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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6. 29. 출발- 체코 프라하
이번에 또 국외연수 기행문을 쓰려니 미안한 생각이 먼저 든다. 평생에 외국에 한 번도 안나가본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데 국비로 두 번씩이나 해외에 나간다는 것은 개인적으론 여간 행운이 아닐 수 없지만 한편으론 욕을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2005년 지중해 연안(그리스, 터어키, 이집트) 국외테마연수에 이어 이번에 한 번 더 국외연수를 가게 되었다. 물론 이번 국외연수는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고 지난번과 경우가 다른 것이지만 어쨌든 나랏돈을 지원받아 해외에 나간 것은 동일하므로 이러한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내가 여행 후 이렇게 장문의 기행문을 남기는 이유는 나 자신이 이 글을 수시로 반복해서 읽어보며 연수의 의미를 되새김하려는 뜻도 있지만 직접 그곳에 가보지 못 한 사람들에게 간접경험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이다. 비싼 돈 들여 해외에 나가서 사진만 몇 장 찍고 그것으로 그친다면 너무 허무하지 아니한가?
나는 금년(2010년)에 한국교원대학교 정책전문대학원에 파견발령을 받아 그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이번에 국외연수를 가게 되었다. 총 71명의 정책전문대학원생들은 이번 연수에서 4팀으로 나뉘었는데 지도교수를 포함한 16명의 우리 팀은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9일까지 10박 11일의 일정으로 동유럽 6개국(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독일)을 여행하게 되었다. 이들 국가는 스스로를 중유럽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여전한 모양이다. 여행 일정이 다가오자 어릴 적 소풍가기 전 날 그랬던 것처럼 마음이 설레었다. 6월 29일 아침 일찍 일어나 여행 가방을 챙긴 다음 6시 20분경에 김해공항으로 가니 팀장인 부산교육청 박희문 사무관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7시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이동하여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식사로 된장찌개를 먹고 있는데 마침 경북교육청 김인숙 사무관이 미소를 머금고 반갑게 들어왔다. 연결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너무 일찍 올라온 관계로 미팅 예정시간인 11시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공항청사 내를 이리 저리 둘러보며 시간을 보낸 후 약속 장소인 C카운터 앞으로 가니 전국 각지에 있는 팀원들이 시간에 맞추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우리 팀 수행 가이드 정애경씨를 만나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들은 후 각자 갖고 온 짐을 수하물로 부치고 검색대를 통과하여 탑승장 대합실로 들어섰다.
이때 내 뒤를 따라 검색대를 지나던 박희문 사무관이 검색에 걸려 출입국관리 여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있었다. 100㎖이상의 액체는 기내 소지가 금지된다고 그렇게 얘기했건만 박 사무관은 플라스틱 물병에 담은 매실주 한 병을 배낭에 넣어 들여오다 검색에 걸린 것이다.
장시간 비행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기내에서 마시고 쉽게 잠들 요량으로 소지했던 것인데 출입국관리직원은 이를 봐주지 않고 압수를 하였다. 매실주를 뺏기고는 "집에서 담근 귀한 것인데"라고 속삭이며 애통해 하는 박 사무관의 모습을 본 우리 일행들은 "아까운 것 우리가 가서 다 마셔버리자"라고 말하며 즉시 쫒아갔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이미 폐기물 처리 통에 들어가 있었다.
우리는 탑승장 대합실에서 조금 더 기다리다 시간이 되어 설레는 가슴을 안고 27번 탑승구를 지나 프라하향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조금 늦은 오후 2시 30분경에 드디어 활주로를 벗어나 하늘로 올랐다.
사진 1) 인천국제공항 C카운터
사진 1-2) 프라하향 발 27번 탑승구
사진 2) 우리가 타고간 비행기
나는 비행기 중앙 왼편 좌석의 통로 쪽에 자리를 잡았다. 내 옆에는 외국인 부부가 타고 있었다. 바로 내 옆 좌석에 앉은 부인은 가끔 남편이 있는 쪽의 창문을 통해 바깥 구경을 하기 위해 육중한 엉덩이를 내 코앞에 들이밀며 나를 힘들게 했다.
점심을 안 먹어 배가 고프던 차에 3시 30분경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나는 산채비빔밥을 선택하였다. 옆의 그녀도 호기심 때문인지 나와 같은 비빔밥을 달라고 하였는데 먹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나를 따라하라는 뜻으로 햇반을 열어 나물이 담긴 그릇에 붓고 1회용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은 다음 포크와 숟가락으로 천천히 비비며 행동으로 설명하였으나 그녀는 모든 것이 서툴렀다. 그녀는 비빔밥이 입맛에 안 맞는지 반쯤 먹다가 남은 것을 남편에게 인계하였다.
