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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행지 :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바티칸, 스위스, 프랑스, 영국
2. 일 정 : 2014. 7월
독일 하이델베르크. 하이델베르크 고성에서 본 카르데오도어 다리와 네카어 강. 네카어 강은 하이델베르크를 지나 만하임에서 라인강과 합류된 후 마인츠에서 프랑크푸르트에서 흘러온 마인강(524km)과 만난다. 이곳은 두차례 여행했지만 오늘은 전혀 새로운 느낌이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다. 1934년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총통에 취임한 뒤, 1939년 9월 1일 폴란드의 단치히 항에 정박해 있던 독일 순양함이 항구의 요새를 공격함으로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6년 동안 5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희생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인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군에 입대한다. 전쟁이 끝나자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일명 나치스)" 에 가입하며 1921년에는 나치스의 우두머리가 되자 전국을 다니며 유대인들을 몰아내고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다고 선동하며 1936년에는 유대인 차별법을 만들어 유대인은 독일 국민이 될 수 없다고 선포한다. 또 유대인은 독일 땅이라고 하는 곳에서는 "다윗의 별(유대인은 다윗의 방패라고 함)"이라는 노란색의 육각형 별을 옷에 달고 다니도록 한다. 강제 거주지를 만들고, "아우슈비츠"나 "다카우" 같은 집단 학살 수용소를 만들어 1945년까지 6백만명이나 되는 유대인을 학살했다. 히틀러 최측근으로 "괴링"과 "힘러"를 두어 악행을 저지른다. 독일군이 점령한 지역 중에서 자기 나라의 유대인을 공식적으로 보호한 나라는 덴마크가 유일했으며 유대인을 스웨덴으로 대피시켰다. 1944년 6월 6일 미국의 아이젠하워 장군이 지휘하는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파리까지 진격하며, 프랑스의 샤를 드골 장군이 자유 프랑스군과 함께 파리를 수복한다. 같은해 12월 독일군의 마지막 전투인 벌지 전투가 벌어지고, 동쪽에서는 소련군이 베를린으로 진격하자,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가 후퇴하는 독일군으로 변장해서 트럭을 타고 도망치다 파르티잔에게 붙잡혀 처형당하고 이틀 뒤에는 베를린에서 히틀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45년 5월 8일 연합군은 유럽에서의 전쟁이 끝났다고 선포한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의 투르먼 대통령은 오펜하이머가 개발한 원자탄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리틀 보이),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 투하(팻 맨, 영국의 처칠 수상 별명)하자 1945년 8월 14일 전쟁이 막을 내린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인강. 강물 색깔이 회색이다. 오스트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국가이다.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세르비아 19살 대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Gavrilo Princip)"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Franz Ferdinand) 황태자 부부를 피살 한 "사라예보 사건"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914년 7월 28일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세르비아 동맹국 러시아가 먼저 오스트리아를 공격했다. 그러자 오스트리아 동맹국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이틀 후 독일은 프랑스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프랑스를 공격한다. 이는 바로 이전에 발칸 반도 국가들이 발칸 전쟁에 의해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독립을 하였으나, 불가리아는 세력을 더 넓히기 위해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기 시작했고, 마케도니아를 나누어 가지는 문제로 불가리아와 다투다가 급기야 공격을 당했던 세르비아는 불가리아와 오스트리아에 대한 원한이 누적되면서 시작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피해 : 영국 사망자 1백만명, 부상자 2백만명, 프랑스 사망자 1백만명, 부상자 4맥만명, 러시아 사망자 2백만명, 부상자 5백만명, 이탈리아 사망자 70만명, 독일 사망자 2백만명, 부상자 4백만명,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망자 1백만명, 부상자 4백만명.
