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무엇일까?
얼마전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인터뷰를 보니 '남이 안보면 버리고 싶은 것'이 가족이라고 했다. 뛰어난 코미디언이기도 한 그의 진면목이 느껴지는 말이다.
또 조영남선생은 '남이 봐도 버리고 싶은 것이 가족'이라고 사석에서 이야기했다. 나는 두 천재의 표현을 들으면서 가족이 얼마나 큰 굴레인가, 발목잡는 존재인가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나는 가족을 갖고자 하고 있을까? 비트 다케시(기타노 다케시가 코미디를 할 때 쓰는 예명이다)도 가족을 갖고 있고 조아저씨도 결혼선언사건으로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잖은가?
내게 가족이란 항상 복잡하고 착잡한 심정으로 보게 하는 존재이다. 젊은 날 내가 반항했던 아버지가 힘을 잃고, 뛰어난 머리를 지닌 어머니가 꿈을 접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두렵고 무서워졌다. 나도 저들처럼 될 것이다. 어느 날 이빨빠진 사자처럼, 싸울 힘을 잃을 호랑이처럼 저렇게 늙어가는구나하는 내 삶의 예고편을 보면서 나는 심사가 복잡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가족을 버리고 싶어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갓난 아이를 봐도 그아이가 겪을 좌절이 걱정되고 적당히 때를 묻히며 능글거릴 모습이 싫어서 말이다. 게다가 가족이란 어떤 존재인가? 누구말대로 '징글징글한 존재'이다. 맨 밑바닥을 보여주는 대상이다. 가정안에서 일어난 싸움은 핵전쟁을 방불케 하고 가족들이 서로 주는 상처는 때로는 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치명적이다. 어머니와 딸사이의 애증, 아버지와 아들사이에 골깊은 분노, 그리고 형제끼리의 원한은 때로는 소름이 끼칠 때도 있다. 어린 시절 '제삿날이면 서로 술잔던지며, 싸우는 집안은 우리집 밖에 없어'하며 몹시 수치스럽게 생각했던 나는 의외로 그런 집안이 적지 않다는데 큰 위로를 받았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가족과 함께 있을까? 며칠전 나는 한 호텔 커피숍에서 본 '늙은 아들과 늙은 어머니'의 모습에서 그 답을 얻었다. 아들은 60세쯤, 어머니는 80세는 넘어보였다. 아들은 모처럼 어머니를 모시고 나온 듯 음식을 시켜서 어머니가 한입이라고 더 먹을 수 있게 계속 맞은 편 자기자리와 어머니 자리를 왔다갔다 했다. 이제 아무런 힘도 없는 어머니는 조용히 오물거리며 음식만을 들었다. 이제 60세가 넘은 늙은 아들과 80세의 어머니 사이에는 묘한 평화와 안도가 있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남아있는 날'이 얼마남지 않은 것을 직감하고 최선을 다해 배려하고 있었다. 그 어머니 역시 '늙은 아들'이 안쓰러운지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한 입이라도 더 먹으려 노력했다.
그 모자사이에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 사랑만큼 전쟁과도 같은 미움, 처절한 증오도 있었을 것이다. 왜 인간이니까, 가족이었으니까-그런데 지금 그들은 전쟁후 완벽한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오랜 전쟁동안 서로에게 입힌 상처를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무언의 사과를 하고 화해를 하고 서로 용서를 빌고 있었다. 아주 단순한 식사, 일상을 함께하는 가족만이 해낼수 있는 일이었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 천천히 용서를 빌수 있는 기회, 가족에게서만이 받을 수 있는 성장의 선물이기 때문이었다.
< 방송인ㆍsatuki@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