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자를 뽑아버리겠다. 씨를 말려버리겠다”
한나라당 총재경선 바로 하루 전인 지난 5월 30일. 그날 아침 한겨레신문을 읽던 독자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6면 하단에 실린 책광고의 문구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광고는 시정잡배도 입에 담기 어려운 이 끔찍한 폭언의 주인공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라고 밝혀놓고 있었다. 화제의 이 책은 전 중앙일보 사진기자 오동명씨가 쓴 『당신 기자 맞아?』. 커다란 활자 아래에는 작은 활자로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었다.
“자기에게 좋지 않은 기사를 썼다고 기자의 면전에서 ‘창자를 뽑아버리겠다’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부은 이회창씨. 그 앞에서는 영낙없이 ‘꼬봉’이 되는 거대 신문 편집국장… 실명 비판의 대명사요 언론문제에 정통한 강준만 교수조차 완전히 사로잡아 끌어안고 잠들게 만든 바로 그 책… 뒤가 구린 언론들이 감히 다루지 못했을 뿐 이 책은 이제 알 만한 사람들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고 있습니다. 단지 누구를 욕보이고자 쓰여진 책이 아닙니다.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십시오.”
“보도 안한 너희들이 더 나쁜 놈이야!”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것은 과연 사실일까. 기자는 광고 문구에 적혀있는 대로 직접 소문의 진상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 전에 우선 『당신 기자 맞아?』에서 이회창 총재의 욕설과 관련된 부분을 찾아보았다. 다음은 그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지난 98년 늦가을쯤 나는 회사(중앙일보사) 앞에서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는 ‘이회창을 찍었어야 했는데 김대중을 찍어 나라를 다 망치게 됐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비판에 동조하면서도 한쪽이 싫다고 다른 한쪽을 무조건 좋아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택시기사에게 언론계에 소문으로 떠돌던 97년 대선 당시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일 때 이회창 후보가 신문사와 방송사의 정치부 기자들과 함께 저녁회식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자기에게 좋지 않은 기사를 쓴 두 명의 기자를 지목하며, ‘너희들 씨를 말려버리겠어. 창자를 뽑아버릴 거야’라고 했답니다. 이 폭언은 당시 대다수 기자들이 알고 있던 사실인데, 그 당시 보도가 거의 되지 않아서 국민들이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법관 출신이 이런 얘기를 기자들 앞에서 서슴없이 했다니 이건 그의 언론관 내지는 국민관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대목 아닙니까?”
대꾸조차 삼가던 택시기사는 “당신 기자 맞아? 기자들이 그런 사실을 신문에 밝히지 않으면 우리 국민들이 뭘 알겠어? 신문이나 방송을 보고 우리가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이지…. 그때 보도도 안해놓고…. 너희들이 더 나쁜 놈이야!”
그 이야기에 나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비록 내가 정치부 기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언론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독자에게 사죄해야 했다. 다른 사사로운 것도 아니고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정치인의 언론관인데 국민이 당연히 알아야 했을 정보가 아닌가.
이것이 바로 언론계에 널리 회자됐던,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전혀 알 수 없었던 이른바 이회창 총재의 ‘창자론’과 ‘씨말리기론’의 내용이다. 한 정치지도자에 관한 ‘숨겨진 비밀’이 현직기자도 아닌 한 전직기자에 의해, 그것도 취재기자가 아닌 사진기자에 의해 3년 만에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가기 전에, 97년 대선 당시 여야 정당을 출입했던 기자들을 만나보았다.(본인들의 요청에 의해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했다.)
당시 한나라당 출입기자 김○○씨.
■이 총재가 술자리에서 했다는 ‘창자론’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
“당시 기자들 사이에선 널리 회자됐던 아주 유명한 이야기였다.”
■오동명씨 책에선 두 신문사 기자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고 기술돼 있는데, 두 기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나.
“말할 수 없다. 자세한 내막은 중앙일보 이연홍 차장에게 물어봐라. 그가 전말을 알고있을 것이다.”
‘창자론’과 ‘영도다리론’ 뭐가 다른가
다음은 당시 국민회의 출입기자 이○○씨.
