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의 롤스 로이스 무스탕.... 극적인 개발과정
- 그리고 유럽상공의 챔프가 되어 버린 프롭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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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기 전에 홈지기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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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유럽.... 독일 제 3 제국은 루프트바페를 등에 업고 발빠른 지상군을 앞세워 주변국들을 하나 하나 무너뜨려 나가고 있었다. 이제 영국은 새로운 챔피언으로 등장한 독일을 상대할 마지막 도전자가 자신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전투기가 필요했고 미국 항공사에 주문한 전투기 하나가 이차대전 유럽 상공의 항공전사를 바꾸게 된다. 바로 그것은 야생마 P-51 무스탕이었다. 미려한 모양새와 뛰어난 성능,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종일 수밖에 없는 요건을 모두 갖추었지만, 개발초기 우연스러운 일들이 겹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매력적인 전투기는 우리의 뇌리에 남아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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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스러운 무스탕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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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에 전쟁의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하던 1939년, 영국은 허리케인과 스피트화이어의 생산에 매진하면서, 한편으로는 미국에 "무기 구매 시찰단"을 보내, 미국산 전투기를 구입하려 했다. 다가올 독일과의 일전에서 공군이 얼마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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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무스탕 D형의 모습... 곡선이 아름답고 성능 또한 뛰어나, 역시 이차대전 최고의 프롭전투기로 알려져 있다. 홈지기 개인적으로는 스피트화이어보다 무스탕 D형의 생김새를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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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미국은 정식으로 유럽전선에 참전한 상태가 아니었고, 전쟁이란 대서양 건너 남의 집에 난 불이나 마찬가지라, 아직 이렇다할 성능의 전투기를 생산하고 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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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이 구입가능한 제품은 커티스(Curtiss)항공사의 P-40과 P-39기로, 객관적으로 독일의 메서슈미트 109 보다 떨어지는 성능의 기종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어 영국은 이 기종들을 구입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한가지 문제점이 있었는데, 커티스 항공사가 미육군 항공단에서도 많은 양의 생산 주문을 받아 놓은 상태라 영국이 원하는 만큼 빠른 시간내 공급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영국 시찰단은 다른 항공사에서 커티스사에 라이센스를 받아 P-40기를 생산해 주길 원했고, 노스 아메리카 (North America)항공사를 방문해 의사를 타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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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뜻 밖에도 노스 아메리카사의 사장 제임스 킨델버거(James H. "Dutch" Kindelberger)가 새로운 제안을 내놓게 되면서, 이차대전 최고의 전투기로 손꼽히는 무스탕기가 태어나게 된다. 즉 킨델버거는 영국시찰단에게 120일간의 여유만 주면 P-40 보다도 뛰어나며, 전혀 새로운 개념의 전투기를 안겨 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한 것이다. 노스 아메리카사는 1934년 창립된 항공사로 비록 이제까지 이렇다할 전투기 생산 경험은 없었지만, 충분히 잠재력이 있는 항공사였고, 사장 킨델버거 역시 뛰어난 비즈니스맨이었다. 킨델버거는 새로운 전투기를 호언장담하며 영국인들에게 배팅을 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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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의 전투기를 어느 정도 공급받을 경우에도 3-4 달은 훌쩍 지나갈 것인데, 새로운 게다가 성능까지 더 뛰어난 전투기를 비슷한 시간내 공급 받을 수만 있다면, 영국으로서도 대만족이었다. 드디어 1940년 5월 29일, 영국은 노스아메리카사와 계약을 체결했고, 120일 보다 좀더 시간적 여유를 주어, 늦어도 1941년 1월까지는 원형기를 완성하고 1941년 9월까지 생산을 완료하기로 이야기를 마쳤다. 