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동항로 개척사
북동항로에서 북동이란 유럽인들이 바라본 시각이다.
따라서 노르웨이 연안을 따라 북상하여 시베리아 북쪽을 항해하여
베링해협으로 나오는 항로를 말한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북서항로인셈이다. (윤선장)
아래의 글은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님께서 신문에 올리신 글을 인터넷에서 퍼왔다.
그림 1 바렌츠 일행의 일기에 기초한 그림.
그림1을 자세히 보자. 등장인물들은 모두 건장한 남성이다. 중앙에 놓인 화롯불을
중심으로 모여 음식을 만들거나 불을 쬐고 있다. 그 옆으로 환자가 누워 있고,
뒤편으로는 침상이 보인다. 벽에는 총과 창이 기대어 있다. 건물 밖에서 창을 거머쥔
사내가 안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이들은 일반인이 아니고 이 집은 일반 주택이 아니다.
16세기 말 네덜란드 바렌츠부터
유럽~아시아 새 항로 개척 나서
노르덴셸드·아문센 등 결국 성공
최근 온난화로 이곳에 다시 눈길
이들은 추운 바다를 항해하던 선원들이었다.
1596년(임진왜란 정유재란 즉 일본과 조선의 6년 전쟁기간)
암스테르담을 출발해 빙산과 유빙이
가득한 거친 북극해를 뚫고 동아시아로 이어지는 항로를 개척하려고 한 빌럼 바렌츠와
그 일행이었다. 지도 제작자이자 탐험가였던 바렌츠로서는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었다.
그런데 그의 선박은 시베리아 북쪽의 노바야젬랴라는 곳을 지나다가 빙산에 갇혀 파손되고 말았다.
16명의 탐험대원들은 이듬해 초여름까지 인근 해안에서 긴 겨울을 날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나무를 구할 수 없었으므로 갑판을 뜯어내 집을 짓기로 했다.
면적 43㎡(13평)의 움막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유럽인들은 왜 북극해를 통과하고자 했을까? 아시아로 가는 해상 교역로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대항해시대가 개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양으로 들어서는 항로는 포르투갈이 선점하고 있었다.
항해거리도 무척 길었다. 한편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가 알려지자 탐험가들이 아메리카를 관통해 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남아메리카 최남단의 마젤란 해협 외에는 통로가 없다는 게 판명됐다.
그림 2 존 화이트, ‘ 마틴 프로비셔 일행과 이누이트’, 1578년
결국 남은 가능성은 북극해뿐이었다. 유럽에서 북극해를 거쳐 베링해협을 통과해
아시아에 이르는 항로를 찾을 수만 있다면 운송비를 크게 절감하게 될 것이고
무역으로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대항해의 후발국이었던
영국·네덜란드·프랑스의 입장에서는 북극항로 개척이 더욱 절실했다.
북극해를 지나는 통로로는 두 항로가 유망해 보였다. 러시아 북쪽 경계를
따라 지나는 북동항로와 캐나다 북쪽을 거치는 북서항로였다. 바렌츠가
개척하려고 했던 항로가 바로 북동항로였다. 그는 난파지역을 벗어나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만다. 하지만 항해한 뱃길을 해도에 정확히 표시하고 많은
기상자료를 남김으로써 북극해 탐험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항로와 북동항로의 비교
바렌츠의 뒤를 이어 수많은 탐험가가 북동항로에 도전했지만 280년 동안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1878년 스웨덴의 지리학자 아돌프 에리크 노르덴셸드가
이끄는 증기선이 출항했다. 유빙과 안개로 무수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의 탐험대는 우여곡절 끝에 일 년 만에 마침내 태평양에 들어서는
길목에 도달했다. 최초로 북동항로가 뚫리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탐험대는
계속 남하해 일본의 요코하마에 이어서 홍콩, 싱가포르, 수에즈 운하, 리스본을
거쳐 스톡홀름으로 돌아왔다. 참으로 영광스런 귀환이었다.
북서항로를 찾으려는 노력은 더 일찍 시작됐다. 1497년 영국의 존 캐벗이
왕실의 후원으로 탐험에 나선 것이 시초였다. 16세기에는 자크 카르티에,
마틴 프로비셔, 그리고 한때 해적으로 유명했던 프랜시스 드레이크 등이
항로 개척을 시도했다. 그러나 모두 실패를 거듭했다. 무시무시한 얼음덩이,
거센 조류, 살을 에는 추위를 극복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나침반이
제멋대로 작동해 방향을 잡기 힘들었다. 게다가 탐험 도중에 이누이트와
마주쳐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었다. 그림2는 1577년 프로비셔의 탐험 장면을
묘사한다. 탐험의 목적은 귀금속을 함유한 광석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아시아로
통하는 해로를 찾는 것이었다. 프로비셔의 탐험대는 그린란드 부근에서 예상치
못하게 이누이트를 만나 전투를 벌였다. 탐험대가 지닌 총과 이누이트의
활, 탐험대의 목선과 이누이트(에스키모)의 카누가 문명 충돌의 현장을 여실히 보여 준다.
