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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등반의모든것º 스크랩 네팔 훙치
챌린져(최정호) 추천 0 조회 68 07.03.28 14: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네팔 훙치

 

 

2003 한국대학산악연맹팀 대원 5명 등정…초등은 아쉽게 놓쳐

▲ 유철목(위), 김승구 대원이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다. 왼쪽 봉우리가 정상이다.
기분 좋은 날이다. 동쪽으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가 로체를 거느리고 웅장하게 버티고 서 있다. 4월24일 오전 9시25분 김승구 대원이 정상에 올라섰다. 나도 그 뒤를 따라 정상에 섰다. 드디어 우리가 정상에 선 것이다. C4를 출발한 지 4시간만이다. 그러나 새벽에 출발한 후 사흘은 지나 정상에 선 기분이다. 정상에 서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삼세번이라 했던가! 꼭 8,000m가 아니라도 좋았다. 세번째만에 드디어 내가 정상에 섰다. 1997년 가셔브롬2봉(8,035m)에서 7,800m 지점에서, 2001년 K2(8,611m)에선 8,050m 지점에서 돌아섰던 내가 이번 훙치(6,666m)에서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는 정상에 섰다.

C1 데포 식량 까마귀에게 강탈당해

한국대학산악연맹의 네팔 미답봉 등반 계획은 2002년 유엔이 정한 ‘산의 해’와 2003년 에베레스트 초등 50주년 기념, 그리고 한국대학산악연맹 창립 30주년을 맞이해 기념사업의 하나로 수립됐다. 몇몇 대상지 중 선정한 훙치는 2001년 일본대가 봄에 등반했으나 C3까지 진출한 후 실패했다는 보고만 있어 아직 미답봉으로 남아있는 상태였다.

▲ 고줌바 빙하에서 본 훙치 전경.
3월31일 전대원이 서울을 출발한 지 2주만에 BC(4,961m)에 도착했다. 일본팀이 먼저 와서 캠프를 치고 있다. 우리 팀은 그들 아래에 캠프를 쳤다. 정면으로 보이는 훙치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바로 앞에는 넓은 호수가 있고, 중간의 작은 구릉 위로 훙치 한 봉우리만 우뚝 서 있다.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웅장하고 멋지다. 하지만 등반도 만만치 않게 보인다. 과연 우리에게 정상을 내줄까.

4월2일 라마제를 지낸 다음날부터 캠프 설치를 시작했다. 나와 김전암·김성호 대원, 앙카미 셰르파, 펨바 셰르파가 텐트와 식량을 짊어지고, 1시간 반 정도 걸어 ABC(5,055m)를 설치했다. BC를 여기에 구축하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에 아쉬워했다.

ABC의 일본팀 텐트에 들어서자마자 일본팀 대장은 자료를 꺼내면서 자기 팀은 이곳이 다섯번째고 장비도 많이 가지고 왔다면서 우리 팀은 젊고 기술은 있지만 장비가 모자라서 올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그는 “고정로프 5,500m 중 현재 C1까지 1,500여m를 깔았고, 앞으로도 3,000여m를 더 깔아야 한다”며 “우리가 설치한 로프를 사용해도 좋지만, 그러려면 등정 날짜를 우리 팀보다 하루나 이틀 늦추라”고 요구한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다. 카트만두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장비에 대해 아무 말 없었을 뿐 아니라 BC에서 잘 지내보자고 해놓고 이렇게 뒤통수를 치다니. BC에 내려와 대장 이하 대원들에게 전하니 다들 어이없어한다. 대장께서는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새로 로프를 깔면서 등반하자고 한다.

5일, 본격적으로 등반이 시작됐다. 아침 일찍 전대원이 ABC로 향해 C1(5,616m) 건설에 나섰다. 일본팀은 벌써 C1을 설치한 상태라 100여m 지점까지는 러셀이 돼 있다. 일본팀은 왼쪽으로 바위를 구간구간 트래버스해 로프를 설치했으나, 우리 팀은 설벽으로 직상한 다음 오른쪽으로 조금 돌아서 능선 상에 올라설 계획이다. 오전임에도 날씨가 덥고 고소에 적응되지 않아 벽 아래 5,400m 지점까지 로프를 설치하고 하산했다.

다음날 고소에 적응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탓인지 대원들이 힘들어한다. 결국 어제 오른 곳에서 50여m만 전진하고 모두 철수했다. 저녁 식사 후 회의 결과 김전암 대원을 조장으로 김성호, 정찬일, 펨바 셰르파가 제1조, 나를 조장으로 정희식, 김승구, 앙카미 셰르파가 제2조로 2개조로 나누어 등반하기로 했다.

