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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2월 13일 대강절기 셋째 수요예배 설교 +
+ 제 목 : “예수오심(5) -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
+ 본 문 : 마태복음 2장 1절 – 12절 (신약성경 1쪽)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아멘!
이 시간은 예수님 오심을 기념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강절의 말씀,
“예수오심(5) : 임마누엘 주님으로 오신 예수님!” 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선포합니다. “예수 믿는 나는 / 임마누엘 주님으로 오신 예수님을 / 믿습니다. / 아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시선은 언제나,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오심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새 희망을 주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족했던 모든 것을 능히 덮어주는 새로운 축복을 경험하게 합니다.
우리로 이 축복을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아기, 그 이름은 예수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이 세상에 사람 몸으로 오신 예수님을, 여러 모습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줄기차게 “예수가 오신다. 메시야 그분이 오신다.” 고 예언했습니다.
이 예언의 절정은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에 활동을 했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모습과 생애가 어떠할 것인가에 대해서, 가장 자세히 보여 줍니다.
르심과 베가라는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연합해서 유다 왕국을 공격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그 위세 앞에 떨고 있을 때,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 어려움을,
풀어 주시는 전능자이심을 선언하면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고 선포하셨습니다.(사 7:14) - '임마누엘' 이란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는 뜻입니다. 그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전쟁터에 함께 하셨다.
주께서 홍해를 건너게 하셨다. 주께서 모든 역경에서 우리를 구해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
하는 식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으로만 막연히 알고 있던 유다 백성을 향해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9장 6절, 7절 말씀에서는, 그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를 자세히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습니다.
그냥 한 아기로 태어난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아기가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기묘자라. 모사라.” - 우리 인생의 놀라운 지휘자요. 우리 인생의 상담자“ 라는 말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우린 할 말을 다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 깊은 말을 숨기고 살아갑니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후련하게 털어놓고 싶은 대상을 갖고 싶지만, 그렇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나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얘기를 들어주시는 상담자로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외롭고 답답하십니까? 우리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상담자,
그리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다 아시는 전지하신 상담자, 우리 예수님에게 나아오십시오.
상담자이신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일을 알고, 우리 말을 들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좋으며, 축복받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나신 아기 - 곧 우리 예수님은 ‘기묘자요, 모사’ 상담자일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 안에서 응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능치 못하실 일이 전혀 없으신 분입니다.
사탄은 만능이지만 전능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 앞에서는 바람과 바다가 잔잔해지고, 문둥병이 깨끗해지는가 하면,
각색 병든 자들이 치료되, 죽은 나사로, 죽은 화당장 야이로의 딸,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이,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나신 아기 - 곧 우리 예수님은 ‘영존하신 아버지’ 라고 선포했습니다.
영존은 시간적으로 ‘영원하다.’ 는 뜻도 있지만, 어떤 장소에도 거기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영존하시는 아버지' 라는 말에는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신 아기 - 곧 우리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라.” - 평강의 왕이십니다.
이 불안한 세상 가운데 우리 하나님만이 진정한 평화를 베푸시는 우리의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 게 평화를 주노라!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은 평화가 아니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걱정하고 근심하고, 염려하는 우리를 향해 성경은 말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멘! - 평강의 왕 예수님이 우리에게 참 평화를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바 된 한 아기 – 곧 오신 우리 예수님은,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우리의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신 아버지,
평강의 왕이십니다. 이 예수님이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삶속에 함께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우리가 부모의 보호 아래 자랐듯이, 우리 예수님도 나사렛에서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의,
보호 아래 키가 자라고, 지혜도 자랐고,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은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의 말씀에 순종하며 자랐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직장생활이 힘들고, 경영하는 사업이 힘이 드십니까?
우리 예수님도 30세까지 목수라는 직업을 가지셨기에, 직장생활과 사업의 힘듬을 아십니다.
