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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달산 정상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서북쪽 산기슭으로 내려간다.
산 중턱에 하얀 아파트가 닭이 알을 품듯 앉아 있다.
고개를 뒤로 꺾이도록 젖히고 올려봐야 할 높은 아파트가 아니라서 마음과 시선이 편안하다.
오랜 세월이 녹아든 모습은 아니지만 그 자태가 화폭에 그려진 한폭 수채화 그림 같기도 하고.
30년 이상 살았던 저 곳이 벌써 희미하다.
오래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봄마다 감탄했던 압구정동을 떠나 숲 속 이 곳 흑석동에 정착하기까지 망설임은 짧았다.
숲속에는 생긴 대로 자라는 나무와 풀이 있고,
창문을 열면 새 소리가 들리고 아파트 머리 위에 햇빛이 가득하다.
바람은 그리운 사람들 숨결이라고 했던가?
산기슭을 헤치고 운율 섞인 바람이 층계를 타고 골짜기로 내려온다.
그 숨결이 다다른 이곳에 나즉한 평온이 찾아들었다.
이곳에서 그들을 만났다.
얼핏보면 나타났다 가뭇없이 사라져 버린다.
아파트 조감도에 1구역에서 11구역으로 가는 길이 춤추는 여인의 옷자락이다.
몇 년 전 한 놈 두 놈 만날 때,
처음엔 설레이는 마음이었지.
이젠 스무마리 가까워졌다.
아파트 길 따라 숲 따라 잠시 만난 것이 어느덧 하루의 일과가 되어 삶의 한 순간 무대가 되었다.
1구역에서 11구역까지 저녁나절 돌고 나면 어둠이 깔리고 가로등 켜지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구역은 밥그릇 놓는 자리를 뜻한다)
저녁 해질 무렵,
'순둥이'가 5동 현관 앞 마당이 제 안방 인냥 털퍼덕 누워있다.
구석진 아파트 벽이 1구역이다.
어둠이 오기 전 '순둥이'는 둘러싼 동네 아이들에게 몸을 이리저리 홀라당 뒤집는 묘기를 부려 자신이 인기 있음을 과시한다.
제 종족인 다른 고양이에게는 공격적인 이놈의 이중성.
'순둥이 오늘도 잘 지냈나'
누워있는 고양이에게 낮은 톤으로 말을 건다.
어김없이 제 시간에 오는 노란 자전거를 환대한다.
벌써부터 기다렸던 '순둥이'는 화색이 돌며 자기 몸을 자전거에 슬쩍 비벼댄다.
어찌 이런 환대를 사람에게 받아보랴!
무슨 사연이 있는지 결코 5동 아파트 현관 주위를 안 떠나려하는 덩치 큰 놈이 무척이나 살갑다.
목소리는 성대를 다쳤는지 마치 연인에게 속삭이듯 입만 벙긋 벌린다.
아파트 벽에 기대놓은 까만 집 1번 하우스 지붕에 하얀 문패가 보인다.
'1호 순둥이집'
1구역을 돌아 산기슭을 어깨에 두고 돌아가면,
2, 3, 4 구역 언저리에 서너 마리가 귀를 열고 노란자전거의 페달 밟는 소리를 기다린다.
돌담 아래 2, 3, 4 구역 임자들.
네마리가 조금씩 떨어져 제 밥그릇을 차고 있다.
같은 형제가 아니면 보통 같은 그릇에서 먹지 않는다.
집에도 2, 3번 번호가 매겨졌다
나그네 같은 그들 처지에 무슨 집 주인이 있을까마는 어느날 빈 집에 들어가면 그 날은 그 집 주인이 되겠지.
3 년 전 이곳에서 처음 만난 길고양이 '삼색이'.
한 발치씩 떨어져 있는 밥 그릇 2, 3, 4 구역을 왔다갔다 한다.
3년 동안 먹이를 주어도 곁을 주지 않는, 지독히 냉정한 놈이다.
몸 짓도 눈 빛도...
친구 없이 외길 돌아 다니길 몇 년이었던가?
그나마 이제 이곳 층계 주변에서 다른 세 마리와 어울리니 외톨이는 면한 셈.
행색이 초라한 노숙이(초라한 노숙자 모습이라서)가 3구역에서 밥을 먹으며 구내염을 심하게 앓고 있다.
저녁 때만 되면 이곳에 꼬박 찾아왔다.