■‘창자론’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
“물론이다. 당시 유명했던 일 아닌가. 기자사회에 널리 회자됐던 이야기다. 거의 모든 언론사 정보보고에 올랐던 이야기이다. 뿐만 아니라 『기자협회보』에도 보도됐고, 중앙일보가 작성한 ‘이회창 대선전략 보고서’에도 언급됐다.”
■욕설을 들었던 두 명의 기자가 누구라고 들었나.
“동아일보 ○○○ 기자와 중앙일보 ○○○ 기자인 것으로 알고있다.”
지금도 취재현장에서 뛰고 있는 두 기자의 증언에서 이 사실이 기자들에겐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일선기자가 아닌 중앙일간지 간부인 정○○씨에게 물었다.
■‘창자론’은 대다수의 기자들이 알고있었는데 당시에 왜 보도되지 않았나.
“결국 이회창 총재가 당시 여당후보였기 때문에 언론이 알아서 보도하지 않은 것 아닌가? ‘영도다리에서 빠져죽자’는 김광일씨의 발언도 사실 언론이 보도하지 않았다면 그냥 묻혀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 총재의 발언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정치지도자가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다. 실언이라고 넘기기엔 너무나 ‘끔찍한 표현’이다.”
세 사람 모두 ‘회자(膾炙)’라는 말을 썼다. 회자의 사전적 의미는 “널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림”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그것은 언론계 내부에서만 회자됐을 뿐이다.
이번에는 이 ‘공개된 비밀’이 알려지게 된 근거를 찾아 나설 차례이다. 그것은 진실 규명을 위한 실마리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나온 증언을 종합하면 근거는 세가지로 집약된다. △각 언론사 ‘정보보고’ △『기자협회보』 △중앙일보 ‘이회창 대선전략 보고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정보보고’란 무엇인가. 오동명씨는 자신의 책 『당신 기자 맞아?』에서 “기자들이 취재하며 얻어낸 정보를 기사와는 별도로 신문사 간부에게 알리는 일. 주로 정치부와 경제부에 많은 정보보고가 올라옴”이라고 설명했다. 거의 모든 기자들이 이 사실을 알게된 것도 바로 정보보고를 통해서였음이 확인됐다. 다수의 기자들이 “정보보고를 보고 알게 되었다”고 증언한 것이다.
『기자협회보』 97년 12월 20일자(938호)에 게재된 「97년을 풍미한 말 말 말」이란 코너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또 하나 꼽을 수 있는 사안은 ‘창자론’이다. ‘창자론’의 골자는 한나라당 대선후보인 이회창 후보가 기자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한나라당 관련기사를 나쁘게 쓴다고 본 몇몇 신문사 기자를 거명하며 ‘창자를 뽑아버릴 것’ ‘씨를 말려버릴 것’이라고 언급했다는 내용. 이 소문은 언론계에 쫙 퍼지면서 상당기간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중앙일보의 이른바 ‘이회창 대선전략 보고서’는 ‘이회창 경선전략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이라는 문건을 지칭한다.(중앙일보는 ‘기획기사용 정보보고’라고 주장했지만) 이 문건의 내용 중 ‘스타일상의 문제점’ 항목에는 “△사석에서의 과격한 용어 사용의 문제점(창자론·씨말리기 등 술좌석의 용어) △술좌석 소문이 이 대표 개인의 이미지에 안 좋은 영향”이라고 적혀있었다.(보고서를 작성한 주인공은 중앙일보 이연홍 차장으로 알려져있다. 앞에서 한 기자가 이 차장에게 물어보라고 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보인다.)
그러나 기자사회에 널리 회자됐던 이 사실은 정식으로 일간지나 방송사에 의해 보도되지 않았다.(몇몇 사람이 일부 신문에서 관련기사를 본 적이 있다고 증언해 당시의 기사를 샅샅이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제 문제의 핵심으로 뛰어들 때가 됐다. 사실 이 사건은 아직까지 ‘팩트’로 확인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기자협회보』나 ‘대선전략 보고서’도 팩트가 되기에는 구체적이지 못하다.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는 팩트의 기본은 6하원칙(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앞에서 증언한 기자들도 이 부분에 이르러선 정확한 근거를 대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나 해답은 이미 나와있는 셈이다. 그 날 술자리에 있었던 기자들을 찾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것이 유일한 열쇠였다.
