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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간곡한 청원 (2)
설교일 : 2010년 05월 02일 제목 : 유다의 간곡한 청원(2)
성경본문 : 창세기 44:30-34 설교자 : 지용수 목사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 때문에 여러분이 위경에서 구원을 받고 근심, 걱정이 사라져 담대함을 얻게 될 줄 믿습니다. 또 삶이 입체적으로 보이고 길이 트이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인생길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 굴곡이 걷잡을 수 없습니다. 폴란드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이 대통령 전용 비행기를 타고 가다 추락하여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을 누가 알았습니까?
1960년대에 로버트 케네디가 앞으로 40년이 지나면 흑인이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그의 말대로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높이 올라갔던 사람이 곤두박질치고, 밑바닥에 있던 사람이 올라가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올려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과 저의 자녀도 올려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다시 애굽으로 갈 때는 시므온이 매를 맞거나 풍토병에 걸려 죽었는지 살았는지, 사형 집행을 당하지나 않았는지, 베냐민을 데리고 가니 간첩 협의가 없어질지, 그래서 곡식을 사오게 될지 아니면 다 잡혀 있게 될지, 또 자루마다 들어 있는 돈뭉치 때문에 도둑으로 몰리지나 않을지 불안해서 떨었습니다. 그런데 시므온도 풀려나고 총리 저택에서 귀빈 대접을 받고 곡식을 바리바리 싣고 베냐민과 함께 모든 형제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편하고 기쁜지 휘파람 불며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가는데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 “멈춰라! 멈춰라!” 하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멈추어 서니 애굽 관리들이 “어찌 선을 악으로 갚느냐? 어찌 은혜를 악으로 갚느냐? 어찌 우리 총리 각하께서 아끼시는 은잔을 훔쳐 갔느냐?”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는 훔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서 은잔이 나오면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 모두 종이 되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조사하니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나옵니다.
따라 합시다.
“말조심하자.”
장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한 대로 하면 베냐민은 죽고 그들 모두는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훔치지 않았지만 베냐민의 자루에 은잔이 들어 있는 것을 어떡합니까?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일로 기억됩니다. 지우개를 새로 샀는데 교실 밖에 나갔다 오니 없어졌습니다.
“어! 내 지우개가 없네.”
그러자 반 친구들이 원래가 가져 갔다고 했습니다. 원래는 저의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원래와 제가 친한 것을 질투한 다른 친구들이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제 지우개를 원래의 필통에 넣어 놓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때 원래가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야! 어찌 친구가 지우개를 훔치냐?”
“용수야, 무슨 말이야? 나, 지우개 안 훔쳤어.”
“네 필통에 있는데, 아니야? 이게 거짓말까지 하고…….” 라고 하면서 원래를 막 때렸더니 원래의 얼굴에서 피가 났습니다. 그날 원래 어머니가 얼마나 화가 나셨는지 저를 찾아오셔서 “용수만 아니었다면 때려죽였을 건데 용수 너라서 관둔다.”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에야 저도 친구들이 제 지우개를 원래의 필통에 넣어두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베냐민이 은잔을 훔치지 않았습니다. 관리들이 베냐민의 자루에 넣은 것입니다. 그러나 도둑으로 몰려 총리 앞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모든 형제들이 함께 총리 앞에 엎드렸습니다. 총리가 엄한 소리로 말합니다.
“어찌 이런 일을 행했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 잘 칠 줄을 몰랐더냐?”
유다가 말합니다.
“무슨 말을 하오리까? 어떻게 설명하오리까?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말씀 드리겠사옵니까? 은잔이 발견되었으니 우리가 다 종이 되겠습니다.”
“아니다. 다 종이 될 필요 없다. 은잔을 훔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들은 양식을 갖고 가서 식구들을 굶주림에서 구원하라.”
베냐민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을 것입니다. 이제 베냐민만 남아서 종이 되고 다른 형제들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유다가 총리 앞으로 나아가 “총리 각하, 제가 한 말씀 아뢸 테니 노하지 마소서. 각하는 왕 같은 분이십니다.”라며 사정 이야기를 다 합니다. 베냐민과 아버지의 생명이 직결되어 있어서 베냐민이 돌아가지 않으면 자기 아버지가 슬프게 음부로 내려갈 것이고, 또 베냐민을 데리고 갈 것을 아버지께 약속했으니 자기가 대신해서 그 죄를 영원히 지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베냐민을 보내고 대신 자기를 종으로 잡아 놓으라고 간청합니다.
