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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念은 일본식 한자, 紀念은 우리식 한자
이런 형식으로 몇가지 생각나는대로 적어 보자면
수순은 절차로
내역은 명세로
야채는 채소로
결혼은 혼인으로
시합은 경기로
경합도 아마 경쟁으로 바뀌어야 하는가 뭐 그럴 겁니다.
이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무진장 하다고 하네요.
한 때 꽤 많이 논란이 되었던 것이
바로 남대문과 북한산이었습니다.
남대문은 숭례문으로, 북한산은 삼각산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숭례문을 남대문이라고 부르는 건 일본인들이 우리의 중요한
문화재를 낮춰 부르는 것에서 비롯되었으므로 당장 바꾸어야 한다고
특유의 남비근성이 드러나 들끓을 때가 있었습니다.
이름도 그렇고 명칭은 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류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숭례문대신 남대문을 고집하며
스스로 확실한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는 쉽게 바꾸지 않으리라는
예의 그 골통보수 기질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동서남북에 있는 대문의 이름을 다 기억하고 외는 사람들보다는
그냥 편하게 동서남북대문이라고 불렀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의 고집이 옳았다는 걸 확인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양도성 돌기를 하면서 남대문 보수공사 현장의 공사가림벽에
세종대왕께서 하신 말씀 중에 "남대문"이라고 분명히 언급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더군요.
'그래, 이제 북한산만 남았어'
이건 검색을 해봐도 분명치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꽤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을 한 분의 글을 봐도
신라 진흥왕이 북한산 순수비를 세웠고 그 내용에도 북한산이라는
글자가 나온다는데도 그게 삼각산을 지칭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또 애매하게 설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북한산의 이름이 계속해서 불리우지 않았던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숙종때 북한산성을 축조한 후, 성능이라는 승려가 기록한
북한지라는 기록을 근거로
그 이후에 북한산이라는 이름이 쓰였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고 한데
1900년대초에 일본인이 언급한 "북한산"이라는 기록 이전에
빈번하게 등장한 것 같지가 않아서
비록 북한산이라는 명칭을 바꾸는 것이 합당치 않은 것 같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도 아주 강한 어조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명칭은 분명한 것이 아닐 때에는 현재 통용되는 것을 쓰면서
명백한 오류가 있다면 고치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오래 전에 얼음과자(아이스크림) 신문광고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도투락"이라는 것이었는데 댕기의 예쁜 우리말이라고 하였습니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국립고궁박물관에 가보니
바로 그 댕기가 한자로 도투락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고서
더욱 이름바꾸기는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시류에 분위기에 휩쓸려서 별 생각없이 따라 가는 바보가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그러던 중, 마침 오늘 생각난 김에 검색을 해보다가
또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했으나 저의 생각과 많은 부분 일치한
어느 공무원 학예연구사의 글을 이 곳에 소개합니다.
글이 너무 길어서 저는 앞부분만 읽었는데 그건 여러분들의 마음대로
하시면 되겠지요. ㅎㅎ
2012/01/07 11:36
고양시청 학예연구사
심준용
1. 북한산과 삼각산
북한산이라는 명칭은 1145년에 쓰여진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서
최소한 고려시대부터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명칭입니다. ‘
한성 북쪽의 큰 산’이라는 의미인 ‘북한산’이라는 명칭의 영역은 지금의 서울 북부 산악지역,
즉 현재의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한성지역이 삼국시대 이전부터 너무나 중요한 지역이었고, 그 한성을 지켜주던 북한산은 풍수지리상 진산이자
조산에 해당되기 때문에 북한산이라는 명칭은 ‘북쪽의 큰 산’이라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담고 있는 명칭입니다.