외로우십니까? 우리 예수님도 잠 못 이루는 외로움 때문에, 밤중에도, 새벽 미명에도,
홀로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외로움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여러분은 노도광풍이 부는 밤과 같은 고통스러운 삶을 경험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우리 예수님도 타고 가셨던 배를 삼킬 듯이 몰아치는 큰 폭풍을 만난 적이 있었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일들을 수없이 경험하셨기에, 우리의 고통을 잘 아십니다.
여러분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정말로 기가 막힌 슬픈 일을 당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옳은 일하다가 오해받고,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예수님은 슬픔도, 비난도 받아 보셨기에, 우리의 슬픔과 비난으로 인한 아픔을 잘 아십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믿었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우리 예수님도 사랑하는 제자로부터 은 삼십에 팔아 넘겨지는 배신을 당해 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하는 배신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를, 예수님은 너무나 잘 아십니다.
이외에도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진 고통,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고통,
목마름의 고통은 물론 죽음의 고통, 무덤에 묻히는 고통까지도 다 당해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슬픔과 기쁨, 외로움과 고통을 아실뿐만 아니라,
우리가 당하는 슬픔과 기쁨, 외로움과 고통의 모든 순간마다,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아기로 오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 무릎을 꿇어 경배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모든 하늘의 영광을 다 접으신 채, 베들레헴의 한 마굿간에,
목수의 아들로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에게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영접하므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신 예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이렇게 임마누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능치 못함이 없는 분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지혜의 원천이요, 풍요의 근원이십니다.
또 내가 연약할 때 나의 강함이시요, 내가 흔들릴 때 나의 영원한 만세반석이 되십니다.
핍박의 고통이 우리에게 밀려와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 그분이 우리의 모든 것 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슬퍼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외로워하거나, 절망하거ㅏ, 염려하지 마십시오.
믿지 않는 남편 때문에, 믿지 않는 자녀들, 부모형제자매들 때문에 기도하고 계십니까?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은 기어코 그들의 돌 같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좋은 상담자이신 기묘자요.
지혜자이신 모사요, 평강의 왕이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위해 나신 아기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찬양해야 합니다.
프랑스의 남부에 있는 로데즈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한 젊은이가 자기 애인 안나에게,
사랑을 호소하기 위해서, 안나가 출근하는 길목에 있는 대형 광고판을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대형 간판에 ‘안나! 나 로데즈는 안나 너를 사랑해!’ 라고 써 붙였습니다.
그 청년은 사랑하는 여인인 안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1주일에 1만 프랑이나 하는,
우리 돈으로 일주일에 150만원이나 드는, 길목의 대형 광고판 광고비를 지불했습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무엇을 드리고, 얼마나 헌신하셨습니까?
마리아는 자신의 전부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 자신의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축제가 있고, 나라마다 국경일이 있고, 개인적으로 축하할 일이,
많이 있으며, 회사와 학교, 그리고 단체에도 나름대로의 의미 있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이 함께 축하하는 절기는, 성탄절 밖에 없습니다.
나라와 인종과 이념을 초월하여 성탄절을, 어떻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우리 모두에게 가슴 뜨겁게 하는 감격과 기쁨이 되는 것인가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사야가 예언한 나신 아기 예수님의 성탄절을 어떻게 맞이해야 합니까?