▲ ABC에서 C1으로 가는 중 사진 찍으며 휴식중인 김성호 대원.
7일 제1조는 ABC에서 등반을 준비해 다음날인 C1 루트작업에 들어갔으나 5,400m 지점에서 C1(5,600m)까지 너무 어려워 캠프를 건설하지 못하고 하산했다. 9일, 능선에 올라서기 전, 어제 김전암 대원이 왜 탈진상태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었다. 설벽 끝부터 능선까지 200여m의 70도 경사벽을 아이젠을 신은 채 암벽등반하다시피 하여 로프를 설치했던 것이다. 나중에는 너무 힘들고, 고정로프가 바위에 쓸려 끊어질 위험이 높아, 설벽으로 우회해 로프를 다시 깔아야했다.

그런데 C1에 텐트를 설치하고 어제 1조가 데포해 놓은 짐을 찾으러 가니 간식거리는 온 데 간 데 없고 침낭과 잡주머니에 넣어놓은 알파미만 남아 있다. 까마귀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먹어치운 것이다.

일본팀, 등정 후 고정로프 잘라버려

C1에서 하루 머문 뒤 C2 구축에 나섰다. 나와 앙카미 셰르파가 로프를 깔면 정희식, 김승구 대원은 짐을 가지고 뒤따랐다. 정오가 지나 대원들에게 짐을 데포시키고 내려가라고 이르고, 나와 앙카미는 계속 전진하다 능선 상의 첫번째 벽 구간에서 트래버스하기 전 로프와 장비를 데포시키고 BC로 하산했다.

 
다음날 오후 C2를 구축한 제1조는 C1으로 내려와 하루를 쉰 뒤 루트작업을 하기를 원했으나, 대장은 6,000m 높이를 경험한 대원이 없으므로 BC로 철수해 이틀간 쉰 후 C3 설치 후 바로 등정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BC에 전대원이 모여 회의한 결과 공격조와 지원조로 나눴다. 제1조는 공격조, 제2조는 지원조다.

14일, 공격조가 BC에서 곧바로 C1에 올라갔다. 다음날 공격조가 C2로 향할 때 지원조 역시 C1에 올라섰다. 며칠 사이 날씨가 나빠지고 있다. 오전에는 맑았다가 정오를 넘어서면 날씨가 흐려지면서 눈이 내리기도 하고 바람도 제법 분다. 오후 2시 이후로는 정상에서부터 안개가 밀려 내려와 C1까지 시야가 가려지고 급기야 눈까지 내리는 날씨의 반복이다.

16일, C2로 향하는데 정오가 다가오자 안개가 끼기 시작하더니 바람도 심하게 불어댄다. 일본팀 C1에서 바람이 멈추기를 기다렸으나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냥 출발했다. 이곳에서 우리 C2(5,831m)까지는 1시간 거리다. 바람이 얼굴을 때릴 때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따갑다. 겨우 캠프에 도착, 식량과 장비를 놓아두고 곧장 BC로 철수했다.

18일, 오랜만에 전대원이 BC에 모여 회의한 결과 우리 제2조가 내일부터 등반하고 제1조는 사나흘 쉬면서 체력을 회복하기로 했다. 오전 5시경 곧바로 C2로 향했다. C2에 빨리 도착해서 편히 쉴 속셈이었다. 그러나 C2에 도착할 무렵 여지없이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 때 시작한 바람과 눈은 다음날에도 그치지 않아 C2에서 하루 머물 수밖에 없었다.

ABC에 도착할 즈음 멀리 정상을 향해 움직이는 점들이 보였다. 일본팀이었다. 여유를 부리더니 우리가 C2를 설치하니 급했던 모양이다. 7개 점으로 보아 4명은 셰르파이고, 3명은 대원인가 보다. 오후에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길에 C2에서 하루 머문 일본팀 셰르파가 C1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등정자는 역시 4명은 셰르파, 3명은 대원이다. 그런데 일본대 대장의 명령에 따라 C2와 C3, 그리고 정상까지의 모든 고정로프를 회수했다고 한다.

