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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공항에서 하와이 호누룰루 공항까지는 약 8시간 정도 걸린다.
하지만 시차가가 5시간 정도 있어서 시간 계산이 빨리 되지 않는다. 새벽에 일어나 LA공항에서 치크인 와중에 줄 서서 기다리는 사이에 빵 2개와 우유 한개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서둘러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에는 일정표를 보고 약 3시간 정도 걸린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시차를 계산하지 않았던 것이다. 실컷 자고 일어나니 기내식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해외여행 때 언제나 가장 즐거웠던 것은 기내식에서 캔맥주나 와인을 꽁짜로 먹는 것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나는 여행 때마다 아내와 사소한 언쟁을 벌리는 것 중 하나가 캔맥주가 먹고 싶다든지, 와인이 먹고 싶다든지, 주로 내의 술 시도 때도 없는 술타령 때문인데, 비행기 안에서는 아내의 허락이 필요 없기에 나는 무한한 자유를 느끼며, 술 한잔을 기분 좋게 마신다.
평소에는 거의 술을 먹지 않는 아내이기에 내가 술을 먹고 술 냄세를 피우는 것이 무척이나 싫어한다. 물론 그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술을 먹으면, 위염으로 가끔씩 고생하는 것을 보았기에 건강상 이유로 반대하는 것이겠지만, 기내에서 하는 한잔 술은 그양이 적고, 또한 무료이기에 대부분은 모른 척하고 눈 감아 준다.
그런대 이번 여행에서는 그 좋아하던 술 한 잔의 낭만이 없었다. 미국 UA 여객기는 기내 서비스를 대폭 축소해서 항공료를 절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직도 한국의 항공사는 기내에서 승객에게 간단한 와인과, 캔맥주나 양주 한 잔은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기에 이번 여행에서는 기내에서 알콜서비스를 받지 못한 게 가장 서운했다.
그래서 하와이까지 가는 비행시간이 더욱 멀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식사 후 다시 눈을 감고 지루한 시간을 기다리다가 다시 긴 잠에 빠졌다. 비행기가 흔들리고 기내 방송에 잠이 깨어 보니 하와이 호누룰루 공항에 착륙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와이 섬, 마우이 섬, 오하우오섬, 카우아이 섬,몰로카이 섬 등의 주요 8개의 섬과 100개 이상의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 하와이 섬이 가장 크며, 나머지 모든 섬을 합친 것 보다 더 넓다고 한다.
그러나 하와이 섬은 아직 활동 중인 활화산이 많고, 사람들은 대부분이 오하우오 섬에 산다. 호누룰루 공항이 위치해 있는 곳이 오하우오 섬이며, 우리들이 하와이라고 하는 곳은 주로 오하우오 섬을 말한다.
한국인의 최초 이민이 이 오하우오 섬이며, 당시 이조 말에 아프리카인과 인도인등을 이곳 하와이로 강제 송환하여 사탕수수 농사를 짓게 했으나, 노예로 이주한 이들이 너무나 나태하여 아시아의 가장 부지런한 한국인을 30 년간 기간을 정하여 계약 이민으로 모집했다고 한다. 당시에 굶주리던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 모집에 응시를 해서 몇 회에 걸처 이주를 시켰는데, 처음에는 열심히 일해서 미국인의 환심을 샀어나, 찌는듯한 열대우림 기후에 남자들만이 모여서 공동생활하는 것에 점차 삶의 의욕을 잃고 나태해지기 시작하자, 다시 그들은 광고를 통해서 한국의 부녀자들을 결혼 상대로 모집하였다고 한다.
건장한 젊은 이들의 잘 생긴 사진을 게재하여, 자발적으로 선택된 한국의 가난한 부녀들은 마침내 배를 타고 긴 여행 끝에 이곳에 당도하여 사진 속의 그들 결혼 상대를 찾았어나, 멋진 남자들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햇볕에 그을은 검둥이 형상의 사람들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너무나 실망한 부녀자들은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 가고 싶었지만, 돌아올 여비조차 없었다.
여러가지로 달래고 부탁하는 새까만 한인들의 성화에 마침내 포기하고, 이곳에서 그들과 결혼해서 한인들의 근면성으로 30년의 긴 기간을 채우고, 일정한 자금을 모아서 그들은 대부분이 미국의 서부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갔다고 했다. 캘리포니아로 이주해간 그들 한인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캘리포니아의 농업은 괄목하게 발전했는데, 그 때 그들의 노력으로 천도복숭아가 탄생했고, 오늘날의 개량된 포도나무가 생겼고, 개량된 농업 기술들이 터전을 잡아서 오늘 날의 캘리포니아 농업 발전에 가장 큰 공로를 새웠다고 한다.