그 당시에는 종이 되면 소나 돼지처럼 완전히 그 집의 재산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다시는 처자식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다가 그렇게 말하니 요셉이 정을 억제하지 못합니다. 뱃속 깊이 받은 감동을 억제하지 못해 관리들을 다 물러가게 하고 방성대곡을 합니다. 22년 만에 처음 터뜨린 울음입니다. 22년 참았던 서러움, 한 맺힌 모든 것을 다 털어내며 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형님들, 가까이 오소서.”라고 하니 야곱의 아들들이 다 어리둥절해 합니다.
“형님들, 이리로 가까이 오소서. 나는 요셉입니다. 22년 전에 형님들이 팔았던 요셉입니다. 나를 판 것 때문에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께서 우리 식구들을 살리시려고 나를 먼저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목을 안고 웁니다.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왕이 보낸 황금 마차를 아버지가 타고 오시고 모든 가족이 고센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할렐루야!
유다가 총리에게 사실을 아뢰지 않았다면 다른 형제들은 돌아가게 되지만 베냐민은 잡혀 있으니 슬픔과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베냐민이 돌아오지 않은 것을 본 야곱이 충격으로 쓰러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집안이 얼마나 어려워지겠습니까? 그런데 유다가 열한 형제를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요셉에게 아뢰어서 해결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생명이 살고 죽고 흥하고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아뢰어야 하는 것입니다. 잘될 때도 아뢰어야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잘 안될 때도 아뢰어야 잘되게 되는 것입니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도 아뢰면 사고가 없고, 험한 길을 갈 때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의 정체성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부시 대통령이 미국 시골의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 가서 자신이 미국 대통령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나, 대통령 맞아.”
“그러면 대통령이라는 증명서를 보여 주세요.”
그래서 자신이 부시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운전면허증을 보여 주었더니 아이가 “이것은 운전면허증이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신용카드를 보여 주어도 “이건 카드잖아요. 대통령 증명서를 보여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대통령인 것을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어 쩔쩔 맸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서 경호원들에게 에워싸인 채 멋진 세단을 타는 것을 보고는 그 아이가 “대통령이 맞네.”라고 했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가 무엇입니까?
제가 어제 새벽에 인천에서 돌아왔는데 새벽 3시에도 기도하고, 조반을 하면서도 기도하고, 비행기 안에서도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증명서입니다. 식당에서도 기도하고, 학교에 가서도 기도하고, 차를 타도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표입니다. 할렐루야!
신명기 4장 7절에,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유다는 총리인 요셉에게 구하기 전에, 청원하기 전에 “총리 각하는 왕 같은 분이십니다.” 하고 총리를 높였습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남편에게 무엇을 구할 때도 남편을 높인 다음에 구해야지, 그냥 달라고 하면 받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께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어린아이 같으십니다. 다윗이 “하나님 최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 나의 반석, 나의 구원의 뿔, 나의 힘, 나의 방패…….” 하며 하나님을 막 높이니 하나님께서 좋으셔서 다윗을 점찍어 왕으로 세워주십니다. 당시 잘난 청년, 멋진 청년이 많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최고로 좋아하는 다윗을 세워주신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는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는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Delight yourself in the LORD and he will give you the desires of your heart.)』(시편 37:4)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 기도할 때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성령으로 기도하게 해 주세요.”라고 한 다음에는 10분간 하나님을 높이는 기도를 합니다. 존귀와 감사와 영광을 계속 올려 드립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켜 주시고 복 주시고 제 죄를 용서하시고 오늘까지 붙들어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한 다음에 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여러분도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을 높이고 높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유다는 희생 어린 기도를 했습니다.
