位前(전작 수이작 전우비위전)
전작은 제주잔을 받아서 비(妣)위전에 올리시오.
奉爵以奉肉炙授初獻官(봉작이봉육적 수~초헌관)
봉작은 육적을 받아서 초헌관에게 주시오.
初獻官受以肉炙授奠爵(초헌관 수이육적 수~전작)
초헌관은 육적을 받아서 전작에게 주시오.
奠爵受肉炙奠于妣位前(전작 수육적 전우비위전)
전작은 육적을 받아서 비(妣)위전에 올리시오.
奉爵奠爵以啓飯蓋(봉작전작 이계~반개)
봉작과 전작은 메<밥>뚜껑을 열어 놓으시오.
讀祝(독축)
독축이 있겠습니다.
祝官升初獻官之左東向跪(축관 승 초헌관지좌 지동향궤)
축관은 올라가 초헌관의 왼쪽에서 동쪽을 향해 꿇으시오.
獻官以下在位者皆俯伏(헌관이하 재위자 개~부복)
헌관이하 참례자 모두 부복하시오.
讀祝文(독 축문)
독축을 하시오
* 祝官 讀祝(축관 독축)
讀祝畢 獻官以下在位者興平身(독축필 헌관이하 재위자 흥평신)
독축이 끝났으니 헌관이하 재위자 모두 일어나시오.
初獻官小退再拜興平身(초헌관 소퇴 재배 흥평신)
초헌관은 조금 물러나서 재배하시고 일어나시오.
謁者引獻官祝官降復位(알자 인 헌관축관 강복위)
알자는 헌관과 축관을 인도하여 제자리로 내려가시오
奉爵神位前盞盤取退酒(봉작 신위전 잔반 취퇴주)
봉작은 신위전 잔을 내려 퇴주하고 잔을 비우시오.
○行亞獻禮(행아헌례)
아헌례를 하시겠습니다.
謁者引亞獻官詣盥洗位(알자 인 아헌관 예관세위)
알자는 아헌관을 인도하여 관세위에 나가시오.
盥手帨手仍詣升自東階(관수세수 잉예승 자 동~계)
관수세수하시고 동쪽계단으로 올라 기시오.
亞獻官仍詣神位前跪(아헌관 잉예 신위전 궤)
아헌관은 신위앞에 나가 꿇어앉으시오.
司樽祭酒斟酒以爵授奉爵(사준 제주 짐주이작 수~봉작)
사준은 제주를 따르시어 봉작에게 주시오
奉爵受以爵授亞獻官(봉작 수이작 수~아헌관)
봉작은 제주를 받아서 아헌관에게 주시오.
亞獻官受盞祭酒授奠爵(아헌관 수잔제주 수~전작)
아헌관은 제주잔을 받아서 전작에게 주시오.
奠爵受以爵奠于考位前(전작 수이작 전우~고위전)
전작은 제주잔을 받아서 고위(考) 전에 올리시오.
亞獻官次詣妣位前跪(아헌관 차예 비위전 궤~)
아헌관은 다음 비(妣)위전에 꿇어앉으시오
司樽祭酒斟酒以爵授奉爵(사준 제주짐주이작 수~봉작)
사준은 제주를 따르어서 봉작에게 주시오
奉爵受以爵授亞獻官(봉작 수이작 수~아헌관)
봉작은 제주를 받아서 아헌관에게 주시오.
亞獻官受盞祭酒授奠爵(아헌관 수잔제주 수~전작)
아헌관은 제주잔을 받아서 전작에게 주시오.
奠爵受以爵奠于妣位前(전작 수이작 전우~비위전)
전작은 제주잔을 받아서 비(妣)위전에 올리시오.
奉爵奉鷄炙授亞獻官(봉작 봉계적 수~아헌관)
봉작은 계적을 받들어 아헌관에게 주시오.
亞獻官受鷄炙授奠爵(초헌관 수계적 수~전작)
아헌관은 계적을 받아서 전작에게 주시오.
奠爵受鷄炙奠于神位前(전작 수계적 전우~신위전)
전작은 계적을 받아서 신위전에 올리시오.
亞獻官小退再拜興平身(아헌관 소퇴 재배 흥~평신)
아헌관은 조금 물러나서 재배하시고 일어나시오.