첫째로, 경건한 마음으로 오신 예수님을 경배하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성탄절은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우리 인간들과 똑같은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심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입니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그렇지 못할 것 같습니다만, 현대에 이르러 염려스러운 것은,
성탄절을 교회가 먼저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상가나 유흥가에서, 예수님의 성탄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세상 사람들이 흥청거리는, 상업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탄절에 청소년 비행이 많아지고, 무질서한 쾌락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연말연시를 조용하게’ 라는 세상 사람들의 캠페인에 우리 교회들이,
함께 동참하면서 성탄절 축하 행사가 축소되는 반면, 연말연시가 아닌 불교인들의,
석가탄일은 산 속이 아닌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잘못된 현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23년 크리스마스는 국가의 코로나 방역이 끝나 시끌법적 성탄절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잃어버린 크리스마스’ 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의 성탄절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12월 내내 성탄절 준비와 축하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우리, 화려한 성탄절이 아니라, 예수님 오심을 진정으로 축하하고 경배하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탄을 맞는 동방 박사들의 참으로 아름다운 자세를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 2절 말씀입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 여기의 "경배하다." 라는 말의 뜻은,
무릎을 꿇고 상대방에게 경의를 표하는, 동방박사의 나라인 페르시아의 인사법을 말하며,
지금 페르시아 사람들인 동방박사들이, 자기들의 방법으로 예수님을 경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을 맞는 우리의 마음도, 선물 주고받는 인간적인 즐거움을 나누기 전에,
먼저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을 경배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우리들의 목자 됨을 깨닫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입니다. 다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아멘! - 이 말씀은 미가서 5장 2절의,
이미 예언된 말씀을 인용하신 말씀인데,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양과 같은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지켜 주시고, 먹여 주신다.‘ 는 말씀입니다.(요 10:11/ 벧전 2:25,5:4)
요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영원한 생명을 사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영적 소경이 되어 살아갑니다. 우리 예수님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 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우리 예수님께서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오셔서,
길 잃은 양 같은 우리 인생들을,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목자가 됨을 깨닫지 못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말씀하셨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도, 예수님 십자가 밑에, 그 짐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 예수님의 오심인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 땅에 오신 우리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심을 성령님으로 깨닫는데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인생의 모든 길을(시 37:5), 우리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을(시 55:22),
우리 인생사의 모든 삶의 행사를,(잠 16:3), 우리 삶의 모든 근심 걱정된 일을(벧전 5:7),
우리의 목자로 오신 예수님께 다 ,맡길 때 축복된 일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오심을 축하하는 성탄절을 맞는, 우리의 자세이며 축복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오심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1O절)
오늘 본문 10절입니다.에 “그들이 별을 보고 매유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아멘!
누가복음 2장에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아멘!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은 허다한 천군 천사뿐 아니라,
땅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의 기쁨이며, 찬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뻐하고 찬양하는 내용이 앞서 말씀 드린 대로, 구주로 오신 예수님을, 목자 되신 예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오늘의 성탄절을 맞이하고,
흥청거리는 사람들은 그 대상과 방법이, 예수님에게 있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오심을, 바르게 기뻐하고 찬양하여야 합니다.
넷째로, 주님께 예물 드리며,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1절.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아멘!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왕이 나신 줄 알고, 경배하러 올 때 귀한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그 예물은 당시 참으로 귀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귀한 예물들을,
"보배합 - 귀중품 상자, 보물 상자’ 에 담아서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이 그렇게 했던 것은,
그들 자신의 아름답고 고귀한 마음이라는 예물을, 그렇게 보배합에 담아 드린 것입니다.
그 보배합에 담긴 황금은 예수님의 왕권을, 유향은 예수님의 신성을, 몰약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소중한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합니다. 우리도 동방박사들처럼,
예수님을 만나러 왔을 때, 진귀한 마음의 예물을, 보배합에 담아서 준비하여 드렸듯이,
오신 예수님께 소중한 예물을 드려 경배하는 것이, 진정한 주님의 성탄을 맞아야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할 것은 예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감사함의 예물이어야 합니다.
억지로 드리는 성탄의 헌금은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주님도 열납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성탄을 맞는 우리의 자세는, 이웃들과 함께 축복을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 오심의 목적을, 우리 삶에 실천하는 것이 성탄을 맞는 바른 자세입니다.
예수님이 보시는 것은 외모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 중심을 보십니다.
얼마나 값지고 귀한 것인가를 보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는 마음,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나눔을 실천하는 행함을 보고 계십니다.
2023년의 성탄절을 맞이하며, 예수님의 오심을 축하하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신 예수님을 경배하는 마음으로, 목자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뻐하고 찬양함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며, 힘들어 하는 우리 이웃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아름다운 성탄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