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사례1=2004년 경기도 수원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33세, 임신 26주째 임신부가 출혈로 산부인과를 찾았다. ‘저위태반’과 ‘태반조기박리’. 태반이 자궁 아래로 내려가고 출산도 아닌데 자궁에서 태반이 떨어지고 있었다. 바로 제왕절개 수술에 들어갔다. 아이는 별 탈 없이 나왔지만, 산부의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끔찍했다.
시간이 가도 피는 계속 흘렀다. 의사들은 수술에 집중했다.
▶수술 1시간25분=과다 출혈로 혈압이 측정되지 않았다.
▶1시간40분=맥박이 거의 정지 상태가 됐다. 의학적으로 가사 상태였다. 수술팀은 심폐소생술을 결정했다.
▶1시간55분=15분간의 전기충격 심폐소생술로 맥박은 돌아왔다. 혈압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
▶2시간35분=소생술 55분 뒤. 산부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혈압 95~115, 맥박 100~110회. 자궁 적출 등 남은 수술이 마무리됐다.
▶수술 7일 뒤=환자는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수술 시간 동안 겪었던 일을 주치의에게 말했다.
“차를 타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고 있었어요. 멀리서 불빛 같은 것을 봤어요. 터널을 지나니 파란 하늘이 밝게 보였어요. 갑자기 아주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고, 뭔가를 가슴에 대는 걸 느꼈어요.”『최신의학』2008년 5ㆍ6월 호에 실린 ‘전신마취하 수술 중 심폐소생술 생존자가 경험한 임상체험 1례’에 나온 내용이다. 전연수 가톨릭의대 교수는 논문에서 “의료진은 환자의 임사체험을 파악하거나, 환자의 경험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반응 때문에 정신적 외상을 받지 않게 임사체험의 발생 가능성과 내용을 알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해 논문을 썼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의사가 ‘임사체험’으로 정의하고 공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임사체험은 두뇌ㆍ심장 활동이 멎어 의학적으론 사망했으나 실제론 ‘뭔가를’ 겪은 뒤 소생하는 경우를 말한다. 영어로 NDE(Near Death Experience)이며 근사(近死)체험이라고도 한다. 심장이 정지해 뇌에 피가 안 돌면 10~20초 뒤 뇌파가 기록되지 않는다. 죽은 것이다. 급성 심장마비, 외상에 의한 뇌손상, 갑작스러운 과다출혈, 질식으로 인한 의식 소실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겪는 체험이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어떻게 봐야 할까.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사례2=1984년 서울 불광동. 전직 간호사로 결혼 3년차 주부였던 A씨는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자주 막혀 동네의원을 찾았다. 의사는 천식으로 보고 항생제 카나마이신을 주사했다. 순간 주부의 눈이 빨개지며 쓰러졌다. 주사 쇼크였다. 혈압이 40~20으로 떨어졌다. 바로 옆 청구성심병원으로 옮겼지만 깨어나지 않았다. 당시 서소문에 있던 한일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심폐소생술도 소용없었다. 호흡ㆍ맥박이 없었다. 쇼크 이후 19시간,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A씨는 영안실로 옮겨졌다. 그런데 “후유…” 긴 숨과 함께 살아났다. A씨가 당시 치료 의사로 알려준 한일병원의 의사는 “수많은 환자가 있어 따로 기억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그 19시간 동안 A씨는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경험을 했다. 다급한 의사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A씨는 좁고 어두운 터널을 바람처럼 빠져나갔다. 밖은 넓었다. 공기는 너무 깨끗했다. 나무와 풀은 황금색이었다. 인적 없는 들판을 계속 날았다. 한옥이 보여 들어가려는데 수문장 두 명이 막았다. “문 안은 무섭다. 들어오지 마라.” 그는 빙 둘러 색동 비단이 깔린 긴 계단을 올라갔다. 삼존불이 나타났다. 가운데 부처가 붉은 팔을 던지며 고함을 쳤다. “나가라. 네가 올 데가 아니다.” 이번엔 돌아가신 외조부모가 나타나 거울을 보여줬다. 거기엔 삭발 스님의 모습을 한 자신이 보였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빙의』의 저자, 묘심화(妙心華) 스님이 23일 기자와 인터뷰에서 처음 말한 자신의 임사체험이다. 간호전문대를 졸업하고 간호교사까지 지냈던 그는 이 ‘믿기 어려운’ 체험 뒤 불가에 입문했다.보통 사람으로선 믿을 수 없는 이런 사례는 전형적인 임사체험이다. 임사체험은 죽음만큼 꺼림칙하면서도 꾸준한 관심의 대상이 돼 왔다. 한국에선 ‘미신’이나 여름철 납량특집처럼 취급되지만 주로 서구권에서는 정식 학문 연구의 대상이 돼 왔다.