자신만을 생각하면 베냐민을 거기에 두고 자기는 그냥 가도 됩니다. 자기가 애굽에 잡혀 있게 되면 그의 인생은 평생 짐승처럼 일하다 끝나고 맙니다. 그런데 베냐민이 돌아가지 못하면 아버지가 충격으로 쓰러질까 봐 “제가 대신 종이 되겠습니다. 베냐민은 보내 주세요.”라고 한 것입니다.
그 말에 요셉이 깊은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한 기도도 드려야 합니다.
역대상 4장 9절, 10절에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게 야베스의 복을 주시기 원합니다. 복에 복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지경을 넓혀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의 손으로 도우사 환난에서 벗어나 평안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구해야 됩니다. 야곱은 복 받아 살려고 씨름하면서 기도하여 이스라엘이 됩니다. 한나는 아기를 낳지 못해 서러움을 당할 때 “아들 하나 주세요. 아들 하나 주세요.”라고 기도해서 아들을 얻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살고 싶습니다. 살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해서 15년을 더 살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름다운 기도, 희생 어린 기도를 해야 됩니다.
꽃은 다 아름다워도 장미꽃의 향기가 제일 아름다운 것처럼 기도는 아름답지만 희생 어린 기도가 더 아름답습니다. 유다가 아버지를 위해 구할 때 요셉이 감동받은 것처럼 우리가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 우리 주변에 있는 분들을 위해, 나라를 위해, 세계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역대하 1장에 보면 왕이 된 솔로몬이 하나님께 나아가 일천 번제를 드리고 간곡히 기도한 다음에 잠이 들었습니다.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 물으셨습니다.
“솔로몬,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 티끌같이 많은 백성들을 제게 붙여 주셨사오니 이 백성 앞에 출입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의 백성을 재판할 수 있도록 제게 지혜와 지식을 주옵소서.”
“솔로몬, 그런 마음이 네게 있었구나. 네가 부귀영화를 구하지 않고, 장수를 구하지 않고, 원수를 멸해 달라고 구하지 않고, 백성을 위해 지혜와 지식을 구했으니 내가 지혜와 지식을 줄 뿐 아니라 부귀영화, 장수도 네게 주리라. 네 이전에도 너 같은 왕이 없고 이후에도 너같이 복 받을 이가 없으리라.” 할렐루야!
솔로몬의 기도는 백성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고위 관리로 대제국의 왕의 친구 같은, 술을 맡은 관원장입니다. 이미 출세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금식하고 울며 부르짖은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조국 예루살렘의 성곽이 무너져 피폐해지고 조국에 남아 있는 백성들이 주변 나라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천대받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하나님 앞에 울고 울며 부르짖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예쁘게 받으시고 응답하셔서 예루살렘 성을 52일 만에 완성하게 하십니다. 그가 총독이 되게 하십니다. 백성을 위해 기도하는 느헤미야를 더 높여주신 줄로 믿습니다.
다니엘이 총리가 된 다음에도 예루살렘을 향해 창을 열고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는 자기를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그는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높이 올라갔습니다. 이미 출세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 조국 이스라엘과 백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다니엘을 높여 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참고하시도록 제가 하는 기도에 대해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하나님을 높인 다음에 우리 교회 장로님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안수 집사님, 권사님, 집사님, 기관장님……태중의 아기까지 위해 기도하고, 군에, 출장 중에, 유학 중에 있는 우리 교우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 다음 러시아 우리 교회와 미국 우리 교회, 멕시코 우리 교회, 형제 교회인 뉴욕은혜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제가 세운 교회와 첫 목회한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세계교회를 위해, 세계 신학대학을 위해,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하는데 그때 대통령, 장관들, 공무원들, 국회의원들, 경찰들, 군인들, 사업가들, 회사원들, 선생님들, 학생들, 언론에 종사하는 분들, 예술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특별히 영화와 연속극을 만드는 사람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도록 기도합니다. 그리고 김정일 씨와 북한의 지도자들과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중국과 러시아, 일본, 미국을 위해 기도하고 전세계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저희 가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의 어머니와 가족이 우선순위에 있겠지만 교회와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기도한 다음 마지막에 저희 가족 기도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회사의 사장이면 중역들, 부장들, 과장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면 좋습니다. 회사가 커서 일일이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면 묶어서라도 사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원은 과장님과 부장님, 사장님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학생은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고 공부하고, 선생님은 학생들을 위해 기도하고 가르쳐야 됩니다. 교구 목사님은 교구의 모든 교구장님들과 구역장님, 부구역장님, 구역 식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야 선한 목자입니다. 기관장은 기관원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야 선한 기관장이고 그 기도가 향기로운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기도하면 내가 복을 받고 남의 아들을 위해 기도하면 내 아들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남의 사업을 위해 기도해 주면 내 사업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녹즙기로 대성한 우리나라의 두 회사가 서로 상대방 회사를 헐었습니다. 상대방 녹즙기에서 쇳가루가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런 녹즙기를 누가 사용하겠습니까? 사람들이 두 회사의 녹즙기를 다 믿지 못하여 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회사가 다 망했습니다.