그리고 새로운 전투기는 대당 5만 달러를 받기로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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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노스 아메리카 항공사의 설계자 쉬뮤드의 모습이 그려진 미국의 편지 겉봉투의 모습.... 무스탕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프롭기 1위의 기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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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노스 아메리카사의 수석 항공기 설계자는 에드가 쉬뮤드(Edgar Schmued)로 원래 독일인이었는데, 1925년 경 브라질로 이민을 갔다가, 1930년 다시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이었다. 또 그와 함께 일하던 공기역학 전문가로 에드워드 호키 (Edward Horkey)라는 뛰어난 설계자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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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노스 아메리카사의 사장 킨델버거가 영국인들에게 호언장담한데는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고, 믿는 구석이 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 박치기하자는 제안은 절대 아니었다는 것이다. 즉 영국의 제안을 받기 훨씬 이전부터, 이들 설계진들은 새로운 전투기 설계를 구상하는 중이었으나 구체적으로 판매할 대상이 없었을 뿐이었는데, 영국과의 계약은 이들의 설계를 합목적화시켜준 것이었다. 드디어 그들이 구상하던 NA-73X 전투기(NA는 노스 아메리카를, X는 시험기를 의미하는 약자)가 본격적인 디자인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것이 무스탕의 원류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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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스 아메리카사는 전투기 설계을 진행하면서 커티스 항공사의 새로운 기종인 XP-46기의 디자인을 참고로 하게 된다. 이에 커티스사는 노스 아메리카 항공사가 자신들의 원판을 무단으로 표절했다고 비방에 나섰지만, 노스 아메리카의 반응은 한마디로 단호했다. 즉 노스아메리카는 커티스의 설계를 모방한 것이 아니며, 커티스사 디자인 중 잘못된 부분을 간파해 새로운 전투기 설계에서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참고했다는 것이다. 사실 노스아메리카의 설계가 커티스사와 유사한 부분이 약간은 있었지만, 주된 설계는 독창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도 나중에 NA-73은 생산에 들어가 무스탕기의 원류가 되지만, 커티스의 XP-46 계획은 백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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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커티스 항공사에서 제작 중이던 XP-46기의 모습... 노스 아메리카사는 무스탕을 설계하면서, 이 커티스기의 옥의 티를 찾아, 자신들의 설계에서 같은 부분을 삭제하는 식으로 참고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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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여기서 무스탕의 원형기인 NA-73기의 주된 설계상 특징을 알아보자. 전투기 리뷰를 진행하면서 자료를 구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 뭐니뭐니해도 주익의 설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NA-73 역시 독특한 구조의 주익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아마도 무스탕의 놀라운 성능을 설명하는 열쇠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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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73기의 주익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Laminar flow wing이라 할 수 있다. 즉 당시 대부분의 항공기들의 주익은, 날개의 단면(Airfoil) 중 가장 두꺼운 부분이 앞쪽 5분의 1지점에 위치한다. 즉 앞전(leading edge) 바로 뒤가 통상적으로 가장 두꺼운 날개 부분이 된다. 그러나 NA-73기의 주익에서는 가장 두꺼운 부위가 좀 더 뒤로 옮겨져, 날개단면의 거의 중앙부위에 위치하며, 또 특이하게 날개 위, 아래의 면이 거의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다. 이것을 라미나 윙(Laminar wing)이라고 하며, 이런 설계는 현대 전투기들의 주익의 구조와 유사하다. 이런 주익의 구조는 날개위에서 일어나는 공기 와류를 줄여주며, 공기저항도 격감시켜, 결과적으로 빠른 속력과 긴 항속거리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파워의 엔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나중에 무스탕기의 엔진을 교체함으로써 진정한 성능을 발휘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이유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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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스아메리카가 최종적으로 내놓은 무스탕의 원류 NA-73기의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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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73기에는 2정의 12.7 mm (0.50 캘리버)기관총을 기수부분에 장착했고, 주익안쪽에 한정의 12.7 mm 기관총과 바깥쪽에 2정의 7.62 mm (0.30 캘리버)기관총(주익에 총 6정의 기관총)을 장착했다. 