나는 그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하였다. 영어로 하면 과연 알아들을 수 있을지 염려되어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녀가 마시다 실수로 선반에 엎지른 커피를 내가 직접 닦아주며 친근감을 표시한 다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어보았다. 반갑게도 그들은 우리의 목적지인 체코사람이며 프라하에 집이 있다고 하였다. 자유여행 같았으면 그들의 집에 민박을 부탁하며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사진 3) 옆좌석 체코인 부부와 함께
사진 4) 기내식 산채비빔밥
10시간 이상 비행이라 지루하기가 이만 저만이 아닌데 장시간 비행기 좌석의 좁은 공간에 계속 앉아있으려니 몸이 뒤틀리고 답답하였다. 다행히 나는 좌석이 통로 쪽이라서 잠시 졸다가 깨면 통로를 오가며 몸을 풀었다. 기내에서 제공한 이어폰을 귀에 걸고 음악을 듣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우리시간으로 오후 7시경이었다.
눈을 비비며 화장실을 다녀오다 창밖을 내려다보니 구름사이로 넓은 숲과 여러 가지 모양의 크고 작은 호수가 보였다. 우리비행기는 러시아 상공을 날아가고 있었는데 공연히 사진을 찍다가 미사일 한방 맞지는 않을지 쓸데없는 걱정이 들기도 하였다. 우리시간 오후 8시경이 되자 따듯한 물수건과 함께 기내식으로 농어튀김이 제공되었다. 창밖으로는 도시의 모습이 간헐적으로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진 5) 러시아 상공에서 내려다본 풍경
사진 6) 운항 정보 지도
한참을 더 날아 우리시간 새벽 1시에 비행기는 드디어 프라하 국제공항에 착륙하였다. 현지시간으로는 오후 6시였다. 프라하 공항은 국제공항치고는 그다지 크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청사를 빠져나온 우리는 시계바늘을 현지시간에 맞추고 청사 앞에서 가슴을 부풀리며 우리를 태우고 갈 버스를 기다렸다.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는 흔히‘백탑의 도시’,‘유럽의 음악학원’,‘북쪽의 로마’등으로 불리어지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힌다고 하는 데 과연 그 모습이 어떠할지 궁금하였다.
사진 8) 프라하 국제공항 터미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조금 기다리니 곧 여행사 관광버스가 왔다. 차량은 피터라고 소개된 운전기사의 외모만큼이나 반듯하고 깨끗하였다. 버스를 타고 숙소인 파크호텔로 이동하여 여장을 푸니 오후 7시 30분이었다. 숙소는 시내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기내식으로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긴 했지만 그때로부터 무려 7시간이 지나 현지시간으로 다시 저녁시간이 되었는데도 여행사에서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들 배가 많이 고팠다. 그래서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길 건너편의 중국집을 발견하고 식사를 하러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엔 자장면과 짬뽕은 없었다.
사진 10) 첫째날 숙박한 파크호텔
사진 11) 호텔방 화장실과 욕조
숙소에 들어가 대충 씻고 정리한 다음 오후 9시경에 프라하시내 야간투어를 위해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그 시간에도 아직 해가 남아 있어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옵션인 야간투어라고 하기에 버스를 타고 시내 구석구석을 한 바퀴 돌아보는 줄 알았는데 정애경 가이드는 시내 모처에서 우리를 내리게 한 다음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안내하였다.
이리 저리 길을 건너고 골목을 한참 지나 오후 10시경에 우리가 도착한 곳은 구시가지 광장이었다. 광장에는 세계 각지의 수많은 관광객들과 낭만을 즐기려는 체코 젊은이들로 가득하였다. 말로만 듣던 천문 시계탑이 조명불빛에 환희 빛나고 고개를 돌리니 틴 교회의 쌍둥이 첨탑이 하늘을 찌르며 우뚝 서서 반짝이는 모습으로 우리를 반기었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사방을 둘러보는데 쭉쭉빵빵한 미녀들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우리의 눈을 더욱 황홀하게 하였다. 더러는 노상카페에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며, 더러는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서서 늘씬한 자태를 뽐내며 깜찍한 눈웃음으로 우리를 유혹하였다. 인형같이 예쁜 체코 미인들의 용모를 훔쳐보느라 뭇 남성들의 눈알 굴러가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사진 12) 구시가지 광장 천문시계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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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4-2) 노상카페의 모습
그런데 광장을 둘러보며 더욱 크게 놀란 것은 우리나라 현대자동차에서 바로 그 광장가운데 전시장과 함께 대형스크린을 설치하여 광장에 모인 군중들에게 월드컵 중계방송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눈에 읽은 "HYUNDAI"라는 글씨를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였다. 현대가 정말 대단한 기업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곳의 군중들에게 내가 바로 현대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싶었다. 그 시간 마침 대형 스크린에는 스페인 대 포르투갈의 16강전 축구경기가 방송 되고 있었고 수백명의 군중들이 그 앞에 모여 구경하고 있었다.