특별한 처방이 없다고 하지만 계속 약과 먹이를 가지고 내심 기대하고 돌봐주길 6개월.
모진 생명은 얼마나 질긴지 그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다 견디고 지났다.
따뜻한 봄부터 아무리 목을 이리저리 삐뚤어질 때까지 둘러봐도 나타나지 않았다.
저 달 속에서 아픔 떠난 평안이 있기를...
길고양이에겐 꽃이 피는 4월은 봄으로 그치지 않고 천국이다.
낭만이나 감성 같은 것은 가차없는 그들의 삶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
온기가 그리울 뿐.
꽃은 온기의 파수꾼, 그래서 꽃이 반갑다.
아직 쌀쌀한데 왠지 밤새 수풀 더미에서 웅크리고 자는 모습에 콧등이 시다.
인간이 만들어준 거처가 이들을 편치 않게 하는 걸까?
인간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 이들의 마음을 이리 젖게 했는지...
'블랙'이 한 손을 '깜코'의 등에 살짝 대고 자는 모습이 엄마 놓칠까봐 치마꼬리 꼭 잡고 자는 아이같다.
제일 온순한 '깜코'
콧등이 까매서 '깜코'가 되었다.
2구역에서 식사 중이다.
5동 아파트 벽 1구역에 사는 '순둥이'가
2구역 고양이 '깜코'를 보기만 하면 공격해 괴롭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고양이에게도 묘격이 있다. '순둥이'가 고양이 사회에서 늘 공격적이면 이 '깜코'는 점잖고 성품이 온순하다.
떠돌아 다니던 '블랙'이 깜코를 만나고부터 큰 언니 같이 죽자고 따라 다녀 꼬리에 달고 다닌다.
'블랙' 3구역
온 몸이 새카매서 '블랙'이 되었다.
몸집은 제일 적지만 날렵하고 사납다. 언니같은 '깜코'에게는 한없이 어리광부리는 막내 동생.
몸집이 두 배 만한, 형님같은 '뚱보'가 식사 중에 옆에서 넘실거리면 가차없이 손이 올라간다.
어린 놈이 가엽게도 요즘 구내염이 걸려 입에 침을 줄줄 달고 다닌다.
구내염은 입안에 온통 염증이 생기는 병.
통증이 얼마나 심한지 한 입 겨우 먹는 순간에도 머리를 좌우로 돌려가며 흔들기를 수십번.
길고양이 약 먹이기는 은근과 끈기와 갖은 묘책을 동원 진땀을 흘려야 반 성공.
다른 놈에게 혹시 전염 될까 먹고 난 뒤처리까지 하고 나면 등이 젖는다.
절대로 사람이 자기를 만지도록 허용하지 않는 의심 많은 ㄸ놈.
경계 경보 수위가 높은 놈.
4구역의 파숫꾼 '뚱보'
이 놈도 새카맣지만 '블랙'이 있으니 구별하려고 찾다보니 '뚱보'가 됨
한 동안 꼬리에 피를 철철 흘리고 다녀 동물병원에가서 꼬리를 절단했다.
짧은 꼬리 '뚱보'로 변신.
어쩌다 서로 만나게 된 '깜코'와 '블랙'과 더불어 삼형제 같이 지낸다.
1구역 '순둥이'가 2구역에 와서 친구 '깜코'를 공격하면,
동지애를 발휘하여 쏜살같이 쫓아가 혼쭐내준다.
그들의 고달픈 생애를 이겨내는 힘이 어쩌면 이런 서로 간의 우정에서 얻을 수 있지는 않을까?
'뚱보'의 눈에 계속 고름이 흐른 상태로 다니길 두어 달.
잠자리 채로 겨우 잡아서 동물 병원에 일주일 입원시켜 치료 후 다시 놓아 주었다. 완치됨. 실명할 뻔 하였다고.
before ----> after 사진
퇴원 후 삼사 개월은 사람만 보면 피하고 곁을 안 주더니,
이젠 먹이 담은 자전거 페달 소리만 들리면 어디선가 나타나 껌딱지 같이 달라 붙어 폭풍 애교를 피운다.
모든 길고양이를 만질 수 있는 건 아니다.
때로 유순한 길고양이를 만질 수 있는 행운이 오기도 한다.