캐노피는 레이저백(razorback, 뒤쪽이 동체에 의해 막힌 형태) 캐노피를 채택했으며, 캐노피 후방은 8 mm 두께의 장갑판으로 보강했다. 랜딩기어는 날개에서 중앙쪽으로 접혀 들어가게 끔 되어있어, 랜딩기어사이의 간격이 3.66 m에 이르렀고, 지상에서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후미 착륙용 바퀴는 이륙시 동체로 접혀 들어 가면서 문이 닫혀 동체내에 밀폐되게끔 설계되어, 공기 저항을 줄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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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1940년 9월 9일, 반짝 반짝 거리는 첫 NA-73X기가 완성되었는데, 이것은 킨델버거 사장이 말한 120일에서도 일주일이나 빠른 102일만의 일이었다. 말이 쉽지 102일간 노스아메리카의 설계진은 날밤 새우며 일에 매진해 온 것이었고, 원형기가 생산되었을 때는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있어, 킨델버거는 며칠씩 휴식 시간을 주었을 정도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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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73기의 실제 모습.... 여기서 몇가지 보완을 한 것이 NA-73형이고 무스탕의 아버지벌에 해당한다고 보면 되겠다. 당시 이 디자인이 독일의 Bf 109와 유사하다고해, 독일에서 기술을 빼낸 것이 아니냐는 소문도 있었다고 한다. 얼핏 보면 정말 Bf 109의 초기형들과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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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참 재밌는 것은 이들이 당시 만들어낸 원형기에는 엔진이 얹어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노스 아메리카사가 앨리슨 엔진(Allison)을 공급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예상보다 한달이나 늦게 도착해, 특이하게도 기체 프레임은 완성되었는데, 전투기의 심장이라할 수 있는 엔진이 없는 원형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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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누군가 절대자가 "무스탕기에는 앨리슨 엔진이 어울리지 않아, 다른 엔진을 찾아봐"라는 식으로 후에 엔진의 교체가 가져올 무스탕의 화려한 미래를 암시하는 복선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로 부터 한달하고도 보름 후인 1940년 10월 26일...... 드디어 노스아메리카 항공사의 시험비행조종사 밴스 브리스(Vance Breese)가 늠름하게 원형기에 올라 멋진 처녀비행을 시작했다. 영국은 처음엔 320기 주문 예정이었으나, 최종적으로 총 620기를 생산해 줄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1940년 12월 영국 공군은 이 새로운 전투기에 무스탕(Mustang) I 형 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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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P-51 (영국공군 명칭 MUSTANG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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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년 10월, 드디어 최초의 무스탕 전투기들이 선박에 실려 영국 리버풀 항으로 출발했고 1942년 1월, 영국 공군은 20 대의 무스탕을 이용해 본격적인 자체 성능시험에 들어갔다. (이 기종을 영국에서는 무스탕 I 형, 미국에서는 XP-51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한다) 당시 무스탕을 시승한 영국 시험 비행 조종사의 말에 따르면, 무스탕이 동시대기인 스피트화이어 V형 보다 더 빠르며, 특히 저공에서 기동성이 스피트화이어를 능가하고 항속거리도 우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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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몇가지 문제점이 있었는데, 캐노피 구조가 영국기들과 좀 달라, 적응을 해야 한다는 것과 영국은 7.69 mm(0.303 캘리버) 기관총을 표준으로 사용하는데, 미국산 무스탕에는 7.62 mm (0.30 캘리버)가 장착되어 있어, 약간 손을 봐야한 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가장 큰 문제거리는 엔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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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에 수출된 무스탕 I형 일러스트..... 