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이 있는 풍경 |정기태
미세하고 수려한 문체로
생생한 고기잡이 체험과 우리 식탁에 오른 생선에 관한 역사 , 바다고기에 얽힌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주는
기자 정 기 태 |
세상 인심이 각박해 질수록 우리가 먹기 위해서 사는 지 살기 위해서 먹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 하지만 그런 속절없이 지나가는 세월 속에도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눈을 돌려 바라보면 아주 오랜 시절부터 우리가 면면히 이어온 아름다운 전통을 발견할 수 있다. 수렵문화가 그것이다. 우리의 먹거리는 세계화에 발맞추어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뛰어난 문화양식의 하나이다. 현명한 자는 산길을 가도 발끝에 이는 풀잎 하나 수이 보지 않고 동구에서 만나는 샘의 물맛 하나에도 마음을 빼앗긴다.
이런 지혜를 일깨우기 위해 한 일선 기자가 먼 여행길에 나섰다 . 밥상머리에 어렵지 않게 올라오는 고등어부터 멀리 강진만의 짱뚱어까지, 그 생선들이 어떻게 잡혀 어떤 맛을 내는가를, 나아가 그 물고기들이 자리하는 풍경에는 어떤 아름다운 모습들이 스며 있는가를 문학적 필치로 담아내고 있다. [고기잡이 여행](바보새) 사회부 기자로 잔뼈가 굵은 기자 답지 않게 미세하고 수려한 문체가 위직량 사진기자의 작품과 함께 좋은 길동무로 다가온다. 바닷 바람 물씬 풍기는 신간을 앞에 두고 저자와 마주 앉았다. 긴 여행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정기태 기자의 모습은 만선의 항로처럼 풍요로워 보였다.
ㅂ ㅊ 먼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서울의 인상이 어떻습니까?
ㅈㄱㅌ 서울은 저에게 늘 두 가지 이미지를 갖습니다. 답답하다는 느낌과 친근하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상반된 것이지만, 목포말로 절친한 ‘깨복쟁이' 친구들이 서울에 있다는 점으로 친숙합니다. 반면 삭막함, 편리함, 느림, 혼돈 등이 한데 어우러져 답답함을 느끼게 합니다.
ㅂ ㅊ [고기잡이 여행]을 기획한 동기는 무엇인지요?
ㅈㄱㅌ 목포태생인데다, 3년의 군(전투경찰) 생활을 완도 신지도와 대신리, 해남 통호리, 신안 병풍도 등 해안에서 한 덕분에 어촌의 생활은 늘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90년대 중반 전남도청을 출입하면서 [바다를 열자] [전남 어촌 오늘과 내일] [활로는 있다] [수산 포커스] 등 장기시리즈를 신문에 연재하면서 수산과 어촌에 대한 기본 골격을 갖추게 됐습니다.
훗날 광주일보 자매지인 월간 『예향』 담당 차장으로 발령 받으면서 전국의 어촌 생활과 고기잡이 실태를 ‘오늘 있는 모습 그대로' 수채화처럼 투영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직접적인 동기는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 한승원 선생의 [갯비나리]라는 소설과 송수권 시인의 [남도의 맛과 멋]을 수 차례 읽으면서 ‘신문기자'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점입니다.
시인과 소설가만이 갖고 있는 ‘거대한 언어의 벽'을 넘을 수 있는 길은 ‘현장을 충실히 전달하는 것 뿐'이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죠. 전남사람으로서, 지방신문 기자로서, 지역에 무엇인가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거기에 한 몫을 했을 것입니다.
ㅂ ㅊ 책의 특성상 발로 뛰어야 하는 작업이었을 텐데 어려움이 많았겠습니다. 어떻게 시간을 내서 취재했습니까?
ㅈㄱㅌ 3년 동안 매월 2~5일 정도 장기출장을 냈습니다. 그 때문에 다른 많은 동료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출입처를 전담하고 있을 때 허드렛일을 도맡아 한 선후배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나 위직량 사진기자의 입장에선 한없는 해방감을 만끽했습니다만.
ㅂ ㅊ 참고 자료나 주위의 도움은 없었는지요.
ㅈㄱㅌ 자료와의 싸움이었습니다. [고기잡이 여행]을 시작하기 전 우리나라 연근해 고기와 어촌 풍속에 관련된 거의 모든 자료와 문학작품을 섭렵했습니다. 선각자였던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와 정문기 박사의 [어류박물지] 그리고 한국해양연구소 유재명 박사의 [물고기 백과] 등등은 어류의 생태에 관한 기본 텍스트였습니다.
국립수산과학원(구 국립수산진흥원)이 펴낸 [연안 어업 기본조사 보고서]는 어구어법의 토대를 설명하는 중요한 기초자료였습니다. 수협중앙회 <월간 우리바다>팀의 선행취재는 부족한 활동반경을 커버해주는 방패막이었습니다. 해양수산부 산하기관 수협, 지방자치단체, 해양경찰 등등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었으면 현장접근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수산 및 어촌문제에 관심을 갖고 자주 만나 밤새워 토론했던 전장포 새우잡이배 박기환 선장, 흑산 홍도 이래진 선주, 고흥군청 임창호 과장, 여수 거문도 수협 임석희 씨 등은 든든한 ‘빽'이었습니다.
