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인가 장르 검열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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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문학, 이대로 주저앉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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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7 / 허지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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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포문학단편선>이 지난달 7일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19세 미만 구독불가 도서’로 판정받았다. 구체적인 신체훼손 장면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전체 맥락을 고려치 않은 검열이란 논란이 일고 있다.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한국 공포문학, 이렇게 고사될지 모른다는 전망이 속출하는 상황이다.
한국 공포문학을 대표하는 이종호 작가(<흉가> <분신사바> <이프>)는 19일 하루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흔치 않지만 별로 권할 게 못 되는 경험이다. 오전엔 출판사 황금가지로부터 “예상보다 반응이 좋으니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의 두 번째 단편집을 만들어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괴담 모음집처럼 흥미 위주의 비문학 서적만 판치는 공포문학의 불모지 한국이 아니던가. 배수진마냥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던 공포문학 단편집 프로젝트가 시장 시스템에 무사히 진입했음을 알리는 의미심장한 일이었기에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오후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지금까지 이뤄놓은 한줌의 성과와 태산 같은 희망을 일거에 날려버리고 말았다.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이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청소년 유해도서로 분류돼 ‘19세 미만 구독불가 도서’로 판정받았단 소식이었다. 화가 난다기보다 이상하고 한심했다. 섹스가 난무하는 만화책도 외설서적도 아닌 '장르 문학'이 단지 폭력성을 이유로 청소년 유해도서 판정을 받았단 사실은 전 세계적으로 듣도 보도 못한 터였다.
FILM2.0은 작년 여름 '한국공포영화 긴급제언'이라는 기획기사를 통해 공포문학 전문작가들의 양성과 그들의 영화계 유입현상이 본격화되는 2007년을 한국 공포영화의 재기시점으로 기대해봐야 할 것이라 진단한 바 있다. 분석결과 공포영화 제작환경 시스템의 근시안적 한계와 더불어 공포장르 전문작가의 부족현상이야말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뚜렷한 전통이나 독자층 없이 탄생과 더불어 장르 개척의 임무를 타고난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은 작품의 완성도와 대중적 가능성을 인정받아 유수의 매체와 독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받아온 바 있다. 이번 청소년 유해간행물 판정에 따라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은 (별도의 재심의 청구가 없는 이상) 전량 출판사로 회수된 뒤 비닐로 포장, ‘19세 미만 구독불가’라 적힌 빨간색 스티커가 부착돼 다시 서점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돌아가봤자 서점은 ‘청소년 유해도서’를 반기지 않는다. 진열대에서 철수돼 카운터 밑이나 별도의 공간으로 격리 보관되며, 부러 찾는 독자들에 한해 신분증 확인 후 판매가 이뤄진다. 온라인서점에서 역시 성인 인증을 받지 않으면 책의 관련 정보를 쉽게 열람하거나 확인, 구입할 수 없다. 대표적 온라인서점 YES24에서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을 검색해보면 책의 표지 대신 ‘19’라는 이미지가 노출되고 클릭하면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한다. 규모나 인지도 면에서 국내 최대 도서판매점이라 할 수 있는 교보문고 종각 지점의 경우에는 ‘19세 미만 구독불가’ 판정을 받은 서적이 래핑 처리된 후 재입고가 되더라도 다시 출판사 측에 반품하는 등, 일체 판매를 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마디로 청소년뿐 아니라 전 연령대에 대한 시장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19세 미만 구독불가 지침을 내릴 때 이런 시장 상황들까지 감안한다고 볼 수는 없으나, 출판사나 작가의 입장에선 분명 사실상의 판매금지 조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여지가 충분하다. 더군다나 이번 경우는 만화책이나 사진집의 선정성, 폭력성이 아닌 장르 소설의 폭력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단순히 심의의 잣대에 대한 논쟁의 범위보다 깊고 넓게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은 청소년에게 그리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유해물임이 분명한 걸까. 심의는 어떤 방식과 시스템을 거쳐 무슨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나. 마지막으로, 그 모든 정황과 사실로 미루어볼 때 이번 판결은 정당한 심의인가 혹은 장르의 생명줄을 담보로 한 검열인가.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은 어떤 책?