오랜 추적 끝에 가까스로 그 자리에 참석했던 기자들 중에서 4명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었다.(그들 중 두 명이 절대 실명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다만 그들이 발행부수 1위에서 4위까지의 신문사 기자라는 사실만은 밝혀둔다) 그들에게 우선 시기, 장소 등 기초적인 질문을 던졌다. 예상과 달리 그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순순히 답변했다.(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뒤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그들의 답변을 종합해보면 그 날의 상황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지난 97년 7월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 이회창 총재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KBS, MBC 등 약 15개 언론사 출입기자 반장들과의 저녁회식을 주선했다. 이 자리에는 이회창 총재와 당 3역 등 약 15명의 주요 당직자들이 동석했다. 장소는 롯데호텔 지하에 있는 고급음식점 ‘상해(上海)’. 회식은 중국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이 음식점 안쪽에 있는 연회장에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직사각형의 긴 탁자를 중심으로 둘러앉았는데 중앙에 이 총재가 있었고 그 주변과 앞쪽에 기자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날 회식중에 “창자를 뽑아버리겠다” “씨를 말려버리겠다”는 문제의 발언은 정말 있었던 것일까. 4개 신문사 기자들은 이 총재가 문제의 발언을 했다는 사실은 모두 인정했다. 다만 이 발언이 나오게 된 상황과 그 발언에 대한 반응은 참석자마다 다소 차이가 있었다.
“폭탄주 몇 순배 돈 뒤 그런 발언 나왔다”
우선 조선일보 김민배 기자와의 전화통화 내용이다.
■그 날 ‘창자론’ ‘씨말리기론’ 발언은 정말 있었나.
“하여튼 그런 말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그 양반이 말소리가 크지 않아 좀 떨어져 앉아있었던 나는 기록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하게 듣지 못했다. 그래서 그 ‘워딩’이 이런 것이다라고 지금 내가 말해줄 수 없다. 대체로 들리기는 했는데 정확히 듣지는 못했다. 그게 당시 증권가 정보지에도 올라오고 그랬다.”
■그런 심한 말을 듣고도 기자들이 가만히 있었나.
“직접 들은 사람은 기분이 나빴을 것이고, 바로 옆 사람들은 분위기가 감지됐겠지만 대다수 사람은 못 들었다. 아마 이 총재 옆에 앉은 사람과 건너편에 있던 6∼7명의 사람은 정확히 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 말의 심각성을 알고 민감해 했겠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전혀 몰랐다. 그래서 그 말이 전체적 분위기에 심각한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나는 그런 말이 있었다는 것을 다음 날 아침 전해듣고 알게됐다.”
■이 총재가 전에도 다른 자리에서 그런 식의 말을 한 적이 있나. 중앙일보 대선전략 보고서에도 그런 스타일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있던데.
“가끔씩 그런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정치를 잘 몰라서 그랬던 것인지, 머리가 좋은 양반이라 일부러 상대에게 진심이 전달되도록 그런 식으로 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무튼 이 총재는 가끔씩 농담을 툭 던지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슬쩍 지나가는 식의 어법을 즐겼다. 화를 내면서 정색하면서 하는 게 아니라 본심으로 한 것인지 슬쩍 해보는 소리인지 판단하긴 어려웠다.”
■그 날도 그런 식으로 말한 것인가.
“그 날도 ‘동아일보 왜 그래?’라면서 그 말을 툭 내뱉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날은 참석자 대부분이 엄청난 일인 줄 몰랐던 것 같다. 현장에서 오늘 엄청난 일이 벌어졌구나 느끼지 못한 사람이 태반이었다. 저녁만 먹고 간 사람도 있고 해서 당일에 모두 모여서 그 날의 상황을 주어모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일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모두들 이 총재가 오버한 대목이 있었구나 그랬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이 어떻게 알려지게 됐나.