'백척간두 진일보' 라 했던가
처음에는 가까이 가면 할퀴고 물고 헉 하고 경계하던 관계가 차차 발전하여
자기 몸을 쓱 사람에게 비빈다
'만져도 돼요' 말한다.
이 두 놈 (깜코와 뚱보)은 오직 식사시간에만 만지도록 허용한다.
것두 극히 제한된 사람만~
식사 끝나면 허락하지 않는다.
구석진 4구역(오른쪽 아래 사진)에서 연 주황 물결 무늬 산비둘기가 제 밥상 인양 의젓하게 식사한다.
비둘기 천적인 고양이도 이곳에서는 손님을 쫓지 않는다.
먹이가 넉넉하니 너도 먹고 나도 먹고~
더불어 먹는 이 세상이 여유롭다.
5구역으로 떠난다.
소나무 향기 진동하는 솔향기 길 쪽으로 내려간다.
청 단풍과 조형 벽천이 있는 등나무 썬쎗 테라스를 지나,
8동 뒤쪽 자전거 거치대 밑이 세마리 삼총사가 오는 단골 자리.
바닥과 사료 그릇 둘레를 하얀 백묵으로 그어주면 개미가 들러붙는 것을 예방 할 수 있다. (아래 오른쪽 사진)
여름은 모기, 개미, 굼벵이와 전쟁의 계절.
처절할 만큼 죽자고 덤비는 개미 떼들.
너희들도 살아야겠지.
'삼총사'
이 세마리가 8동 뒤 자전거 거치대 부근
5구역 손님이다.
한 밥그릇에서 같이 먹는다.
언제부터인가 위 오른쪽 사진, 미간이 까만 놈이 구내염 발병
'아픈놈'이 나오자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노랑이'와 '얍삭이'만 몰려 다니고 '아픈놈'은 멀찍이 떨어져서 기다리다 슬쩍 사라지기도 한다.
성품은 세 놈 다 겁 많고 순한 편이어서,
이 동네 무법자 '왕방울'에게 쫓겨 자주 밥상자리가 바뀐다.
다시 '솔향기 길' 지나 라일락 우거진 길로 내려간다.
바닥에 맨홀 뚜껑이 있는 근처에서 왼쪽 숲을 헤치니 라일락 잎새 사이에 '짧은 꼬리' 가 쭈그리고 있다.
여기 6구역은 무법자 '왕방울'이 여기저기 다니며 공격을 해서,
'삼총사'가 8동 자전거 거치대 부근에서 가끔 피신하여 온 요새.
오며 가는 놈 중 배고픈 자는 들려서 먹는 구원의 집.
일명 피난처 구역
'라일락 길'을 더 내려가면 노란 모래함이 보인다.
모래함 왼쪽 숲 길로 들어가면 7, 8. 9 구역이 나온다.
중앙대학교 담 밑을 넘나들며 영죽무대와 생태공원이 이들의 터전이자 정원이다.
7구역에서 보안관이자 무법자인 왕방울이 식사 중이다.
비가 내린다. 나뭇잎, 물통, 사료통 위까지 비스듬이 빗금을 그으며 땅을 적신다.
비 설거지를 해주려고 노상 일기예보를 뒤진다.
비에 퉁퉁 불어버릴 사료 생각에 오늘 식사 준비하는 그의 마음 속까지 뿌옇게 물기가 서린다.
'왕방울' (윗사진)
이 동네 총 보안관, 무법자, 공격자, 동네 반장, 훼방꾼.
다른 동네의 고양이는 '왕방울'이 무서워 이 동네에 얼씬도 못한다.
자기를 따르는 암컷 외에는 가차없이 공격하는 폭군이다.
꽁무니에 달린 두 방울이 커서 붙여준 이름이다.
여기 저기 다니며 다른 고양이를 물고 덤비고 쫓는 게 취미인 놈.
아래의 진한 노란 무늬 고양이는 동네 복덕방 할아버지.
이 부근의 7, 8, 9 구역에서 누구하고나 잘 어울리는 마음 좋은 '애동이' 할배.
그 무법자 '왕방울'이 사람만 보면 바닥에 발라당 누워 저렇게 진한 애교를 피운다.
사람을 좋아하고 잘 따라서 지나가는 사람이 물어본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인가요?
이놈이 폭군이라고 누가 상상하겠는가? 이중묘격자 !! 왕방울 이놈!!
온 몸의 힘을 쭈욱 빼고 배를 무방비로 내놓고 유유히 앞발에 침 묻혀 세수를 하는 건 이 세상이 내 세상이라는 뜻.