사안의 무게감을 확인하기 위해 먼저 이 책의 문학적, 장르적 가치에 대해 언급하고 지나갈 필요가 있다.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은 ‘훌륭하다’고 단정 짓기엔 공포장르 자체에 대한 주관적 호불호가 크게 작용할망정, 한국 장르문학사에 의미심장한 방점으로 남을 작업이다. 공포문학의 전통이 전무하다시피 한 토대 위에 단순한 괴담이 아닌 문학적 서사의 가능성을 확인시켰을 뿐 아니라, 수록된 각 소설의 세부 장르와 내용이 상호유기적인 호응과 대구를 통해 단편모음집으론 보기 드문 완결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공포장르문화에는 그럴 듯한 전통이 없다. 군사독재정권에 의한 근현대사의 진통을 겪는 동안 우리는 폭력성에 지나치리만치 민감하면서 선정성에 대해선 얼마간의 융통성을 발휘했던 검열체제를 몸소 체험해왔다. 극장에 호스티스물이 범람하는 동안 공포장르는 제대로 뿌리내릴 기회를 갖지 못했고, 김기영과 이만희, 혹은 박윤교, 고영남 감독의 이례적 작품 몇 가지를 빼놓곤 이렇다 할 공포영화의 전통을 찾기 어렵게 됐다. 장르문화 전통의 부재는 문학 진영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인터넷의 보급과 더불어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네티즌 소설, 소비자 문학의 시대는 그렇지 않아도 뚜렷한 공포문학의 모델이 없는 상황에서 ‘공포문학=인터넷에서 공짜로 볼 수 있는 괴담’식의 왜곡된 공식을 낳고 말았던 것이다. 백민석 작가의 <목화밭 엽기전>이 그 잔혹성과 관련한 화제만을 낳은 채 문학적 가치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까닭 역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공포영화가 고사 직전이라면, 한국의 공포문학은 “응애” 한번 뱉어보지 못한 불운의 사생아다.
이 같은 상황에서 10개의 공포문학 단편이 수록된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의 출현은 단연 파격적이다. 우선 각각의 단편작품들이 오컬트, 사이코 스릴러, 고어, 판타지, 잔혹소동극 등의 다양한 세부장르를 소화해내면서 독특한 완결성과 탄탄한 서사의 명민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은 각별하게 짚고 넘어갈 만하다. 그 문학적 가치에 대한 부분은 주관적인 영역으로 차치해두더라도, 소재의 다양성과 삶의 어두운 단면을 꿰뚫는 기민함은 보는 이의 눈길을 끌고 욕망을 헤집는다.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의 또 다른 미덕은 장르 문학 시장을 향한 개척의 의지다. 이종호 작가의 모든 작품이 이미 영화화됐거나 현재 영화제작 중에 있으며, 함께 단편집에 참여한 김종일 작가의 <몸> 역시 <여고괴담> <폭력써클>의 박기형 감독에 의해 판권계약을 완료하고 영화화가 진행 중일 만큼 고부가가치 수요가 있는 영역이지만, 늘 한계가 존재했다. 가능성은 충분한데 시장 자체가 붐업될 만한 계기와 규모가 부재했던 셈.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은 두세 사람 대표작가의 노력으로 하나의 장르와 산업을 고취시키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사람들의 고민과 노력으로 탄생됐다. 이종호 작가를 주축으로 8명의 신진 작가가 발굴, 육성되고 꾸준한 상호작용과 재훈련이 지속됨으로써 단편집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미진한 장르 문학 현실과 공포문학 전문작가의 태부족을 감안해볼 때,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의 존재감은 로또보다 멀고 기적보다는 조금 가까운 일종의 “사건”이라 할 만하다.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심의기준
제1장 일반심의기준 제1조 일반심의기준 위원회는 심의를 함에 있어 다음 각호의 1을 고려해야 한다. 1. 간행물의 유해성 여부를 판단하되, 표현된 상태를 대상으로 한다. 2. 반국가성, 음란성, 반사회성 등을 판단함에 있어서 양적·질적 정도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한다. 3. 문학적, 예술적, 교육적, 의학적, 과학적, 사회적 측면과 간행물의 특성을 고려한다. 4. 간행물의 성격과 영향, 내용과 주제, 전체적인 맥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5. 건전한 사회통념과 윤리관의 위해(危害) 여부를 고려한다. 6. 간행물 중 연속물에 대한 심의는 개별 회분을 대상으로 한다. 7. 