사진 15) 광장에 설치된 전시장과 대형스크린
우리 일행은 붐비는 사람들의 틈새를 헤치며 이 곳 저 곳을 둘러보다가 광장 한쪽의 어느 노점에서 프라하 방문 기념으로 생맥주를 한잔씩 들이켰다. 잊을 수 없는 프라하의 추억을 소망하고 있었던 나는 뭔가 이벤트를 만들고 싶었는데 마침 눈앞에 한 무리의 미녀들이 서성이는 것을 발견하고 그중 돋보이는 한 사람에게 접근하여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고 청하였다.
금발의 미녀인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반기며 연인에게 하듯 먼저 어깨동무를 하는 통에 내가 오히려 당황하였다. 나는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고 그녀를 살며시 감싸며 다시 포즈를 취하였는데 번쩍하며 카메라의 후레쉬 불빛이 터지는 순간 우리 뒤에서 '와!'하는 군중들의 함성소리와 함께 요란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어떻게 알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축복하는지 흐뭇한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니 대형스크린에는 스페인 선수가 한 골 넣는 장면이 나타났다.
사진 17) 프라하의 연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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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일행들은 그새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무도 없었다. 길을 잃으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그녀와 서둘러 작별인사를 하고 일행의 뒤를 좇아 황급히 시계탑 앞으로 달려갔는데, 아뿔사! 경황이 없어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녀의 이름도 물어보지 못하고 이런 일을 대비하여 국내에서 미리 준비해간 내 영문명함도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돌아가려 해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녀도 자기 일행들과 함께 어디론가 가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애통해하는 내 심정도 모른 체 다음 갈 길을 재촉하는 가이드가 너무 너무 야속하였다.
가이드는 다음 순서로 카를교(다리)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가이드를 따라 또 한참을 걸었다. 구시가지 광장을 비롯하여 우리가 지나간 길은 모두 네모로 작게 자른 돌조각으로 포장해 놓았는데 반들반들 닳은 모습이 많은 세월동안 그 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음을 잘 증명하고 있었다. 수백 년이 지나도 끄떡없고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운치가 난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주변에서 흔히 사용하는 시멘트 보도블록보다 훨씬 경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위로 오래 걸으면 발바닥이 아픈 것이 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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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교에 가니 입구는 공사 중이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다리 위를 거닐며 아름다운 여름밤의 낭만을 즐기고 있었다. 프라하 시내를 가로지르는 볼타바 강 위에 세워진 카를교는 12세기에 이미 목재교가 같은 위치에 있었는데 강이 범람할 때 붕괴되어 12세기 중엽에 목재교는 석재교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석재교 또한 강물로 인해 붕괴되어 1357년 카를 4세 때 교회 건축가인 피터 팔레지가 다시 건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 전 유럽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알려지고 있다.
카를교에서 바라본 볼타바 강 주변의 야경은 다리 위 한쪽에서 서로 볼을 비비며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그러나 장시간 비행과 시차에 따른 피로 때문인지 아니면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의 감탄을 자아낼 만큼 환상적이지는 않았다. 우리는 다음날 낯 다시 찾을 것을 기약하며 길을 되돌아 잠시 헤매다가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길을 헤매는 중에 자유를 상징하는 열쇠 조형물도 보았다. 침대에 누우니 시계는 밤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시간으론 아침 7시이니 결국 밤을 꼴딱 새운 셈이다.
사진 21) 카를교 위에서 프라하 성을 배경으로
사진 23) 카를교 위에서
※ 야경 사진은 여러 장 찍었는데 모두 어둠침침하고 제대로 된 사진이 하나도 없어 이해를 돕기위해 부득이 몇 장은 인터넷을 뒤져 자료를 보완함.
사진 25) 자유를 상징하는 열쇠(85,741개)로 만든 체코 민주화혁명 기념조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