이런 놈이 삼총사도 괴롭히고 고순이네 식구들도 죽자고 공격하니 참.
애물단지 '왕방울'
8, 9구역에 사는 세 모녀
서달산의 대비마마 '칵순이' 가족
우리가 이곳에 이사 오기 전에도 이 동네 살았고,
중앙대학교 구 식당 건물 부근에서 살고 있었든 전설의 주인공.
영리하면서도 까탈스럽고 새끼에게도 냉정하다. 중성화수술 포획틀에 절대 안 잡힌다
사람만 가까이 가면 칵칵거려 '칵순이'라 부르기로 결정.
먹이를 숟가락에 떠서 가까이 갖다대면
카악! 하며 앞 발로 냅다 후려친다.
'얻다대고 친한 척 해!!!'
거기다 놓고 꺼져 ! 이 식이다.
아래 왼쪽 하얀 고양이는 먼저 배에 낳은 새끼 '언니'라 부르고, 그 옆은 두번째 배에 낳은 새끼다. '새칵'(새끼 칵순이)
8, 9구역 길고양이 두 가족 7마리가
('칵순이' 모녀 3마리, '고순이'새끼 4마리)
비 오거나 겨울에 지내는 집.
학교 쪽 담에 기대어 너댓 채를 세워 놓았다.
적당한 크기의 스티로폼을 구입하고 청계천에 가서 까만 특수 골판지를 재단하여 잘라왔다. (외부를 까만 색으로 가려야 동네 사람 눈에 띠지 않으므로)
줄 자로 정확히 재고, 통 입구에 구멍 뚫고, 골판지를 자르고 붙이기를 몇 날 몇 일을 걸려 십여 채 만들었다.
거실 바닥이며 소파가 하얀 스티로폼 조각으로 수 놓은 흰 점박이 집이 됐다.
마지막에 바람막이 커튼을 잘라 입구에 붙이고 하얀 문패를 지붕에 만들어 붙이면 작업 끝.
8번 칵순이집 탄생
비 올 것을 대비해서 우산으로 입구를 가려주면 더 없이 아늑한 펜션.
'칵순이' 세 모녀가 모처럼 사이좋게 식사한다.
작년에는 어미인 '칵순이'가 식사할 때 새끼들이 옆에 오면 칵 !! 하고 호통을 쳐 새끼들이 벌벌 떨었다.
사나운 어미를 겨우 잠자리 채로 잡아서 중성화수술을 시키고 데려왔더니, 성격이 확 달라졌다. 홀몬 탓인가.
'고순이' 와 새끼들
새끼들만 8, 9구역에 산다.
고등어 무늬 뜻의 '고순이'는 파란 만장한 삶을 사는 고양이다.
지금은 없어진 대학교 구 식당 건물에서 한 겨울에 새끼 다섯마리를 낳아 길렀다.
봄이 되자 건물 지붕 서까래 틈으로 새끼를 한 마리씩 물고 나와,
공중전화 밑 가파른 언덕 아래 안전한 풀 숲에 숨겨 놓고 계속 키웠다.
새끼들이 자라 먹이가 많이 필요한지 어미가 입에 통조림을 물고 언덕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언덕의 경사가 심해서 어린 새끼가 올라오기 어려운 상황.
우리 부부는 긴 밧줄을 만들어 타고 내려가 사료와 물을 갖다 주는 극성을 부렸다.
남편은 언덕이 가파라서 위험하다며 나를 못가게 말렸지만 이런 스릴을 놓칠 나 더냐?
서툰 솜씨로 한 손엔 밧줄, 한 손엔 사료통 들고 내려가다가 사료를 엎어버리길 몇 번이던가.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자 어미 '고순이'가 갑자기 바람이 나기 시작했으니.
그 때 황당함이란.
그 다섯마리 새끼들은 한점이, 두점이, 깜돌이, 못난이, 페인트로 이름 짓고.
울며 찾아 헤매는 새끼를 두고 바람나서 야반 도주 해버린 '고순이'.
'가면서 뒤는 왜 돌아 보냐
이 나쁜 에미년아!'
이그 고연 것!!!'
사실 '고순이'가 결코 나쁜 어미는 아니었다.
아니 모성애가 지극한 어미였다.