기도할 때뿐 아니라 사업을 하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인 것입니다. 물건을 살 때도 주인의 이익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큰 회사의 것보다 작은 회사의 것을 사주려는 마음도 가져야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갈 때도 옆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귀한 일인 것입니다. 공중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화장실이 더럽다면 내가 더럽힌 것이 아니라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오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인 것입니다. 손을 씻고 나서도 물기를 턴 후에 닦으면 종이 수건 한 장으로 충분합니다. 자기 집의 것이 아니라고 서너 장씩, 어떤 사람은 열 장도 뽑아 쓰는데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은 복을 주실 수가 없는 줄로 믿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품고 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내 기도 우산에 많은 사람이 들어와야 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총리 각하, 제가 아버지께 약속했습니다. 제가 담보했습니다. 베냐민을 데려가지 않으면 영원히 그 죄 값을 제가 받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약속했으니 베냐민을 두고 어떻게 제가 가겠습니까? 그러니 저를 종으로 잡아 두시고 제발 베냐민을 보내주세요.”
우리도, 유다도 다 죄인입니다. 그는 창녀도 한 번 본 사람입니다. 흠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약속에 신실하려고 애를 쓰니 그의 지파에서 예수님께서 나십니다. 왕들이 납니다.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완벽한 의인은 없습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누구나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한 것은 용서하시고 잘하는 것을 보시고 우리를 세워 주시는 줄 믿습니다. 유다가 잘못한 것이 있어도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 효도하려는 마음, 희생하려는 마음으로 애를 쓰니 요셉이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잠시 우리의 과거를 생각해 봅시다. 병원에 누워 하나님께 약속한 것, 사업이 어려울 때, 직장이 어려울 때, 자식이 어려울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 주시면 어떻게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너하고 거래하는 것 재미없네. 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구나.’라고 하시며 거래를 중단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응답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약속에 신실하면 더 주시는 것입니다.
비행기에서 만난 미국인 사업가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요즘 경제가 어려운데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더 좋아요. 저는 25년간 한 길만 왔어요. 세계 도처에 거래처가 있는데 25년간 쌓아놓은 신뢰가 있어서 걱정 없어요.”
사람은 신뢰를 받아야 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신뢰를 받아야 됩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여보, 미안해. 오늘 과장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상가에 가야 되니 집에 들어가지 못할 거야.”라고 하면 아내가 “알았어요.”라고 하면서도 한숨을 쉽니다. 왜입니까? 그 과장님 어머니가 세 번째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신뢰가 깨지면 행복이 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 사람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무엘상 1장에 보면 한나가 “하나님, 아들 하나 주세요. 아들 하나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라고 약속합니다. 아들을 받았습니다. 그 생명, 그 귀여운 아들을 하나님 교회에 바치면 아들이 다시는 집에 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나는 그 아들을 기쁨으로 바칩니다. 그 아들을 바칠 때 정성을 다해 예물도 바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예쁘게 보시고 3남 2녀를 더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한나를 권고하사 그로 잉태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사무엘상 2:21) 할렐루야!
