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콩나물국밥
어린 시절의 기억 가운데 비교적 구체적으로 남아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콩나물 시루에 관한 것이다.
지금이야 시장이나 마트에 가면 잘 다듬어놓은 콩나물을
구할 수 있지만,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콩나물은
가정에서 직접 길러 먹었던 음식 재료였다. 식구들이 먹을 만큼만, 많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기르던 콩나물.
어머니가 아침저녁으로 차근차근 물을 주고 사람 사는
이야기까지 두런두런 들려주면서 기른 콩나물은 한 움큼씩 뽑혀 무침으로도 국으로도 끓여지곤 했다.
그 무렵 잠결에 들었던 콩나물 시루에 물 내려가는 소리가 졸졸졸졸 아직도 귓가에
아스라하게 남아 있다.
아마도 그런 추억은 우리 모두의 기억에 새겨져 있는 모양이다. 콩나물 시루를 두고 정병근
시인은 이렇게 읊기도 했다.
추, 추, 추, 요강에 오줌을 누며
할머니가 치를 떨었다
잠든 콩나물시루에 몇 바가지 물을 내리고
할머니는 다시 누웠다
콩나물 무수한 대가리들이
노란 부리를 벌려 물을 받아먹었다
콩나물의 몸을 빽빽하게 빠져나온 물이
밑 빠진 독의 구멍을 타고 흘렀다
방안은 깊은 동굴이 되었다
똑, 똑, 똑,.....
콩나물 시루의 물방울소리
식구들의 잠을 뚫고
억만 년 동안 떨어졌다
천장에서 무수한 石柱들이 내려왔다
- 「콩나물 시루」정병근-
콩나물 시루는 넓은 대야 위에 굵은 Y자형 나무를 걸치고 그 위에 얹어놓은 옹기이다.
시루에는 깨끗하게 씻어 추려놓은 짚을 깔고 그 위에 잘 불린 콩나물 콩을 차곡차곡 얹어 놓았다.
시루에 콩나물 콩을 얹는 것도 막무가내가 아니라 다 요령이 있다.
층층이 쌓아 올리는 콩나물 콩은 맨 위에서부터 뽑아 먹기 때문에 층마다 콩나물의 성장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빛나는 대목이기도 한 그 방법은 각 층마다 콩의 불림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가장 빠르게 자라야하는 맨 위층의 콩은 물에 충분히 불려서 얹고 맨 밑바닥 콩은
불리지 않은 콩을 쓰는 방법인 것이다. 이렇게 콩나물 콩을 깔고 나면 제법 두툼한 헌 이불을 이용해
시루를 꽁꽁 덮어두고 때맞춰 물을 주면 그 물소리를 들으며 콩나물이 자라곤 했다.
빛이 들지 못하게 싸맨 이유는 간단했다. 콩나물 시루에 빛이 들게 되면 식물의 광합성 작용 탓에
콩나물이 녹색으로 변하기 때문이었다.
콩나물 재배용 콩도 아무거나 쓰지 않았다. 오리알태, 쥐눈이콩, 준저리 등이 주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고 있는 대부분의 농산물이 외국의 것과 모양과 색깔이 비슷비슷하지만
‘오리알태’만큼은 색깔로 완전히 구별된다. 지방마다 약간씩 다르게 나타나는데,
연두색 같기도 하고 녹색 같기도 한 바탕에 검은 점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콩이다.
오리알과 비슷하다 하여 ‘오리알태, 유태’ 라고 불리는데 ‘오리알태 콩나물콩’은 맛이 부드럽고
고소하며 콩나물로 가치는 최고이다. 뿐만 아니라 여름을 지나는 내서성 또한 최고다.
대개의 콩나물 콩이 상온 기준에서 7~8월이 되면 발아율이 급격히 떨어지는데 비하여
오리알태는 여름이 지나도 발아율이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강인한
생명력을 반영하여 “한민족의 기상이 서려있는 콩이다.”라는 소리도 듣는다.
쥐눈이콩에는 두 종류가 있다. 속이 노란 서안태(鼠眼太)와 속이 파란 서목태(鼠目太)가 있다.