'칵순이'가 식사시간에 새끼보다 제가 제일 먼저 맛있는걸 먹어치운 반면,
'고순이'는 새끼들이 밥을 먹는 동안에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뒤에서 보초를 섰다.
새끼들이 다 먹고 물러서면 남은 밥을 천천히 먹는 감동적인 어미였는데,
사랑 앞에 그렇게 무너지다니~
그 새끼 중 페인트가 등에 묻었다고 '페인트'라 불린 저 예쁜 고양이
아파트 신축공사장에 들어가서 놀다가 갇혀, 나오지 못하고 멀리서 울음소리만 애타게 들렸다.
이때 '칵순이' 새끼 두 마리, '고순이' 새끼 네 마리 총 여섯 마리가
줄래줄래 한 줄로 죽 서서 피난 대열같이 우는 소리 들리는 부근으로 매일 찾아 나서는 모습이라니. 의리의 길고양이들.
그러나 사람이 다가가면 울음소리가 뚝 끊기니 어찌 도와줄 수 있으랴.
게다가 신축 아파트건물 공사 중이라 출입 금지라서 몰래 몇번 들어가 찾아 보다가,
포기해 버린 그 일이 내내 우리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어미 잃은 새끼들 불쌍해서 저녁마다
놀아주고 보살폈다.
결국에 한 마리 잃고 네 마리는 무사히 성장했으니
'칵순이' 큰 딸 '언니'와
꾸준히 밥을 갖다 준 남편이 키운 셈.
제일 사랑 많이 받은 아기 '깜돌이'
지금은 의젓한 청년 고양이.
'칵순이'가 '고순이' 새끼를 입양해서 이만큼 자란 모습 (8, 9구역 식구들)
까탈쟁이 '칵순이' 와 '고순이'는 새끼를
비슷한 시기에 낳아 같은 구역에 살았다.
그 '고순이'가 두어달 후 바람나서 새끼를 버리고 야반도주 했다.
자기 새끼를 한마리 키우고 있던 까탈스런 '칵순이'가
도망간 '고순이' 새끼들이 줄래줄래 젖 동냥하러 온 것을 거부 안하고 가슴을 내어준 건 정말 의외였다.
그러나
'칵순이'는 젖을 조금 먹이고 발딱 일어나 늘 어디로 줄행랑 치고,
'칵순이' 새끼인 '언니'가
날마다 자기 동생과 옆집 새끼 네 마리를 품어주고 안아주고 '내새끼 내새끼' 하며 보모같이 극진히 보살펴 준 일등 공신이다.
감동해서 '언니' 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대 가족 구성은 '칵순이' 세 모녀,
'고순이' 새끼 네 마리, 총 7마리.
'칵순이'의 팔자도 기구한 편,
저 푸른 바다로 휴가라도 보내 위로를 해 주고 싶은 심정.
두 번째 출산 때 새끼를 세 마리 낳았는데 한 마리는 낳자마자 곧 죽고,
다른 새끼인 '노랑이' 가 두 달 쯤 됐을 때 눈병이 나서 앞이 안 보이게 되어 아픈 새끼가 날마다 얼마나 울어대는지.
남편이 발버둥치며 앙탈부리는 새끼 '노랑이'를 억지로 잡아 수의사에게 데려가니 포기하라는 조언 뿐.
며칠 후 어미 '칵순이'는 새끼가 회생 가망이 없음을 눈치채고,
울며 보채는 새끼를 물어서 멀리 갖다 버렸으니 그 속 마음이 오죽했을까.
희미한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리듯 말듯 며칠동안 울렸다.
엄 마~~
죽어가는 새끼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 어미는 침통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
칵순이가 한참 안 보이더니 일주일 쯤 후 수척해진 몸으로 나타났다.
중성화 수술을 받은 칵순이는 다시는 새끼를 낳지 못했다.
그 날은 영하 15도
살을 에이는 추운 겨울 날 아침
바람막이 커튼이 다 떨어져 나간 스티로폼 집 둥근 입구에 눈에 익은 하얀 털이 보였다.
사람 인기척에 놀란 '칵순이' 딸 '언니'가 작은 그 통에서 나왔다.
잠시 후 새까만 털의 '깜돌이'와 '새칵이'가 차례로 같은 통에서 나왔다.
동생들을 안 쪽으로 몰아 넣고,
'언니'는 바깥 구멍을 자기 몸으로 막아 칼 바람을 막고 밤을 지낸 것.