謁者引亞獻官降復位(알자인 아헌관 강복위)
알자는 아헌관을 인도하여 제자리로 내려가시오
奉爵神位前盞盤取退酒(봉작 신위전 잔반 취퇴주)
봉작은 신위전 제주를 내리고 퇴주하시오.
○行終獻禮(행종헌례)
종헌례를 하시겠습니다.
謁者引終獻官詣盥洗位(알자인 종헌관 예~관세위)
알자는 종헌관을 인도하여 관세위에 나가시오.
盥手帨手仍詣升自東階(관수세수 잉예승 자동계)
관수세수하시고 동쪽계단으로 올라가시오
終獻官仍詣神位前跪(종헌관 잉예 신위전 궤)
종헌관은 신위전에 나가 꿇어앉으시오.
司樽祭酒斟酒以爵授奉爵(사준 제주 짐주이작 수~봉작)
사준은 제주를 따르시어 봉작에게 주시오
奉爵受以爵授終獻官(봉작 수~이작 수~종헌관)
봉작은 제주를 받아서 종헌관에게 주시오.
終獻官受盞祭酒授奠爵(종헌관 수잔제주 수~전작)
종헌관은 제주를 받아서 전작에게 주시오.
奠爵受以爵奠于考位前(전작 수이작 전우~고위전)
전작은 제주를 받아서 고(考)위전에 올리시오.
終獻官次詣妣位前跪(종헌관 차예 비위전궤)
종헌관은 다음 비(妣)위전에 꿇어앉으시오
司樽祭酒斟酒以爵授奉爵(사준 제주 짐주이작 수~봉작)
사준은 제주를 따르시어 봉작에게 주시오
奉爵受以爵授從獻官(봉작 수이작 수~종헌관)
봉작은 제주를 받아서 종헌관에게 주시오.
終獻官受盞祭酒授奠爵(종헌관 수잔제주 수~전작)
종헌관은 제주를 받아서 전작에게 주시오.
奠爵 受以爵奠于妣位前(전작 수이작 전우비위전)
전작은 제주를 받아서 비(妣)위전에 올리시오.
奉爵奉魚炙授終獻官(봉작 봉어적 수~종헌관)
봉작은 어적을 들어서 종헌관에게 주시오.
終獻官受魚炙授奠爵(종헌관 수~어적 수~전작)
종헌관은 어적을 받아서 전작에게 주시오.
奠爵受魚炙奠于神位前(전작 수어적 전우신위전)
전작은 어적을 받아서 신위전에 올리시오.
終獻官小退再拜興平身(종헌관 소퇴 재배 흥평신)
종헌관은 조금 물러나서 재배하시고 일어나시오.
謁者引終獻官降復位(알자 인 종헌관 강~복위)
알자는 종헌관을 인도하여 제자리로 내려가시오
奉爵神位前盞盤取退酒(봉작 신위전 잔반 취퇴주)
봉작은 신위전 잔을 내려 퇴주하고 잔을 비우시오.
○行侑食禮(행유식례)
유식예를 하시겠습니다.
謁者引初獻官神位前跪(알자 인초헌관 신위전 궤)
알자는 초헌관을 인도하여 신위전에 나가 꿇어 앉으시오.
司樽他盞斟酒以爵授奉爵(사준 타잔 짐주이작 수~봉작)
사준은 다른 잔에 제주를 따르시어 봉작에게 주시오
奉爵受以盞祭酒授初獻官(봉작 수이잔제주 수~초헌관)
봉작은 술잔을 받아서 초헌관에게 주시오.
初獻官受盞祭酒授奠爵(초헌관 수잔제주 수~전작)
초헌관은 제주를 받아서 전작에게 주시오.
奠爵受以盞添酌考位盞(전작 수이잔 첨작 고위잔)
전작은 술을 받아서 고(考)위 잔에 첨작하시오.
初獻官次詣妣位前跪(초헌관 차예 비위전 궤)
초헌관은 다음 비(妣)위전에 꿇어 앉으시오.
司樽他盞斟酒授奉爵(사준 타잔 짐주 수~봉작)
사준은 다른 잔에 제주를 따르시어 봉작에게 주시오
奉爵受以盞授初獻官(봉작 수~이잔 수~초헌관)
봉작은 제주를 받아서 초헌관에게 주시오.
初獻官受以盞祭酒授奠爵(초헌관 수이잔제주 수~전작)
초헌관은 제주잔을 받아서 전작에게 주시오.
