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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번개모임 취소글을 게시판에 올린 나의 스케줄은 이렇게 바뀌었다.
경주벚꽃놀이를 위해 입고 온 날라리 복장을 문상객 복장으로 바꿔 입는다
신문사에서 집에까지 갔다 오는데 최소한 왕복 2시간 30분.
검정색 양복과 검은 넥타이를 매고 삼성의료원으로 간다.
8시 30분쯤 일원동 삼성의료원 장례식장에 가서
문상차 그곳을 방문한 고위공직자들을 접대한다.
술을 마시며 너스레를 떤다. 이른바 재롱을 떨어주자.
그런데,
"모임취소가 웬말이냐 철회하라 취소선언." 이런 구호를 외치며 반기를 들고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거다. 오늘밤 반드시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거다.
대기상태에 있을 테니 알아서 연락해 달라는 거다.
강변북로를 지나 동부간선도로를 달려 집으로 향하는 중에도 전화벨은 울려댄다.
찬임이가 자기 차를 끌고 나올테니...그걸 타고 가잔다.
김샜다며 나자빠졌던 광숙이도 다시 힘을 얻어
"허리 아파 못갈 상황이지만 억울해서 안되겠어. 어찌됐든 가자"며 강력해졌다.
석진이는 언제나 광숙이 편이다.
정숙이도 싱글벙글 웃으며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 오늘 삼성의료원에서 밤샘하고 장지까지 갔다가 내일 늦게 돌아올께" 했다.
이 말을 들은 정숙이는
"내가 다 연락했어. 광숙이네 집에 있을 테니까 그리로 와" 하는 거다.
나는 "안돼"라고 짧게 대답하며 집을 나섰다.
오늘 술을 먹는다. 이제부터 차가 없다. 전철로 움직인다.
서울시장의 주문대로 이른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오늘밤 술을 먹어야 하는 나는 차를 집에 두고 삼성의료원으로 향했다.
도데체 어느 게 배신행위인가.
벚꽃번개를 다시 강행하게 된다면…
경주에 가지 않고 천안이나 대전에서 하룻밤 자고 온다면…
그동안 준비했던 연희 미자 재수 석철이 금혜는 뭐가 되는가.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겠는가
또 만약에 번개 취소로 결말 짓고 나자빠진다면
기대에 부풀어 떠날 준비를 했던 석진이 광숙이 찬임이 정숙이는
얼마나 허탈해하며 배신감을 느낄 것인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엇다.
삼성의료원으로 가는 도중 급한 전화가 자꾸 걸려온다
문상객을 접대하고 있던 사장이 김국장을 자꾸만 찾는다는 현장의 연락이다.
한 달에 두 세 번 꼴 먹게 되는 삼성의료원 장례식장의 육개장은 정말 맛있다.
오늘도 그 맛은 변함없다.
부의금 금액으로 따진다면 엄청나게 비싼 육개장 아닌가.
내 왼쪽 팔에 검은 줄의 완장을 채워준다.
윤흥길의 소설 '완장'이 생각난다.
육이오때 시골 마을을 점령한 북한 인민군이
이 동네 부자집 상머슴에게 완장을 채워주며
공산당 앞잡이가 되어줄 것을 요구한다.
그 상머슴은 드디어 자기 세상이 왔다며 온갖 망나니 노릇을 하게 된다.
주인집 영감을 인민재판에 넘기고
평소 자기에게 서운한 행동을 했던 마을 사람들을 하나하나 처단한다.
왼쪽 팔뚝의 완장의 힘으로 말이다.
교대 다닐 때 학군단 활동을 하며 가끔 찼던 완장 이후 33년만에 처음이다.
그 완장을 차면 문상객 누구에게나 접근이 가능하다.
참이슬 술병을 들고 다니며 힘께나 있어 보이는
부총리나 장관급 대기업 총수에게 잔을 권한다.
그리고 그 분들께 한국경제신문의 좋은 점을 인식시키고 나아가
함께 취해야 한다. 가끔은 너스레도 필요하다.
그들과 나는 명함을 주고 받으며 친구가 된다.
반경 4km 이내에 내 차가 없으면 나는 술에 대해 용감해진다.
주는대로 다 받아 마신다.
그리고 받는 만큼의 두배로 갚아준다.
1시간여, 내가 상대한 사람이 10명은 된 것 같다.
평균 두 잔씩 받아 마셨다면 참이슬 3병쯤 될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혀 취하지 않는다.
소주 돗수가 낮아지긴 했지만 그것은 아마도 완장의 힘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벨이 또 울린다.