오스트리아 티롤주 인스부르크 알프스의 야생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새벽에.....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 물의 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 곤돌라. 19세기 이탈리아 반도는 12개가 넘는 자치주들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식민지였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하나의 왕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독립운동 단체를 세우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1831년에 만들어진 "카르보나리(Carbonari, 숯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의 진압으로 대부분 체포되고 주모자 중 하나인 "주세페 마치니"는 도망가서 "청년 이탈리아 당"을 만든다. 그는 하나의 이탈리아 공화국을 만들기 위한 "리소르지멘토(부흥운동)" 활동을 지속하며 세력을 키우는데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라는 젊은 해군 선원이 당에 가입하여 마치니의 오른팔이 된다. 그는 이곳 베네치아로 부터 로마에 이르는 지역에서 전투를 벌인다. 하지만 베네치아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병사들이 열기구를 타고 혁명군의 머리 위에 폭탄을 떨어트리자 혁명군은 패배하고 마치니는 런던으로, 가리발디는 미국으로 피신한다. 하지만 10년 후 가리발디는 귀국하여 군대의 총사령관이 되어 나폴리 왕국을 공격하여 팔레르모를 점령하고, 볼투르노 강 전투에서 승리하며 이탈리아를 하나의 통일된 왕국으로 만들게 된다. 베르사유 회담에서 이탈리아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얻은 것이 적다고 생각했다. 이때 베니토 무솔리니는 36살이었는데 한때 대장간에서 일하기도 했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고 1917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모아 "파시 데 콤바티멘토(파시스트로 불리는 전투자 동맹으로 "검은 셔츠단"이라고도 불림)"란 정치 조직을 결성하여 로마를 점령하려고 하자 에마누엘레 3세는 그를 총리에 임명한다. 총리이지만 군사 독재자인 그의 야심은 새 로마제국 건설을 위한 전쟁준비를 하게 된다.
이탈리아 피렌체(플로렌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본 피렌체 시내와 두오모 성당. 르네상스가 시작된 도시 피렌체. 본디 피렌체는 모직물 공업이 발달한 도시였다. 동서무역의 중심지인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모직물과 금융업으로 모은 자산으로 르네상스를 꽃 피웠다. 메디치 가는 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등 2명의 교황을 배출하였고 프랑스 왕 앙리 2세의 왕비 "카트린 드 메디치"도 메디치 가의 딸이다. 카노사의 굴욕 : 1076년 교황에게 불만을 가진 로마의 황제 하인리히 4세는 성직자를 임명하는 권한을 교황에게서 뺏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교황의 힘에 밀려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됐는데, 한 겨울 교황이 머물고 있는 "카노사 성"을 찾아가 사흘동안 눈을 맞으면서 "잘못했습니다"하면서 빌었는데 이후 교황의 힘은 더욱 커졌다.
로마 트레비분수(삼거리에 있는 분수). 현재는 공사중이다.
※ 로마의 탄생 기원 : 이탈리아 반도 "알바 롱가"에 살던 누미토르 왕의 딸 "레아 실비아"는 어느 날 전쟁의 신 "마르스"와 사이에서 쌍둥이 아들(로물루스, 레무스)을 낳았는데, 반역을 일으켜 왕이 된 삼촌 아물리우스 왕이 이를 알고 아이들을 죽일 것을 명하자 신하들이 차마 죽이지 못하고 바구니에 넣어 테베레 강에 띄운다. 어느 해안가에 도착한 아이들을 암늑대가 발견하여 키운다. 후에 두 쌍둥이는 왕위를 정하기 위해 산에 올라가 많은 수의 새를 보는 사람이 왕이 되기로 하였는데 로물루스는 12마리의 독수리를 보았고, 레무스는 6마리의 독수리를 보아서 로물루스가 왕이 되었는데 이가 바로 로마의 캄피돌리오 언덕(캄피돌리오 광장은 미켈란젤로에 의해 구상되어 1547년 건설한 광장으로 로마인들은 이 광장이 "세계의 머리" 또는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함)에 로마를 세운 건국왕이다. 로마라는 이름도 로물루스에서 따왔다고 한다. 기원전 8세기에 태어난 로물루스(Romulus)는 로마 건국자이자 초대 왕이다.
로마. 찰턴 헤스턴이 출연한 영화 "벤허"의 전차경기 촬영지.
트리톤의 얼굴, 진실의 입. 헤라클레스 신전의 하수구 뚜껑이었다고 하는데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손을 넣어서 유명해짐.