奠爵受以盞添酌妣位盞(전작 수이잔 첨작 비위잔)
전작은 제주를 받아서 비(妣)위 잔에 첨작하시오.
初獻官小退再拜興平身(초헌관 소퇴 재배 흥평신)
초헌관은 조금 물러나 재배하시고 일어나시오.
謁者引初獻官西降復位(알자 인 초헌관 서강복위)
알자는 초헌관을 인도하여 서쪽계단으로 내려가시오
奉爵奠爵揷匙飯中正箸(봉작전작 삽시반중 정저)
봉작과 전작은 수저를 꽂고 젓가락을 바르게 하시오.
奠爵撤羹進茶三抄飯水(전작 철갱진다 삼초반수)
전작은 갱을 내리고 숙주를 올리시고 밥을 세 술 말으시오
獻官以下皆俯伏肅竢(헌관이하 개~부복 숙사)
헌관이하 참례자 모두 부복하시오.
祝官三嘻音皆興平身(축관 삼희음 개흥평신)
축관은 세 번 희음 하시고, 헌관이하 모두 다 일어서시오.
奉爵奠爵下匙箸合飯蓋(봉작전작 하시저 합반개)
봉작과 전작은 시저를 내리고 반개를 덮으시오.
奉爵奠爵降自西階復位(봉작전작 강자서계 복위)
봉작과 전작은 서쪽계단으로 내려가시오.
○行飮福禮(행음복례)
음복례를 하시겠습니다.
謁者引初獻官詣飮福位跪(알자 인 초헌관예 음복위)
알자는 초헌관을 인도하여 음복할 자리로 가시오.
西向跪(서향궤)
서쪽을 향하여 꿇어앉으시오.
祝官升初獻官左北向跪(축관 승 초헌관 좌북향 궤)
축관은 올라가 초헌관 왼쪽에서 북쪽을 향해 무릎을 꿇으시오.
謁者取考位盞盤授祝官(알자 취 고위잔반 수~축관)
알자는 고(考)위전 잔반을 가져가 축관에게 주시오.
祝官受盞盤授初獻官(축관 수~잔반 수~초헌관)
축관은 잔반을 받아서 초헌관에게 주시오.
初獻官受盞盤飮訖酌(초헌관 수~잔반 음흘작)
초헌관은 술잔을 받아서 음복하시오.
謁者取神位前胙肉授祝官(알자 취신위전조육 수~축관)
알자는 신위전 조육(고기)을 가져다 축관에게 주시오.
祝官受以胙肉授初獻官(축관 수이조육 수~초헌관)
축관은 조육을 받아서 초헌관에게 주시오.
初獻官受之胙肉飮福訖(초헌관 수지조육 음복흘)
초헌관은 조육을 받아서 음복하시오.
祝官取虛殘盤反之故處(축관 취허잔반 반지고처)
축관은 빈잔을 받아서 제자리에 놓으시오.
謁者引初獻官祝官復位(알자 인 초헌관축관 복위)
알자는 초헌관 축관을 인도하여 제자리로 가시오.
○行辭神禮(행사신례)
사신례를 하시겠습니다.
獻官以下在位者皆再拜(헌관이하 재위자 개~재배)
헌관이하 참례자 모두 재배하시겠습니다.
鞠躬 拜 興 拜 興 興平身(국궁 배 흥 배 흥 흥평신)
국궁 <배, 흥 > <배, 흥> 흥평신
○行望燎禮(행망료례)
망료례를 하시겠습니다.
謁者引初獻官詣望燎位(알자 인 초헌관 예망료위)
알자는 초헌관을 인도하여 망료할 자리로 가시오.
祝官取祝文西階焚祝文(축관 취축문 서계 분축문)
축관은 올라가서 축문을 가지고 와서 <서쪽 계단에서> 불 사르시오.
謁者引初獻官祝官復位(알자 인 초헌관 축관 복위)
알자는 초헌관과 축관을 인도하여 제자리로 돌아가시오
謁者進初獻官之白禮畢(알자 진 초헌관지 백례필)
알자는 초헌관에게 <예필>하고 제례가 끝났음을 고하시오.
祝官以下執事降復位(축관이하 제집사 강복위)
축관이하 제 집사는 원 제자리로 돌아가시오.
執禮謁者諸執事再拜而退(집례 알자 집사 재배 이퇴)
집례와 알자 제 집사는 재배하시오.
