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의 국내 요료법
조선시대를 거쳐 오면서 해방 전후, 6.25전쟁과 절대빈곤의 상태에서 질병에 대처할 만큼 의료제도가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민간요법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탓도 있지만 요료법이 오래전부터 널리 이용되었다는 것을 임명호(1934,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 백설마을, 산수원비전산악회 고문)씨의 체험을 통해 알아본다.
나의 고향은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서수부락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하늘만 보이고 일조량도 하루 4시간에 불과하다. 나의 요료법을 이야기하기 전에 돌아가신 아버님(1900-1988)의 요료법하시던 것을 먼저 소개하겠다. 아버님은 어느날 동네 근처에서 불량배에게 심한 구타를 당하여 정신을 잃었고 온 몸에 피멍이 드는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버님을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병원도 없고 오직 민간요법으로 치료를 하였다. 그 방법이라는 것이 환부에 오줌을 바르고 숙성된 오줌을 마시는 것이었다. 아버님은 빠르게 완치되었다. 아버님은 그 후에도 매일 오줌을 드시면서 병원에 한번 가시지 않고 88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하셨다. 이러한 아버님의 치유과정을 돌이켜 보면 나는 오줌이 대단한 치유효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성균관대 강국희 교수로부터 요료법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그때 생각이 되살아났다. 내 나이도 벌써 70을 넘었는데 죽을 때 죽더라도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기위해서는 오줌을 마시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2006년 1월부터 마시기 시작하였다. 매일 한잔씩 마시는데 몸의 컨디션이 매우 좋아지는 것을 느끼면서 즐기고 있다.
나의 요료법 체험 이야기
-요료법 보급운동의 동기-
앞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요료법 역사는 매우 깊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물어보면 50여년 전에는 오줌을 만병통치로 사용하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조선시대의 마을학교 서당에서는 동네 아이들이 공부하러 오면 선생님이 아이들의 오줌을 받아서 아이들에게도 한 모금씩 먹이고 선생님은 한 사발씩 마셨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요료법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1998년 3월 13일 대학동창생 유씨로 부터였다. 이 친구는 나와 함께 1960년대 일본 동경대학에 유학을 갔다가 조총련에게 포섭되어 평양을 다녀왔는데 이것이 반공법위반죄였던 것이다. 재판에 재판을 거듭하면서 결국 23년이라는 긴 세월을 감옥에서 지내다가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특별사면 되었다. 동창생들은 죽었던 친구가 살아서 돌아왔으니 모여서 환영회를 하기로 하였다. 수십년 만에 만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친구가 나를 바라보면서 “강 교수, 자네는 학자이니까 이것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하면서 일본의 나까오 의사가 쓴 요료법에 대한 조그만 책 한권을 건네주는 것이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오줌에 대한 지금까지의 교육이 매우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옥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줌을 마시면서 건강을 회복하였다는 이야기, 단식투쟁할 때에도 오줌을 마시면 전혀 힘들지 않게 견딜 수 있었다는 친구의 체험담은 나에게 강한 믿음을 주었다. 그래서 내가 요료법을 받아들이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드디어 오줌에 대한 나의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내와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고 몰래 혼자서 오줌을 받아서 마셔 보았다. 지린내 나는 오줌의 맛은 특이하였다. 그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오줌 맛이 어제보다는 좋게 느껴졌다. 하루에 한 번씩 마셨다. 아침에 첫 소변을 받아서 냄새, 색깔, 침전물, 거품을 살펴보면서 반 컵씩 마셨다. 3일째 되는 날 특이한 경험을 하였다. 교통사고로 오른쪽 어깨가 골절되어 항상 뻐근하고 불편하였는데 이것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던 호수에 아침 햇살이 비치면서 말끔히 걷히는 듯한 맑은 기분이 들었다. 오른쪽 발에 항상 무좀이 있었는데 이것도 모르는 사이에 없어져 버렸다. 하루 종일 컴퓨터에 앉아서 원고 쓰는 일을 하다 보니 눈이 쉽게 피로해지는데 오줌을 컵에 받아서 눈에 넣으면 눈이 맑아지고 피로가 사라진다. 감기에 걸렸을 때에는 오줌을 컵에 받아서 마시고 코로 쭉 흡입하면 목으로 넘어 오는데 뱉어내면 된다. 이렇게 코를 오줌으로 2-3번 세척하면 감기는 더 이상 진행이 안 된다. 오줌의 계면활성력이 코안에서 증식한 감기 바이러스를 파괴하여 죽이고 면역력이 증진됨으로써 감기는 낫게 된다. 감기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 감기약의 독성은 매우 강해서 위, 간, 신장에 해롭다. 약국의 주인은 약을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요료법을 시작하여 한 달 만에 또 하나의 기적을 경험하였다. 아내는 얼굴에 항상 열꽃이 나와서 피부과병원에서 약을 오래 동안 사용하였지만 사용할 때 뿐이고 치유는 불가능한 상태에서 화장품을 바꾸어 사용도 해 보고 별별 노력을 다 했지만 허사였다. 그러던 중에 내가 요료법의 효능을 이야기하니까 아내는 쉽게 받아들였다. 수 십년 동안 약으로 고생하던 얼굴이었는데 오줌을 사용한지 1달 만에 얼굴피부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왔다. 그해 여름방학에 딸 아이들이 미국 여행을 떠났다가 1달 만에 돌아왔는데 엄마를 공항에서 보고서는 놀라는 것이었다.