최고의 국제적 임사체험 연구자인 미국의 제프리 롱 박사는 “첫 기록은 2000년도 더된 플라톤 시대에 나온다. 에르라는 이름의 병사가 겪은 경험이다. 중세시대에도 나온다”고 했다. 의학으로 들어온 것은 미국의 레이먼드 무디 박사가 60건이 넘는 사례를 연구, 1975년 『임사체험』이란 책을 낸 시기였다.
1926년엔 물리학자 윌리엄 바렛이 산부인과 의사인 부인의 환자가 말한 임사체험을 묶어 『죽음의 자리에 나타나는 환영들』이란 책을 출간했다. 그러다 철학 박사인 레이먼드 무디 주니어가 1975년 『삶 이후의 삶』이란 책을 발간, 1300부가 팔리면서 임사체험이란 용어가 일반화 됐다. 81년엔 임사체험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연구회가 미국에서 조직됐고 88년엔 ‘국제 임사체험 연구회’로 발전했다. 연구회는 유일한 임사체험 전문학술지를 발간한다. 이후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20세기 10대 사상가 중 한 명인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가 임사체험이 ‘인종, 연령, 성별, 종교의 유무, 종교’와 무관하게 동일하게 관찰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의 저서 『죽음과 죽어감』은 베스트셀러였다.
서울대 의대 내과 정현채 교수는 “98년엔 일본 교린 의과대학 노인병과가 질환으로 깊은 혼수에 빠진 48명의 노인을 연구, 14명(37%)이 임사체험을 했음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성별ㆍ나이ㆍ기저질환ㆍ직업ㆍ종교ㆍ교육 정도ㆍ사고장소·혼수기간 등의 차이를 연구했지만 차이가 없었다. 연구에 따르면 50%는 ‘의학적 사망 상태’에서도 ‘내가 죽었다’는 인식을 했고,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56%), 체외이탈을 하고(24%), 터널을 통과하고(31%), 빛과 교신하며(23%),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13%) 경험을 했다.
2007년 대만에선 임사체험 연구센터가 타이베이 7개 병원 710명의 혈액투석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가 ‘미국 신장병학회지’에 실렸다. 51명이 임사체험을 했으며 긍정적 감정(74.5%), 체외이탈(51%) 등을 경험한다. 네덜란드와 대만 모두 임사체험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다른 사람과 더 공감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며, 사후생과 인생의 목적을 믿는 등 긍정적 현상을 보여준다. <표 참조>
아직은 ‘비주류’지만 국내 의료진 가운데도 임사체험을 받아들이거나 과학적으로 연구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길 병원의 이근(59) 부원장은 40대 후반 폐렴을 앓으면서 특이한 경험을 한다. 그는 “3~4일간 열이 42~43도까지 오르며 어떤 약도 듣지 않고 사실상 방치됐던 때였다. 갑자기 내가 바위가 널린 척박한 민둥산 위로 날아다녔다. 방금 심은 것 같은 소나무. 닿을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았다. 멀리 강이 보였다. 다음 날 병이 다 나았다”고 했다. 그는 “환각일 수 있지만 임사체험으로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의대 내과학교실 정현채 교수는 임사체험을 포함한 내용의 강의를 자주 다닌다. 그가 만든 자료 ‘의사로 갖추어야 할 죽음관’은 임사체험을 중요 주제로 다룬다. 정 교수는 “세상을 설명하는 데 물질적 연구만으로 충분하다는 ‘과학적 근본주의’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고 했다. 2005년엔 관련 현상을 연구하는 한국 죽음학회(회장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도 생겨 활동 중이다.
