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수행평가로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A4 한 장 내외로
써서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습니다.
최근에 진지함이 뚝뚝 떨어지는 자기소개서를 쓴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즐겁게 가자! 라는 느낌으로 신나게 정신을 놓고 과제를 썼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재미있었다고 말해주셔서 여기에도 한 번 올려봅니다.
쉬는시간에 몰아써서 엉망이지만
편하게 읽어주세요~
내가 살아온 이야기
덕질 라이프
3316 박정은
이것은 나의 덕질 연대기이다. 때는 바야흐로 2008년 이었다.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어린 가수들이 나와 노래하는 프로그램을 보지 못하게 했다. 그 당시 내가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음악프로그램은 ‘도전 1000곡’ 뿐이었다. 어릴 적부터 연예인에 대한 문물을 접하지 않고 자라니, 자연히 그 쪽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연예인 캐릭터가 그려진 양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매일 시내의 커다란 문구점에 가서 자기가 양말 콜렉터라도 된 듯 미친 듯이 양말을 수집하곤 했다. 나 또한 캐릭터가 그려진 양말을 신고 싶었지만 당시 유행하던 원더걸스의 텔미도 모르는 나에게는 커다란 난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가서 인기가요를 시청하게 되었다. 때마침 빅뱅이 ‘하루하루’로 컴백할 때였다. 나는 그들의 데뷔무대를 보고 아이돌에 입문하게 되었다. 나는 하교 후 그 당시까지 빅뱅이 방송한 영상들을 전부 찾아서 보는 고생을 사서했다. 집에 오면 km과 Mnet.은 매일 마주하였고 스타골든벨도 빼놓지 않고 매주 챙겨봤다. 대성이가 나오는 패밀리가 떴다도 주요 볼거리 중 하나였다. 빅뱅에서 나의 본 덕심은 승리를 통해 불타올랐다. 이는 내 학창시절에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중학교 때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1학년 때 친해진 친구들은 대부분 덕심이 통해 친해지게 된 친구들이었다. 특히 아주 소중한 친구를 빅뱅 덕분에 만나게 되었다. 내 교우관계에 큰 도움을 준 빅뱅에게 감사를 전한다.
중학교 2학년 중반에 나는 과제 때문에 밤늦도록 발표에 넣을 영상을 찾기 위해 유튜브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내가 본 일반인 중에 가장 잘생긴 사람을 보았다. 동영상의 제목은 한자로 되어 있었다.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에 통탄하며 적어도 중국 사람은 아니길 빌었다. 하다못해 일본인이기를 바랐는데 동영상 속 그 아이는 중국어를 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옥편을 가져와 한자들 하나하나를 찾아냈다. 그리고 네이버에 그대로 입력했더니 어느 드라마가 나왔다. 내가 본 영상은 드라마가 아니었기에 의구심을 가지고 그 드라마에 대한 자료들을 모았다. 그 드라마는 대만 드라마 장난스런 키스로 내가 본 아이는 그 드라마의 단역이었고 내가 본 영상은 촬영 후에 출연자들끼리 장난으로 찍은 것이었다. 그 아이도 일반인이 아니라 대만의 최정상급 아이돌이었다. 나는 그렇게 비륜해를 덕질하게 되었다. 나는 외국 아이돌을 좋아하며 지금 하라면 못할 귀찮은 짓들을 했다. 매번 omegle 이란 사이트를 통해서 중국 사람들과 덕심을 불태우고 심지어 대만 아이들과 야후를 통해 덕심이 담긴 펜팔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바이두와 대만 야후는 내 즐겨찾기 상위에 위치해 있었다. 또한 비륜해가 연기돌이었기 때문에 대만이나 드라마도 같이 팔 수 밖에 없는 루트였다. 그리고 비륜해가 방한을 했을 당시 보도한 모든 잡지를 사 모았고 한국으로 팬 미팅을 왔을 때에는 처음으로 티켓팅도 해 봤다. 혼자 안성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엄마와 사촌언니까지 대동한 팬 미팅이었다.