또한 그들의 도움으로 일제시대의 미국 한인회의 기금을 그들의 한끼 식사를 절감하는 노력으로 채웠고, 그 기금의 배경으로 독립운동의 기초 자금을 그들이 담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그들의 혹독한 고생과 조곡애에 대한 아무런 역사적인 깊은 기록도 없고, 캘리포니아주 자체에서 한인들의 발전상이나 그들이 캘리포니아 농업 기술의 숨은 공로자임을 인정하는 역사관이 새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국내에는 이에 대한 연구나 자료 수집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이제 세계 속의 한국이 되어서, 세계 어디를 가나 한국 기업들의 혁혁한 위상이 날로 높아 가지만, 우리들의 뿌리를 찾는 역사 인식이나 역사적인 자료의 발굴이나 이에 대한 연구나 역사 세우기에는 아무도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은 없고, 오로지 여야가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서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 국회의사당의 청치인들이야 말로 이 나라의 파괴자가 아닐 수 없다.
작금의 동아시아 정세는 얽히고 설켜서, 우리의 미래가 안개 속에 묻혀 있는데, 정치인들은 국가애나 민족애는 애초에 찾아볼 수 조차 없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진다.
우리가 도착한 그날이 하와이 마침 국경일이었다.
카메히메아 동상 앞에는 의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하와이 원주민 왕국의 초대 국왕(재위 1810~1819)으로 코할라 출생이며, 1781년 하와이의 유력한 추장이 되어 1795년까지 카우아이섬과 니하우섬을 제외한 모든 섬들을 정복하고, 1810년에 하와이 통합을 성취하고, 왕위에 올라 카메하메하왕조를 창시하였다고 한다. 또한 정치기구를 정비하여 외국인과의 통상을 인정하는 등 진보적인 시책을 폈다고 했다.
의식은 이 국왕의 동상에 헌화하는 의식이었다.
특히 생화로 만들어지 20-30 미터의 긴 꽃다발을 국왕의 동상에 걸어드리는 의식이 오랫동안 거행되었고, 꽃다발은 각 지역에서 하나씩 올라오고 있었다.
하와이는 여왕의 나라였고, 맹목적인 충성으로 오랜세월을 흘러온 나라인데, 미국의 제안으로 많은 돈을 받고 이곳에 공항과 항구의 건설을 허락했고, 그 건설 현장에서 일했던 왕의 신하들은 일의 대가에 따른 보수를 받으면서, 자본주의의 알사탕 맛을 보게 되었고, 그 결과로 왕조는 순식간에 망해버렸고, 마침내 미국인의 식민지가 되어 미국의 한 주로 편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날은 해가 중천에 있을 시간에 식사를 하고 호텔에 들어 왔다.
5 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와이키키해변은 개별적으로 가 보기로 했다.
와이키키 해변에 도착해서 시원한 바람에 해변을 거닐어 보니 30 년 전의 하와이 여행이 아련히 기억에 떠 올랐다.
당시에는 와이키키 해변의 동쪽 끝 부분의 해변의 모래가 가장 아름다웠던 곳에 호텔을 잡았다.
그날도 오늘처럼 늦은 오후였고, 우리들은 미국 출잠 중에 들렸던 여행이라 호테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호텔 바로 앞의 해변으로 나갔다. 더운 날씨라 하나 호테 등 큰 건물로 늦은 오후의 해변에는 시원한 바람에 수영복차림으로는 약간 선선한 느낌이었지만, 이 때가 아니면 언제 와이키키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길 것인가 하고 모두들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물 속은 그런대로 따뜻했지만, 모래사장으로 나오자 우리들은 바닷바람에 약간 한기를 느꼈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는 우리들외에는 아무도 수영복 차림의 여행객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쨌거나 우리는 이렇게 해서 유달리 희고, 깨끗한 세계적인 와이키키해변에서 수영하는 영광을 누렸다.
오늘도 그 날과 같은 늦은 오후이지만, 기온은 판이하게 달랐고 해변에는 많은 해수욕객들이 태평양의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나와 아내도 내일에는 시간이 되면 해수욕하는 영광(?)을 누려보자고 다짐하면서 백사장을 산책했다.
30 여년 전의 그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 보였다. 우선 그 때 만큼 백사장의 모래가 희지 않았고, 깨끗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가이드로 부터 이 곳 와이키키해변은 인공적으로 조성되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 해변의 모든 모래외 시설들은 타 지역에서 공수해 온 인공적인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햇던지 모른다. 하지만 파란 태평양의 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꿈과 낭만이 가득한 아름다운 바다다,
특이한 것은 이 곳 바다는 태평양의 거센 파도가 해변에 도착하면 아주 잔잔한 물결로 변한다고 했다.
먼 바다에서 부터 바다 속에 온통 방파제 역활을 하는 거대한 바위들이 무수히 박혀 있어, 큰 파도가 그들을 지나오는 동안에 점차 완화된다고 했다. 또한 바닷바람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 증거로 바닷가의 나무들은 모두가 나뭇가지가 바다를 향해서 머리를 풀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아니라 언제나 육지에서 바다로 부는 바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곳에는 아무리 심한 폭풍우라도 해일이 거의 없는 상태고, 지금까지 가장 큰 해일도 1 미터 정도가 고작이라고 했다.