심의위원 중 최소한 2인 이상이 당해 간행물의 전체 내용을 파악한 후 심의한다. (중략) 제3장 청소년유해간행물 심의기준 제5조 폭력·잔인성 등 청소년에게 포악성이나 범죄 충동을 일으키는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내용이 표현된 것은 청소년유해간행물로 판단한다. 1. 살상, 폭행, 고문 등의 장면을 사실적이며 잔인하게 묘사한 것 2. 사지 절단 등 신체 손괴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 3. 장기 밀매, 사체 유기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 4. 아동 학대, 인신매매, 유괴 등의 행위를 미화하거나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 5. 폭력 행위를 흥미 위주로 미화하여 조장하는 것 6. 범죄 수단이나 방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범죄를 조장하는 것 7. 범죄를 교사·방조하거나 선전·선동할 우려가 현저한 것 8. 기타 청소년에게 포악성이나 범죄 충동을 일으켜 청소년의 건전한 인격 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것. (하략)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됐나?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의 청소년 유해간행물 판정 관련 공문이 출판사 실무진 측에 전달된 것은 지난달 19일.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심의결정 통보 공문을 통해 “이 간행물은 국내 작가들의 단편 공포소설 모음집으로, 시체를 토막 내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며 문제가 된 소설의 페이지를 여섯 부분에 걸쳐 언급했다. 즉, 소설 속에서 신체를 훼손하는 장면들을 일일이 지적하고 이를 토대로 청소년 유해간행물 판정을 내린 것이다.(박스 참조) 이 같이 심의기관이 결과를 통보함에 있어 구체적인 페이지를 거론하는 식으로 특정 장면과 묘사를 직접 지적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먼저 문제가 된 작품들을 살펴보자.
공문에 제시된 페이지들로 미뤄 보건데 이 단편집에서 문제가 된 작품들은 신진오 작가의 <상자>와 우명희 작가의 <들개>, 박동식 작가의 <모텔 탈출기>다. 하나씩 들여다보면, 우선 <상자>는 우발적으로 아내를 살해한 남자가 집으로 배달된 의문의 상자에 아내의 시체를 토막 내 집어넣고, 그 상자에서 거듭해 재생돼 살아 돌아오는 아내를 맞닥뜨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서 상자는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비이성, 비합리, 신비주의를 드러내 그 자체로 남자의 어두운 욕망을 투영하고 나선다. 토막 난 아내의 몸이 상자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현상은 남자의 굴절된 이중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 소설의 화자인 ‘나’가 남자의 아내와 맺고 있던 비정상적인 관계를 환기시키면서 죄의식의 확장과 독자들의 공범의식을 자극한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심의위원들은 아내가 토막살해 당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자세하고 과도하게 묘사되고 있다고 말한다. 확실히 “살점들이 촘촘한 톱날에 들러붙어 톱질이 잘 되지 않아”나 “긴 내장은 따로 부엌칼로 잘라 나눠야만 했다”처럼 높은 수위의 신체훼손 장면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표현은 당시 남자의 분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향후 되풀이되는 폭력에 차차 둔감해져가는 모습을 상대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더불어 상자라는 개체가 인간을 비이성의 궤도로 이탈시키는 역할을 수행함을 묘사하기 위해 극의 맥락상 반드시 필요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들개>는 어렸을 때부터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라온 연쇄살인마가 평소 연정을 품고 있던 여자를 납치해 살해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의 표현수위는 유아 살해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등 확실히 극단으로 치닫는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공포문학이라는 장르에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이상, <들개>가 비문학적인 청소년 유해물이라고 공격하는 것 역시 궁색한 게 사실이다. 