중3때에는 외국 모델계에 빠지게 되었다. 초창기에 입덕한 모델은 제레미 뒤푸르라는 프랑스 태생의 고전적인 페이스를 가지고 있는 모델이었다. 또한 제레미 뒤푸르에게는 한국인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 언니는 유명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 였는데 나에게 능력 있는 여자는 잘생긴 남자를 쟁취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우치게 해 주었다. 제레미 뒤푸르는 얼마 가지 않아 루크 워렐이라는 모델에게 덕심의 바통터치를 해 주었다. 루크 워렐 또한 여자 친구가 있었고 그 주인공은 바로 켈리 오스본이었다. 켈리 오스본 또한 능력 있는 여자가 잘생긴 남자를 차지한다는 인생의 가르침을 일깨워 주었다. 내가 루크 워렐에 입덕해 한창 활동하고 있을 무렵 루크 워렐과 켈리 오스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 분위기를 밝힐 단서를 찾기 위해 나는 열심히 서치질을 했다. 처음에는 나의 파트너 구글 번역기와 함께 영어권의 여러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을 했다. 단어를 바꾸어가며 검색을 하여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나는 아침에 시험을 쳐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4시에 프랑스 야후에 들어가 마저 검색했다. 결국 프랑스 야후의 작은 기사에서 이 사건의 전말을 밝힐 수 있었다. 루크 워렐이 다른 여자와 함께 연인처럼 찍힌 사진과 Fiance라는 단어가 있었다.
나는 한국 모델계로 본진을 바꿨다. 홍종현을 거쳐 안재현까지 덕질 루트가 이어졌다. 안재현은 ‘남자 모델이 배우의 등용문으로 쓰이는 게 싫습니다. 저는 여러 여자 모델 선배님들처럼 우직하게 모델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라고 말해서 무척 호감을 샀으나 점점 배우가 되어갔다. 단역으로 출연하던 것을 넘어 천송이 동생 천윤재역을 맡아 조연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내 연예인 덕질이다.
내 노래덕질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담 램버트를 기반으로 한다. 아담은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8에 나와 준우승을 거두며 활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우연히,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메리칸 아이돌을 보고 있었는데 마침 그 부분이 아담 램버트가 나오는 부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악기는 사람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도 한 가수의 앨범을 다 모은 것은 아담 램버트뿐이다. 아담 램버트는 데뷔 순간부터 월드투어를 하며 여러 나라에 자신을 알렸지만 우리나라에서 유명해 진 것은 ‘If I Had You’가 카스 광고로 나오던 무렵부터이다. 그러나 아담 램버트를 좋아하고 나서부터 저주는 시작되었다. 아담 램버트를 본진으로 하던 내 노래 분야 덕질에 참여했던 몇몇 가수들이 전부 다 커밍아웃을 했다. 처음에는 아담 램버트가 커밍아웃을 했고 그 후에 좋아하게 된 미카도 ‘저에게 게이라고 물으신다면 예, 라고 답해드리죠!’라는 병맛 기사가 떴다. 후에 고등학교에 올라와 알게 된 존 패트리지도 이미지 검색도중 무지개 잡지에 표지 모델로 등장한 것을 보게 되었다. 덕질 연대기에 올라와있지 않은 3개월 미만의 덕질 대상자들 중에서도 스트레잇이 아닌 분들이 꽤 되셨다. 이런 과정 속에서 나는 홍석천과 같은 레이더가 나에게 달려있지는 않은가 고민하게 되었으며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자라지 않게 되었다.
이 두 분야 말고도 화려한 덕질을 하며 인생을 보냈으나 더 이상 적으면 한정된 수량을 넘어가기 때문에 여기에서 마친다. 그러나 빼 놓을 수 없는 미녀 삼총사의 세 주인공에게 나의 덕질의 시작을 열어주어 감사하다는 심심한 박수를 전한다.
<지난 19년간의 인생을 되돌아 본 나의 총평은 “ 끊임없이 덕질한 나에게 치얼스!” 이다.>
첫댓글 ㅎㅎㅎㅎ 재미있다.
덕질, 너무 과소 평가 한 것 같네.
그렇게 과정을 거쳐서 모든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니 즐기길 바래.
오타쿠, 오덕후, 오덕, 덕으로 변해왔다는 것은 알지?
그리고 한동안 유행했던 덕후도 같은 뉘앙스.
몰입할 수 있다는 사실 조차도 즐거운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