“엄마, 얼굴이 왜 그렇게 깨끗하고 예뻐졌어?”
그때 까지만 해도 엄마가 요료법을 하고 있는지 아이들은 모르고 있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엄마가 요료법을 해서 얼굴이 이렇게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니까 아이들이 신기해하면서 오줌이 좋기는 좋은가보다고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또 아빠가 요료법을 왜 그렇게 집요하게 연구하는지를 이해하겠다고도 했다. 아내는 본래 피부가 고운 편이었지만 요즘 보는 사람마다 나이에 비하여 너무 젊어 보인다고 칭찬한다. 얼굴에 주름도 없고 하얀 피부에 핑크색 복숭아 빛이 엷게 깔린 모습이 또래 여성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등산하면서 걸음을 걸을 때 무릎도 시큰거리고 아팠는데 어느 틈엔가 없어져 버렸다.
이러한 경험을 시작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요료법을 권하기 시작하였다. 20여년간 십이지장염을 앓으면서 매년 한 두번씩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는 소동을 피우고 그랬던 분이 오줌마신지 10일 만에 상태가 호전되어 식사를 제대로 하게 되었다. 이것은 놀라운 기적이었다. 또 치주염으로 고생하던 후배도 오줌을 마신지 1주일 만에 피고름이 나던 잇몸이 단단해 지면서 흔들리던 이빨이 고정되었다. 후배는 좋아서 미치는 것이었다. 내가 쓴 책-알고보니 생명수-100여권을 사다가 집안 사람들, 사업 거래처에 돌리고 열렬한 요료법 강사로 변신하였다. 어떤 50세의 부인은 관절염으로 10여년 동안 약을 먹었지만 점점 더 심해져서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는데 오줌을 마시고 1주일 만에 통증이 사라져서 요료법 전도사가 된 사례도 있다. 남대문에서 생선가게를 하는 어떤 부인은 복부비만이 심하여 체중이 90킬로가 넘었는데 요료법을 시작하면서 한달에 4킬로씩 빠지더니 60킬로에서 멈추더라고 전혀 힘들지 않게 감량하였다고 자랑한다. 비만인 사람들이 살빼기에 성공하여 좋아하는 사람은 너무 많다. 얼마 전에 개그맨 김형곤씨가 무리하게 살빼기를 하다가 죽었다. 요료법을 알려 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뿐만 아니라 뇌종양으로 수술도 불가능하고 죽을 수 밖에 없다며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있던 분이 요료법에 매료되어 50일만에 완치되었다. 어린 아이들에게 아토피가 심하여 잠을 못자고 긁어서 피가 낭자할 정도로 고생하다가 요료법을 시작하여 가렵지 않아서 잠을 제대로 자니까 살만 하다고 좋아하는 젊은 엄마들의 기쁜소식도 이어진다. 당뇨환자의 오줌은 단맛이 나는데 요료법을 시작하고서는 짭짤하게 제맛이 난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이외에도 기적같은 치유사례는 수 없이 많지만 지면관계로 생략하고 내가 직접 확인한 것만 보아도 감기, 고혈압, 당뇨, 비염, 변비, 소화기장애, 여드름, 치질, 무좀, 치주염, 만성피로, 관절염, 각종 암, 전립선염, 에이즈, 비만, 배제트병, 루프스, 이명, 백내장, 녹내장, 아폴로눈병, 오십견, 불면증, 통증, 우울증, 간질, 혈구감소증, 아토피, 정력, 식중독, 저혈압, 현기증--.
[출처] 오줌요법(오줌차)|작성자 남송 김길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