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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06 03:30
조선, 병풍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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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1 - 장승업, ‘홍백매도10폭병풍’, 19세기 후반, 종이에 수묵 채색.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매화나무 모습에서 자유롭고 대담한 붓질을 느낄 수 있어요.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간혹 꽃샘바람이 불기는 하지만 3월에는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이 부드러워요. 봄바람 덕분에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땅도 녹고, 비쩍 마른 나뭇가지에는 새잎과 꽃봉오리가 움틀 준비를 합니다. 이런 날에는 기나긴 겨울 느낌을 걷어내고 환한 봄 분위기를 집안에서도 느끼고 싶을 텐데요. 우리 선조라면 봄 느낌이 가득한 병풍을 둘러 방 분위기를 바꾸지 않았을까요?
우리 옛 그림은 여러 가지 형식의 틀로 제작되었습니다. 족자로 만들어 벽에 걸기도 하고, 두루마리로 말아 끈으로 묶어두고 원할 때마다 펴보기도 했어요. 그림 낱장들을 책처럼 엮어 화첩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평소에 쓰는 물건에도 그림을 붙이곤 했는데, 부채나 병풍이 대표적인 예이지요. 여름에 쓰는 부채에는 졸졸 흐르는 계곡물이나 눈 오는 풍경을 그려 바람을 일으킬 때마다 시원한 기분이 나도록 했을 테고요. 반대로 겨울에 문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막기 위해 펼치는 병풍에는 주로 꽃이나 새를 그려 봄을 상상하게 해줬을 겁니다.
바람을 막거나 가림막 역할을 하던 병풍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그것 자체가 족자나 화첩처럼 그림의 한 형식이 됐습니다. 병풍은 2, 4, 6, 8, 10폭 등 짝수로 그림을 여러 점 연결하기 때문에 다양한 동식물을 한꺼번에 모아놓거나 규모가 큰 그림을 보여주기에 알맞았어요. 커다란 그림이지만 평소에는 접어 보관하는 것이 가능했고, 방의 크기에 맞게 간격을 좁히거나 넓힐 수 있어 방 주인 마음대로 연출할 수 있는 그림의 형식이 바로 병풍이지요.
서울 용산구에 있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조선, 병풍의 나라2' 전시를 진행합니다. 18세기에서 20세기 초 우리나라에서 제작되었던 다양한 종류의 대규모 병풍 50여 점을 소개하는 이 전시는 4월 26일까지 지속돼요.
장승업의 강인하고 대담한 붓질
<작품1>은 조선시대 말기에 장승업(1843~ 1897)이 그린 것으로, 희고 붉은 꽃이 활짝 핀 매화나무입니다. 장승업은 김홍도, 신윤복과 더불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예요. 그는 무엇이든 한 번 스쳐 지나듯 본 것일지라도 정확하게 묘사했을 뿐 아니라, 누가 무슨 이야기만 들려주어도 마치 실제로 본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냈어요.
그의 그림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은 임금이 그를 불러 궁궐에서 지내도록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 하나 거리낌 없이 생활하던 장승업은 최고의 제안을 마다하고 자유로운 화가의 삶을 택했지요. 영화 '취화선'이 장승업의 생애를 다룬 작품입니다.
이 매화 병풍에도 장승업의 망설임 없이 자유롭고 대담한 붓질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늙은 나무 두 그루가 양쪽으로 가지를 뻗친 모습이 어찌나 역동적인지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아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하게 기운 나무인데, 장승업은 위와 아랫부분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눈높이 정도로 가깝게, 바로 앞에서 꽃을 마주하는 기분이 나도록 화면을 구성했습니다.
난초, 국화, 대나무와 더불어 사군자(四君子)의 하나인 매화는 조선 선비들이 좋아하던 그림 주제예요. 군자(君子)는 성품이 고결하여 본보기가 되는 사람을 뜻하는데, 초봄에 추위를 무릅쓰고 꽃을 피우는 매화는 어려움 속에서도 강한 의지를 굽히지 않는 군자에 비유됐습니다. 매화나무는 조선 후기인 19세기에 이르러서는 큰 규모 병풍 그림으로 다수 제작돼요.
화사한 봄기운과 이상향 표현
<작품2>를 보세요. 장승업과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병풍 그림의 대가, 양기훈(1843~ 1911)이 본(本)을 그리고, 장인들이 수를 놓아 완성한 작품입니다. 장승업 그림처럼 화면 가운데에 나무가 세워져 있고, 가지가 양쪽으로 뻗어나가는 구도인데요. 붉은색 나뭇가지 위에 얹힌 연분홍과 진분홍 매화가 화사하게 봄기운을 품고 있습니다. 이렇듯 찬란하게 만개한 매화 병풍은 군자의 굳건한 마음을 강조하기보다는 방안 한가득 봄의 축복을 전하는 것에 중점을 둔 듯 보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궁중에서 민간 집에 이르기까지 병풍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집안에 돌잔치, 과거급제, 혼례, 회갑연, 장례 등 기쁘거나 슬픈 행사가 있을 때면 병풍을 꺼내 의례용(儀禮用)으로 사용하기도 했어요. 삶의 중요한 순간을 맞이한 그날 주인공에게 병풍을 둘러줌으로써, 나쁜 기운을 막고 좋은 기운을 주려는 의미도 담겨 있었지요. 그러다 보니, 앞으로 더 좋은 곳에서 풍요롭게 오래오래 살라는 축복의 의미는 병풍 그림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병풍에 그려진 매화 그림이 왠지 모르게 축복의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겁니다.
사계절 중에서 봄은 옛사람들이 꿈꾸는 지상낙원(地上樂園)의 모습과도 관련되어 있었어요. <작품3>은 근대화가 변관식(1899~1976)이 실제로 보고 그린 봄의 경치인데요. 그가 1944년 봄에 전주 완산을 다녀와서 그린 것으로, 곳곳에 연두색 잎이 갓 올라온 나무들과 연분홍 꽃봉오리가 피어오른 나무들이 눈에 띄네요. 비탈진 산길을 지팡이로 짚어가며 천천히 올라가는 두루마기 입은 노인들 모습도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젊은 시절에 암울했던 식민지 시대를 겪어야 했던 변관식은 해방을 1년 앞둔 시점에서 평화로운 이상향(理想鄕)을 갈망하며 이런 그림을 그렸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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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2 - 양기훈 초본, '자수매화도10폭병풍', 20세기 초, 비단에 자수. 봄의 화사한 기운을 전하는 데 중점을 둔 듯합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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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3 - 변관식, ‘춘경산수도6폭병풍’, 1944, 종이에 수묵 채색. 화폭에 물든 연두색 나무와 연분홍 꽃들이 이상향(理想鄕)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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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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