謁者引獻官以下皆次出(알자 인 헌관이하 개~차출)
알자는 헌관이하 모두 인도하여 차례로 내려가시오.
※儒道會 中央委員 金採洙抄 忠簡公 墓祭笏記를 기본으로 하여 일부 수정하였다.
* 祭享節次(제향절차)와 홀기(笏記)는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이는 家家禮(가가례임)
□ 묘사를 독축하면서 지내는 절차
① 진찬(進饌) : 제수를 상석(床石)위 등에 진설한다.
② 참사자서립(參祀者序立) : 모든 참사자 묘소 앞에 나아가 항렬(行列)에 따라 줄지어서고, 삼헌자와 독축자도 제 자리에 선다.
③ 강신례(降神禮) : 초헌자가 꿇어앉아 삼상향(三上香)하고 재배한다. 초헌자와 집사는 꿇어앉아 서집사가 잔반을 초헌자에게 주면 동집사가 술을 따르면 초헌자가 땅에 술을 세 번 지우고 재배한 후 제자리에 간다.
④ 참신례(參神禮) : 모든 참사자가 재배한다.
⑤ 초헌례(初獻禮) : 초헌자가 앞에 나아가 꿇어앉으면 서집사가 잔을 초헌자에게 주면 동집사는 술을 따른다. 초헌자는 잔을 받아 정성껏 받들어 잔을 집사에게 주며 집사는 잔을 원자리에 올린다. 이때 정저(正箸)을 한다. 비위(妣位) 묘소에서 인향해오거나 합폄(合폄) 또는 쌍분(雙墳)의 경우는 고비(考비) 합사(合祀)한다
⑥ 독축(讀祝) : 축관은 초헌관의 왼편에서 동향해 앉아 독축한다. 이때 초헌자 이하 모든 참사자는 꿇어 앉는다. 독축자가 독축을 하고 물러나면 제관 모두 일어서고 초헌자는 재배한다.
⑦ 아헌례(亞獻禮) : 아헌자는 위전(位前)에 꿇어앉아 초헌과 같은 식으로 술잔을 올리고 재배한다.
⑧ 종헌례(終獻禮) : 위전(位前)에 꿇어않아 초헌과 같은 식으로 술잔을 올리고 재배한다.
⑨ 유식례(侑食禮) : 초헌자가 첨작한다.
⑩ 음복례(飮福禮) : 초헌자 음복한다.
⑪ 사신례(辭神禮) : 참사자 모두 재배한다.
⑫ 망료례(望燎禮) : 독축자는 축문을 불사르고, 집사자가 진설을 철상한다.
▼광주이씨(廣州李氏) 시조묘(始祖墓) 시제(時祭) 장면
마침 충간공묘소 인근에 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시조묘(始祖墓) 시제일(時祭日)이 음력 10월 초2일이라 귀가 길에 들려 한 컷 담았다. 전국에서 많은 후손들이 참제후 묘소 앞에서 도시락으로 음복을 하고있다. 광주이씨(廣州李氏) 시조묘(始祖墓) 자리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당자리라고 한다.
경북 영천군 북안면 도유리에 있는 도유지는 수량이 매우 많아 북안면 전체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는 도유지. 마을 뒤 산모퉁이를 지나면 충간공(金普) 묘소와 도유재(재실)이 있고, 마을 입구에서 못의 물을 바라보며 왼편으로 약1㎞ 정도 들어가면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면서 왕릉 못지않은 웅장한 규모에 주변 또한 말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는 무덤을 만나게 되는데 이 무덤이 광주(廣州)이씨 대종회에서 시조(始祖)로 모시는 이당(李唐)의 묘소이다.
이 묘소에 얽힌 사연은 지난 2001년부터 초등학교 4학년 1학기‘생활의 길잡이’(이호연과 최원도의 우정이야기)에 실려 있고 일제시대에는 교과서에 ‘진우(眞友)’란 제목으로 수록되어 둔촌과 천곡의 우정에 대해 일본사람들이 존경하면서 교과과목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천곡(泉谷)은 영천최씨(永川崔氏)인 원도(元道)의 호다. 그는 여말의 사람으로 요승 신돈이 득세해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영천 땅에 내려와 우거하고 있었다. 둔촌(遁村) 이집(李集)과는 과거 동년생으로 절친한 친구였다.