내 전화기 벨소리는 옛날 면사무소 전화벨 소리다.
다이얼식 전화기...따르르릉...이런 소리….
석진이다. 지금 삼성의료원 후문 큰 길로 나오라는 것이다.
국세청에 근무했던 석진이...힘으로 치면 나
나에게 당장 나오라고 큰 소리로 명령을 한다.
나는 그만 주눅이 들었다.
생각해보라. 지금 내 주변에는 석진이보 더 막강한 힘을 가진
고위공직자들이 나와 술을 먹고 있다가 나의 주눅 든 모습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지….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
정신을 가다듬어 전화에 대꾸했다.
"왔이스뎃?...디스이스 킴...와이?...오~ 노, 노,...텔미 …오우케이...왓셀아이두?...으음?
...예스, 아윌 디파츄어 피브틴미니트스 어고우...오케이...텐어클락"
하고 전화를 끊엇다.
이후 15분동안 못하는 영어와 엉터리 일본어로 좌중을 웃기고는
화장좀 고치고 오겟다며 슬며시 일어났다.
내 소속국에서 내일 장지에 갈 사람 5명을 차출해 달라는 관리담당 이사의 지시를
까맣게 잊은 채 줄행랑을 쳤다.
삼성의료원 후문 큰길까지 갈려면 빈소에서 걸어서 10분은 걸린다.
나의 구름과자 ‘에쎄 라이트’를 하나 입에 물고 시원하게 빤다.
그리고 시원하게 내뿜는다. 세상 근심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다.
10시 20분쯤 찬임이의 스포티지가 내 앞에 섰다. 뽑은지 6개월된 A급이다.
나는 뒷자리 가운데에 앉았다.
서울에서 온양에 도착할 때 까지
석진이 광숙이 정숙이 찬임이가 했던 말은 "하하하" 밖에 없다.
나 혼자 우리나라 정계 재계 언론계 그리고 전세계의 지정학적 문제까지
은퇴 후 설계할 실버라이프까지...나 혼자 떠들어댔다.
즉석에서 바이칼경제대학 유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바이칼 천사....어쩌구 저쩌구..."까지 하면서 원맨쇼를 했다.
그냥 떠든 술주정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개그를 구사했다.
벗어 던지고 왔지만 상가에서 찼던 완장의 힘이었다.
그 완장의 효험은 온양 뉴코리아호텔 310호실에 들어설때까지 지속됐다.
힘 빠진 흥시기.
나는 그냥 방바닥에 누워버렸다. 찬임이가 스톱워치로 쟀는가보다.
정확하게 누운지 10초후에 잠이 들더란다. 기네스북에 올려도 될만한 기록이다.
아침에 깨어보니
석진이가 시버스리갈을 한 병을 가지고 왔고
찬임이가 구절판에 각종 맥주안주를 담아왔으며
배즙에 곶감까지...
온양에 살고 있는
친정어머니가 싸 주셨다며 먹을 것을 골고루 가져왔다
떡이랑 홍삼탕이랑…
영호가 가지고 온 먹거리도 맛있었지만 영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33년전 타임머신 로켓 소리가 더 구수했다.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우리가 몰랐던 비화를 끝없이 늘어놓는다.
우리 동기들 웬만한 걸작 이름을 죄다 들먹거린다.
마치 LA 흑인특구 슬림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스릴 만점의 이야기가
영호의 입에서 끝없이 흘러 나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다가 어느 땐 무서운 공포에 떨어야 했다.
또 어느땐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아슬아슬하면서도 스릴 만점인 이갸기였다.
그 이야기 모두는 실제로 있었던 실화라고 강조한다.
영호는 우리에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는 순두부찌개를 사줬다.
너무너무 맛이 있어서 우리는 그 순두부찌개를 추가로 주문하여 싫컷 먹었다.
뉴코리아호텔에 세워둔 스포티지.
나는 찬임이한테서 열쇠를 강탈하여 운전대를 잡았다.
시동을 걸고 후진기어를 넣고 사이드브레이크 풀면서 서서히 후진
브레이크...덜커덩...다시 후진...브레이크...덜커덩...
내가 16년간 타고 다닌 콩코드와 브레이크 감각이 영 다른 것이다.
나는 운전대를 다시 찬임이에게 넘겼다.