바꾸어 말씀드리자면 ‘북한산’, ‘한산’ 등의 명칭은 몇몇 봉우리를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고, 한성 북부 산악지역을
통칭하는 단어로 많이 사용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삼각산은 어디일까요? 삼각산은 대체로 현재의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를 지칭하는데, 『삼국사기』에는 ‘
북한산, 한산’ 등의 명칭이 많이 사용된 반면, 1451년에 완성된 『고려사, 고려사절요』를 보면 삼각산이라는 명칭이
많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는 북한산이라는 명칭보다 삼각산이라는 명칭이 주로 쓰였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많은 지도 등을 보면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를 특히 부곽시켜서 많이 그려져 있는데, 조선시대 한성을
든든히 받쳐주는 세 봉우리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북한산’,‘삼각산’이라는 명칭은 한성북부 산악지역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써 함께 사용되었으며,
‘북한산’이 일제시기에 만들어진 용어라는 주장은 ‘억측’이라 생각합니다.
툭하면 일제시기와 관련하여 명칭문제를 거론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주장들을 접하실때는 정말 신중하게 접근하셔야
오류를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굳이 ‘북한산’과 ‘삼각산’을 구분하자면 ‘북한산’은 ‘삼각산(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을 포함하는 좀 더 큰 범위의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면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삼각산이 북한산지역의 중심인 셈이지요.
참고로 ‘삼각산’은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10호로서 관리되고 있으며, 앞서 말씀드리는 세 봉우리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
북한산’과 ‘삼각산’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명칭을 거론하여 이슈화 시키는 방법은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는 그릇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2. 북한산 개요
○ 약 79.916㎢의 남쪽의 북한산 지역과 북쪽의 도봉산 지역으로 구분됨.
※ 경기도 40.4㎢ 중 고양시 14.9㎢(공원 총면적 대비 18.6%가 고양시에 포함됨.)
○ 탐방객이 865만명(2009년 기준)이며,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음.
3. 북한산성(사적 제162호) 개요
○ 총면적 약 6.2㎢(여의도의 3/4정도 크기)
○ 성곽 면적 494,516.17㎡(고양시 374,050.17㎡, 서울시 120,466㎡)
○ 성곽 길이 12.7㎞
※ 북한산성 총면적(비지정 지역 포함) 대비 면적비율 : 고양시 약 98%, 서울시 약 2%
※ 북한산성 문화재 보호구역 대비 면적비율 : 고양시 약 75%, 서울시 약 25%
4. 삼각산(명승 제10호) 개요
○ 북한산의 중심인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2003년 10월 31일 삼각산으로 지정됨.
○ 총면적 274,143㎡(고양시 264,651㎡, 서울시 9,492㎡)
※ 삼각산 문화재 보호구역 대비 지자체별 면적비율 : 고양시 약 97%, 서울시 3%
(참고자료)
문화재청 문화재검색 자료에는 「삼각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삼각산(三角山)은 북한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산봉으로서 백운대(白雲臺, 836.5m), 인수봉(人壽峰, 810.5m), 만경대
(萬鏡臺, 787.0m)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쥐라기 말의 대보화강암(흑운모 화강암 또는 화강섬록암)으로 되어 있으며, 형상을 달리한 화강암 돔(granite
dome)으로 되어 있어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여준다.
돔을 형성하는 산 사면의 경사는 대체로 70°이상에 달하고 있다. 백운대의 정상에는 약 500㎡의 평탄한 곳이 있어
많은 등반객 또는 관광객들이 모여들기도 한다.
만경대의 옛이름은 국망봉이라 호칭되었으며 정상부의 산세는 불규칙하다.
삼각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정하였다는
전설이 있으니, 바로 이 삼각산을 말한다.