팔라티노 언덕의 로마 유적지. 로마 역사의 발원지인 "포로 로마노". "포로"라는 말은 공공광장이라는 뜻으로 포럼이라는 어원이 이곳에서 생겼다고 한다.
로마 콜로세움.
소렌토 항구. 싼타루치아 만에 위치하고 있는 U자형 항구로 건너편이 나폴리 항이다. 나폴리항과 소렌토항 중간에 베수비오산이 위치해 있다. 폼페이역에서 전철을 이용하여 소렌토역까지 이동.
카프리(Capri) 섬. 아나카프리 몬테솔라로(솔라로 산) 정상(589m)에서..... 소렌토 항에서 배로 30분정도 소요된다. 몬테솔라로 정상에서는 나폴리항, 소렌토항, 베수비오산 등이 가깝게 보인다.
이탈리아 피사. 피사 대성당 앞 두오모 광장 피사의 사탑. 피사의 사탑은 11세기 초 팔레르모 해전에서 사라센 함대를 크게 격파한 피사 시민들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종탑이다. 1174년 이탈리아의 천재 건축가 본나노 피사노가 설계와 건축을 했다. 하지만 3층까지 쌓아 올렸을때 종탑이 한쪽으로 기울었는데 이 곳이 해안지대로 모래와 점토로 이루어져 지반이 약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끝에 1360년에 8층의 원형탑을 완성하였다. 피사 대성당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피사 대성당은 섬세하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세례당과 더불어 중세시대 건축 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58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피사의 사탑 예배당에서 우연히 천장에 매달린 램프가 흔들거리는 것을 보고 추 무게와 상관없이 추가 한 번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같다는 "진자의 등시성" 을 알아냈다.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 갈릴레이는 논리학을 공부했는데 "측정할 수 있는 것은 무었이든 측정한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하면 측정할 수 있는 지를 알아낸다"라고 말하곤 했다.
밀라노 두오모.
이탈리아에서 스위스 이동 중.
스위스 인터라켄. 융프라우역 가는 중간역인 클라이네샤이덱.
파리 노트르담 성당.
파리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전망대에서 본 북서쪽 "트로카데로 광장"과 파리 시내. 에펠탑 남동쪽으로는 "마르스 광장"이 위치하고 있다.
※ 파리 지명의 유래 : 고대 로마시대 로마사람들이 센강(세느강) 언덕에 수도를 세우면서 "루테티아 파리지오리움(Lutetia Parisiorium)이라 불렀는데, 중세 프랑크족 클로비스 족장이 골 지방에 살고 있는 로마 인, 부르군트 족, 알라마니 족을 하나로 결속시키며 "살리카 법전(Lex Salica)"을 만들고 이곳에 수도를 건설하였는데 이때부터 파리(Paris)라고 불렀다.
세느강 야간 유람선에서 본 파리 에펠탑.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세계 박람회를 위해 세워진 구조물로, 세계 박람회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비행기에서도 박람회 위치를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귀스타프 에펠(Gustave Eiffel)의 설계로 세워진 에펠탑은 원래는 박람회가 끝나면 철거될 계획이었다고 한다. 파리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상징이지만 당시 파리 시민들은 예술의 도시 파리와 어울리지 않는 "추악한 철덩어리" 라 하여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특히 파리의 예술과 문학계 명사들의 반대가 심했다. 그래서 1909년엔 철거될 뻔하는 위기에 처했지만 다행히 최신 송신 안테나를 세우기에 이상적이라는 이유로 위기를 모면했기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300만평 규모). 태양왕 루이14세의 혼이 살아있는 것 같다. 프랑스 베르사유는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1623년 루이 13세가 이곳에 처음으로 사냥용 별장을 지었다. 1643년 다섯 살도 채 안된 나이(4살 8개월)로 왕위에 오른 루이 14세는 섭정기인 1651년 이곳을 처음 방문한 뒤 마음에 들어했으며, 1661년 섭정을 하던 재상 마자랭(Mazarin)이 죽자 친정을 한다. 1661년에 프랑스 건축가 "루이 르 보(1612 ~ 1670)"에게 첫 번째 증축을 맡겼다. 르 보는 첫 번째 성채를 중심에 보존하면서 이것을 남익랑과 북익랑으로 감싸는 'ㄷ'자형의 앙벨로프를 만들었다. 르보가 사망한 후에도 공사는 계속 되었으며 최종 완공까지 50여년이 걸렸다. 1682년 파리에서 베르사유로 왕궁이 옮겨졌다. 불어로 진흙을 뜻하는 "부르봉 왕조" 의 몰락도 이때부터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토 확장을 위한 끝없는 전쟁과 화려한 궁궐 건축, 지나친 세금 부과, 왕족의 사치 등으로 인하여 국가의 운명도 서서히 다해가고 있었다. 50년간 왕위에 오른 태양왕 루이14세는 아들이 천연두로 사망하고 손자 둘도 죽은 다음 본인은 괴저병으로 사망한다. 그 후 단 하나 남은 5살배기 증손자가 루이15세로 왕위에 오른다.