“그런데 그 날 그 말이 있고 나서 동아일보 기자가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으로 나가버리는 것을 봤던 것 같다. 그는 그 사실을 윗선에 직보한 모양이다. 그런데 기사화하지는 않기로 했다고 들었다. 동아일보가 (이 총재측과) 관계가 안 좋았다. 나중에 듣기로는 이 총재가 김 회장(김병관 동아일보 회장을 말함)을 거론했다는 말도 얼핏 들은 것 같다. 민감한 부분은 내가 직접 듣지 못했기 때문에 전해줄 수 없다. 다만 그런 상황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아무튼 동아일보 기자가 먼저 나갔다. 나중에 상당히 기분나빠 했다. 그래서 나도 다음 날 본사에 정보보고를 했다.”
다음은 A신문사 ○○○ 기자의 증언이다.(그는 자신의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 날 이 총재의 ‘창자론’ 발언은 실제로 있었나.
“이 총재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사실이다. 폭탄주가 몇 순배 돈 뒤 그런 발언이 나왔다. 그런데 이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애매한 지점이 있다. 농반진반(弄半眞半)이라고나 할까? 정확한 표현을 찾기 쉽지 않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이 총재의 독특한 캐릭터를 이해해야 한다. 그는 농담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보기에 따라선 좀 갑갑한 측면이 있다. 듣기에 따라선 허허 웃고 그냥 넘길 수도 있고, 속으로 저 양반이 정말 너무 세게 말했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총재에게 욕설을 들은 기자는 누구인가.
“중앙일보 ○○○ 기자와 동아일보 ○○○ 기자에게 한 말이라고 기억된다.”
■왜 두 사람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보는가.
“아마도 개인적으로 두 기자에게 불쾌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두 기자가 (경선과정에서 이 총재에게 애를 먹인) 민주계와 친한 기자로 생각한 모양이다. 이 총재가 두 기자를 박대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농담치고는) 표현이 너무 셌다. 기자들은 이 총재가 오버한 것으로 봤다.”
‘창자론’ 작명은 중앙일보 대선전략 보고서가 원조
다음은 중앙일보 김교준 기자와의 대화 내용이다.
■이 총재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사실인가.
“(잠시 침묵) 내 기억에 의하면 완전히 농담이었다. 당시 분위기로 볼 때 그건 농담이었다. 이 총재는 ‘우리 고향에선 (누군가를 혼내 주겠다는 말을 할 때) 창시를 뽑거나 씨를 말린다고 한다’면서 그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다른 것이 많다. 이 총재가 정색하고 한 말은 아니다.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참석자 모두 기분좋은 상태였다. 어디까지나 농담이었다고 본다.”
■아무리 농담이라고 해도 너무 심한 표현 아닌가.
“나중에 알려지기로는 참석자들이 그 말에 섬뜩함을 느꼈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그렇게 느낀 사람도 있었겠지만, 나는 결코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농담으로라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리고 그것이 과연 옳으냐 그르냐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완전히 농담이었다. 더욱이 그 발언을 이 총재의 캐릭터와 연결시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이 총재의 말을 ‘창자론’이라고 구체적인 용어로 규정한 매체는 중앙일보였다. 중앙일보는 이른바 ‘이회창 대선전략 보고서’에서 분명하게 그런 표현을 썼다.
“그런가? 그게 무슨 말이냐?”
■대선전략 보고서에는 “사석에서의 과격한 용어사용의 문제점(창자론·씨말리기 등 술좌석의 용어) △술좌석 소문이 이 대표 개인의 이미지에 안 좋은 영향”이라고 적혀있었다. 바로 그 문건 때문에 이 총재의 발언이 결정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그랬었나? 나는 모르는 일인데, 허허.”
■주변에선 당신도 욕설을 들은 대상 중의 한 명이었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동아일보 기자에게 한 말이다.”
김 기자의 답변에서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의혹이 느껴졌다. 특히 97년 대선 당시 국민신당의 폭로로 쟁점이 됐던 대선전략 보고서를 모른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B신문사 ○○○ 기자와 전화통화를 했다.(그는 자신의 이름을 익명처리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도 이 총재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자세한 상황은 잘 모르겠다. 나는 마감을 마치고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구석에 앉아있었다.”
