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건희 회장의 ‘송현동 선택’
(“살아생전 고인의 뜻을 옳게 기리는 길”)
지난 7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삼성그룹 고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미술품 2만3천여 점을 소장할 기념관을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와 용산구 가족공원으로 예정하면서 송현동 부지가 다시금 주목 시 되고 있다.
약 3만7천 여 ㎡(약 1만1천 여 평)에 이르는 송현동 부지는 최근 30년 사이에 기구한 명암(?)을 보인 곳이다. 조선시대 때 그랬는지, 아니면 구 한말이나 일제 침탈기에 그랬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1997년 이전까지만 해도 송현동 그 땅은 대한민국의 땅이 아니었다. 속지법상 대한민국 영토 안에 있으면서도 그 땅만큼은 미국 땅이었던 것이다. 주한미국 대사관 숙소부지로 오랫동안 사용되던 곳이었는데, 땅 소유주마저 미국이라는 것이 알려진 것은 1990년 대 초였다.
1991년 전국의 지방자치가 30년 만에 부활된 이후 우연한 기회에 드러난 사실은 송현동 부지의 주인이 미국이라는 것이었다. 대지 등기부등본 상에 나타 난 소유주는 미국 로스엔젤레스 주 였던 것이다. 그래서 제1기 종로구의회에서 이에대한 실상을 밝히기 위해 모 구의원이 구정질의를 벌인 적도 있었다. 다분히 정부 차원의 일이었지만, 모 구의원이 구의회 본회의장에서 이를 문제시 하면서 민족적 긍지 내지는 국민적 자존심 차원에서 이를 반드시 시정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 바로 코앞에 미국 땅이 있다는 것을 결코 좌시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종로구의회가 이에대한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메아리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이후, 1997년 경 삼성그룹에서 이 땅을 매입했다. 당시 시가 약 1천5백억 원 정도로 알려졌었는데,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종로구의회의 국민적 감정에 대한 여론을 듣고 매입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송현동 부지를 전격 매입했었다. 그리고 그 부지를 미술관 등 용도로 사용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었다.
종로구 인사동전통문화보존회장과 평창동 가나아트센타 이사장을 지낸 서울옥션 이호재 회장은 최근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송현동 부지는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이 미술관 용지로 매입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송현동 부지에 미술관과 오페라하우스를 건립하기 위해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게 설계까지 맡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후 국가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삼성그룹의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았는지, 아니면 또다른 사정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계획은 끝내 추진되질 못하다가 2008년 송현동 부지는 대한항공에 매각됐다. 대한항공은 송현동 부지를 약 3천억 원에 매입하여 7성급 최고급 호텔을 건립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인근 경복궁과 창덕궁 등 역사, 문화적 위치를 고려하여 한옥식 최고급 호텔을 짓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송현동 부지 뒤편 덕성여고 등 학교 측에서 심하게 반대를 하면서 난간에 부딪혔고, 이어서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인허가 문제로 갈등까지 빚기도 했다. 대한항공이 이곳에 특급호텔을 짓기 위해 국회에서 문화관광진흥법까지 개정시키면서 온각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계속 난항에 부딪히면서 뜻을 이르지 못했었다.
그 후 대한항공이 경영난에 빠지면서 송현동 부지를 다시 매각하기로 발표를 했고, 최근 서울시가 이를 매입하여 시민 문화공원으로 조성하고자 양측이 소유권 이전 문제를 논의 중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태다. 그동안 종로구 차원에서도 송현동 부지로 종로구 청사를 옮겨서 신청사를 짓겠다는 구상도 있었고, 그에따른 검토가 추진되기도 했었지만 부지 값이 너무 크게 차이가 나는 등 사정이 여의치 않아 결국 현 구청사 자리에 신청사를 지으면서 물 건너 간 셈이 됐지만 서울시가 이를 문화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송현동 특별부지계획을 수립하고, 북촌지구단위계획을 지난 6월 공고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정부가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을 소장할 ‘이건희 컬렉션’ 장소로 송현동 부지를 예정지로 삼은 것은 송현동 부지가 결국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양새로 보여 진다. ‘이건희 기증관’ 유치를 위해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뜨거운 유치전을 벌이는 모습도 연출되는 가운데 종로구의회에서도 이에대한 결의문을 채택, 발표하면서 관계기관에 건의문을 보내기도 했었다.
이번 정부의 발표는 물론, 송현동 부지 외에도 용산구 가족공원도 함께 후보 예정지가 됐지만, 고 이건희 회장이 24년 전 꿈꿨던 당초 송현동 부지 매입 뜻과 함께 미술품 기증의 취지가 송현동 부지에서 맞물리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건희 기증관’은 마땅히 송현동 부지가 최적합지임이 틀림없다. 역사, 문화, 지리적 여건을 감안한 고 이건희 회장의 탁월한 선택이 이제야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살아생전 선택이 죽어서 이뤄진다면 그것 역시 고인을 뜻을 옳게 기리는 길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송현동 부지는 지난 25년간 갈피를 못 잡은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