#사례1=2004년 경기도 수원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33세, 임신 26주째 임신부가 출혈로 산부인과를 찾았다. ‘저위태반’과 ‘태반조기박리’. 태반이 자궁 아래로 내려가고 출산도 아닌데 자궁에서 태반이 떨어지고 있었다. 바로 제왕절개 수술에 들어갔다. 아이는 별 탈 없이 나왔지만, 산부의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끔찍했다.
시간이 가도 피는 계속 흘렀다. 의사들은 수술에 집중했다.
▶수술 1시간25분=과다 출혈로 혈압이 측정되지 않았다.
▶1시간40분=맥박이 거의 정지 상태가 됐다. 의학적으로 가사 상태였다. 수술팀은 심폐소생술을 결정했다.
▶1시간55분=15분간의 전기충격 심폐소생술로 맥박은 돌아왔다. 혈압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
▶2시간35분=소생술 55분 뒤. 산부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혈압 95~115, 맥박 100~110회. 자궁 적출 등 남은 수술이 마무리됐다.
▶수술 7일 뒤=환자는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수술 시간 동안 겪었던 일을 주치의에게 말했다.
“차를 타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고 있었어요. 멀리서 불빛 같은 것을 봤어요. 터널을 지나니 파란 하늘이 밝게 보였어요. 갑자기 아주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고, 뭔가를 가슴에 대는 걸 느꼈어요.”『최신의학』2008년 5ㆍ6월 호에 실린 ‘전신마취하 수술 중 심폐소생술 생존자가 경험한 임상체험 1례’에 나온 내용이다. 전연수 가톨릭의대 교수는 논문에서 “의료진은 환자의 임사체험을 파악하거나, 환자의 경험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반응 때문에 정신적 외상을 받지 않게 임사체험의 발생 가능성과 내용을 알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해 논문을 썼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의사가 ‘임사체험’으로 정의하고 공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임사체험은 두뇌ㆍ심장 활동이 멎어 의학적으론 사망했으나 실제론 ‘뭔가를’ 겪은 뒤 소생하는 경우를 말한다. 영어로 NDE(Near Death Experience)이며 근사(近死)체험이라고도 한다. 심장이 정지해 뇌에 피가 안 돌면 10~20초 뒤 뇌파가 기록되지 않는다. 죽은 것이다. 급성 심장마비, 외상에 의한 뇌손상, 갑작스러운 과다출혈, 질식으로 인한 의식 소실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겪는 체험이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어떻게 봐야 할까.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사례2=1984년 서울 불광동. 전직 간호사로 결혼 3년차 주부였던 A씨는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자주 막혀 동네의원을 찾았다. 의사는 천식으로 보고 항생제 카나마이신을 주사했다. 순간 주부의 눈이 빨개지며 쓰러졌다. 주사 쇼크였다. 혈압이 40~20으로 떨어졌다. 바로 옆 청구성심병원으로 옮겼지만 깨어나지 않았다. 당시 서소문에 있던 한일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심폐소생술도 소용없었다. 호흡ㆍ맥박이 없었다. 쇼크 이후 19시간,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A씨는 영안실로 옮겨졌다. 그런데 “후유…” 긴 숨과 함께 살아났다. A씨가 당시 치료 의사로 알려준 한일병원의 의사는 “수많은 환자가 있어 따로 기억하기 어렵다”고 했다.