■이 총재에게 그런 말을 직접 듣지 않았나.
“그렇지 않을 걸.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기자들은 왜 당신이라고 하는가.
“그게 글쎄 나도 모르겠다. 기자를 대상으로 한 얘기가 아니고 아마 정치인에게 한 말일 것이다. 나도 나중에 들었는데, 정치인에게 한 얘기일 것이다.”
술 마시면서 한 얘기는 쓸 수 없다고?
■이 총재 바로 앞에 앉지 않았나?
“그렇지 않다. 나는 늦게 갔기 때문에 구석에 앉아있었다. 이 총재와는 내가 법원에 출입할 때부터 알던 사이다. 아마 그래서 다른 기자들이 나라고 기억하는 모양인데 사실과 전혀 다르다. 이 총재가 술 한 잔 주면서 ‘늦게 왔으니 한마디 하라’고 해서, ‘이 총재를 존경하는데 높아지셨으니 이제 좀 멀리하겠습니다’라는 말은 한 기억이 난다. (이 총재에게 욕설을 들은 사람은 내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기자에게 한 말은 다른 얘기였을 것이다. 내가 아니고 아마 중앙일보 기자였을 것이다.”
■그 기자는 당신이라고 하던데.
“아니다. 중앙일보 기자였다. 창자얘기는 기자에게 한 말이 아니다.”
■‘창자론’은 당시 언론계에 쫙 퍼졌던 얘기이지 않았나.
“그건 맞다.”
■이 말 때문에 기자들이 매우 불쾌해했다고 알려져있었다. 그런데 다른 기자들은 왜 당신이었다고 하는가.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때 우리신문이 (경선 과정에서 이 총재에게) 비판적이었고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비판적이라기보다는 중립적이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경선 당시) 나는 오해받을까봐 어느 진영에도 가지 않았고, 주로 후배기자들을 보냈다. 분명히 나에게 한 얘기도 아니고 들은 적도 없다.”
■당시 이 말은 각 언론사 정보보고에도 오르고 중앙일보 대선전략 보고서에도 올랐는데.
“거기에 그렇게 나왔나? 뭐라고 그랬나?”
■언론사 정보보고에도 다 오른 것 아닌가.
“내 기억이 정확할 것이다. 나한테 한 얘기는 아니다. 분명하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다른 기자들은 왜 당신을 지목했나.
“나는 모르는 얘기다. 정치권에서는 소문이란 것이 몇 다리 건너면서 변색되거나 왜곡되거나 수정될 수 있다. 정보보고만 해도 1차에서 3차까지 된다. 그 사이에 증권가 정보까지 거치면서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잘 가려서 들어야 할 것이다. 측근이 이 총재에게 뭐라고 하니까 창자 비슷한 얘기가 나왔다고 나중에 들었지만 기자에게, 특히 나한테 한 얘기는 절대 아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답변도중 ‘분명’과 ‘사실’이라는 말을 몇 차례나 반복했다. ‘강한 부정’에서 ‘강한 긍정’의 냄새를 맡은 것은 기자의 지나친 선입관 탓이었을까.
‘창자론’의 현장, 롯데호텔 ‘상해’를 찾아서
기자는 지난 6월 9일 오후 6시 현장 확인을 위해 롯데호텔 지하에 있는 ‘상해’를 찾았다. 호텔 앞 마당에서 노조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고있었다. 메뉴판을 보니 상어 지느러미, 게살 옹이버섯 수프, 해삼 초고버섯 등 다양한 음식 이름이 적혀있었다. 음식을 주문한 뒤 종업원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연회는 어디에서 하나.
“안쪽에 넓은 연회장이 따로있다.”
■정치인들도 많이 오나.
“유명한 정치인들과 사업가 분들이 자주 찾으신다. 중국집 중에서 우리처럼 넓은 홀 가지고 있는 곳이 드물다.”
■이회창 총재도 온 적이 있나.
