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용과 시낭송은 제 천직입니다”
강릉 최송자 원장
어떻게 미용을 시작하셨는지요?
의류사업을 하던 중 투자금이 별로 없어도 매출이 대단한 걸 보고 부러워하던 중 야간 학원을 다니면서 국가 자격증을 따고 봉사하면서 기술을 익히고 스텝부터 시작하여 개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손끝으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고 위생적으로도 깔끔하게 할 수 있어서 참 보람 있고 좋았습니다.
미용을 하면서 겪었던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미용 기술을 배우던 중‘자비원’이라는‘고아원’단체에 봉사를 하러 다니게 되었습니다. 초롱초롱한 눈빛의 아이들을 보면서 여러 면을 읽었습니다. 웃음 속에 슬픔이 환 함속에 누군가를 의식하고 눈치 보는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갓난아기를 목욕시키던 도우미들이 애기가 물을 먹고 키득키득하여도 전혀 죄스러움을 못 느끼는 보고 많은 것을 느끼었습니다.
어느 중학생의 머리를 잘 커트 해놓고 일이 생겼습니다.
머리 빗속에 칼날이 숨어있는 것을 모르고 학생이 머리 중앙을 빗어 내려서 고속도로가 멋지게 펼쳐져서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펄쩍 펄쩍뛰면서 울던 모습... ㅎㅎㅎ 그래서 그 학생은 빡빡이 머리로 커트 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처음 국가 기술 자격증을 소지하고 기뻐서 뭐든지 다할 것 같은 마음으로 공무원인 여동생 앞머리를 잘라주면서 ‘틴닝 가위’로 착각해서 머리뿌리부터 싹뚝 잘라서 난리가 난적도 있었답니다.
동생이어서 소송을 면했을 겁니다. 아마도 운이 좋았지요.
그러고 나서부터는 절대로 머리를 함부로 자르지 않았고 경력이30년이 지난 지금도 앞머리 컷트 시엔 수없이 가위를 확인하고 컷트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처음 자격증 합격 후 겁 없이 샵을 열어서 우여곡절이 수없이 많았답니다. 퍼머의 종류도 커트의 종류도 전혀 모르면서 염색은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전혀 모르면서 배짱으로 숍을 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육 제도가 워낙 많아서 협회의 미용세미나만 열심히 들어도 거의 마스트가 되는 것을 느끼었고 2018년도에는 강원도지사 배 미용대회 살롱업스타일 부문으로 출전하여 금상을 타는 쾌거도 거뒀습니다. 요즈음은 워낙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인과 성인들 그리고 청년들의 탈모 고민을 해결 해 드리기 위하여 ‘아카셀두피클리닉’을 접하게 되어 지금은 많은 분들의 인정을 받으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고객님들의 두피건강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미용세미나에 얼굴이 안보이면 연락이 올 만큼 적극적이고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짬짬이 어려운 곳을 찾아 미용봉사도 많이 하였습니다. 정신병원 병동에 자주 갔을 때 어떤 환자는 제게 주려고 초코파이를 주머니에 감춰두었다가 주기도하는 인정 있는 환자도 자주 만나곤 하였지요.
미용기술로 모두에게 아름다움과 자신감을 줄 수 있는 훌륭한 미용인으로 , 후배 미용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원장이 되겠습니다.
시낭송가가 된 계기가 있다면
중학교 2학년 때 노천명 시인의‘사슴‘ 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뭔가 뜨거운 덩어리가 가슴에 박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4절지 도화지에 노천명 시인의 사슴을 적어서 벽에 걸어놓고 늘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시절 손 편지를 즐겨 썼고 위문편지 또한 무척 많이 잘 썼던 것 같습니다.