북서항로를 개척하려는 노력도 북동항로와 마찬가지로 19세기에 이를 때까지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하고 제해권을 장악한 영국은
1819년 탐험가 윌리엄 패리를 앞세워 북서항로 개척의 열망에 새로이 불을 지폈다.
패리는 두께 7.5㎝의 두툼한 참나무 판자로 배를 감싸 유빙과의 충돌에 대비했고
당시 새로운 발명품이었던 통조림으로 식량을 준비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패리는
누구도 가 보지 못한 북극제도 깊은 지점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항로개척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큰 진전임은 분명했다.
그림 3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 얼음바다’(일명 ‘희망의 난파’), 1823~24년.
그림3은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그린
패리 탐험대의 모습이다. 날카롭게 쪼개진 얼음판들이 서로를 밀쳐내며 바다를
뚫고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듯하다. 마치 큰 돌들을 쌓아 올려 만든 거대 묘지석
처럼 느껴진다. 오른쪽에 침몰한 배의 고물이 보인다. 화가는 탐험선의 최후를
종교적 무게를 담아 비장미 넘치게 표현했다. 극지를 묘사한 그림 가운데
이보다 더 인상적인 작품은 찾기 어려울 것 같다. 후대의 화가들 중에도
그림에 깊은 감흥을 느낀 이가 많았다. 하지만 이 그림은 화가가 사망할 때까지
아무도 사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분위기가 너무 무겁다고 여겨진 탓이었을까?
아니면 구도가 너무 파격적이라고 생각된 탓이었을까?
패리 이후에도 북서항로 개척의 도전은 계속되었다. 1845년 영국 해군 출신인
존 프랭클린은 대규모 탐험대를 이끌고 그린란드 서쪽으로 나아갔다가 2년 후 실종됐다.
약 십 년 후에 파견된 수색대는 이누이트(에스키모)로부터 얻은 정보를 기초로 프랭클린
탐험대를 찾아 나섰다. 결국 탐험대의 마지막 흔적을 찾았고 129명 모두가
사망했음을 확인했다. 놀라운 점은 여러 시신의 팔다리가 잘려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생존의 마지막 수단으로서 동료의 살을 먹는 참혹한 사태에 이르렀던 것이다.
모두가 처절하게 피하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이 맞게 된 지옥 같은 상황이었다.
수많은 희생을 낳은 북서항로 개척사는 마침내 1906년 노르웨이의
청년 로알 아문센에 의해 마침표를 찍게 된다. 그는 프랭클린이
쓴 탐험기를 탐독하고 극지 탐험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선배 탐험가
난센의 도움으로 작은 목선을 구한 아문센은 6명의 대원과 함께 1903년 오슬로 항을 떠났다.
3년에 걸친 목숨을 건 항해 끝에 그의 탐험대는 마침내 베링해협에 이르렀다.
이로써 아문센은 북서항로를 최초로 개척한 인물이 됐다. 그의 탐험정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11년 세계최초로 남극점에 도착했고, 1920년에는 북동항로를 두 번째로
통과한 항해가가 되기도 했다. 1926년에는 비행선을 타고 북극점 상공을
횡단하는 비행을 했다. 아문센이야말로 극지탐험을 위해 태어난 인물이라는 칭송을 들을 만했다.
북극항로는 개척된 이후에도 무역에 이용되지 못했다. 운항 가능한 기간이 짧고
비용과 리스크의 문제가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북극항로가
새로 관심을 받고 있다. 지구 기온이 올라가면서 항로의 경제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서 수에즈 운하를 거쳐
우리나라의 부산까지 오는 데 거리가 2만1000㎞에 이르고 선박 운항시간이 24일이 걸린다.
그런데 북동항로를 통하면 거리가 1만2500㎞, 운항시간이 14일로 단축될 수 있다.
한국 경제에도 유용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인류 경제발전사의 달갑지 않은
부작용인 지구온난화가 대항해시대 이래 인류가 꿈꿔 온 북극항로 이용을
현실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참으로 난감하고 씁쓸하다.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bks21@skku.edu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세계화의 풍경들』『비주얼 경제사』『세계경제사 들어서기』 등 다수 저서가 있다.
중앙일보 핫 클릭
|
첫댓글 생각만해도 추운 해로라 요트로는 상상도 하기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