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암장에서 설악산에 간다는 말이 있었을 때는
멋모르고 단지 설악산이 명산이라길래,
나도 이번 기회에 슬쩍~ 껴서 가볼까하는 마음에
무턱대고 가겠다고 하였다.
설악산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이 중생에게
(나? 교포. ㅡㅡ;)
천화대는 또 뭐하는 곳인지 알 턱이 없었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천화대는 공룡능선에서 동북쪽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외설암의 기암준령이다. 설악골과 잦은 바위골 사이의 범봉능선에서 천불동으로 빠지는 산능을 전부 가리켜 부른다. 천화대에서 멀리는 화채봉과 동해가 바라보이며 마치 하늘아래 꽃밭에 있는 것 같다 하여 천화대 또는 연화대라고 부른다. 천화대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돌봉우리로 그 경치가 가히 경관이다. 수려한 천화대의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밑바닥에서부터 흔든다. 너무나 아름다우며 감격스러운 마음이 솟아 오르고 겨울 빙설의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햇빛에 흰 빛이 붉고 파란 빛을 내어 신비스럽기만 하다."
이라는 말에, "하늘아래 꽃밭" 이라는 말에
단순하게도 피크닉이라도 가는 것마냥
룰루랄라~ 신이 났었더란다.
(알고보니 하늘아래 돌밭 이었지만. ^^;)
금요일 밤
뒤늦게 짐을 꾸리고 무게를 재어보니
7kg은 거뜬히 넘어간다.
암장에 가서 장비를 챙기면 10kg은 될 듯 싶어
지레 힘이 빠지기도 했지만
에라이~ 이번이 아니면 또 언제 가보누? 하는 생각에
과감히 클라이밍 바지를 입으려고 보니
어라라~ 바지 한쪽이 쭈우욱~ 찢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나의 유일한 한벌의 빠알간 클라이밍복인데
이걸 우이해?
시간은 이미 9시반을 넘어섰고
급한 마음에 일단 입고 배낭을 메고
살아서 돌아오라는 ㅡㅡ; 언니의 장엄한 배웅까지 받으며
집을 나섰다.
밤 10시쯤에 암장에 도착하여
다행히도 옆에 있는 옷수선집에서 급하게 옷을 두루룩~ 박고
아줌마한테 90도가 넘는 감사의 인사를 하고 또 하고,
500원짜리 목장갑 한켤레와
헤드랜턴, 물, 건전지까지 구입하고 나니
이제야 좀 정신이 돌아온다.
설레이는 마음에
임시로 떼어놓은 충치들이며
욱신거리던 편두통도 잠시 사라졌었다.
캔커피 하나로 목을 축이고
밤 11시.
호근 선배의 까아만 스타렉스에 몸을 실고
설악산을 향해 Go~! Go~!
사실 피곤하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해서
자다 일어나다를 반복하다가
12시 50분경 팜파스 휴게실에 도착하여
야밤에 그네타는 암장인들과
그네를 이용한 팔운동을 보여주신 싸부님도 한컷씩 담고 다시 출발!
1시 50분에 미시령고개를 흔들흔들 넘다가 비명소리에 잠시 잠을 깼다가 ^^;
2시 10분. 24시 마트에 도착해서 렌즈낌.
2시 30분. 호텔앞에 주차.
짐을 꺼내 다시 정리해보고
차에 랜턴을 달고 머리에 헤드렌턴을 쓰고 술자리가 벌어졌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은 소주를 참 좋아하나 보다.
이렇게 저렇게 한잔씩 오가는 동안에
나는 열심히 아픈 이로 호빵을 씹고 있었다.
(사실 요즘 이가 부실해서 오른쪽에 크게 금으로 하나 막고
왼쪽에 3개의 이를 임시로 막아놓고 산을 탔으니
그 고통은 정말 이루어 말할 수 없다. 흐흑. ㅡ.ㅜ)
새벽 3시반.
출발하자는 신호가 떨어졌다.
헤드렌턴을 끼고 배낭을 메고
어둠속을 살포시 한걸음씩 걷는다.
이렇게 잠도 안자고 새벽에 산에 오르는 일은 처음이라
긴장되고 설레인다.
더군다나 나는 약간의 야맹증이 없지는 않다. ㅡㅡ;;
한 두어번 잠시 잠시 쉬다가
다리를 건너는데 물소리가 조금씩 나더니
웅장한 정상들이 눈앞에 어렴풋이 들어온다.
아아.. 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첫날밤에 신부의 옷을 한겹씩 벗기는 신랑의 마음이
나처럼 설레이고 흥분될까.
