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하는 스키-보드 포함-는 이런 것입니다. 즐거움. 그리고 그것의 승화. 간단하죠? 제게는 간단하지만은 않은 명제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 '재미'라는 관점에서 이곳 스키장의 모습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스키나 보드나 눈 덮힌 산을 내려오는 수단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마다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가 다르기 때문에 그 다양성에 대한 인정을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저는 오히려, 재미를 위해 새로이 고안되는 수단들이 다양해 진다는 것을 좋은 소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테크닉을 발전시키고, 장비의 발전에 환호하고 하는 것들 모두가 더 즐거워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스키 타는 실력이 늘수록 재미는 더 커진다, 이겁니다. 뭐 아닐 수도 있고요.
저는 예전에(1990년대 초) 이곳 미국에서 잠시 공부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수영 코치가 되려고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마침 제가 다니던 학교가 콜로라도에 소재하고 있어서-의도(?)적인 게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스키를 신나게 탈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습니다. 주 내에 있는 학교의 학생들에게는 시즌 패스를 싼 값에 팔았고, 차가 없어도 셔틀을 타면 주차 걱정 없이 바로 스키장 코 앞에 데려다 주니 더 없이 편했습니다. 스키는 시즌 락커를 구입해서 맡기고 다니면 됐습니다. 그 마저도 학생이라고 헐값에 줬지요. 점심도(잘 사먹지는 않았지만) 시즌 패스를 보여 주면 할인해줬습니다. 이러니 뭐 저같이 스키에 환장(?)한 놈은 감사할 따름이지요. 얘기가 옆 길로 샜네요.
암튼, 그 때는 스키장에 가 보면('가보면'이 맞나요? 아님 '가 보면'이 맞나요?) 보더들이 득세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저도 심각하게 보더로의 전향을 고려해 본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더 재밌을까? 하는 관점이었죠. 결론은 뭐, 스키가 더 낫겠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보드의 출현은 싫든 좋든 스키계에 지각변동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물론 이전과 이후로 여러 갈래의 발전(시행착오와 더불어)이 산재했고, 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이 만한 메가톤급의 충격(?)을 준 사건은 없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스키장조차도 보드의 출현으로 그 모습이 달라졌으니까요. 이후로 당연히 스키의 모습들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갈래의 재미들이 태동하여 진화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진화의 속도와 갈래는 이미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요즘의 변화는..명확해진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스타일이란 게 뭐 다른 게 아니라, 재미를 추구하는 타입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재미의 발전이 이제는 거의 부문 별로 동등해진 위상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미 대세는 free ski로 굳혀져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모습들이 초기의 형태로 정착되어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만, 트윈팁 스키가 이곳 북미에서 대세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이유는 환경 탓입니다. 해서 앞으로 한국과는 점점 더 달라지는 모습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한국의 스키장은 모든 슬로프를 그루밍 합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스키어들이 카빙 스키를 선호하는 이유입니다. 북미에 있는 대부분의 큰 스키장들은 그루밍된 곳 보다는 그렇지 않은 곳이 훨씬 많습니다. 당연히 free ski가 득세할 수 있는 환경인 것입니다. 게다가 대중들에게 열려있는 스키장조차도 산세가 험하고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이 한국과는 조금 다릅니다. 제가 요 밑에 올린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한국에서는 스키장 갈 때 삽 가져 가시나요? 모글 조성할 때 필요하긴 하지만..ㄹ그냥 예를 든 것입니다.
재미는...
여러분은 알파인(카빙) 스키 신고 그루밍된 사면에서 속도를 즐기시는 게 재밌으세요, 아니면 모글 스키 신고 모글 타는 게 재밌으세요? 그건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요. 저는 후자를 선택하겠습니다. 그게 제 취향이거든요. 가령 또, 누가 저에게 이렇게 묻는다면..모글 스키 신고 모글 타는 게 좋으세요, 아니면 허리 두꺼운 스키 신고 파우더를 즐기실래요? 뭐 당연히 후자를 선택합니다. 여러분도 그러시리라 생각합니다. 여건만 된다면요. 그쵸? 그리고 파우더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자연 모글들을 요리하는데도 별로 문제가 없습니다. rocker로 자연 모글을 가봤더니 참 재밌던 걸요.
