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繁出번출'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나온다'는 의미 입니다.
(번거로울 繁번) 번거롭다는 말은 끝없이 한 없이 나온다.
'不思議부사의'란
끝없이 나오는데. 그것은 뭐 어떻게 생각할 수가 없다.
어떻게 짐작할 수가 없다란 겁니다.
어디서 나오느냐..
전부 海印三昧해인삼매 속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 설잠 스님 >
해인선정 가운데서 일어난 바의 법은 어떤 형상인가.
성性(성품 성)도 아니고 상(相:서로 상)도 아니며,
이理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며,
진(眞:참 진)도 아니고 가(假:거짓 가)도 아니지만
그러나 설한 바의 가르침은
곧 성性이면서 곧 상相이며,
곧 이理면서 곧 사思이며,
곧 부처이면서 곧 중생이며,
곧 진眞이면서 곧 가假이다.
19번 능인해인삼매중에서 '해인삼매'란 참성품(근본)을 말합니다.
이 참성품에서 일체의 세상이 들어난다는 겁니다.
세상은 참성품을 여의지 않았고
참성품은 일체의 세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내 앞에 벌어지고 있기에
'내가 살아 있구나'가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다른 언어로 표현하자면' 부처가 생생하게 살아있구나' 입니다.
부처의 성품(근본,마음)이 중생의 작용으로 들어나기도 하고..
중생은 부처(근본,마음)를 여의지 않았으며
어떠한 것이 진짜다 ..가짜다..라고 규정지을 수 없이
한마음으로 연기되어 있습니다..
딱히 부처다 라고 ...
딱히 중생이다..
규정지을 수 없습니다.
한몸이니까요...
한몸인 것을 ..
중생은 계속 구분지으려고 하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고 하니..
불교가 아리까리해서 어렵게 느껴지는 겁니다.
마치 손이 손가락 모양과 하나이고
바다가 파도를 여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중생의 착각(중독)은
대상 따로 경계 따로 인줄 착각하는 것 입니다.
오래된 잘못된 생각의 습관입니다.
이 생각의 전환이 반듯이 되어야만(불이문不二門)
관문을 통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눈자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있음'이 바로 성품(마음)이라는 것을
귀자체가 듣는 것이 아니라
'듣고 있음'이 바로 성품(마음)이라는 것을..
내가 무언가를 떠올리면
떠올려지는 이미지가 바로...
성품(마음)이라는 것을...
마음 하나가
눈,귀,코,혀,몸,생각의 기관을 통해
작용되고 있습니다.
시체는 작용을 하지 못합니다.
눈이 보는 겁니까?
귀가 듣는겁니까?
뇌가 생각을 하는 겁니까?
내 앞에 보이고 들리고 냄새가 나고
촉감으로 느끼고 생각이 떠 올려지는 것이..
마음의 증명입니다.
내 앞에 대상 경계가 외부 대상 경계가 아니고
마음이 경계로 비춰지는 겁니다.
마치 꿈 속에서 내 마음이 마음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저마다의 기관과 생각의 결을 통과해 인연따라..
내 앞에 펼쳐지는 겁니다.
< 설잠스님 >
일음(一音)으로 연창(演:멀리 흐를 연/暢:화창 할 창)하되
종류에 따라 각각 흐르고, 종류를 따라 각각 다르되
일음一音에 원만히 거두어들여서
중생의 가지가지 마음으로써 중생의 가지가지 성품을 설한 것이다.
의식과 감정이 이르러 갈 바가 아니요.
사량思量의 미칠 바 아닌 까닭으로
'마음대로 하는 부사의한 경계'라고 한 것이니 알겠는가?
"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서 고기가 물지 않으니,
빈 배에 달만 가득히 싣고 돌아온다."
부처(마음)의 한마음에서 가지 가지 모양으로
가지가지 차원으로 작용되어
내 앞에 펼쳐집니다..
예를 들어 내 앞에 빨간 사과가 놓여있다면...
누구는 빨간 사과로 보일 것이고..
누구는 빨간 동그라미로 보일 것이고
누구는 회색 사과로 보일 것이고..
누구는 거대한 먹이로 보일 것이고
누구는 극약으로 보일 것이고
누구는 사과가 보이지 않고 검은 바탕으로 보일 것 입니다.
저마다의 차원입니다.
눈이 좋은 사람은 빨간 사과로 보일 것이고
시력이 안좋은 사람은 빨간 동그라미로 보일 것이고
사과를 먹고 죽은 자식이 있다면
사과가 극약으로 보일 것이고
강아지는 색약이어서 회색으로 보일 것이고
애벌레는 그 사과가 엄청난 크기로 보일 것이고
눈을 잃은 사람은 사과 자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내 눈 앞에 보여지는 세계는 외부세계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시체가 아닌 이상..
공통적으로 아는 ' 무엇'이 있습니다.
오감과 정신차원에 따라 ..
보여지는 세계가 다르나..
아는 것이 있습니다..
나를 끌고 다니고...
움죽거리게 하는 그 게 뭐냐는 겁니다..
마음이 저마다의 차원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누구는 아귀의 마음으로..
누구는 무심의 마음으로..
누구는 선신의 마음으로...
부처(마음)는 마치 햇빛처럼 밝게 모두에게 비추고 있으나..
가지 가지 그릇 대로 작용되고 있습니다.
한 자리(마음)에서 6도 윤회가 펼쳐지며
인연따라 지금
내 앞에서 펼쳐져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코 앞에서..
생생한 경전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 경전이 바로..
내 차원의...경전입니다..
바른 안목 없이는 경전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서 고기가 물지 않으니,
빈 배에 달만 가득히 싣고 돌아온다."
내가 고기라면 ..
지금 무엇을 그리 물어대로 있을까요?
마음이 어떤 경계에도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마음은 항시 ..달빛처럼
여여하게 비추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