그렇게 어둠속을 걸어서 첫번째 피치.
특별히 어렵다거나 하는 코스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등에 배낭을 메고 암벽을 탄다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었다.
사실 벽을 타기전에 거대한 파리들의 공격이 더 황당했지만. ^^;;;
조금씩 조금씩 어둠은 거쳐지고
밝은 빛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기를 쓰고 올라가고
또 한순간에 하강하고를 반복하다보니
머리속은 "내가 이 짓을 왜 하나"에서부터 시작해서
집에 내팽겨치고 나온 구멍난 양말 생각,
이러다 확! 쓰러져 주위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다가
나중엔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걷는 한걸음에 집중하고
숨을 들이마쉬고 또 내쉬고
또 다른 발을 들고 디디고 또 들고.
산에서 등반순서를 지키지 않는 무식한 사람들을 떼거지로 보다보니
자연이 경이스러운게 아니고
사람이 경이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산을 즐기러 와서
왜 저렇게 아웅다웅 먼저 올라가려고 하는건지.
기념으로 사진도 찍어줬다.
밑에다가 매너없는 사람들~ 하는 타이틀로
눈에 까만 띠 두르고 인터넷에 배포할 생각도 잠시 해보고. ^^;
처음에는 그래도 그런 여유라도 있었나보다.
위에 올라가면 목을 축이고 사진을 찍고 주위를 둘러보고
저긴 어디에요? 또 여긴 어디에요? 를 물어봤는데
나중에는 사진이고 뭐고 가만히 서있는데도 졸리고 휘청거리는 것이
아, 차리리 떨어지는 것이 더 쉽겠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더군다나 잠시 잊고 있었는데
번지점프를 하고 난 후부터 고소공포증이 생겼다가
패러글라이딩하고 다시 극복이 되었는데
설악산에 오고보니 고소공포증이 극복이 안된 것이
자꾸만 뛰어내리고만 싶고 날고만 싶더라. ㅡㅡ;;
졸리어서 멍해져가는 정신을 다잡고
휘청거리는 다리를 꼳꼳이 세우고
왕관봉에 올랐을 때에는
설악산에서 보기 힘들다는 이 날씨.
멀리 울산바위와 함께
작년에 다이빙을 했던 속초바다까지 한번에 쏴악~ 보이는 것이
사진 한컷 찍고 싶었으나 도저히 카메라를 꺼낼 엄두가 안났다.
(그 전에 이미 썬블록 바르다가 곱게 한번에 하강시켜버렸기에. ㅡㅡ;;)
솔직히 하산하자는 말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흑흑. ㅜ.ㅜ
내 다시는 클라이밍을 하나 봐라~ 하는 심보로
일단 밥부터 먹고 보자하고 햇반과 참치캔을 꺼냈는데
(이 때문에 중간중간에 간식먹는 것도 괴로워서 배고픈체로 계속 움직였더니
눈앞이 노래졌었다.)
누군가 한마디. 부지런하네. 밥도 데쳐오고~
엥? 밥을 데쳐오다뇨? 누가요?
이 햇반 그냥 먹는 거 아니에요? @.@
어허라 이런.
햇반은 데쳐서 먹는 거란다.
난 처음 알았다. ㅜ.ㅜ
그래서 다시 곱게 배낭에 넣고
배고파하며 울적하니 하산준비하는데
누군가 커피를 건넨다.
앗, 감사합니다.
한 입 먹을려고 병을 기우니
우다닥! 이런 젠장. 커피를 옷에 다 쏟았다. 흑. ㅜ.ㅜ
이 때부터 산에 있는 벌레들이 단 향기를 맡고 몰려든다. ㅡ.ㅡ
어쨌든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뒤로 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출발한지 12시간은 지난 시간에.
그런데 걸은지 몇 십분도 안되었을 때
우두둑! 무언가 나서는 안되는 소리가 난다.
아니 이게 뭐야?
등산화 왼쪽의 밑바닥이 완전히 분리되엇다. @.@
그럼 어떻게 해. 그래도 신고 걸어야지.
왼손에 신발 밑창을 들고 걷기 시작한지 몇분이 안되었을 때
우두두둑! 뭔가 확실한 소리와 함께
발이 갑자기 시원해진다.
밑을 내려다 보니
왼쪽 신발이 완전히 3등분 되었다.
layer별로 무슨 악어마냥 입을 쫘악~ 벌리고 있다.
황당하게 그렇게 서있다가
어쩔 수 없이 암벽화로 갈아신었다.