한나가 약속을 지키고 하나님께 5배로 더 받았습니다. 우리가 약속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5배로, 50배로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 아내와의 약속,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는 멋진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아침에 예배를 마치고 나서 내려와 의자에 앉아보았습니다. 앞에도 앉아보고 중간에도 앉아보고 뒤에도 앉아보았는데 교회가 얼마나 아름답고 웅장한지요. 특별히 뒤에서 보니 바다 같이 넓었습니다. 2층에서 보면 더 웅장하게 보입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1992년도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제가 미국으로 가면서 우리 교우들에게 미국 우리 교회가 안정되는 대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교회가 많이 부흥되었습니다. 그때 제약회사 회장님인 미국의 큰 교회 장로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목사님, 모세가 미디안 광야를 떠나 애굽으로 가서 일을 했듯이 이제 목사님께서도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오셔서 목회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오셔서 미국의 우리 교포 영혼들을 구원해 주세요. 지금 미국은 목사님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제가 목사님을 후원해 드리겠습니다.”
또 많은 분들도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미국은 세계 최고의 나라인데 여기에서 최고 교회를 만들어 볼까?’ 하는 마음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약속에 신실하라.’라는 감동이 왔습니다. 특별히 제 아내가 약속을 지켜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부탁들을 다 거절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교회를 축복하신 줄로 믿습니다. 세계적인 교회를 주시고 저를 총회장까지 되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만일 제가 욕심을 내고 미국에서 목회했다면 하나님께서 이런 복을 주셨겠습니까? 약속을 깬 목사를 축복하시겠습니까? 저는 지금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오늘 다시 한 번 과거의 약속을 되살려 지키는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남은 생애가 변화될 줄 믿습니다.
1993년도 삼성전자의 휴대폰에서 결함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사원들 앞에서 남은 제품 15만 개, 500억 원의 제품을 다 태워버렸습니다. ‘우리는 결함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없다. 흠이 없는 제품, 세계적인 제품을 만들어야 된다.’라는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충격을 받은 사원들이 결단하고 그 각오로 휴대폰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그 당시 국내 4위이던 그 휴대폰이 세계 최고가 된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결단하면 큰 변화가 온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요청합니다. 우리가 새 성전에 들어왔으니 특별히 기도에 대해 새로운 결단을 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새로운 계획을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교회뿐 아니라 가정들이, 여러분 개인의 삶이 달라질 줄로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딸, 손자손녀, 후손들을 기도하는 사람으로 길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성경을 읽다가 출애굽기 20장 6절에서 한참 머물러 있었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할렐루야!
여러분의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면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잘 살아야 자자손손 잘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기가 출생해서 처음 교회에 오면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를 해 주려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복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 자녀들도 복 있는, 기도하는 자녀로 만들 의무가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2:6)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잠언 29:17) 할렐루야!
아무리 극상품 사과나무라도 그냥 버려두면 돌사과나무가 됩니다. 하지만 나무가 아파해도 가지를 치고 가꾸면 극상품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그냥 두면 동물처럼 됩니다. 그러나 징계하고 혼내면서 기도로 기르면 귀한 인재가 될 줄로 믿습니다. 아이들을 그냥 두면 안 됩니다. 잘못하면 징계하고 토요일에는 강제로라도 새벽기도회에 데리고 나와서 기도를 시키며 기를 때 그 자녀의 장래가 있는 줄 믿습니다.
요즘 명문회사는 면접 때 고의적으로, 의도적으로 강한 스트레스를 주어서 그 반응을 보고 합격 여부를 결정한답니다. 예를 들어 ‘이런 토익 점수로 어찌 감히 우리 회사에 지원을 했는가?’ ‘여자에게는 몸매도 경쟁인데 그 몸으로 어찌 우리 회사에 지원할 생각을 했는가?’ 또 몇 가지 질문을 한 후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친구들이 꽉 막혔다고 하지 않는가?’라고 한답니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달려오는 차에 뛰어들고 싶답니다. 그래도 그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면 탈락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약한 사람은 그 회사에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아도 싱글벙글 웃으며 잘 이기는 사람이 합격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접 때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인생의 길목에서 부딪칠 문제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만날 문제를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자기 소가 죽었다고 소 주인이 죽으면 어떡합니까? 일이 안 된다고 죽으면 어떡합니까? 사랑에 실패했다고 바다에 빠져죽으면 어떡합니까?
