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컴퓨터’ 양자컴퓨터, 어디까지 왔을까?
인터넷 검색부터 영상 시청, 친구들과의 SNS 소통부터, 문서 작업, 연구, 프로그램 개발까지 우리는 컴퓨터로 수많은 일을 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컴퓨터는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든든한 도구다.
하지만 현재 컴퓨터는 만능은 아니다. 엄청난 양의 계산이 필요한 복잡한 문제의 경우, 컴퓨터로도 수백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이는 슈퍼컴퓨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만약 현존하는 컴퓨터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컴퓨터가 등장해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꿈의 컴퓨터’라 불리는 ‘양자컴퓨터’다.
그림 1. 양자컴퓨터는 기존의 컴퓨터가 가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평가받는다. ⓒshutterstock
큐비트로 작동하는 양자컴퓨터, 복잡한 변수 계산에 우위
양자컴퓨터의 개념은 1982년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처음 제시했다. 현재 컴퓨터로는 막대한 계산량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그는, 양자역학의 원리를 활용한 새로운 계산도구를 이용해보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후 많은 과학자들이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보다 더 빠른 속도의 계산 성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했고, 이에 양자컴퓨터가 실제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와 어떻게 다르기에 더 월등한 성능을 보일 수 있는 걸까? 그 답은 바로 양자컴퓨터의 작동 원리에 있다. 우리가 쓰는 컴퓨터는 0 또는 1로 정보를 표현하는 ‘비트’를 단위로 쓴다. 반면 양자컴퓨터의 단위는 양자역학의 ‘중첩’이라는 현상을 이용한 ‘큐비트’다. 중첩 현상은 양자 세계에서 한 가지 입자가 동시에 서로 다른 상태로 존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0과 1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양자컴퓨터가 0과 1이라는 2개의 큐비트로 이뤄져 있다면 00, 01, 10, 11의 네 가지 상태를 표현할 수 있다. 3개의 큐비트로는 000, 001, 011, 010, 100, 101, 110, 111의 8가지 상태가 가능하다. n개의 큐비트로 2n수만큼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수백 개의 큐비트가 있다면 엄청나게 많은 숫자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를 복잡한 계산에 이용하면 슈퍼컴퓨터로 수백 년 걸리는 계산도 양자컴퓨터로는 수백 초 만에 가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우 큰 수를 소인수분해 하는 문제를 빠르게 풀 수 있다. 이는 암호화 기술 등 보안 분야에서 유용하다. 또 양자컴퓨터는 교통 시스템 최적화나 물류 네트워크 구축 등, 변수가 많고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최적의 답을 찾는 문제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각종 물리 법칙을 기반으로 분자나 물질의 특성을 시뮬레이션해야 하는 신약, 재료 개발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양한 형태의 양자컴퓨터 개발 중
현재 양자컴퓨터는 큐비트를 만드는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개발되고 있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초전도 회로와 이온 트랩 방식의 양자컴퓨터다. 초전도 회로 방식에서는 초전도 회로에 전자파(마이크로파)를 가해 전류를 중첩 상태로 만들어 큐비트를 구현한다. 비교적 안정적이고 오류율이 낮아 양자컴퓨터 구현에 가장 유망한 방식으로 꼽힌다. 다만 초전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절대영도인 영하 273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렇게 극저온을 유지하려면 거대한 냉각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IBM과 구글이 초전도 방식의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고 있다. 2023년 12월 IBM이 1121개의 큐비트로 이뤄진 양자컴퓨터 칩 ‘콘도르’를 공개한 바 있다.
그림 2. 2023년 12월 공개된 IBM의 ‘콘도르’. 1121개의 큐비트로 이뤄져 있다.
ⓒRyan Lavine for IBM
이온 트랩 방식의 양자컴퓨터에서는 진공 상태에 가둬진 이온을 이용해 큐비트를 구현한다. 큐비트를 정밀하게 제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진공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장비가 필요하고, 높은 밀도의 큐비트를 구현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IonQ와 같은 기업이 이 방식의 양자컴퓨터를 개발 중이며, 현재 35큐비트의 이온 트랩 양자컴퓨터 칩이 개발돼 있다. 이외에도 광자, 반도체 양자점, 위상큐비트, 스핀 등 다양한 방식의 양자컴퓨터가 개발되고 있다. 초전도 회로와 이온트랩 방식이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각 방식마다 장점과 단점이 있기에 어떤 방법이 최종 승자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림 3. IonQ에서 제작한 이온 트랩 방식의 32큐비트 칩의 모습. ⓒIonQ
큐비트 수, 오류율 등 해결해야 할 과제 많아
양자컴퓨터는 아직 개발 초기 단계로, 상용화되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 있다. 우선
큐비트 수를 충분히 늘려야 한다. 전문가들은 상용화를 위해서는 최소 수천 개에서 수만 개의 큐비트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류율을 낮추는 것도 큰 과제다. 큐비트 개수가 늘어날수록 컴퓨터의 성능은 향상되지만, 오류율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자컴퓨터는 약간의 진동이나 온도 변화만 있어도 양자 특성을 잃을 수 있을 만큼 매우 민감하다. 정확한 제어나 큐비트가 정보를 유지하는 시간, 효율적인 알고리즘 등도 개선되어야 한다.
그림 4. 전 세계 많은 국가와 기업의 연구자들이 양자컴퓨터와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Connie Zhou for IBM
현재 미국, 영국, 중국 등 많은 국가의 연구자들과 기업들이 양자컴퓨터와 관련 기술 개발에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 1월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이 2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개발해 공개했다. 2031년까지 1000큐비트 규모의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도 양자정보응용연구단에서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초전도 회로 방식의 양자컴퓨터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스택을 개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10년 안에 양자컴퓨터를 상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양자컴퓨터가 성공적으로 개발된다면 보안, 의학, 화학,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분야에 엄청난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양자컴퓨터가 선사할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