스키를 탈수록 점점 더 험한 꼴(?)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의 욕심인 모양입니다. 저만 그런 건가요?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당연히 험한 꼴을 보고 싶어서 사람들이 대거 free ski로의 전향 혹은 입문했거나 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더 재밌거든요. 다름이 있다면 탈수록 점점 더 두꺼운 쪽으로 취향이 옮겨간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점점 더 깊은 파우더를 찾아갈 테니까요. 그 만큼 중독성이 강합니다. 이제는 트윈팁이라는 말도 잘 안합니다. 그냥 free ski 중에서 종류가 좀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난 몇 년 스키를 포기하고 살다가, 이번 시즌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스키를 재개했습니다. 전에 한국에서 갖고 온 모글 스키 달랑 하나로 시즌을 시작한 저는, 바로 그 날 트윈팁 스키를 하나 장만했습니다. 지금은 그 짓(?)을 후회합니다. 왜 미리 데모스키를 타보지 않았나 하고 말입니다. 물론 그 때 새로 산 스키도 허리가 92mm나 되는 거구의 것입니다만, 이제는 오히려 가늘어(?) 보입니다. 이번에 rocker를 신어 보고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답니다. 요즘은 어떤 rocker를 하나 장만할까를 궁리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목으로 다시 돌아가 스키장의 모습을 보면..가령, 어떤 사람이 무지 두꺼운 스키를 신고 산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스키 좀 타는 놈인가부네...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복장만 봐도 어떤 타입(그리고 어느 정도인지도)의 스키어인가를 대략 알 수 있는 것처럼, 스키의 모양만 봐도 내공이 얼마나 쌓여 있는 스키어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요즘은 그 척도가 두께입니다. 제 눈에는 그렇던 걸요. 제 아무리 좋은 비싼 옷을 입고 있어도, 내공 쌓인 허름한 복장의 스키어의 아우라를 따라갈 수는 없는 겁니다. (하기야 요즘은 그 허름한 모양의 비싼 옷들도 나오더군요. ^^)
자동차의 경우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것은 당연히 세단이나 스포츠카들이 유리합니다. 그루밍된 사면에서는 카빙 스키가 유리하죠. 비포장 도로에서는 뭐 짚형이나 suv 등의 4륜 구동이 유리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루밍 되지 않은 사면에서는 허리 두꺼운 스키가 유리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카빙 스키나 트윈팁이나 세부적인 사항을 열거하려면 한도 끝도 없겠지요. 암튼 한국은 포장된 길만 있지만, 여기는 비포장 길이 더 많습니다. suv는 포장 도로도 달릴 수 있지만, 스포츠카는 비포장 도로를 달리기 곤란합니다. 같은 원리로 산을 마음껏 누리려면, 여기서는 비포장 길에 대한 준비가 필수적인 것입니다. 카빙 스키로 파우더를 타지 말란 법은 없지만,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허리 두꺼운 스키로 그루밍된 사면만을 타라고 하라면 재미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요는, 환경에 따라 어떻게 스키를 즐기는 것이 보다 유리한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스키 관한 모든 것에는 트렌드가 숨어있습니다. 옛날에야 오로지 스키 하나만 있었고, 누구나 비슷한 스키를 탔습니다. 회전 스키나 대회전 스키가 그것일 것입니다. 일반인들은 활강 스키를 타지는 않았으니까요. 암튼 그 최정상에는 올림픽 금메달 선수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지금은..그렇진 않죠. 사실 예전에도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언제나 back country skier는 존재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언제나 그 최정상에는 올림픽 금메달 선수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지금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들은 분야가 다른 곳에서 다른 짓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모글스키팀의 식구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나름 최대한의 재미를 추구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파우더를 만나기 힘들다는 핸디캡이 있기는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가장 잘, 빨리 적응할 수 있는 분들이기도 합니다. 에어 연습도 열심히 하세요. 언젠가는 파우더를 만날 날이 올 것이고, 그것을 즐길 자격이 여러분들은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들은 그 선을 넘어오신 지가 오래 전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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걍 봐도 너무 멋짐.. 친절한 파우더씨. ㅋ 아.. 그리고 모글 이야기도 좀 써주셈.. 제발~
모글 얘기? 그건 자기 전문이잖아.
그날이 올때까지 준비해야겠습니다. 플립도 미리미리 연습해둬야 그곳에 가서 뒤집어 줘야겠어요....그날이 올때까지...
네~ 그러세요.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도 틀어 놓고... 그래도 에어는 꼭꼭 답글 달아줘서 참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모글 스키 타시는 분들은 이런 글에는 관심이 없을 테지만..여기서 난 뭐 하나 몰라.. 읽지도 않는 글 쓰고..혼자 열 내고..나두 그냥 모글 얘기로 전향할까...?
우왕...무슨소리에여...지금은 모글을 타고 있지만 누구나 파우더에서의 스킹을 꿈꾸리라 생각해요. 정말 파우더에서의 프리스킹 기대되고 벅차 오른답니다. 그리고 파우더에서의 스키뿐아니라 영상에 나오는 트리런과 점프, 에어트릭등을 위해서라도 지금 모글과 파크에서 기초를 다져서 정말 그날이 오면 멋지게 실력 발휘를 해줘야되니까 계속 목표를 가지고 달릴수 있도록 동기부여 해주세욧~~~^^
우리 모글스키팀의 식구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나름 최대한의 재미를 추구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파우더를 만나기 힘들다는 핸디캡이 있기는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가장 잘, 빨리 적응할 수 있는 분들이기도 합니다. 에어 연습도 열심히 하세요. 언젠가는 파우더를 만날 날이 올 것이고, 그것을 즐길 자격이 여러분들은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들은 그 선을 넘어오신 지가 오래 전일 테니까요.
<<-- 이 말에 완전 감동이다.. 정말 멋진 글!! 강추~
땡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