서안태는 겉은 검은색이고 속은 노란색이며 옛날부터 콩나물 콩으로 많이 사용되어 지금도
콩나물용 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반면
서목태는 겉은 검은색이고 속은 파란색이며 한방에서 약콩으로 널리 쓰여 약콩이라고 불리며
예전에는 요리에 많이 활용하지 않았으나 근래에 몸에 좋다고 해 그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이 약콩을 강원도 영월에서는 산과 들에 난다고 해서 토종 야콩이라고도 한다.
준저리란 어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콩이 주렁주렁 많이 달린다는 뜻으로 “줄줄이 콩”으로
불리던 것이 준저리로 되었다는 설과 남부지방에서 작다는 사투리인 잔저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어원이야 어찌되었던 현재는 콩알이 작아서 콩나물용으로 쓰이는 재래종 콩을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준저리라고 부르는 콩의 종류는 콩의 모양과
배꼽색 등으로 분류해 볼 때 수십 종에 이른다.
아무튼 이제 전통적인 콩나물 재배기법은 추억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허기가 지거나 속이 불편해지면 콩나물 시루가 간절하게 생각난다. 아니 콩나물 시루에 담겨서
쑥쑥 자라는 콩나물이 그리워진다. 그럴 때마다 콩나물 국밥집을 찾는 것은 음식맛도 맛이려니와
옛 추억의 가닥을 건져보려는 심사이기도 할 것이다.
전주의 대표적 음식문화가 되어버린 콩나물 국밥. 전주에서 특별히 유명한 콩나물 국밥집을
찾으라고 한다면 그건 우문(愚問)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삭하게 씹히는 맛과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그 국물의 맛을 두고 우열을 가리기는 쉽지 않은 탓이다.
게다가 전주 사람들의 손맛과 푸짐한 인심까지 더하니 어딜 가나 인정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콩나물 국밥집에서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은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하곤 한다.
“해장에 콩나물 국밥만한 것은 없습니다. 속도 풀고 든든한 요기까지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없을 겁니다.”
이러한 탓에 콩나물을 시로 읊은 시인들도 많이 있다.
콩에 햇빛을 주지 않아야 콩에서 콩나물이 나온다
콩에서 콩나물로 가는 그 긴 기간 동안
밑 빠진 어둠으로 된 집, 짚을 깐 시루 안에서
비를 맞으며 콩이 생각했을 어둠에 대하여
보자기 아래 감추어진 콩의 얼굴에 대하여
수분을 함유한 고온다습의 이마가 일그러지면서
하나의 금빛으로 터져나오는 노란 쇠갈고리 모양의
콩나물 새싹,
그 아름다운 금빛 첫 싹이 왜 물음표를 닮았는지에 대하여
금빛 물음표 같은 손목들을 위로위로 향하여
검은 보자기 천장을 조금 들어올려 보는
그 천지개벽
콩에서 콩나물로 가는 그 어두운 기간 동안
꼭 감은 내 눈 속에 꼭 감은 네 눈 속에
쑥쑥 한 시루의 음악의 보름달이 벅차게 빨리
검은 보자기 아래 - 우리는 그렇게 뜨거운 사이였다
-「콩나물의 물음표」김승희
콩나물을 다듬는답시고
아무래도 나는 뿌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무슨 알량한 휴머니즘이냐고 누가 핀잔한대도
콩나물도 근본은 있어야지 않느냐
그 위를 향한 발돋움의 흔적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하지는 못하겠다
아무래도 나는 콩나물 대가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죄 없는 콩알들을 어둠 속에
가두고 물 먹인 죄도 죄려니와
너와 나 감당 못할 결핍과 슬픔과 욕망으로
부풀은 대가리 쥐뜯으며
캄캄하게 울어본 날들이 있잖느냐
무슨 넝마 같은 낭만이냐 하겠지만
넝마에게도 예의는 차리겠다
그래, 나는 콩나물에게 해탈을 돕는 마음으로
겨우 콩나물의 모자나 벗겨주는 것이다
-「콩나물에 대한 예의」복효근 -
전주의 콩나물국밥은 단촐하다.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와 날계란 두 개.
그리고 새우젓갈과 김치깍두기 등 두어 가지 반찬이 전부이다.
날계란을 뚝배기에 넣고 흰자가 살짝 익을 때쯤 휘휘 젓는 사람도 있고 뜨거운 국물을 날계란에
부어 살짝 익히고는 김 몇 장 찢어 얹어 후루룩 마시는 사람도 있다.