영국 런던 타워브릿지. 템즈 강은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주요 무대여서 하루에 수백 척의 배가 템스 강을 오갔다고 한다. 하지만 조수간만의 차가 6m 이상인데다가 다리와 강 수면이 10cm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배들이 쉽게 통과하지 못했던 탓에 1894년 빅토리아 양식의 개폐식 다리인 타워 브리지가 완공되었다.
런던아이(밀레니엄 휠). 런던 아이는 1999년 말 21세기의 개막을 기념하기 위해 영국 브리티시 항공에서 135m 높이의 런던 아이를 세웠다. 1851년 5월 1일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은 만국산업박람회 개최를 위해 런던 하이드파크에 세운 수정 궁궐(Crystal Palace 크리스털 팰리스)의 개회식에 참석한다. 박람회를 개최한 것은 대영 제국이 얼마나 강력하고 앞서 가는 나라인지 전 세계에 과시하려는 것인데 주요 전시품은 러시아 항아리, 오스트리아 가구 제품, 미국의 농기구와 보위 칼, 프로이센의 옷감과 자수, 프랑스의 옷감과 무기, 스위스 시계, 호주는 야자나무로 만든 피서 모자, 뉴질랜드는 목각 제품, 인도는 비단과 무명, 캐나다는 최신형 소방차 등 1만 3천 가지였다.
영국 런던의 상징 빅벤(건축가 "벤자민 홀"의 이름을 따서 지음). 빅벤은 2012년부터 "엘리자베스 타워"로 명칭이 변경되었는데, 사망한 엘리자베스 여왕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 영국(England) 지명의 유래 : 중세시대 브리튼 섬에 살았던 켈트족의 보티건(Vortigern)이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브리튼 섬의 한가운데 터를 잡고 부유하고 강력한 부족의 왕이었는데 북쪽에 살고 있는 다른 부족들이 계속 침략하자 북해 건너에 살고 있는 엥글족과 색슨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이들이 점차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엥글로-색슨족이라 부르던 Anglo에서 유래되었다.
런던(London) 지명의 유래 : London이란 이름은 로마군이 브리튼 섬(현재 타워 브릿지 지점)에 주둔할때 그 도시를 런디니움(Londinium)이라고 부른데서 유래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영국 왕의 대관식이 열리는 곳. 영국의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세익스피어", 오라토리오 "메시아"로 유명한 음악가 "헨델"은 사망 후 웨스트민스터 "시인의 코너"에 묻혔다. 영국 출신으로 "프린키피아"라는 책을 통해 만유인력의 법칙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아이작 뉴턴(lsaac Newton)"은 과학자로서 최초로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죽은 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또한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 역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혀 있다. 뉴턴이 살았던 시기는 "계몽사상"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던 시기로 과학이 이룬 농업혁명 시기 이기도 하다. 대농장을 소유한 신사농부 "찰스 타운센드"는 윤작법(Rotation)" 이라고 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곡식이 풍부해지고 축산물의 생산량을 증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