“자주 오시는 편이다. 최근에도 한 번 오셨다.”
취재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이회창 총재가 다른 자리에서도 심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97년 경선 당시 자신과 충돌했던 ‘K2 세력’(K2란 경복고를 말함, 당시 신한국당 9룡 중에서 이한동, 김덕룡, 이인제 후보가 경복고 출신이다. 이 총재는 이른바 ‘K1’인 경기고 출신이다.)을 거론하며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이 사연은 『미디어오늘』 97년 7월 21일자에 「한 지방지 서울 주재기자의 낭패기─이회창 대표 취중발언 들었다 곤욕 치러」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되기도 했다.
수소문 끝에 ‘조모 기자’를 찾아냈다. 결국 98년 9월 광남일보(현 호남신문)를 떠났다는 그는 익명처리를 요청한 뒤 『미디어오늘』에서 보도한 내용은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음식점 이름을 기억하나.
“광화문에 있는 한정식집 ‘향원’이었다.”
■이 총재는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있었나.
“박희태, 신경식 의원 등 7∼8명의 얼굴을 봤다. 그 날은 신한국당 원외위원장 모임이 있었던 날이다. 이 총재가 특정고 출신들을 겨냥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육두문자’를 쏟아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치 초년병 시절의 이 총재에 대해 깨끗한 이미지와 ‘대쪽‘ 이미지만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분명한 사실인가.
“정치적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는데 내가 어떻게 없는 말을 하겠는가.”
이회창 총재의 ‘험한 입’은 사실 유명하다. 최근 총선시기인 4월 4일 이 총재는 제주시청 앞 정당연설회에서 “나라를 생각하지 않는 이 정권을 도끼로 내려찍자”는 끔찍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창자론’ ‘씨말리기론’에 이어 ‘도끼론’까지 등장한 것이다.
‘피바람’은 망언이고 ‘창자론’은 농담인가?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짚고넘어갈 것이 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모르던) ‘창자론’과 ‘씨말리기론’이 현장에 있던 취재기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진기자 출신인 오동명씨에 의해서 공론화됐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오씨는 자신의 책 『당신 기자 맞아?』에서 이렇게 물었다.
“택시기사가 지적한 대로 왜 당시에 이 끔찍한 사실이 국민에게 보도되지 않았을까? 대통령 선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때인데다가 한 후보에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기에 그랬을까. 다른 사사로운 것도 아니고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한 정치인의 언론관인데, 국민이 당연히 알아야 했을 정보이질 않은가. 그래야 국가의 올바른 지도자를 뽑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왜 보도되지 않았을까? 당시 이회창씨가 당선 유력한 여당의 후보가 아니었다면 이런 사실이 그냥 숨겨지고 감춰져버렸을까. 당시 국회 출입하던 후배기자의 말대로 정말 ‘별것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진형구 전 대검찰청 공안부장의 취중 파업유도 발언이 떠올려지는데 그럼 그게 그만못한 일이었을까.”
취재과정에서 4명의 기자에게 이와 관련한 질문을 던졌다. 다음은 그 중 한 명과의 대화 내용이다.
■정치지도자가 그런 심한 말을 했다면 국민들에게 알려야 했던 것 아닌가. 왜 기사화하지 않았나.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였다. 음…. 술 마시면서 한 얘기를 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이 총재를) 취재원으로서 상시적으로 만나야 하는데….”
■기자는 있는 그대로 사실만 전달하면 되고, 판단은 국민이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 말이 농담으로 한 것인지, 진지하게 한 것인지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자리가 사석이냐, 공석이냐에 따라서도 다르다고 본다. 예컨대 서석재 의원의 4천억원 비자금설 발언은 사석에서 한 말이라도 보도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 대한 감정이나 호불호에 대한 표현을 똑같이 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물론 나중에 해설기사 등에 녹여쓸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당시에 기사로 안 쓴 것이 옳으냐 그르냐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술 마시면서 한 얘기는 쓸 수 없다고? 여기서 한국언론의 이상한 ‘이중잣대’에 한 마디 안 할 수 없다. 젊은 정치인들의 광주 술자리에 대해서는 사실확인을 포기한 채 거의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흥분한 언론이 대통령을 꿈꾸는 한 엘리트 출신 정치인의 술자리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도 신중하고 관대했을까.