실제 우명희 작가는 아름다운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삶의 가장 어둡고 끔찍한 단면을 드러내려 했고, 살인마의 극단적 행동을 낳은 폭력의 역사와 세심한 심리묘사를 통해 절반의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모텔 탈출기>는 의사 집안의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모텔에서 성매매를 하다 실수로 여자를 죽인 뒤, 사건을 없었던 것으로 꾸미기 위해 여자의 시신을 토막 내 모종의 트릭을 사용함으로써 모텔을 무사히 탈출하기까지의 이야기다. 여자의 시신을 훼손하고 그중 일부를 섭취까지 하는 묘사가 문제됐는데, 사실 <모텔 탈출기>에 대한 심의의 시선이야말로 이번 사안의 애매한 잣대를 드러내는 부분이라 할 만하다. 이 단편소설은 블랙 코미디 형식을 빌려 한 남자가 죽을 고생을 다 해 사체를 처리해보려 노력했지만 어이없이 실패하고 마는 과정을 그리는 소동극으로,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과 분위기를 이해했다면 문제 삼을 이유가 없는 성격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세 가지 소설 모두 토막살해가 등장해 문제가 됐지만 단순히 특정 장면이 나왔다는 사유만으로 기계적인 심의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작가들과 출판사, 독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중이다. 즉, 일개 장면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다면, 비록 그것이 심의기준에 부합되지 않을 순 있으나 문학적, 장르적 맥락에서 바라볼 때 문제 삼을 만한 성격의 묘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문학작품의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해 심의해야한다는 점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기준에서도 3차례에 걸쳐 명확하고 비중 있게 명시돼 있는 바다.(박스 참조) <한국공포문학단편선>에 등장하는 신체훼손 장면은 국내 출간된 다른 장르 소설(특히 일본 장르 소설)에서도 빈번하게 노출되는 수위이며,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한국에서 발행된 모든 소설을 빠짐없이 심의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는 주장 역시 나오고 있다.
누가, 어떻게 심의했나?
그렇다면 과연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심의과정과 위원들은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대착오의 산실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심의의 전 과정과 심의위원들의 구성 및 의결방식은 매우 합리적이고 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실 이 점이 이번 문제의 해법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단순히 사람과 제도가 문제라면 사람을 바꾸고 제도를 수정하면 되지만,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의 청소년 유해간행물 판정을 둘러싼 논란의 경우엔 장르에 대한 이해와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되는 차원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심의는 이미 출판된 서적들에 한해 이뤄지고 있다. 소설, 만화, 사진집, 화보집은 출판및인쇄진흥법에 의거해 출판사가 문화관광부에 의무적으로 납부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이를 위탁받고 있는 곳이 출판문화협회고 실질적으로 수거된 책을 심의하는 기관은 간행물윤리위원회다. 자진해서 납부되지 않은 도서들에 대해선 5명의 도서팀 직원들이 직접 서점에 나가 책을 구입하는 식으로 수집이 이뤄진다. 이렇게 수집된 3백 권에서 4백 권의 도서들을 직원들이 직접 검토한 뒤 한 달에 두 번 정도 열리는 심의위원회에 회부할 40권 분량의 검토보고서를 작성하게 되는데, 이때 문제가 되는 도서의 90퍼센트가 만화 혹은 전자 간행물에 해당된다고 한다. 또 그 가운데 95퍼센트 이상이 과도한 노출이나 성행위 등 선정성을 이유로 청소년 유해간행물, 혹은 유해간행물 판정을 받고 있다. 심의위원회는 간행물윤리위원회 직원이 아닌 외부 전문인사 7명과 내부 상근직 1명으로 구성된다. 직업은 평론가부터 변호사, 출판사 관계자 등 다양하게 고려된다.