발가락이 확 구부러져서 발가락에 힘이 최대한 가도록 디자인된 딱딱한 신발로 말이다.
ㅜ.ㅡ
발톱빠질 각오하고
그래도 맨발로 걸을 수 없어서
그렇게 몇 시간째 하산하고 있는데
잠시 후 오른쪽 신발마저 늠름하게 그 안을 보여주면서
옆구리가 터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
설악산을 만만히 봤다고
신고식 한번 제대로 한다.
나는 이 날 신발이라도 고히 묻어놓고
신고식이라도 했었어야 하는 거였나보다. ㅜ.ㅜ
그렇게 몇시간을 내려와서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말 그대로 할렐루야~ 부처님 만세~!!
살아있는게 다 고맙고 신기했다.
나중에 보니
열발가락에서 피가 나서 엉겨있고
손, 발톱들이 빠지려는 듯 흔들거리는 것이
(사실 지금 키보드를 치는데도 머리가 다 흔들린다. ㅡㅡ;;)
몸 구석구석에 피멍은 기본이요
안쑤시는 구석이 없다.
사실 몸무게도 2kg 줄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누군가가 내게
설악산을 다시 밣지 않겠냐고 넌지시 물어본다면
망설임없이 그럽시다! 하고 얘기할 것이다.
물론 데친 햇반과 튼튼한 등산화와 줄이 달리 썬블록로션을 준비하고 말이다.
2004년 6월 16일
권소현 씀
PS : 사진은 한 200장 정도 되는 거 같은데 제 홈피에 올리고 있는 중이에요.
다 올리면 링크걸께요. 히힛~ ^^
또 PS : 어제 탐험가 박영석씨 뵜는데 천화대갔다왔다고 하니 위아래를 둘러보시더니 눈이 휘둥그레 해지시더군요. ㅋㅋㅋ 좀 뿌듯했습니다. ^*^
첫댓글 아, 그리고 신발빌려주신 황선배님과 승권에게 대단히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느릿한 저를 재촉하지 않으셨던 다른 모든 분들도 감사합니다!
ㅎㅎㅎ 소현시 이렇게 멋진 글을 쓰려고 잠적을 하신거였군요 정말 즐겁게 잘읽었습니다. 며칠 고생을 하셨으리라 생각했는데 ....ㅋ 제가 지나가는 말로 산행기 쓰라고 했는데 정말 잘 쓰셨네요 ... 그리고 소현씨 사진 기대됩니다. 사진적으로 가장 멋진 내용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소현~~ 후기 잘 읽었어!!신발땜에 넘 고생했당!! 발가락들은 괜찮은지 몰겠군!! 우리 담에는 단디 준비하고 가자~히~~~
첫날밤 신부의 옷을 벗기는 신랑이라... 그거 경험 안해본 사람은 절대 모르지.. 소현씨는 육해공을 다 하는군요. 패러, 다이빙, 산악.. 이빨도 아프고 몸이 최악일 때 갔군요. 왜 그리 기운이 없나 했더니.. 박영석씨는 어케 만났지요.. 내 얘기 했으면 또한번 다시 봤을텐데.
며칠 잊고살았었는데...다시 떠올리게 되는군요... 내가 또 갈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산.... 참 좋지요........ 특히...설악이요...^^...빨랑 사진 욜려주세요....보고파요...
수고많았어!!..고생한만큼 느낌도 클거야..앞으로도 좋은 기회에 같이 산행할수 있음 좋겠군..ㅎㅎ..몸조리는 잘하였는지..몰겠네!!
소현아 고생 많이했당....최악의 상태일때 그렇게 힘든 산행을 했다니 나같으면 아마 가기전에 포기했을텐데..... 너의 대단한 정신력에 박수를 보낸다.....^^~~~````` 멋진사진 기대할께.......ㅎㅎ
소현씨는 작지만 큰 사람이었네요. 멋 모르고 한 천화대지만 천화대가 꿈인 사람들도 아주 많으니 자부심을 가지세요. ^^ / 인간 승리의 산행 후기, 잘 읽었습니다.
운동화 잘 전해 받았는데~~~이상한 병까지...잘 먹을께요^^..첫날밤의 신부라~~~멋진 산행후기 좋습니다...홧팅!!!!
너무 늦게 전달해드려서 죄송해요 ^^ 이상한 병은 빵과 잘 어울릴꺼에요 ^^* 그런데 시집도 안간 처녀가 이런 글을 써도 되나 몰라요. 헤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