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가 다양하지 않아 먹을 게 별로 없다. 게다가 맵고 짜게 만들어 맛신통치 않다.’ 경상도 음식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다. 강원도와 접하고 있는 경상도 북쪽 오지 산골로 들어가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맑고 깨끗한 계곡과 바다 등 천혜의 관광 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외지인들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게 경상북도의 관광 현실이다.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내 외지 손님들을 불러들이자.” ‘경북 방문의 해’를 맞아 올 한 해 경상북도 주민들의 가장 큰 화두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 년 내내 경상북도의 숨은 맛을 찾아 구석구석 뒤지고 다닌 경북도청 관광진흥과 손삼호씨. 그는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값싸고 맛있는 음식을 찾았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가 목에 힘주어 말하는 ‘먹고 돌아서자마자 또 먹고 싶은 경북의 맛 삼총사’를 소개받았다.
<예천·봉화·울진> 글·사진=유지상 기자
1. 예천의 용궁순대…제일 좋은 막창에 양념 12가지
일제시대 때 용궁장이 서는 날이나 맛볼 수 있었던 음식이 예천의 명물 음식으로 발전했단다. 순대의 껍질부터 다르다. 시골장터에서 보던 얇은 껍질이 아니다. 그렇다고 함경도 아바이 순대처럼 두툼하지도 않다. “돼지 창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두께가 얇은 소창과 두툼한 대창, 그리고 그 중간 두께의 막창입니다. 용궁순대는 품질이 제일 좋은 막창만 골라 순대 껍질로 씁니다.” 손씨의 설명이다. 순대의 껍질만 따로 맛을 보았는데 씹는 맛이 있다. 그렇다고 질긴 감은 전혀 없다. 연하게 씹혀 부드럽게 넘어간다. 껍질의 속을 채운 순대의 내용물도 독특하다. 당면만 달랑 들어가 있는 게 아니다. 찹쌀이 듬뿍 들어간 것도 아니다. 선홍색 당근도 보이고, 파란 대파줄기도 보인다. 속에 들어간 재료만 12가지나 된다. 당근·대파·양파·부추·깻잎·당면·찹쌀 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다. 거기에 선지가 넉넉해 촉촉하고 부드러운 맛이다. 머리고기와 함께 썰어내는데 5000원을 받는다. 어른 두 명이 소주 한 병 마실 때 딱 맞을 양이다. 순대국은 돼지 뼈를 삶아 따로 국물을 내서 말아준다. 한 그릇에 3500원. 저렴한 값이 반갑고 허기를 달래면서 추운 몸을 데울 수 있어 또 반갑다. 용궁순댓집 메뉴엔 오징어불고기도 있다. 고추장양념을 한 오징어를 석쇠에 올려 연탄불에 구워낸 것. 매콤한 맛과 연탄불 향이 정겹다. 용궁면엔 순대집이 여럿 있는데 가장 오래된 곳이 단골식당(054-653-6126)이란다. 1970년부터 대를 이어 영업 중이다. 흥부네토종순대(054-653-6220)는 한약재로 돼지냄새를 줄여 처음 순대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좋다. 박달식당(054-652-0522)의 순댓국도 식사시간이면 손님들을 줄을 잇게 만드는 맛이다.
2. 봉화의 솔잎돼지구이…솔잎 깔고 숯불로 지글지글
봉화읍에서 청량산으로 향하는 918번 지방도로를 달리다보면 코끝을 유혹하는 향긋한 냄새가 솔솔 풍긴다. 봉성면 일대의 음식점 숯불 가마에서 기름이 쪽 빠지며 익고 있는 돼지구이 냄새다. 면 소재지의 이름을 따 봉성돼지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봉성의 돼지구이는 봉화 농민들이 키운 돼지고기만 사용합니다. 그중에서도 암퇘지만 고집하지요.” 청송숯불구이(054-672-1116)의 주인인 권오수씨의 말이다. 봉화에선 돼지를 키울 때 사료 대신 농사짓고 남은 수박 껍질이나 한약재 등을 먹인다고 한다. 그래서 살코기가 연하고 단백하다. 냉동 과정도 거치지 않은 생고기라 신선한 맛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것도 특징이다.
솔잎돼지구이의 가장 큰 매력은 주방의 숯불 가마에서 따로 구워 식탁에 올린다는 것. 식탁에서 연기를 피우며 굽지 않기 때문에 고기 냄새가 옷에 배지 않는다. 돼지고기를 소금으로 간을 한 뒤 석쇠에 올려 소나무와 참나무 숯불에 굽는다. 양면을 번갈아 가며 충분히 익힌 뒤 솔잎을 깔고 다시 한번 살짝 구워 그대로 식탁에 올려낸다. 돼지고기에 소나무 숯향과 은은한 솔잎향까지 겹쳐 솔숲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한 맛이 난다. 솔잎 돼지구이는 그대로 먹기도 하지만 당귀 잎을 곁들여 상추쌈을 싸기도 한다. 값은 500g(2인분)에 1만원. 봉송의 솔잎 돼지구이집은 청송숯불구이 외에도 봉성숯불식당(054-672-9130), 오시오식당(054-672-9012), 두리봉 식육식당(054-673-9037), 희망식당(054-673-9046) 등이 유명하다. 3. 울진의 물곰회…곰치회는 어떤 맛일까
‘물곰’은 곰치를 말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메기처럼 못 생기 몰골에 흐물흐물한 몸통으로 10여년 전만 해도 물고기 취급도 받지 못하던 어종이다. 버리기 아까워 동해안 가난한 어부들이 해장국 재료로 쓰던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부드러운 고기 살과 시원한 국물 맛으로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제 겨울이면 ‘물곰탕’ ‘곰치국’이란 이름으로 동해안 명물음식이 됐다.
대개 물곰은 끓여 먹는 생선으로 알고 있다. 일부 해안에서 회로 먹는다고 해도 각종 야채를 채 썰어 고추장 양념에 무쳐 먹는 수준이다. 그런데 울진 후포항에선 활어를 포로 떠 날로 먹는다. 연수회식당(054-788-6633) 황운석 사장은 “물곰은 살이 무르기 때문에 회를 만들어 내기가 무척 어렵다”며 “살아있는 물곰으로 최고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게 물곰회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물곰회는 겉보기엔 청포묵이나 솜사탕처럼 맑은 하얀 색을 띤다. 회에서 나온 육즙이 바닥에 자박자박하게 깔려 있다. 입에 넣으면 살짝 씹히는 게 마치 셔벗 같다. 시원하고 상큼한 뒷맛이 여운으로 남는다. 초고추장보다는 파와 마늘이 들어간 양념장이 어울리는 맛이다. 먹기 귀찮으면 묵사발처럼 양념장을 부어 후루룩 마셔도 좋다. 사람 수에 따라 양이나 값이 달라지는데 1인당 1만5000원 정도면 과메기·소라·오징어 등 해산물과 함께 배 부르게 먹을 수 있다. 수산회센터(054-788-2144)에선 어른 3~4명이 먹을 수 있는 것 한 마리에 4만~5만원을 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