광숙이는 내가 운전을 잘못하여 아팠던 허리가 다시 악화됐다며
잊을만하면 한번씩 두고두고 이야기를 한다
영호는 천안
영호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요즘 천안-아산지역 10회 친구들 15명이 모임을 갖고 있는데
그 모임 이름이 처음엔 교포모임(교감을 포기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불렀다가 다시 부드럽게 웰빙모임(스트레스 안받고 좋은 생각하고
좋은 음식먹고 좋은 곳 놀러 다니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부르다가
최근엔 다시 교양모임(교감을 양보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부른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나와 석진이는 27년전인 지난 1979년
그때 벌써 전국교양협회에 회원가입을 한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영호와 나와 석진이는 교감을 양보한 교양모임의
같은 회원이나 다름없다.
재숙이를 만나러 목천휴게소로 가야한다.
천안 수신면이 고향인 석진이...그 집의 며느리인 광숙이
또 이곳 성남면에서 6년간 근무했던 나
목천휴게소를 찾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지독한 황사는 주변의 산세를 살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도데체 우리는 지금 어디로 달리고 있는가.
이곳이 어디란 말인가
4차선 고속화도로를 한참 달리다가...여기가 아닌개벼...
다시 토끼굴로 내려와 반대차선으로 역방향 주행...
이리 저리 새로 뚫린 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지만
모두가 낯설어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있다.
재숙이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우리가 만날 장소를 신계리 검문소로 바꿨다
천안에서 성남 수신 쪽으로 가다보면 갈라져 들어가는 곳이 있다
이곳이 신계리다
어렵게 그리고 다행히 신계리 검문소에서 재숙이를 만났다.
모두들 무척 반가워 한다.
그런데 그 모임을 팽개치고 우리에게 달려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엄마께서 어제 오셨는데
오늘 재숙이의 수발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재숙이에게 미안했다.
그러나 용감하게도 단숨에 달려온 재숙이가 얼마나 고마운지…..
자동차 두 대가 됐다. 여유좌석도 생겼다.
온양에서 천안까지 정원초과로 달려왔는데
이젠 4명과 3명으로 널널하게 나눠 타고 공주를 향해 달리고 있다.
재숙이 차가 앞장을 선다.
좁은 길 넓은 길…이리저리 돌아
어느새 우리는 공주로 향하는 옛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짙은 황사 때문에 먼 경치가 보이지 않는다.
차령 고개를 넘어서자 낯익은 산세가 눈에 들어온다.
아직도 남아있는 유구천 둑방 신작로
양편엔 억새가 제멋대로 자라있다.
농부들이 하천 고수부지 텃밭을 일구려 불로 억새를 태우고 있다.
억새를 태운 연기가 황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져 버린다.
누군가 그리워하며 하늘을 향해 수없이 손짓하던 그 억새들
억새들이 연기가 되어 황사에 빨려들어가고 있다.
33년전 가끔 스쿨버스를 타고 서울행사에 다녀올 때
우리들 버스를 향해 수없이 손짓하던 하얀 손들
그것이 잔인한 4월의 풍경이었는데…
오늘도 변함없는 황사 여행길이다
운전대를 잡은 찬임이가 나에게 주문 한다
어제처럼 재밌는 얘기좀 해보란다.
근데 어찌된 일인가.
황사는 내 눈앞을 가릴뿐더러 내 입과 가슴까지 동여매고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지는 황사 낀 공주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아무런 이유 없이 우울해진다.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다.
강 건너 금강철교 끝에 기대 선 산성공원을 찾았지만
짙은 황사에 가려 윤곽만 간신히 보여주고 있다.
앞장 선 차에서 전화가 왔다
황사 낀 공산성은 오면서 나중에 들르자고 한다
계룡산 남쪽의 신원사로 먼저 가잔다.
계룡산엔 갑사 동학사 신원사 3대 사찰이 있다.
갑사와 동학사는 자주 가봤지만 신원사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공주에서 남동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신원사.
계룡산의 남쪽에 위치한 신원사까지 30분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좁은 비포장 도로를 거침없이 달린다.
공원입장료도 없이 무사통과해버린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신원사에서 북동쪽 2시방향 500 미터 전방
산중턱에 자리잡은 제법 규모가 큰 암자였다.
고시공부를 하는 학생들과 주방 일을 거드는 보살님이 계셨다.
영호는 이 암자를 자주 찾아왔던 것 같다.
보살님과 잘 아는 사이였다.
오면서 스님과 통화를 했다고 한다. 스님은 지금 대전에서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단다.
영호와 재숙이는 법당으로 들어가 여러 차례 절을 했다.
아마도 공주교대10회 친구들 모두 행복하게 살도록
온갖 정성을 다해 비는 모습이었다.
보살님이 정성껏 지어준 따근한 밥을 먹었다.
고사리를 비롯한 산나물 호박 등 나물무침이 맛있었다.