위원들의 타성을 방지하기 위해 임기는 1년으로 엄격히 제한되고 있으며 연령은 30대에서 50대까지만 포함시키고 30퍼센트 이상의 여성위원 정족수를 충족시켜야 한다. 또 사진이 많은 전자 저작물에 대해선 사진작가를, 소설의 경우에는 문학평론가를 포함시키는 식으로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 또한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만약 재심의가 청구된 경우에는 기존의 심의위원회에 참가했던 위원들을 전원 배제한 상태에서 별도의 소위원회가 구성된다. 먼저 심의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의를 진행할 경우에는 공평무사한 판단보다 기존에 했던 자신의 판단을 방어하는 데 급급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탓이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도서, 정기간행물팀 손충호 부장은 “심의위원들의 공정성이나 신뢰성을 무엇보다 최우선시하고 있다”며 시스템의 합리성을 자신했다.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이 청소년 유해간행물로 결정되던 날 심의회의실은 그 판단 여부를 둘러싸고 작은 소란에 휩싸였다. 장르 문학 같은 소설류에 있어 폭력성을 근거로 제재가 가해진 사례는 전무후무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 범위를 전 세계적으로 확장해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아예 물리적 소환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미국의 민간 심의기구에서부터 비교적 폭력에 엄격한 독일에 이르기까지 ‘장르 문학의 폭력성을 이유로 도서의 판매에 물리적 제약을 강제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결국 “오히려 사랑을 전제로 한 섹스보다는 살인이 이뤄지는 폭력에 더 엄격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니냐, 문학의 폭력성에 대한 심의제재의 전례로 남기자”는 쪽으로 위원들의 의견이 모아졌고 청소년 유해간행물 판정이 이뤄졌다. 심의에 참여했던 경희대 국문과 최혜실 교수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굉장히 난감한 경우였다”며 “이 책의 미학적 가치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지만 나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입장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견지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말한다. 또 “분명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내가 전체 평론가를 대표하지 못할뿐더러 8명 중 1명의 위원에 불과하다. 이 책에 묘사된 폭력성이 공포문학 본연의 장르적 맥락이라면 나 역시 좀 더 연구해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한국 공포문학은 사장될 것인가?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이라는 책 한 권에 대한 청소년 유해간행물 판정을 두고 전체 한국공포문학진영의 생사를 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체를 토막 내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며 이례적으로 상세한 페이지를 거론한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심의결정 통보는 곧 “문제의 페이지가 없거나 수정된다면 심의에 통과할 수 있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검열과 같다. 또한 “간행물의 성격과 영향, 내용과 주제, 전체적인 맥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자체 심의기준을 무시하고 특정 장면의 포함 유무만으로 기계적인 심의가 이뤄졌다는 의혹제기도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이 같은 검열의 의혹이 작가들의 자기검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공포문학, 나아가 장르 문학에 참여하고자 하는 작가들은 문제의 특정 장면을 쓰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할 것이고, 특히 공포문학의 경우엔 꼭 그만큼의 문학적 사고와 창작의 영역이 훼손됐다고 볼 수 있다. <상자>를 장편소설 버전으로 작업하고 있던 이종호 작가는 “당장 내 스스로 조심해가며 쓰고 있는데, 작품의 맥락상 꼭 필요한 토막살해 장면을 쓰지 못하다보니 뭘 어떻게 더 써나가야 할지 곤궁하다”며 자기검열이 이미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공포문학이라는 것이 이미 활성화된 장르도 아니고 이제 막 기지개를 펴고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는 입장에서 자기검열의 문제는 시장의 사활을 거론할 정도로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한국공포문학단편선> 재심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출판사 황금가지의 이지연 편집주간은 “이 책과 동일한 수준의 신체훼손 장면을 포함하고 있는 다른 장르 소설의 목록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자칫 다른 출판사에 악영향을 끼칠까봐 섣부른 문제제기를 자제하고 있다”며 “재심의를 청구한다면 형평성의 문제보다는 공포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몰이해와 자기검열에 대한 문제제기 방향으로 맞춰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공포문학이 다른 장르와 가장 각별하게 구분되는 지점은 삶에 대한 예찬과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아닌 삶의 가장 더럽고 음습하며 불쾌한 진실과 욕망에 주목한다는 사실에서 발견된다. 인생사의 정상성은 공포문학의 관심사가 아니다. 비정상적인 행동과 풍경의 묘사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해체하고 이를 낱낱이 증언하는 공포문학의 목적의식이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이 공포가 아닌 불쾌하고 엽기적인 묘사에 주력한다”는 주장은 장르의 정체성을 파악하지 못한 어불성설에 가깝다. 심의 패러다임의 전면적 구조조정이 절실하다. 불쾌함을 서사의 주요 기재로 삼는 공포문학의 방향성에 동의하고 말고는 개인적 취향의 문제다. 하지만 현재 이 장르가 직면한 문제는 대중적인 관심을 호소하는 데 있지 않다. 청소년 유해간행물 판정이 단순히 19세 미만 독자뿐 아니라 전 연령대의 독자들로부터 접근성을 앗아간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이들의 주장은 그저 공포문학의 존재와 미학적 가치를 인정해달라는 것뿐이다. 한국의 공포문학은 지금 이 시간, 심의와 장르 검열의 좁은 길 사이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일러스트 김소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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