셋째 날 나와 앙카미가 먼저 출발하고 김승구, 정희식 대원 순으로 등반했다. 등반 도중 어제 내려오지 않은 일본팀 대원 3명이 내려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 두 명은 젊었고 한 명은 40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걸음이 무척 힘들어 보였다. 일본팀 C2에 먼저 도착한 앙카미가 그곳에 우리의 C3(6,041m)를 설치하자고 한다. 김승구, 정희식 대원에게 텐트를 치게 하고 앙카미는 나와 함께 루트를 확인하자고 한다. 대원보다 더 열성적이다.

정희식 대원에게 C3에 도착하면 텐트를 치라고 무전을 한 후 고정로프 한 동을 가지고 출발했다. 일본팀 로프를 확인해 보니, 회수한 것이 아니라 끊어 놓은 것이었다. 로프를 연결하며 1시간쯤 앞으로 나아가자 로프가 없는 6m 정도의 설벽이 나타나 로프를 연결시켰다. 그런데 뒤이어 앙카미가 올라오다가 끊어놓은 반대 줄이 빠져 4m 아래로 추락했다. 다행히도 절벽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았지만 배낭을 메고 등으로 추락하면서 허리에 심한 타박상을 입은 것 같았다.

부축해서 C3로 돌아와 파스를 붙여주고, 허리를 만져본 결과 뼈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아 다행이다. 앙카미는 일본대가 끊어놓은 자일로 사람이 다친 것에 대해 관광성과 경찰서에 알리자고 흥분한다. 그러면 셰르파는 감옥에 가고 일본 원정대에 많은 문제가 생겨 힘들 거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 되니 그냥 참자며 겨우 진정시켰다. BC에 이 사실을 알리고 내일 일정을 의논했다. 내일은 앙카미를 제외한 전 대원이 새벽에 일어나 등정길에 오르기로 했다.

1·2조 함께 C4 구축한 뒤 마지막 공격

새벽 6시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으로 향하는 모든 구간의 고정로프를 절단해서 이걸 연결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만 했다. 더욱이 로프를 자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잘라서 멀리 던지는 바람에 새로 등반해야 했고, 로프를 잡아서 다시 내려와 연결해야 하는 구간도 있었다. 시간절약을 위해 그냥 갈까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정희식, 김승구 대원뿐만 아니라 제1조의 안전을 위해 연결시키고 갔다.

오전 10시30분경 일본팀 C3를 지나 끊어진 자일을 연결하며 계속 올랐다. BC에는 12시에서 오후 1시까지 올라가 보고 안 되면 내려오겠다고 연락해 두었지만, 등반속도가 매우 더뎠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도 힘들고, 배낭에 넣어둔 100m 메인로프 역시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진다.

오후 1시30분경 뒤따르던 김 대원이 힘들어하며 “시간이 늦은 것 같은데 언제까지 올라갈 거냐?”고 물어온다. 그 뒤에 오던 정 대원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바로 앞에 정상이 보인다. 정상까지 1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정상에서 내려올 자신이 없다. 김 대원을 내려보내고 혼자 정상에 갔다 올까 고민도 해본다. 여기서 내려가면 이곳까지 또 올라와야 하는데, 체력에 자신이 없다. 현재 고도 6,400m. 정상을 200여m 앞두고 포기하기로 한다. 또 올라오기 싫지만 후배를 위해, 아니 나 자신을 위해 돌아선다.

하산길은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C3로 돌아와 BC와 교신했다. 앙카미는 허리가 많이 좋아졌지만 등반은 힘든 상태고, 정 대원도 동계훈련중 걸렸던 동상이 재발한 상태여서 두 사람 모두에게 하산 명령이 떨어진다. 김 대원도 내려가고 싶다고 하는 것을 내려가면 또 올라와야 하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니 조금 더 힘내 한 번 더 도전하자며 겨우 붙들어 놓는다.

C2에 있는 제1조는 내일 C3로 올라올 계획이다. 일본팀 C3에 우리의 C4(6,266m)를 설치할 계획인데 한 텐트에 6명이 자기에는 좁고 그렇다고 텐트를 두 동 올리기는 너무 힘들어 판단이 서지 않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펨바가 정상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C1서부터 머리가 아프다며 등반을 기피하더니 정상까지도 포기한다.

다음날 정희식 대원과 앙카미를 일찍 내려보내고, C3에 올라온 1조와 짐을 나누어 메고 C4로 향한다. 어제 모든 고정로프를 연결했기 때문에 등반에 대한 부담은 없지만 배낭에 넣은 짐과 누적된 피로로 걷기가 힘들다.