석진이가 가지고 온 시바스리걸을 한 잔씩 채워
일십백천만구구팔팔일이삼사 라는 의미 있는 말을 외치며
33년만에 만난 기쁨을 만끽했다.
우리끼리는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다.
친구끼리 서로 아무나 팔짱을 끼고 즐거워한다.
맛있게 담근 깻잎을 치켜들고 남녀 친구들 서로 협동하여 한 장씩
갈라 먹는 정겨운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깔깔대고 웃는다.
암자에서 내려오다 신원사에 들렀다.
신원사 입구에 늘어선 벚나무는 이제 막 만개하고 있었다
70% 개화율을 보인 벚나무를 보며 아직 덜 핀 꽃망울이
어쩜 저리도 수줍어보일까. 겸손한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신원사는 백제 때 창건됐다고 전해진다. 그동안 전쟁을 겪으며
불에 타 몇번의 중창을 거쳤겠지만 말이다.
절 터가 비교적 넓은 편이다. 뜰에 세워진 돌탑도 매우 건실하다.
대웅전에 칠해진 단청으로 보아 보수한지 얼마 안된 느낌이다.
대웅전은 매우 뛰어난 건축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신원사 정원에 심겨진 꽃들을 하나하나 적어보니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화투장이었다.
소나무에서 시작하여 매화 싸리 목단 국화 단풍나무까지…
다시 차에 올라 공산성으로 향했다.
황사가 걷히길 기다렸건만 여전히 짙게 깔려있다.
공주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중앙통 네거리에서 우회전
버스터미널을 조금 지나면 공산성 입구 주차장이다.
공주시내 중앙통은 33년전과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그때보다 건물이 조금 높아졌다는 느낌 뿐…
큰 건물마다 5.31지방선거를 대비하는 출마 예정자들의
대형사진이 걸려있어 조금 어지럽다는 느낌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우리가 내리자 때마침 커다란 북소리가 울렸다.
백제 때 그 모습 그대로 공산성 수비대가 성곽 위에서 성밖을 관찰하다가
우리를 환영하는 북소리였다.
자기들 병사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귀한 손님이니 절대로 공격해선 안된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성곽 위의 군인들은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있었다.
입장료 1,200원을 내고 서문을 통해 공산성에 들어섰다.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33년전 그 모습이 아니야. 이쪽엔 조그만 마을이 있었는데 없어졌어
길도 달라졌네. 그땐 포장된 길이 아니었는데…
쌍수정 광장으로 올랐다.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어? 난 처음 올라와 봤어. 옛날부터 있었어?
옛날부터 없었으면 누가 이렇게 넓은 광장을 만들었겠어?
광장 한가운데 큰 가마솥 모양의 연못이 있다.
팻말에 연못이라 적혀있으니 연못으로 알지만
모양은 큰 우물처럼 생겼다.
쌍수정 광장을 둘러싼 벚나무는 아직 피지 못하고 있다.
강바람이 차서 아직 봄을 감지하지 못한 것 같다.
친구들은 33년전을 추억하며 사진을 찍었다.
데이트를 가장 열심히 했던 석진이 광숙이한테
공산성 추억을 말해보라 했더니 웃기만 하고 말하지 않는다
공주에서 여중 여고 교대를 나온 재숙이는
해마다 소풍날 올라오는 곳이라 지겹다고 한다.
정숙이는 아카시아꽃이 핀 공산성을 기억하고 있다.
가깝게 지내던 세진이랑 올라왔다고 한다.
또 누가 나에게 묻는다. 공산성 추억을 말하라고
“난 문학회에 미쳐서 이런 곳에 올라올 시간 여유가 없었어”
모두들 믿지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도 공산성 기억은 있다.
이번에 대학을 졸업한 우리 딸내미 효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공주를 찾아서라는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는데
그때 배우의 아빠로서 따라다닌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쌍수정 마당 가운데 군데군데 서 있는 오래된 벚나무는
흥시기 머리처럼 대머리가 많다.
몸통은 제법 굵은데 몇 안되는 가냘픈 가지가 뻗어있다.
그 가지마다 꽃망울을 드문드문 달고 있다.
마치 석부작 목부작 고목나무 분재를 보는 느낌이다.
친구들은 그 굵은 벚나무 몸통의 앞에 섰다.
50 중반을 달리는 우리처럼 그 벚나무 역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적어 보이는 늙은 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나를 제외한 6명 모두 1학년 1반이다.