그리고 무학대사가 조선의 수도 후보지를 찾으러 순례할 때 백운대로부터 맥을 밟아 만경대에 이르러 서남 방향으로 가
비봉에 이르니 한 석비가 있었는데 거기에 “무학이 길을 잘못 들어 여기에 이른다”는 비석이 있어서 길을 다시 바꾸어
내려가 궁성터(오늘의 경복궁)를 정하였던 곳이 바로 이 삼각산이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중국으로 끌려가면서 남긴 김상헌의 싯귀에 있듯이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라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민속문화대백과 자료에는 「북한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칭별칭 - 삼각산, 한산, 화산, 부아악
소재지 - 서울특별시(도봉구, 강북구, 성북구, 종로구, 은평구), 경기도(고양시, 양주시, 의정부시)
개설
북한산의 높이 837m이고, 전체 면적 중 서울은 약 39㎢, 경기도는 약 41㎢를 점하고 있다. 북한산은 경위도상 위치는
동경 126°56′~127°03′, 북위 37°35′~37°43′에 위치하고 있다.
명칭 유래
북한산은 예로부터 명산으로 일명 한산, 삼각산(三角山) 또는 화산이라 불렀으며
신라 때에는 부아악이라고도 하였다.
옛날 개성의 송도에서 한양으로 오다가 이 산을 바라보면 백운대(白雲臺), 만경대(萬景臺), 인수봉(仁壽峰)의
세 봉우리가 삼각으로 나란히 우뚝 솟아 있어 삼각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전설에 의하면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溫祚)가 이곳 부아악에 올라 살 만한 땅을 찾았다고 한다.
또한 무학대사(無學大師) 이성계를 위해 도읍지를 정할 때 백운대에서 맥을 찾아 만경대에 올랐다가 서남쪽으로 가서
비봉에 이르렀다고 하여 만경대를 일명 ‘국망봉(國望峰)’이라고도 한다.
비봉은 진흥왕순수비가 꼭대기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환경
북한산은 주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남쪽의 만경대·보현봉 및 북악산으로 연결되는 주능선과
북쪽으로 인수봉·우이암·주봉·자운봉 및 사패산으로 연결되는 주능선을 축으로 동서로 대별된다.
이러한 산봉이 하나의 거대한 암괴로 된 돔(dome) 형상을 띄는데 일종의 도상구릉(島狀丘陵)이라고 한다.
이는 두꺼운 풍화층이 침식되어 없어지고, 그 하부에 있던 절리 간격이 넓은 화강암이 지표 혹은 지표 가까이로
노출되면서 하중제거에 의한 판상절 리가 탁월하게 발달될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북한산의 각 봉우리 사이를 흐르는 계곡으로는 정릉계곡·구천계곡·소귀천계곡·육모정계곡·효자리계곡·삼천사계곡·
세검정계곡·진관사계곡·구기계곡·평창계곡·산성계곡 등이 있다.
이들 북한산에서 발원한 계류는 중량천·창룡천·불광천·모래내 등을 이루어 한강으로 유입된다.
북한산의 식물상 조사 결과 108과 692종류의 관속식물이 조사되었다.
식생으로 미선나무군락·나도국선나무·백선나무 등 희귀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주요 식물군락은 신갈나무·소나무군락·굴참나무군락·상수리나무군락·아카시아나무군락·소나무군락·당단풍군락 등이다.
주요 동물상은 족제비·고슴도치·철설모 등 13여 종의 포유동물, 참새·박새·쇠딱다구리 등 114여 종의 조류, 도룡뇽·
맹꽁이·두꺼비 등의 양서류와 함께 1,000여 종의 곤충류가 서식하고 있다.
북한산 지역은 대도시 지역인 서울과 경기도에 위치하였다.
때문에 각종 오염물질과 황사 및 산성비가 북한산의 생태계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노출암석이 많고 경사가 심하고 사양토 및 사토가 많아 보수력이 낮은데다가 등산로의 과밀이용으로 인해
다른 산보다 식물종수가 비교적 적은 편이다.
형성 및 변천
북한산은 중생대말에 관입한 화강암이 지반의 상승과 침식작용으로 지표에 노출된 뒤 절리와 표면의 풍화작용으로
현재와 같이 산세가 험준하고 경사가 심한 암벽 봉우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세 봉우리를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상장봉(上將峯), 남쪽으로는 석가봉(釋迦峯)·보현봉(普賢峯)·문수봉(文殊峯)
등이 있다.
