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제헌절이 되면 고향 청주와 인천에서 번갈아 열리는 재종회 모임에 부모님들을 모시고 부부동반으로 참석한다. 이번에는 인천차례이다. 우리 재종회원들은 고향을 지키는 종손과 몇몇 형제들은 청주에서, 그리고 대부분은 직업을 따라 인천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자리 잡아 살고 있다. 벌써 오늘은 아홉 번 째로 여흥 민씨 감찰공파(驪興 閔氏 監察公派) 증조부 치자 공자 (致恭) 할아버지 자손 식(植)자 행렬 중심으로 만나는 재종회이다.
인천 남동구청 앞에서 수도권지역에 사는 형제들이 미리 와서 청주에서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잠시 후 관광버스가 도착하자 반가운 인사를 하면서 합승을 했다. 올해는 가장 많이 마흔세 명이나 참석을 해서 버스가 가득 찼다.
회장과 총무의 인사말 다음에 형제들의 새 주소록과 삶의 지혜를 간직할 수 있는 금언록(金言錄)을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총무가 오늘의 일정을 예시해주었다. 월미공원 전망대까지 올라갔다가 자유공원아래 차이나타운에 가서 중국요리로 점심식사를 하고 한중문화관에서 중국기예를 관람할 것이 오늘의 일정이라고 하였다.
약식과 연차(蓮茶), 참외와 수박, 천연사이다와 대학 옥수수를 가져온 동생들과 떡을 해온 형제, 당고모님은 천안에서 찰옥수수를 쪄서 가져왔다. 모두 감사하면서 정성어린 음식물들을 나누어 먹으며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버스는 고속도로로 진입해서 월미공원으로 달렸다.
은행나무 졸참나무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등 약 150년 이상 된 오래된 나무와 산초나무 뽕나무 등 많은 나무가 빽빽이 숲을 이루고 있다. 숲 그늘로 이어진 산책로가 시원하게 더위를 식혀준다. 백도라지와 보랏빛 도라지꽃 운치가 좋다. 노랑 빨강 예쁜 꽃밭들이 월미공원을 더욱 아름답게 빛낸다. 월미산 순환로 숲길에는 비비추 깽깽이풀 참취 개미취 구절초 고사리 털부처꽃 나도양지꽃등 자생식물인 야생화도 한창이다. 우리 일행은 월미동산 팔부능선 산책로를 휘돌아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망구십(望九十)을 바라보는 어머니도 지팡이를 짚고 부축을 받아가며 힘겨움을 이겨가며 함께 월미산 전망대에 올랐다. 바로 앞에는 외국으로 팔려나갈 자동차들이 즐비하고 크고 작은 많은 배가 정박해 있는 인천항이다. 그 뒤로 차이나타운거리며 자유공원이 보인다. 시선을 우측으로 돌리면 높은 빌딩과 아파트가 하늘을 찌른다. 멀리 송도 신도시지역과 바다위 교량공사 유류선, 바닷물과 수평선, 눈이 시원하고 즐거우니 가슴이 탁 트였다.
해발 108m인 월미산 위에 23.75m 높이로 세워진 이 전망대는 큰 유리컵 모양 건물로 올라가면서 한 층 한 층 관람할 수 있게 전망대가 삼층으로 높이에 따라 이뤄져 있다.
월미도는 한국전쟁 당시에는 인천상륙작전의 주무대 역할을 하여 그간 미군부대가 주둔하여 민간에게는 개방되지 않았다가 1971년 미군이 철수한 뒤 우리 해군이 주둔 했었다. 인천시가 2001년 8월 이를 매입해 현재 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자유공원아래 차이나타운 입구에 버스가 멎었다. 중국여행에서 자주 보던 전통건축물이 우뚝 서 있다. 중화가『中華街』라고 큰 문이 기다리고 있다. 한중문화원 건물 앞에는 서성왕희지상(書聖王羲之像)이 우리를 맞는다. 중국 인민정부에서 기증 한 것이라 씌어 있다.
차이나타운 거리는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화려하게 잘 단장된 거리가 더욱 현란하였다. 수많은 중국 요리집과 중국산 식료품가게, 의류가게, 액세서리가게를 지나서 중국정통 요리집『만다복(萬多福)』에 들어가서 맛있는 식사를 하였다.
한중문화원은 1층은 기획전시실로 현재는 중국미술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2층은 한중문화전시관으로 한국관과 중국관으로 나뉘어 한중교역상태를 알리고 있다. 3층은 우호도시 홍보관으로 항주 소주 청도 치박 위해 임기 제녕 등의 시의 특산물과 문화를 소개하고 있었다. 4층은 공연상영 장소로 냉방이 잘된 극장식 공간에서 우리 일행이 편안히 앉아 중국 전통기예와 문화를 감상하였다.
인천 차이나타운 거리는 한중교류의 최대관문이다. 1992년 한중수교이후 한류와 더불어 중국자본유입 등 경제 문화교류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져 활기가 넘쳐흘렀다.
다시 월미도 공원입구 그늘을 찾았다. 형제들이 준비해온 수박과 참외를 나누어 먹었다.
동생이 다년간 연구한 연차(蓮茶) 솜씨도 음미하면서 회의를 가졌다. 우선 고희가 된 분들에게 축하금을 드리고 박수로 축하를 했다.
지난 3월에 전 교장으로 퇴임한 회장이 계간 『문예춘추』에 수필가로 문단에 등단하면서 우수상을 수상한 것에 대한 축하박수도 있었다.
제헌절이 내년부터는 법정공휴일이 아니어서 날짜를 다시 잡자고 의견을 모았다. 9년간 애쓴 총무의 임기는 금년 말로 끝나고 새로운 총무도 선출해서 사촌과 육촌들이 맡기로 했다. 회장은 10년을 하고 내놓겠다고 했다.
남성중심으로 정회원 회비 6만원, 여자는 출가외인이라고 준회원자격으로 회비 3만원인데 해마다 느끼는 야릇한 감정이 인다. 출가외인이라고 부담이 적게 하는 것은 많은 참석을 유도하고 배려를 해 준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직까지 우리 가문이 양성평등 개혁이 안 되어 전근대적인 사고를 깨뜨리지 못한 결과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바쁜 현대생활에 짬을 내어 혈육의 정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른들의 좋은 말씀도 듣고 서로 곤경에 처한 형제에게는 위로를, 기쁜 일을 맞이한 분에게는 축하의 시간을 가진 것은 여간 보람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일정이 모두 끝나 헤어지면서 요즘 근력이 많이 쇠약해지신 어머니, 내년 모임에도 모실 수 있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앞섰다.
첫댓글 종친회 모임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민문자 시인님의 글은 술술 재미있게 읽혀요. 사진이 보였으면 더 좋았으련만.
요즈음 갖기 어려운 모임을 꾸준히 지속하신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덕분에 아직 가보지 못한 자유공원이며 차이나타운도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올려놓은 사진들이 안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