영국은 완변한 전투기를 원했으나, 앨리슨 엔진을 장착한 무스탕기들은 영국의 기대에 못미치는 기종이었고, 당초 예정과는 달리 전투기가 아닌 지상공격기로 전락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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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초기 무스탕에는 미국산 앨리슨 V-1710 엔진이 탑재되어있었는데, 1150 마력의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스피트화이어 V형이 1185 마력을 낼 수 있는데다, 무스탕보다도 훨씬 가벼워, 무스탕은 겉은 번드르한데 힘이 딸리는 기종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머린엔진이 아닌, 앨리스 엔진을 단 무스탕은 프롭기용 피스톤엔진을 장착한 F-16을 상상하면 딱 맞겠다) 게다가 미국은 고공 공중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저공기동에 촛점을 맞춰 엔진을 설계했기 때문에, 앨리슨 엔진은 고공으로 올라갈수록 성능이 현격히 떨어지는 결정적인 단점을 드러냈다. 특히 이런 현상은 4000 m 상공부터 더 심해, 영국공군은 무스탕을 전투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최종 판단을 내렸고, 대신 지상공격용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후에 이차대전 전투기중 최고라는 소리를 듣게 될 무스탕이지만, 유년 시절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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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상공을 비행중인 북미의 야생마 무스탕 I형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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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1월 초부터 무스탕 I형은 일선 영국 공군 부대에 배치되었는데, 멀리서 보면 독일의 Bf 109와 그 실루엣이 비슷해(사실 처음 무스탕이 만들어졌을때 메서슈미트와 외관상 비슷하다고 해서 혹시 독일에서 기술을 빼내 만든게 아니냐하는 소문도 무성했다고 한다.), 피아식별에 문제가 발생했고 영국공군은 무스탕의 주익에 노란 선을 몇줄씩 긋게 했는데, 이것이 우리가 자주 보게 되는 무스탕 도색의 원류이기도 하다. 무스탕I형은 주로 정찰용으로, 또 프랑스에 위치한 독일 지상목표 공격용으로 사용되었고, 일부 영국 해안 방위 부대에도 배치되어 영국지상목표를 겨냥해 저공비행해오는 독일 Fw 190기들을 방어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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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무스탕 I형의 모습... 주익의 앞에 장착된 기관총의 총구를 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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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8월 프랑스 해안에서 무스탕기가 첫 격추를 달성해 내는데, 아이러니컬 하게도 조종사는 영국 공군에 자원입대한 미국인 홀리스 힐스(Hollis H. Hills)로, 미국산 전투기에 미국인 조종사가 영국 공군에서 첫 격추를 이룬 것이다. 여담으로 힐스는 나중에 미해군에 입대해 F6F 헬캣 전투기를 몰게되었다고 전해진다. 또 무스탕 I형이 기동이 딸리긴 했지만, 영국이 당시 보유하고 있던 전투기 중 항속거리가 가장 길었기 때문에 1942년 10월 독일 본토에대한 최초의 공격에 나선 단일 엔진 전투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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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51-1 (영국 명칭 MUSTANG IA 형)
- 역시 영국에서 사용한 무스탕 IA형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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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73형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NA-91기의 생산이 시작되었고, 1942년 7월 경부터 영국공군에 공급되었는데, 이전 버전과 구별하기 위해 영국에서는 무스탕 I A형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미육군 항공단 역시 이 기종을 57대 구입했다. 이것이 최초로 미국에서 사용한 P-51 전투기들로 P-51-1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되면서, 미국인들은 아파치(Apache)라는 별명을 사용하려했으나, 이미 영국에서 시작한 "무스탕"이라는 명칭이 보편화되어 있어, 미국에서도 그대로 무스탕이라 부르기로 했다.이 기종은 기수의 기관총을 없애고, 주익에 장착되어 있던 구경이 작은 기관총 6정 대신, 4정의 20 mm 기관포로 교체해 화력을 보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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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36, P-51A (영국명칭 MUSTANG II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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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4월 미육군 항공단은 노스아메리카사에 무스탕을 급강하 폭격용으로 제작해 주길 의뢰했고, NA 73형을 업그레이드한 NA-97형을 A-36A 인베이더(invader)라는 명칭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급강하 브레이크를 장착했고, 각 주익에 12.7 mm 기관총 2정씩을 장착해, 기수의 2정까지 도합 6정의 12.7 mm 기관총으로 화력이 업그레이드 되었다. 225 kg 투하용폭탄을 장착가능했고, 284 리터의 보조 연료 탱크도 달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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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아프리카 전선에 처음 실전 투입된 미국의 A-36A 인베이더 급강하 폭격기. 