어느 날 둔촌은 이웃에 살고 있는 신돈의 측근인 채판서란 자에게 신돈의 전횡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이 말이 신돈의 귀에 들어가는 바람에 큰 화를 자초하게 되었다.
장차 닥쳐올 큰 화를 예견한 둔촌은 연로하신 노부를 등에 업고 영천 땅의 천곡을 찾아 낮에는 숨고 밤이면 산길을 택해 걸었다. 천신만고 끝에 몇 달이 걸려 도착한 천곡의 집에서는 마침 그의 생일이라 많은 인근주민들이 모여 주연을 베풀고 있었다.
둔촌 부자는 바깥 툇마루에 앉아 피곤한 몸을 쉬며 천곡을 찾았으나 이 소식을 전해들은 천곡은 반기기는커녕 대노(大怒)해“망하려거든 혼자나 망할 것이지 어찌하여 나까지 망치려고 이곳까지 왔단 말인가? 복을 안아다 주지는 못할망정 화는 싣고 오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냐?”고 소리치며 오히려 내쫓았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둔촌은 다시 노부를 등에 업고 정처 없이 그곳을 떠났다. 둔촌이 떠나자 천곡은 역적이 앉았다 간 자리를 태워야 된다며 둔촌이 앉았다가 떠난 툇마루에 불을 질러 태워 버렸다.
한편, 둔촌은 천곡에게 쫓겨나 산길을 걸으면서 천곡이 진심으로 자신을 쫓아낸 것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여 멀리가지 않고 길옆 덤불 속에서 밤을 맞고 있었고 천곡은 둔촌이 노부를 등에 업었으니 멀리 가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고 날이 어두워 손님들이 돌아가자 등불을 켜들고 산길을 더듬어 찾아 나섰다. 그는 산길에서 기다리고 있던 둔촌 부자를 발견하고 서로 얼싸안으며 산을 내려와 밤이 깊은 후에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집 다락방에 숨겼다. 이렇게 해서 4년간에 걸친 다락방 피신생활이 시작되었으니 그때가 1368년(공민왕 17)이다. 천곡은 가족들에게도 이 사실을 비밀로 했다. 식욕이 왕성해졌다며 밥을 큰 그릇에 고봉으로 담게 하고 반찬도 많이 담게 해 세 사람이 나누어 먹었다.
긴 세월동안 날마다 고봉으로 담은 밥을 먹어치우는 주인의 식욕을 의아히 여긴 여종 제비가 문구멍을 몰래 들여다보고 놀라서 안방마님에게 말하게 되었고 그 말이 결국 천곡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함구령을 내린다고 과연 비밀이 보장될까? 그러나 그 방법밖에 없어서 식솔들에게 엄하게 주의를 주었다. 만약에 비밀이 새는 날에는 양가가 멸망한다는 주인의 심각한 표정에 여종 제비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자결하고 말았다. 한문으로 된 기록에는 제비를 연아(燕娥)라고 적고 있다.
그 후 영천에 수색이 시작되어 천곡의 집에도 포졸들이 들이닥쳤으나 둔촌 부자를 쫓아버린 상황을 목격한 동리사람들의 증언으로 무사히 모면할 수 있었다. 그 이듬해인 1369년 둔촌의 부친이 돌아가셨다. 그러나 아무 준비도 없었음은 물론, 장례도 비밀리에 치러야 했으니 그 어려움이 실로 컸다.
천곡은 자기의 수의(壽衣)를 내어다가 예에 어긋남이 없이 빈염을 하고 자기가 묻히고자 잡아 놓은 자신의 어머니 산소 아래에 장사지냈다. 이 곳이 바로 도유리에 있는 광주이씨 시조공 묘소 즉, 광릉인 것이다.1371년(공민왕 20) 신돈이 실각해 유배되었다가 곧 주살되었고 장장 4년에 걸친 피신생활도 끝이 났다. 둔촌이 떠날 때 천곡은 시로써 전별했고 그 시는 지금도 전한다. 둔촌은 그 후 판전교시사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독서로 세월을 보냈고 천곡도 좌사간으로 세 번이나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시와 술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자고로 우의의 두터움을 말할 때면 관포(管鮑)와 양좌(羊左)를 들지만 둔촌과 천곡의 우의도 오래도록 기릴만 하다.
첫댓글 관리하는데도 경비가 많이 들겠습니다. 자체에서 수익이 나오는 것도 아닐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