다음은 월간 『말』 6월호 통음인터뷰에서 오동명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술자리에서 한 사소한 실언을 가지고 너무 민감하게 대응한 것은 아니냐는 반론은 없었습니까.
“사소하다고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몰락한 닉슨을 보세요. 그가 대통령직을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사실 도청이라는 범법행위보다 거짓말을 한 도덕적 문제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일반 사람들에게도 언어사용은 그 사람의 인격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따라서 정치지도자에게 실언은 결코 사소한 문제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선당시 언론도 이회창 총재의 발언을 크게 문제삼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것이야말로 바로 언론의 이중적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최근 신문은 민주당의 김영배 의원이 한 ‘피바람’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했지요. 동아일보는 사설까지 동원해 비판했더군요. 김 의원의 신중치 못한 발언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정치인의 언어 사용에 대한 비판에는 예외가 있어선 안 될 것입니다.”
‘창자론’은 ‘술자리에서의 해프닝’에 불과?
그렇다면 97년 당시에 이 사실이 보도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신문개혁특위 위원장(전 세계일보 편집국장)의 분석이다.
“출입기자제라는 제도의 병폐가 낳은 구조적 문제다. 출입기자들은 출입처의 취재원을 보호하게 된다. 심한 경우, 문일현 기자의 예처럼 자신이 몸담고있는 언론사의 정보를 취재원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신문사에서 정당에 기자를 파견한 것인지, 정당에서 신문사에 정보원을 파견한 것인지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 ‘창자론’ 사건에서 우리가 얻어야할 교훈이다.”
여기서 우리는 원초적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만약 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자신에게 안 좋은 기사를 쓴 기자를 향해 ‘창자를 뽑아버리겠다’ ‘씨를 말려버리겠다’고 발언했다면 과연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설사 그것이 농담이었다고 하더라도)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파 신문들이 과연 ‘술자리에서의 실언인데 문제삼을 필요가 있겠나’라고 하며 그냥 넘어갔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하나 있다.
지난 97년 10월 31일 방송토론에서 김대중 후보는 “우리가 집권하면 조국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이들 중에서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은 사면하겠다”고 발언했다. 어찌 보면 원론적 수준의 발언에 불과할 수도 있었지만 조선일보는 결코 묵과하지 않았다. 이 발언을 전면적인 색깔논쟁으로 비화시킨 것이다. 일주일이 넘게 이 발언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와중에 사설도 두 번이나 썼다. 특히 11월 6일자에 실린 두번째 사설 「양심수 재론」에서는 “언필칭 양심수라며 그냥 내버려두자는 것은 적군과 내통한 자를 방관하라는 말이나 진배없다…양심수 논란에 전국민이 참여해서 끝까지 논쟁할 것을 제언한다”고 ‘선동’하기까지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회창 총재도 비슷한 시기인 11월 2일 방송토론에서 “진정한 의미의 양심수라면 정치인 사면과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발언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 총재의 발언은 문제삼지 않았다.
극우성향의 수구파 언론이 어떻게 교묘하게 ‘킹 메이커’로서의 능력을 발휘했는지 알 수 있는 상징적인 대목이다. ‘창자론’이 ‘지도자로서의 자질 검증’이 아니라 ‘술자리에서의 해프닝’ 정도로 넘어갈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회창 총재의 ‘창자론’과 ‘씨말리기론’은 ‘풍문’이 아니라 ‘팩트’였다. 농담이었든 진심이었든, 기자들은 이 총재가 그 말을 했다는 사실만은 모두 분명하다고 증언했다. 이 총재의 발언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이었을지 몰라도 발언 자체에 대해서만은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다음 날 모여서 공동으로 사실확인을 한 뒤 정보보고까지 했기 때문에 누가 혼자서 독자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도 알 수 있었다.