언제나 동생들을 지성으로 돌봐주는 착한 '언니'가 추위까지 막아주는 순애보 정신.
어미인 '칵순이'는 절대 하지 않는 희생 정신을 '언니'는 어디서 배웠을까?
길냥이의 건강과 생산 조절을 위해 중성화 수술 시도.
하루 굶기고 밤새 포획틀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작전, 007 작전 방불.
순진한 '깜돌이'는 배고픔을 못 이기고 포획틀에 세 번이나 들어가는 웃지 못할 상황도 발생.
이 동네 고양이는 그 덕에 전부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길고양이 숫자가 무작정 늘어나는 건 모두에게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추운날 밤새 기다리고 확인하고, 날 밤 새며 잡힌 놈 자동차에 실어 동물병원에 데려다 주기를 수도 없이 ...
이미 수술 받은 놈이 다시 잡히면 가서 풀어 주고 다시 잠복.
수술 끝난 놈은 한쪽 귀 끝을 1센티 쯤 잘라서 내 보내므로 전에 수술한 놈은 구별된다.
남편의 끈기와 정열은 표창장 받을 수준.
이제 마지막 코스 10, 11구역
중앙대학교 주차장으로 간다.
아파트 쪽문을 지나 학교로 들어가 생태 공원을 지나면 연못과 정자가 보인다.
중앙대학교에는 동물을 사랑하는 동호회 '냥친반'이 있다.
조를 짜서 길고양이에게 사료와 물을 공급하고, 겨울 집을 관리하는 아름다운 학생들이 있어,
중앙대학교 교정에 사는 길고양이들은 외롭지 않다.
학창시절부터 생명의 존엄성을 배우며 인성을 기르는 그들은 참으로 훌륭하다.
생태공원 속에서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거기에 숲이 있고 꽃이 피고 새가 날고 풀 벌레 소리가 들린다.
자연에 묻혀있는 고양이, 개, 또한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철쭉꽃 만발한 생태공원 사잇길을 지나 형태만 있는 마른 연못이 보인다.
그 바닥에 몇 포기 이름 모를 억센 풀이 듬성듬성 꿋꿋하게 살아있다.
연못 옆에 있는 정자에 잠시 앉아 쉬어간다. 하루 일과에 지친 학생들도 오며 가며 쉬어간다.
그 앞 쪽에 벤치가 있는 아담한 주차장이 있다.
거기 자동차 밑으로 세 마리 길고양이가 숨기도 하고 비를 피하기도 한다.
10, 11구역
중앙대학교 주차장을 지키는 세 마리.
이전에는 아파트와 대학 경계에 살던 놈들이다.
털색이 얼룩덜룩하다고 이름붙인 '얼룩이',
아래 등이 하얀 놈은 그 '얼룩이'의 친구라서 '얼친이'라 이름 부른다.
줄무늬 놈은 눈에 익숙한 모습,
6개월 전 제 새끼 버리고 바람 나서 사랑 찾아 달아났던 '고순이'가 돌아왔다.
'도망갔던 '깜돌이' 에미 고순이가 돌아왔어요!!!!'
소리쳤으나
'고순이'의 새끼들은 그 어미를 다시 받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어미보다 더 커진 새끼인 '한점이'는 어미를 보자 공격까지 했다.
도망간 어미를 응징하려는 것일까?
제 어미를 몰라봤을까?
그러나 고순이 새끼를 매일 돌보던 우리는 도망갔던 '고순이'를 말없이 반겨주었다.
고양이를 돌보다 보니 식탐하는 뚱보도 예쁘고, 무법자 왕방울도 예쁘고, 칵칵대는 칵순이도 예쁘고, 바람 난 고순이도 예쁘다.
이놈 저놈 다 안쓰럽고 예쁘다.
하나님이 인간을 보시는 마음이 이럴까.
10 구역에서 지내는 얼룩이를
J 선생이 끔찍이 아껴 매일 아침 저녁 돌봐주었다.
그런 '얼룩이'가 한달 전 주차장 앞길에서 교통 사고를 당했다.
J 선생이 입으로 작은 소리만 내면 안 보이다가도 바람같이 나타났던 조용하고 순한 '얼룩이'.
코밑에 까만 수염처럼 보인 털이 꼭 코메디안 챨리 채플린을 닮았다고 웃었는데.
'얼룩이'의 수명이 그 뿐이었나보다.