오후 5시경 김전암 대원을 끝으로 대원 5명이 모두 C4에 모였다. 제1조는 C2에서 C4까지 오면서 체력을 많이 소모했다. 특히 김전암 대원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늦게 도착했고, 제2조 역시 어제의 많은 체력소모와 피로누적으로 내일 정상공격이 걱정이다.

공격조 대원 5명 전원 정상 밟아

24일 새벽 4시 기상해서 간단히 누룽지를 끊여 먹었다. 오전 5시30분 나와 정찬일 대원만 배낭을 메고 나머지는 맨몸으로 출발한다. 마지막 시도라고 생각하니 온몸에서 힘이 머리로 전달되는 느낌이다. 선두에 서서 설벽 구간을 오르니 테라스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다시 설벽이 시작되고, 100m 메인로프를 데포시켜 놓은 지점(6,400m)서부터는 암설 혼합구간이 나온다. 이곳에서 로프를 반으로 잘라 반은 내가 배낭에 넣고, 반은 정찬일 대원에게 가지고 올라오라 무전한 뒤 다시 등반을 시작했다.

1시간여만에 정상 능선 상에 올라섰다. 이곳에서부터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김승구 대원과 안자일렌하고 정상 바로 밑까지 갔다. 정상 바로 밑에는 큰 크레바스가 양쪽으로 벌어져 있어서 다가서기가 무서웠지만, 크레바스 사이로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처음에는 경사가 심해서 김 대원에게 확보를 보라고 했지만, 아직까지는 아침이라 크러스트가 잘 되어서 안자일렌 상태로 같이 등반을 결정했다.

정상에 거의 다 와서는 김 대원에게 먼저 올라가라고 이른 뒤 천천히 올랐다. 정상 20m 전에 일본대 피켈이 눈에 박혀 있다. 오후에 하산할 때 스노볼이 잘 생기고 대원들 체력이 떨어져서 확보용으로 설치했다 회수하지 못한 것 같다. 나와 김승구 대원은 정상에서 30여 분 머물며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우리가 내려오고 제1시간 후에는 1조인 정찬일, 김성호, 김전암 대원 순으로 정상을 밟았다. 체력소모와 피로누적으로 힘들었지만 모두 무사히 C4에 도착했다. 전대원이 C4로 내려온 오후에도 안개는 물론 바람도 불지 않았다. 날씨는 매우 맑았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았다. 그야말로 정상 가기엔 너무 좋은 날씨였다.

글 유철목 등반대장 / 사진 원정대


◆ 훙치

쿰부히말의 6,000m급 험봉 2001년 4월 개방…5번째 도전한 일본팀이 초등

훙치는 네팔 정부가 2001년 12월20일 103개 봉우리 개방에 앞서 2001년 4월10일 로체 중앙봉(8,413m)을 포함해 개방한 9개 봉 중 하나다.

에베레스트(8,848m)와 초오유(8,201m)를 연결하며, 네팔과 중국 티벳자치구의 국경을 이루는 주능선 상에 있다. 초오유 남동쪽 12㎞, 에베레스트 서북서쪽 17km, 고줌바빙하 동측에 위치한다. 쿰부히말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남체에서 고쿄를 거쳐 진입한다.

홍치는 개방 당시 리스트에 산명은 훙치(Hungchi), 높이는 7,036m로 발표됐다. 기존의 지형도에는 규바초모체(Gyuba Tshomotse·7,036m), 차쿵(Cha Khung·7,020m), 카르모초탈(Kharmo Chotal·7,020m) 등 여러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에 GPS로 확인한 정상 높이는 6,666m였다. 고도계시계에도 6,710m로 네팔이 발표한 7,036m와는 거의 600m나 차이가 났다.

1950년 네팔측으로 에베레스트 정찰이 처음 이루어진 이래, 2001년 봄 개방되기 전까지는 티벳 또는 네팔 양측 모두 공식적인 등반 기록이 없었다. 개방하던 해 가을, 일본 오사카팀(대장 타카즈구시로 외 5명)이 남서릉으로 초등을 노렸으나, 그들의 기록상 6,700m까지 오르고 등반이 끝났다. 동계시즌과 2002년 봄 시즌까지 등반한 기록은 없다.

일본팀은 2001년 개방된 이후 한 번의 정찰과 세번째 도전인 작년 가을 시즌에 6,800m까지 오른 후 후퇴했다고 했다. 올 봄은 정찰을 포함해 총 5번째라고 발표했다. 또한 올해엔 셰르파를 4명씩이나 고용해서 대학산악연맹팀보다 6일 먼저 등정, 세계 초등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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