그의 눈빛에는 아직도 남해 바닷가의 풋풋한 비린내 , 어부들의 걸판진 입심이 덧나지 않은 모양이다. 취재 고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만큼 그는 바다와 거기 사는 바닷사람과 한 몸이 되어 그들의 속내를 탐색해 온 것이다. 이는 꼭 기자의 근성만이 아니라 우리의 해양 문화가 얼마나 다정다감한 이웃인지를 대변해주는 대목이었다.
ㅂ ㅊ 책에는 무려 31곳의 지명과 물고기가 등장합니다. 우문 같지만 굳이 한 군데의 멋과 맛을 꼽는다면 어디를 꼽겠습니까?
ㅈㄱㅌ 많은 사람들은 흑산 홍어의 곰삭은 맛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은 싱싱한 것을 선호한다는데 놀랐습니다. 과거 냉동시설이 없던 시절, 흑산에서 잡은 홍어가 목포와 영산포 물목을 오면서 저절로 ‘썩은 것'을 먹을 수밖에 없던 습성 때문입니다. 물고기 중 최고의 맛은 흑산 홍어 암치 중 성 관계를 맺지 않은(아다라시) ‘폴랭이'의 맛이라고 생각합니다.
ㅂ ㅊ 우리가 사는 게 바쁘다 보니까 음식을 먹어도 말 그대로 배를 채우기 위해 먹습니다. 그러나 먹거리의 진미를 알며 먹는다는 것은 소설이나 그림의 의미를 알고 보는 것과 같겠지요. 음식을 먹는 자세랄까 음미하는 방법 좀 가르쳐 주시지요.
ㅈㄱㅌ 전, 음식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많이 먹는 체질도 아니고-. 고백컨대 제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ㅂ ㅊ 그 많은 곳을 다니다 보면 크고 작은 애환도 많았을 것입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말씀해 주시지요.
ㅈㄱㅌ 사진을 담당한 위직량 기자는 흑산 홍어와 여수 거문도 갈치 취재 때 높은 파도 때문에 워낙 고생을 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대요. 저의 경우 명태와 고등어 취재동행을 약속했다가 어로현장의 접근이 무산됐을 때 가장 화가 났습니다. 위 기자와 둘이서 마무리 글을 쓴 뒤 일본과 뉴질랜드, 호주와 중국의 어촌과 어항을 함께 여행한 게 즐거웠습니다.
ㅂ ㅊ 글을 쓰실 때 기자와 고기잡이 여행가로서의 차이점이 있던가요.
ㅈㄱㅌ 저는 여행가가 아닙니다. 기자로서 충실하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책 서문에 밝혔듯이 어민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했던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 쓰는 사투리, 토속어, 일본식 명칭, 구어체 등을 그대로 여과 없이 사용했습니다.
ㅂ ㅊ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시지요.
ㅈㄱㅌ 훗날 기회가 있다면, 북한쪽 전통 고기잡이 어업을 둘러보고 싶습니다. 노르웨이의 대구잡이, 캐나다의 연어잡이, 남태평양의 참치잡이, 북극해의 크릴새우잡이 현장도 직접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개인적인 꿈은 지리산 피아골 자락에 자그마한 집을 짓고 사는 것입니다.
ㅂ ㅊ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 몇 권만 추천해 주세요.
ㅈㄱㅌ 두 권은 앞서 말씀드렸고, 저는 김훈과 박래부 씨의 [문학기행]을 우선 추천합니다. 저 자신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던 책이고,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을 따라 가며 보라]는 정말 가슴을 푸근하게 해주었던 책이었습니다. 곽재구 시인의 [포구기행]도 마찬가지고. 최근엔 불교 계통의 책에 심취해 있습니다. 어울리지 않지만, 제가 바다만큼 산을 좋아하기에, 산에 관련된 신간은 거의 모두 즐겨 읽는 편입니다.
책을 펴니 <고흥 갯장어>가 나온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이렇게 써 내려갔다.
“고흥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지리했다 . 주암호를 왼편에 낀 제법 운치 있는 길이지만, 두어 시간 이상 차를 달린다는 것은 끔찍했다. 게다가 전날 오후부터 잔뜩 찌푸린 하늘도 적잖은 부담을 줬다. 비라도 뿌리면 갯장어잡이 취재 여행은 헛걸음이 되기 때문이었다. 낱알갱이가 몇 개를 머리에 인 벼들이 후두둑 바람에 채이고, 허름한 셔츠의 허수아비가 토막잠에 졸고 있는 풍경도 잔영을 남기지 못했다.
언제였던가 , 시인 한하운이 이 길을 따라 고흥 소록도로 내려가던 때가.
수세미 같은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찔름거리며
가는 길
- 시 ‘전라도길' 중에서
정기태 기자 ...
전남 목포에서 출생하였으며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 <광주일보> 입사 후 주로 사회부 기자로 일했다. 현재 <광주일보> 사회 2부장으로재직 중이며 이번에 도서출판 바보새에서 [고기잡이 여행]을 펴냈다. |
박 철 시인은 ...
60년 서울 출생. 단국대 국문과 졸업. 87년 『창작과 비평』에 시 <김포> 외 15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김포행 막차] [밤거리의 갑과을] [새의 全部] [너무 멀리 걸어왔다]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등이 있다. 97년 『현대문학』에 단편 <조국에 드리는 탑>이 추천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