춥지 않고 배고프지 않은 더 좋은 세상으로 갔기를 바란다.
'얼룩이' 의 교통 사고를 목격한 '고순이'가 그날부터 2주일 동안 통 안 보이더니 돌아왔다.
다정했던 세 마리가 이젠 두 마리가 되어 서로를 위로한다.
길냥이들이 침묵으로 서로의 슬픔과 아픔을 삭이는 듯하다.
길냥이들의 우정과 아픔을 우리가 어찌 짐작하랴.
'얼룩이'가 겨우 내내 들어 갔던 12호 하우스가 덩그라니 남아있다.
친구 잃은 상처를 위로해 주고 묵묵히 먹이를 챙겨준다.
상처도 세월이 가면 아물 것이고,
생존의 역사는 계속될 것을 우리 모두 안다.
허리를 펴고 주차장 능선을 넘어 비둘기들이 모여 있는 의과대학 쪽으로 잠시 걸음을 옮긴다.
약간 서툰 그의 휘파람 소리에 모두 신나게 날개를 퍼덕이며 환영한다.
한바퀴 돌았다. 오늘 일정 끝.
그러나 다시,
노란 자전거 앞에 달린 바구니 속에 별 모양의 고소한 사료와 물을 담고,
오늘 구내염 약 먹이지 못한, 빠진 놈을 찾아 석양이 물든 숲속으로 돌아선다.
까만 '뚱보'는 자기가 마치 심복인양 졸졸 발걸음을 맞추고.
서달산 산 기슭에 노란 풀꽃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봄날이 저물어 간다.
모기가 붕붕 대고 개미가 길냥이들 밥 그릇에 까맣게 달려드는 뙤악볕 한 여름.
숲속 나무 사이로 화살같이 쏴대는 햇살 피해 긴 그림자 찾으며 늘어진다.
가을에 산기슭 나무들이 색색이 물든 마른 잎을 만들기 시작하면,
숨막힐 듯 더웠던 여름을 샌드 드로잉 처럼 모았다 흩어지는 기억으로 지워버리고 다시 오늘을 살아간다.
길고양이는 불쌍하지 않다.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혹독한 서달산 자락의 겨울 바람은 매섭다.
비나 눈이 오면 무조건 반갑던 일은 옛 일이 되고 말았다.
바람이 불어도 눈, 비가 와도 마음이 쓰인다.
천지가 꽁꽁 얼어붙는 날이면,
그는 아침부터 여전히 얼어버린 물 그릇을 갈아주기 위해 이리저리 바쁘겠지.
추위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길냥이들은
훌쩍 어딘가 떠나고 싶지는 않을까?
새 봄이 오기까지.
그는 서달산 길고양이들이 받은 최고의 선물이다.
길고양이도 하나님이 주신 그가 받은 사랑의 선물이다.
아내의 마음보다 길고양이의 마음을 더 잘 읽어 내는 그는,
강물 속에 엎드려 있는 징검다리.
길고양이가 건너가도록 등을 내어 준 그의 등이 따스하다.
그의 동물에 대한 사랑과 수고와 열정에 아내인 나는 박수를 보낸다.
2019, 7, 4 .......산새소리 들리는 아침
당신은 고양이를 아십니까?
'말을 탄 임제의 일화'에서 보듯이 보는 방향이 다르면 전체를 모를 수 있지요.
잘 관찰해보면 고양이는 정말 귀여운 동물입니다.
그동안 길고양이를 돌보면서 일어난 사건은 수도 없이 많았답니다.
고양이 집을 양해도 없이 발로 뭉개며 부숴버리는 사람,
왜 고양이 밥을 주느냐고 삿대질 하는 사람,
당신이 데려다 기르라고 시비거는 사람,
고양이에게 돌을 던지거나 소리 지르는 사람,
우리가 고양이들을 보고 있듯이 고양이들도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호주의 태즈메이니아 섬 동물원 입구에는,
'누가 누구를 보고 있을까?' 라고 적힌
큼지막한 문구가 있답니다.
고양이는 남을 해치지 않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간절히 바라고
저 벚나무에 기대듯 당신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귀여운 동물입니다.
.
그냥 살기 위해 먹이를 간절히 바라는 저 눈빛을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당신의 행복한 마음 한 조각만 떼어 사랑의 눈길로 봐주기를 바랍니다.
....... ..........金 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