『빙의』의 저자, 묘심화(妙心華) 스님이 23일 기자와 인터뷰에서 처음 말한 자신의 임사체험이다. 간호전문대를 졸업하고 간호교사까지 지냈던 그는 이 ‘믿기 어려운’ 체험 뒤 불가에 입문했다.보통 사람으로선 믿을 수 없는 이런 사례는 전형적인 임사체험이다. 임사체험은 죽음만큼 꺼림칙하면서도 꾸준한 관심의 대상이 돼 왔다. 한국에선 ‘미신’이나 여름철 납량특집처럼 취급되지만 주로 서구권에서는 정식 학문 연구의 대상이 돼 왔다.
최고의 국제적 임사체험 연구자인 미국의 제프리 롱 박사는 “첫 기록은 2000년도 더된 플라톤 시대에 나온다. 에르라는 이름의 병사가 겪은 경험이다. 중세시대에도 나온다”고 했다. 의학으로 들어온 것은 미국의 레이먼드 무디 박사가 60건이 넘는 사례를 연구, 1975년 『임사체험』이란 책을 낸 시기였다.
1926년엔 물리학자 윌리엄 바렛이 산부인과 의사인 부인의 환자가 말한 임사체험을 묶어 『죽음의 자리에 나타나는 환영들』이란 책을 출간했다. 그러다 철학 박사인 레이먼드 무디 주니어가 1975년 『삶 이후의 삶』이란 책을 발간, 1300부가 팔리면서 임사체험이란 용어가 일반화 됐다. 81년엔 임사체험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연구회가 미국에서 조직됐고 88년엔 ‘국제 임사체험 연구회’로 발전했다. 연구회는 유일한 임사체험 전문학술지를 발간한다. 이후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20세기 10대 사상가 중 한 명인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가 임사체험이 ‘인종, 연령, 성별, 종교의 유무, 종교’와 무관하게 동일하게 관찰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의 저서 『죽음과 죽어감』은 베스트셀러였다.
서울대 의대 내과 정현채 교수는 “98년엔 일본 교린 의과대학 노인병과가 질환으로 깊은 혼수에 빠진 48명의 노인을 연구, 14명(37%)이 임사체험을 했음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성별ㆍ나이ㆍ기저질환ㆍ직업ㆍ종교ㆍ교육 정도ㆍ사고장소·혼수기간 등의 차이를 연구했지만 차이가 없었다. 연구에 따르면 50%는 ‘의학적 사망 상태’에서도 ‘내가 죽었다’는 인식을 했고,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56%), 체외이탈을 하고(24%), 터널을 통과하고(31%), 빛과 교신하며(23%),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13%) 경험을 했다.
2007년 대만에선 임사체험 연구센터가 타이베이 7개 병원 710명의 혈액투석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가 ‘미국 신장병학회지’에 실렸다. 51명이 임사체험을 했으며 긍정적 감정(74.5%), 체외이탈(51%) 등을 경험한다. 네덜란드와 대만 모두 임사체험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다른 사람과 더 공감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며, 사후생과 인생의 목적을 믿는 등 긍정적 현상을 보여준다. <표 참조>
아직은 ‘비주류’지만 국내 의료진 가운데도 임사체험을 받아들이거나 과학적으로 연구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길 병원의 이근(59) 부원장은 40대 후반 폐렴을 앓으면서 특이한 경험을 한다. 그는 “3~4일간 열이 42~43도까지 오르며 어떤 약도 듣지 않고 사실상 방치됐던 때였다. 갑자기 내가 바위가 널린 척박한 민둥산 위로 날아다녔다. 방금 심은 것 같은 소나무. 닿을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았다. 멀리 강이 보였다. 다음 날 병이 다 나았다”고 했다. 그는 “환각일 수 있지만 임사체험으로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의대 내과학교실 정현채 교수는 임사체험을 포함한 내용의 강의를 자주 다닌다. 그가 만든 자료 ‘의사로 갖추어야 할 죽음관’은 임사체험을 중요 주제로 다룬다. 정 교수는 “세상을 설명하는 데 물질적 연구만으로 충분하다는 ‘과학적 근본주의’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고 했다. 2005년엔 관련 현상을 연구하는 한국 죽음학회(회장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도 생겨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