다음 날은 오아후 섬 일주 투어를 했다.
이곳의 땅값도 엄청나게 비쌌다. 보통 바닷가의 위치 좋은 주택지의 주택들은 200-300평 규묘가 20-60 억 정도라고 했다.
해일이 없기에 해변에 연이어 주택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별장도 이곳에 있다고 했다.
와이키키 해변에서 동쪽 해안을 도는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서편 지형은 정말 특이했다.
큰 산아래에 마을이 위치해 있었고, 그 마을의 모양이 한반도의 지도모양 그대로 였다. 더구나 태백산 줄기가 뻗어 있고 동해의 급경사도 보였어며, 평양과 대동강의 지형도 보였고 압록강, 두만강의 국경선도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더구나 그 동쪽으로 뽀쪽하게 올라온 산의 형상을 한반도 지도에 비유한 한인들에 비교해서 일본의 후지산이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 역시 후지산 모양을 닮아 있었다.
1986년 경에 미국 출장 후에 방문한 하와이의 그 때 기억은 별로 없었다. 당시에는 엄청나게 더웠던 기억과 와이키키해변에서 수영복차림으로 바다에 들어갔더 나온 후에 추워서 떨었던 기억 외에는 없었다.
오후에는 하와이 민속촌을 들러서 역사와 여러부족들의 민속춤과 그들의 문화 공연들을 즐겼다.
카메히메아 동상에 생화 꽃다발을 헌화하고 있는 광경
하와이 주(영어: State of Hawaii, 하와이어: Mokuʻāina o Hawaiʻi, 모쿠아이나 오 하와이이)는 태평양의 하와이 제도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는 폴리네시아 민족의 땅으로 여왕이 다스린 왕국이었으나, 사탕수수 상인과 군대를 앞세운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1959년 8월 21일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되었다. 본토에서 3700km 떨어져 있는 해외(海外) 주이며, 미국 영토 중 가장 남쪽이기도 하다(가장 북쪽은 알래스카 주이다). 주도는 호놀룰루로 하와이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기도 하다. 1890년대까지 이 곳 여성은 바나나, 코코넛, 돼지고기를 못 먹는 카푸라는 풍습이 있었으나 지금은 폐지되었다. 인도네시아보다 17시간, 대한민국보다 19시간, 괌보다 20시간, 뉴질랜드보다 22시간 늦다.
하와이는 20세기 초 한국계 미국인 1세대가 하와이의 사탕수수나 파인애플을 재배하는 농장에서 육체노동자로 근무하면서 대한인 국민회 등 독립운동 지원과 자녀교육에 헌신한 곳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 주와 더불어 미국에서 아시아인 인구가 많은 주이다.
하와이 주에는 폴리네시아 계통의 원주민들이 다른 태평양의 섬들로부터 정착하였다. 1778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에 의하여 발견되었고, 1795년에 카메하메하 1세가 하와이의 왕이 되어, 하와이 왕국을 세웠다. 1845년 수도를 라하이나에서 호놀룰루로 옮겼다. 1887년에는 왕 칼라카우아가 미국에 진주만을 해군 기지로 주었다. 1893년에 일어난 혁명에서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을 퇴위시키고, 이듬해 공화국이 되었다. 1898년 미국이 하와이를 합친 후, 인구 증가로 주 승격 요구가 강해져 1959년에 미국의 50번째 주로 승격되었다. 주 승격 이후 주도를 옮긴 적이 없으며 현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이 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와이 주에는 폴리네시아 계통의 원주민들이 다른 태평양의 섬들로부터 정착하였다. 1778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에 의하여 발견되었고, 1795년에 카메하메하 1세가 하와이의 왕이 되어, 하와이 왕국을 세웠다. 1845년 수도를 라하이나에서 호놀룰루로 옮겼다. 1887년에는 왕 칼라카우아가 미국에 진주만을 해군 기지로 주었다. 1893년에 일어난 혁명에서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을 퇴위시키고, 이듬해 공화국이 되었다. 1898년 미국이 하와이를 합친 후, 인구 증가로 주 승격 요구가 강해져 1959년에 미국의 50번째 주로 승격되었다. 주 승격 이후 주도를 옮긴 적이 없으며 현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이 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폴리네시아 계의 원주민들은 전체 인구의 9% 밖에 안되고, 한국, 일본, 중국, 필리핀 등의 아시아인들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하와이는 미국의 주들 중, 열대에 가까운 기후인 이유로 아열대 작물들이 많이 나는 편이다. 마우이 섬을 중심으로 사탕수수와 파인애플이 많이 생산되며, 다른 섬 지역에서는 바나나, 구아바 등의 과일들을 생산한다. 이들의 재배가 발달하면서, 설탕, 파인애플 통조림, 주스 등의 제조업이 성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