여고시절엔 친구 따라 서점엘 들르면 포켓용 한국문학이라든가 시집을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시들이 저를 겨냥한 것 같아서 외우기를 즐겨하였고 국어 선생님이 넘 아름다우셔서 따라 하고 싶어서 공부도 열심히 하여 국어 성적이 우수했습니다.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종합정보문화센터’에서 ‘문예창작’ 수강생을 모집할 때 용기 내어 등록하여 공부하기시작 하였고 그해 5월 ‘강릉 여성백일장’에서 ‘차상’을 수상하게 되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문예창작’을 공부하면서 ‘시낭송회’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초대되어 그 자리에서 시낭송 아닌 시 낭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두컴컴한 카페에서 글자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사람들 앞에서 낭독이라 정말 많이 떨렸습니다. 마음 보다 손에 들고 있던 유인물이 떨림에 흔들려서 읽을 수조차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 낭독하는 자리가 너무 좋아서 다음부터는 초대하지 않아도 회비 들고 그 자리에 찾아가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과에 진학하게 되었지요. 시낭송을 공부하고 문예창작을 공부하기 위하여 선택한 국문과,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공부하였고 지금은 ‘가톨릭관동대학교’에서 ‘산림 치유학’을 또 이어 공부하고 있습니다. ‘방송통신대학교’ 레포트를 작성하면서 전국시낭송대회가 있다는 것을 인터넷을 통하여 알게 되었지요. 전국시낭송대회에 나가는 것도 줄과 백그라운드가 필요하다는 말을 그때 들으면서 오늘의 나는 내년에 꼭 다른 모습의 최송자가 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어떤 참가자가“ 최송자”씨가 여기 어떻게 나왔느냐고 물어왔을 때 맘속으로 많은 다짐을 하게 되었지요. 시낭송을 공부하는 곳이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전국 시낭송대회에 참가했을 때 암송해야한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알았지 뭐예요. 어느 해 8월 더위가 극성을 부릴 때 에어컨 시래기 앞에 나가서 두 편의 시를 외워서 무대에 섰던 첫 무대가 지금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아마도 책을 읽는 수준이었겠지요. 그 당시의 영상이 있다면 정말 좋으련만 그때는 영상을 알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복식이 무엇인지 몰라 바닷가에서 소리질러가면서 나의 소리를 찾던 모습과, 무대에서의 불빛을 감당하고 견디는 연습을 위해 강릉 ‘안보전시관’ ‘전적 비’ 앞에서 승용차 라이트를 켜고 연습하던 생각은 지금도 자랑스럽습니다. 대죽 사이로 부엉이 우는 소리에 놀라서 아들의 다급하게 부르던 소리 또한 지금은 멋진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4년 동안의 전국시낭송대회 참가 후 장려상을 받았을 때는 대상 받았을 때 보다 더 많은 눈물이 홍수처럼 쉼 없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독학으로 공부하여 얻은 상 덕분에 지금은 아마도 나만의 독특한 공부법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많은 시 낭송가들이 저의 특강에 귀를 기울이고 밥 사 주고 커피 사주면서 특강을 요청하는걸 보면 아마도 나름 남과 다른 교육법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 합니다. 2014 ‘한국문인’으로 등단하고 ‘신인문학상’ 수상과 ‘가고파 전국시낭송대회’ 장원을 시작으로 ‘제2회 대한민국시낭송대상’ 수상, ‘2018대한민국 시낭송 명인대상’ 수상, ‘2018 시낭송지도자 대상수상’, ‘2018 제1회 대한민국시낭송예술 종합대상’ 수상, ‘2019 대한민국시낭송명장 패’ 수상, ‘2019 백두산 문학상’ 수상 등 열어보면 정말 많은 상장들이 쌓여있고 또 많은 단체의 임명장 까지 많은걸 보고 그래도 미용인으로도 시낭송가로도 이름을 갖고 살 수 있어 행복합니다. 2018년 서울 명지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명품스피치와 시낭송”과정에서 시낭송지도교수로, 가을 학기엔“서울 경희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시낭송과 문학 테라피 과정을 지도교수로, 서울 방배동 “호서대학교평생교육원”에서 전국시낭송대회 준비반 주임교수로, 지금은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시낭송과 문학테라피”과정 주임교수로 시낭송을 지도하고 있으며, 강원도 강릉 “가톨릭관동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7년째 시낭송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 서초구 방배본동과 신 반포2동 주민센터에서 시낭송을 책임 지도하고 있고 밖으로는 백두산시낭송협회 회장으로 많은 회원들과 함께 즐거운 공연과 공부를 하면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교육 목표 중에 하나가 우리나라 전역에 은하수와 같이 시낭송가를 배출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낭송이 미용인에 좋은 점이 있다면
세상의 차별화된 시선을 바로 세울 수 있었습니다.