다만 논란거리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 총재가 두 명의 기자에게 말한 것인지, 한 명의 기자에게 말한 것인지가 아직 분명치 않다. 아울러 언론계에 거의 정설(?)처럼 알려져 있는 ‘풍문’에도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욕설을 들었다는 기자의 이름을 잘못 알고 있거나 사건 시점(‘경선 과정’이 아니라 ‘경선 직후’가 맞다)에 대한 오해가 바로 그 예가 될 것이다.
이제 취재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 됐다. 마지막으로 이회창 총재에게 사실을 확인하는 일만이 남은 것이다. 과연 그는 진실을 말해줄까. 지난 6월 10일 한나라당 총재실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한 직원은 “총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리 없다”고 했다. 잠시 후 언론담당 특보 이원창 의원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책광고에 나온 ‘창자론’은 사실인가.
“한마디로 허무맹랑한 소리다. 책광고는 우리도 봤다. 그런데 필자인지 출판사인지 그쪽에서 우리한테 전화를 해 그런 광고를 내려한다고 알려왔다. 어떤 협상을 하려는 듯한 느낌을 줬다.”
■이 특보가 직접 전화를 받은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고 대변인실에서 들은 얘기다. 그래서 협상할 일도 아니고, 사실이 아닌 것을 낼 경우 법적대응을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하더라. 옛날에 ‘왕회장’이니, ‘돈병철’이니 하는 소설을 쓴 뒤 화제를 불러일으켜 대가를 노렸던 사람들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들의 술수에 말려들지 않으려 대응을 안 하고 있다.”
“안 했다는데 왜 자꾸 했다고 그러나?”
■회식에 참석했던 기자들은 이 총재의 ‘창자론’ 발언 자체는 사실이라고 했다.
“기자들이 그래요? 하하하. 그러면 알아서 써라. 기자들 몇 명이 그랬나? 기자 이름을 알려달라.”
■한두 기자가 아니다. 그들에게 직접 확인한 사항이다.
“이 총재는 농담을 하는 분이 아니다.”
■‘창자론’은 기자 사회에선 이미 널리 회자됐던 이야기이다. 중앙일보 대선전략 보고서에도 나오지 않았나.
“안 했다고 하는데 왜 자꾸 했다고 그러나? 그때 (이 총재가) 말한 것을 녹취한 것이라도 있나?”
■이 총재도 직접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나.
“그렇다. 우리가 옆에서 다 듣고있었는데 (그런 말은 못 들었다). 그리고 이 총재가 그런 말을 할 분이 아니다. 그런 소문은 믿지말아야 한다.”
■그러나 접촉한 기자들 중에서 그 발언 자체가 사실이 아니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글쎄…. 나중에 (이 총재를) 직접 만나보면 알겠지만 그런 말을 할 분이 아니다.”
이 총재측은 전면 부인으로 일관했다. 그렇다면 기자들이 입을 맞춰 거짓말을 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 총재측이 일단 부인하고 보는 것일까.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그런데 이 총재측의 답변과 관련해 확인할 일이 생겼다. 『당신 기자 맞아?』를 출판한 새움출판사 대표 이대식씨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한 뒤 질문을 던졌다.
■한나라당 대변인실에 책광고 내용을 미리 전달했나.
“우리가 그런 짓을 왜 하나? 터무니없는 얘기다.”
■협상을 하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어이없다는 웃음) 그래도 제1야당을 이끈다는 분들이 일개 소규모 출판사에 그런 근거없는 흑색선전으로 대응하다니 연민이 느껴진다. 우리는 월급을 많이 주는 신문사를 포기하면서까지 언론개혁을 주장한 필자의 용기에 동감해 책을 냈을 뿐이다. 책을 내기로 약속했던 유명 출판사들도 권력과 언론을 실명으로 비판한 원고를 보고 부담을 느꼈는지 출판을 거부했다고 하더라. 내용을 보면 누구나 알겠지만 이 책은 특정인을 음해하려고 낸 책도 아니고, 없는 사실을 조작해서 작문한 소설책도 아니다. 한나라당은 근거도 없이 그런 말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 모든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이 글을 다 읽은 독자의 ‘판결’을 기다린다.
제 169 호 2000 년 7 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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