콩나물국밥과 날계란을 먹는 순서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이렇듯 까탈스럽게 격식 차리지 않는
음식이 콩나물 국밥이다.
한 숟가락만 떠 넣어도 시원한 맛에 반하는 겨울철 별미 콩나물국밥. 콩나물국밥은
'3년만 먹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옛날에는 절약의 대명사로 꼽혔다.
멸치, 다시마, 무 등을 넣고 우린 물에 콩나물을 넣어서 끓이면 되기 때문에 별다른 재료가
들지 않고도 많은 양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콩나물국밥은 비빔밥, 한정식과 함께 전주의 3대 대표음식으로 손꼽힌다. 왜 전주의 콩나물국밥이 이렇게 유명해진 것일까. 전주는 예로부터 콩나물이 유명했는데 그건 물과 관련이 있다. 이 지역의 물에는 철분이 많아 풍토병이 자주 발생했다. 전주 부사가 콩나물로 풍토병을 치유한 후 전주의 각종 요리에는 콩나물이 어김없이 들어갔는데 조선시대에는 청심환의 원료로 중국에 수출까지 하는 귀중한 약재로 여겨지기도 했다.
전주에서 만나는 콩나물국밥은 일반 콩나물이 아니다. 대개 '쥐눈이 콩'으로 키운 콩나물을 사용한다. 쥐눈이콩은 까만 콩으로 다 자라도 콩깍지가 까맣고 맛이 뛰어나 옛날부터 전주를 대표하는 팔미(8味) 또는 십미(10味)에 들 정도였다.
오죽하면 시인이 콩나물국밥을 먹고 이런 시를 다 썼겠는가
콩나물은
허공에 기둥 하나 밀어 올리다가
쇠기 전에 머리통을 버린다
참 좋다
쓰라린 새벽
꽃도 열매도 없는 기둥들이
제 몸을 우려내어
맑은 국물이 된다는 것
좋다 참
좋은 끝장이다
-「다시 나에게 쓰는 편지」이정록 -
시만 읽었는데도 마치 콩나물국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것마냥 속이 다 후련해진다.
그래서 시인의 말투를 따라해 본다. 좋다, 참. 그래도 콩나물국밥의 효능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콩나물은 뿌리에 들어있는 아스파라긴산으로 인해 해장국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콩나물의 효능에 대해서는 동의보감에 '온몸이 무겁고 저리거나 근육과 뼈가 아플 때
치료효과가 있고 제반 염증소견을 억제하며 수분대사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위의 울혈을 제거하는
효과가 뛰어나다'고 기록돼 있다. 아울러 콩나물국밥집의 메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모주(母酒). 막걸리에 찹쌀가루, 흑설탕, 감초, 생강, 계피, 대추, 인삼 등의 한약재를 넣고
끓여 알코올 성분은 거의 없는 게 특징이다.
모주 재료는 모두 해장에 좋은 것들로 해장술로 불리는데 감기몸살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전주의 콩나물국밥에도 조리방법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1. 우선 콩나물국에 밥을 넣고 계란을 풀어 끊여내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전통적인
조리방법으로 국물밧이 진한 게 특징이다.
2. 다음은 콩나물국에 찬밥을 말아서 맑게 조리하는 방법인데 개운한 국물 맛으로 요즘에는
많은 집들이 이 방식을 따른다.
전주에 와서 콩나물국밥을 드신다면 꼭 두 가지 모두 찾아보고 맛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전주의 대표적인 콩나물국밥집에는 ‘다래콩나물국밥’, ‘삼백집’, ‘삼일관’, ‘왱이콩나물국밥’,
‘콩나루콩나물국밥’, ‘풍전콩나물국밥’, ‘한일관’, ‘풍전식당’, ‘광장콩나물국밥’ 등이 있다.
그리고 남부시장 골목에 가면 ‘엄마손해장국’, ‘그때그집’, ‘우정식당’ 등 나름대로 유명한
식당들이 있다. 비록 콩나물국밥집 이름이나 조리방법들은 제각각이지만 전주의 맛과 전주의
인정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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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타곳에서 살다가 전주로 이사온 신출내기랍니다 그동안 관심있었던 전주의 유명한 콩나물국밥을 자상히 소개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갓골님 방문 감사드립니다 콩나물국밥하면 어릴적 고향이 생각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