미용일을 하면서 기다리는 시간에 지루함이 없도록 자주 시낭송을 들려 드리기도 합니다. 그 낭송을 듣고 시낭송을 배우려 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등록하시는 고객님들도 많이 계십니다.
‘남과 같이 해 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말을 기억하고 살고 있습니다. 미용인도 못하는 게 없다는 걸 증명하였고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백일장에서 수상을 하고 각종 대회에서 수상한 상장들을 보면서 고객들도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고 하셨습니다.
미용인을 대표하는 시낭송가로 이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시낭송가라고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유튜브 작업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고 각종 ‘전국시낭송대회’에 참가하시는 예비 시 낭송가 들이 최송자 교수님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예선 통과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참으로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시낭송가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
저는 강원 강릉에 있는 가톨릭관동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시낭송 주임강사로 시낭송후배양성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평생교육원에서 공부하신 회원님들을 모시고 리더스시낭송클럽을 창립하여 열심히 시낭송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경포호수와 바닷가의 야외무대를 섭렵하여 많은 경험을 시켜드리고 있습니다.
강릉에 있는13개 시낭송동아리가 모여서 ‘연합시낭송회’에서 임원을 맡고 있으면서 열심히 후배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백두산시낭송협회’를 운영하면서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제자, 서울서초구 ‘방배본동& 신반포2동’ 주민센터 쪽에서 제가 교육한 제자들과 함께 전국무대를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올해 3년 접어든 ‘연합시낭송회’를 창설하여 지금은 ‘한국문화예술공동체(시.가.울), 복사꽃시울림, 안양시울림시낭송협회, 백두산시낭송협회’ 이렇게 네 개의 단체가 모여서 매월 돌아가면서 각자의 지방에서 또는 좋은 곳에서 무대를 만들어 각 단체의 회원들과 함께 ‘연합시낭송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으며 지금은 전국의 모든 시낭송회의 부러움을 받고 있습니다.
‘국제시낭송예술인연합회 강원도 영동지부 회장’을 맡고 있으며 ‘(사)한국공연문화예술원(색.시.랑)’에서 ‘자문위원’으로 있으며 ‘백두산문학회’에 ‘부회장’.등.....많은곳 에서 시낭송가로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낭송가가 되기 위한 과정을 간략하게
시를 즐겨 읽으시고 시낭송을 교육하는 곳에서 시낭송 공부를 하신 후 자신에게 맞는 시와 인지도 있는 고급시를 선정하여 암송하여 청중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때 전국 시낭송대회에 참가하여 대상을 수상 하시면 시낭송대상 상장과 시낭송가 인증서를 받게 됩니다. 서두르지 마시고 차근차근 쌓아 가시면 늦어도 대상은 탈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노력한 만큼.....
급한 마음을 가지시고 ‘전국시낭송대회’에 도전하시면 상처만 받으시게 됩니다. 시낭송은 즐기면서 무대에서 잃어버리지 않고 내려오는 것이 목표가 된다면 아마도 즐거운 시낭송이 되고 또 시낭송대회에서 최고의 대상을 수상 하시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단기간에 집중교육으로 시낭송 대상을 받으신 분들도 계십니다. 우리가 밥을 지을 때도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듯 시낭송도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을 갖고 꾸준히 연습하시기 바라며 대상을 받으신 분들은 더더욱 내가 받은 대상에 대한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충분한 연습 없이 무대에 올라가시면 대상받고 무슨 시낭송을 저렇게 하지? 하는 비웃음을 받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스스로 명품 시낭송가가 되기 위해 꾸준한 연습에 연습을 하셔서 청중에게 감동을 주는 훌륭한 시낭송가가 되시길 바랍니다.
<뷰티라이프> 2020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