3반이었던 난 하루 종일 1반 반창회 사진만 찍어주고 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재숙이가 제안했다. 공주에서 천안으로 가다보면
절구와 인절미라는 민속레저타운이 있는데
그곳에 잠깐 들러 차 한잔 마시고 저녁도 먹고 가자고 권한다
광숙이는 “아냐, 저녁은 서울서 먹을 거야. 고속도로 막혀. 시간 없어”
라며 잘라 말한다.
재숙이가 머슥해졌다.
나는 “우리 재숙이 의견에 따라보자. 절구와 인절미 재밌잖니”
그래서 우리는 재숙이 차를 앞세워 그곳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절구와 인절미에 막상 도착했을 때
문 앞에 ‘오늘은 휴일입니다’라고 씌여 있었다.
누군가 기발한 아이디어로 참 재미있는 공간을 꾸며놨다고 생각했다.
이런 공간이 서울 근교에 있다면 정말 인기가 대단할 것이다.
그러나 유동인구가 적고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야 올 수 있는
이런 산골짜기에는 사업이 잘 될 것 같지 않았다..
더구나 놀토 주말인 토요일 오후에 ‘오늘은 휴일입니다’라고 써붙인
그 주인의 맘을 이해할 것 같다.
절구와 인절미…사업 아이디어는 좋지만…위치는 영 아닌 것 같다.
우리는 헤어지기에 앞서 뜨거운 포옹을 했다
천안에 남겨두고 가는 재숙이와 영호를 두 남자가 포옹해줬다.
그것은 순전히 광숙이의 제안이었다.
뜨거운 가슴을 맞대며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랬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 비가 와야 해.
이 짙은 황사를 말끔히 씻어야 해.
서울에서 출발한 광숙이 정숙이 찬임이 석진이 그리고 나는
고속도로를 달려 서울로 돌아오며 세미나를 했다.
왜 우리는 강북에 사는가. 그래서 재테크 기회를 잃은 것 아닌가.
애들 교육이 중요한 것 아닌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나.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남은 인생의 의미 있는 삶을 구상하기도 했다.
찬임이의 개그는 프로급이다.
C발NOMA 시리즈의 고전과 리메이크 현대판까지
흉내낼 수 없는 목소리와 톤으로 우리를 즐겁게 했다.
석진네 집 앞의 해물칼국수집.
지난 3월1일 TV에 방영된 이후 더욱 자리가 없다.
문간 테이블에 간신히 합석하여 자리에 앉자마자
왕만두 6개를 먹었다. 다른 사람은 1개씩 나는 2개
그리고 해물칼국수를 먹었다. 이구동성으로 국물이 시원하단다.
내가 가장 빨리 먹었다.
이윽고 찬임이가 선언했다.
내 차는 공주교대10회 모임 공식 차량이다. 언제라도 얘기해라
그대신 운전은 가급적 다른 사람이 했으면 좋겠다.
철두철미한 광숙이가 비용을 계산한다.
이번 모임에 들어간 비용은 모두 165,000 원
구체적으로 기름값 65,000원, 호텔숙박비 50,000 원,
밤에 야식비 40,000 원, 고속도로비 왕복 10,000 원
서로 더 부담하겠다고 난리다.
온양에서 영호가 맛있는 아침식사를 사줬고
공주 신원사에서 누가 부담했는지 모르지만
담백 깔끔하면서도 맛있는 점심식사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경비가 많이 절약됐다.
친구들아 정말 고맙다.
이날 저녁 즉시 카페에 가입한 재숙아 정말 반가웠다
그리고 운전하느라 수고했다.
아침 일찍 호텔로 찾아온 영호야,
너의 기막힌 타임머신 기록영화는
다음에 다시 한번 상영해야 할 것 같다. 너무 재밌다.
우리는 다음 기회에 또 만나기로 약속했다.
아마도 5월쯤 될 것 같다.
5월 첫 주말은 어린이날과 재량휴일 그리고 일요일이 연결되는
그야말로 황금연휴…다들 다른 계획을 갖고 있겠지?
그 다음주 5월 13일은 국가가 정해준 놀토
아마 이날이 되겠지
암만 생각해도
공주교대10회 이벤트장관에 박찬임을
인사청문회가 필요할는지 모르지만 말야
우리집까지 태워다 준 찬임아 1박2일간 운전하느라 수고 많았다
정성껏 준비해온 구절판 맥주 안주도 고맙고….
이제
우리 모두 5월 13일을 비워두자
광수가 허리 빨리 나아라.
석진이의 손이 약손인디…
흥시기
첫댓글 너무 길어서 읽느라고 힘은 들었지만 내가 함께 다녀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재미있게 잘 다녀 와서 내 기분도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