노스아메리카사에서 무스탕의 원판을 주문에 따라 급강하 폭격용으로 재디자인 한 것인데... 주익에 급강하 브레이크를 장착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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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미육군 항공단내에서 급강하 폭격기의 필요성에대한 논란이 생기면서, 다시 전투기로 선회했고, 새로운 전투기 P-51 A형이 만들어졌다. P-51A형은 최초로 영국이 아닌, 미국 자신을 위해 생산되기 시작한 무스탕이었는데, 1943년 2월 최초의 시험비행을 가졌다. P-51A기의 무장은 A-36A기와 동일했으며, 급강하 브레이크를 제거 하는 등 몇 가지만 뺀다면, 외형 역시 비슷했다. 또 앨리스 V-1710-81 엔진을 사용했는데 고공에서의 기동력 향상을 위해 새로운 출력 시스템과 더욱 큰 프로펠러를 장착했다. 이제 미국은 그들의 단골 손님 영국이 아니라 미국의 날개로서 무스탕의 진가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P-51A형은 영국에서는 무스탕 II라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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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51A형이 영국으로 건너가 무스탕 III형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된 기종..... 원래 무스탕이라는 항공기는 영국을 위해 만들어진 기종이었으나, P-51A형부터는 직접 미군의 주문에 의해 개발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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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경우, 무스탕을 1942년 봄부터 실전 투입했던 것에 비해, 미국은 약 1년이 늦은 1943년 봄, 북아프리카에서 P-51A와 A-36A기를 처음 실전에 사용해 보기 시작했다. 이들은 북아프리카와 지중해에서 주축군과 싸워나갔고, 특히 1943년 7월 시실리 상륙작전에서 성공적인 임무를 수행했으며, 그해 9월 이탈리아 반도 상륙시에도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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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미국에서도 역시 지상공격기로 주로 사용되면서, 임무의 성격상 저공비행을 자주 해야만 했고 , 적 지상군에게 노출될 위험성이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적대공포 파편에 수냉식 엔진이나 냉각시스템에 한방이라도 명중되면, 냉각수가 다 빠져 나가버려, 엔진이 과열되고 종종 화염에 휩싸이는 취약한 면모를 모였다. 또 실루엣이 독일의 Bf 109와 유사해, 아군에 의해 격추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등, 몇가지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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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마이클 루소... 성능이 많이 떨어지는 P-51A 무스탕을 가지고 에이스를 기록한 유일한 조종사.....
- 그러나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앨리슨 엔진을 장착한 초기 무스탕기에 탑승해, 에이스가 된 조종사가 유일하게 한명 있었는데, 그는 미육군 항공단 소속 마이클 루소(Michael T. Russo)였다. 정말 운좋은 조종사라고 해야 할지, 뛰어난 실력의 조종사라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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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일부 P-51A기는 1943년 여름 중국, 인도, 버마 전선에서도 활약하기도 했다. 원형기에서부터 P-51A형까지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앨리슨 엔진을 장착했는데, 이것은 무스탕 고유의 날개 구조인 라미나 윙(laminar wing)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엔진이었다. 즉 라미나 윙이 제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좀 더 강력하며 궁합이 잘맞는 엔진이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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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적전투기를 만나면 먼저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초기 무스탕기가, 새로운 엔진의 장착으로 도리어 적전투기를 찾아나서는 프롭전투기의 제왕으로 다시 태어나는 화려한 변신을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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