여기서 다시 문수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나한봉(羅漢峯)·응봉(鷹峯) 등의 줄기가 백운대 서쪽 줄기인 원효봉(元曉峯)
줄기와 만난다.
현황
북한산은 서울에 근접해 있으면서 자연 경관이 뛰어나 1983년 4월 경관의 보존과 합리적 이용을 도모하기 위하여
도봉산(道峯山)일대와 함께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나한봉에서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1711년(숙종 37)에 축조된 연장 8㎞의 북한산성(北漢山城)이 있으며,
지금도 14개의 성문 중 대서문(大西門)·대남문(大南門)·대성문(大成門)·보국문(輔國門)·대동문(大東門)·용암문(龍巖門)
등이 남아 있다.
전설에 따르면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溫祚)가 이곳 부아악에 올라 살만한 곳을 찾았다고 하며,
무학대사(無學大師)가 태조를 위하여 도읍지를 정할 때 백운대에서 맥을 찾아 만경대에 올랐다가 서남쪽으로
비봉(碑峯)에 이르렀다고 하여 만경대는 일명 국망봉(國望峯)이라고도 불린다.
비봉은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北漢山新羅眞興王巡狩碑, 국보 제3호)가 꼭대기에 세워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진흥왕순수비를 보존하기 위해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고 현재 있는 것은 모조 비석이다.
이 밖에 북한산구기리마애석가여래좌상(보물 제215호)·태고사원증국사탑비(太古寺圓證國師塔碑, 보물 제611호)·
태고사원증국사탑(보물 제749호)·동장대지(東將臺址) 등 많은 유물·유적지가 있으며,
상운사(祥雲寺)·원효암(元曉庵)·진관사(津寬寺)·승가사(僧伽寺)·회룡사(回龍寺)·광법사(廣法寺)·문수사(文殊寺)
·원통사(圓通寺)·화계사(華溪寺)·도선사(道詵寺) 등 30여 개의 사찰이 있다.
중흥사지(重興寺址)는 북한산에서 가장 큰 사찰로 승군의 총지휘를 맡았던 곳이었으나, 갑오경장 이후
승군이 해산되고 고종 말년에 모두 불타 지금은 초석만 남아 있다.
교통이 편리하여 서울 시민의 등산 코스로 많이 이용되며, 정상에 오르면 서울 시가지는 물론 멀리 황해까지 보인다.
특히, 북한산은 계곡에 물이 많고 산림이 우거져 야영지로 적당하다.
북한산장(北漢山莊)·우이산장(牛耳山莊)·도봉산장(道峯山莊)·백운산장(白雲山莊) 등이 있어 등반객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백운대·인수봉 등과 같은 높은 암벽이 있어 암벽등반 훈련장으로도 이용된다.
우이계곡·도봉계곡·송추계곡에는 유원지가 만들어져 시민들이 많이 찾는다.
참고문헌
『한국(韓國)의 산지(山誌)』(건설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2007)
『관광한국지리(觀光韓國地理)』(김홍운, 형설출판사, 1985)
『한국관광자원총람(韓國觀光資源總覽)』(한국관광공사, 1985)
『관광자원론(觀光資源論)』(김정배, 형설출판사, 1982)
『한국지명요람(韓國地名要覽)』(건설부국립지리원, 1982)
『관광지리학(觀光地理學)』(김병문, 형설출판사, 1978)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66)
첫댓글 한글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과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으려는 탐구정신이 돋보입니다. 길 위의 역사학 카페의 품격도 덩달아 높아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북한산 둘레길, 서울 성곽길, 서울 둘레길에 바람처럼님이 힘차게 깃발을 나부낄 날을 기대합니다.^^*
6일과 7일의 교합이 42일에 온다는 건가? ㅠ
나의 일주일과 세상의 일주일의 차이가 나를 서럽게 하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