욥은 소만 죽은 것이 아니라 양과 염소도 다 죽고, 일곱 아들과 세 딸이 죽고, 자기 몸에는 병이 오고 아내는 집을 나갔습니다. 그래도 기도하니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인생의 어떤 문제를 만나도 기도하면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능력입니다. 기도는 빛입니다. 길이 없어도 기도가 길이 되는 것입니다.
무서운 신앙인은 기도의 사람들입니다. 우리 자녀들도 무섭게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길러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읽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뉴욕의 제프리라는 음악가가 부모님을 무척 사랑했는데,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이 다 암에 걸렸습니다. 한 분만 그래도 충격을 받는데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이 동시에 암에 걸렸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제프리가 충격으로 흔들렸습니다. 그때 사랑하는 친구가 와서 설교하듯이 말했습니다.
“친구야, 지금은 네가 하나님을 만날 때야.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전능하셔. 예수님은 너의 구세주야. 예수님을 영접해. 예수님은 너를 도와주실 수 있어. 예수님은 빛이셔.”
무신론자인 그는 “그런 말하지 마.”라며 친구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친구가 말하는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십니까? 예수님이 정말 내 구세주이십니까?”
그때 눈물이 쏟아지면서 “네 친구가 말한 대로 나는 살아 있는 하나님이다. 나는 너의 구세주이다. 나는 너를 도울 수 있다. 나는 너를 구원할 수 있다.”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전도했습니다.
그 책에 그의 부모님이 나았다는 내용은 없었지만,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가 소망차고 생기차게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6절 이하에 소경 거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리고 부촌(富村)의 외롭고 불쌍한 사람, 소경 거지가 “이 사람아, 자네도 예수님을 만나면 눈을 뜰 수 있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누군가 던진 그 한 마디 말이 그에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 한 마디 말이 희망이 되어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벅찼습니다. 그러다 예수님께서 여리고 성을 지나가실 때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이 “조용히 해! 귀한 분이 지나가시는데 왜 이리 소란이야?”라며 그를 나무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 발길을 멈추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도 주님께서 우리 앞에 서시면 그 문제가 그날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발길을 멈추신 예수님께서 “그를 내게로 불러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뛰어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합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 순간에 그가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희 집 이야기를 하고 마치겠습니다.
감사하게도, 제 딸의 출산 예정일이 제가 미국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출산 예정일인 화요일이 되어도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의사선생님이 “문제가 좀 있습니다. 아기가 나올 준비를 해야 되는데 나올 생각도 하지 않고 위에서 편안하게 잠만 자고 있습니다.”라며 아기를 낳으려면 시일이 좀 걸리겠다고 했습니다. 금요일에 다시 검사를 해보고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딸이 기도를 세게 해야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수요 예배 때 설교를 마친 후 교인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다음 날인 목요일이면 제가 한국으로 돌아와야 됩니다. 아기 낳는 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오면 궁금하기도 하고 얼마나 걱정이 되겠습니까? 그날 미국의 우리 교우들이 기도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1시간 쯤 지났을 때 딸에게 통증이 왔습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아기를 낳을 때 처음에는 몇 시간에 한 번씩 통증이 오다가 1시간, 30분, 15분……이렇게 점점 줄어드는데 10분에 한 번씩 아플 때 가야 된답니다. 30분에 한 번씩 아플 때 병원에 가면 아직 때가 아니라고 쫓겨난답니다. 자리가 없으니 10분에 한 번씩 아플 때 오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제 딸은 통증이 시작되자마자 5분에 한 번씩 아픈 것입니다. 급하게 병원으로 데리고 갔더니 병원에 도착한 지 30분도 안 되어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날 그 미국 의사선생님이 여섯 명의 아기를 받았는데 제 딸처럼 쉽게 아기를 낳은 산모가 없었다며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모릅니다.
지금 이야기를 듣는 여러분은 그저 그렇겠지만 아비인 저는 아기를 빨리 낳을 수 없겠다는 말에 피가 마르는 것 같았습니다. 혹 하나님의 다른 뜻이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런 때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아무리 캄캄해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기도하는 부모가 되고, 우리 자녀를 기도하는 자녀로 만들어서 위대한 일을 이루시는 가정, 가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