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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광장 안의 귀빈석에는 청색, 초록, 노랑색, 자주색 차일들이 쳐지고, 각종 글자를 멋지게 쓴 오색 깃발들이 나부꼈다.
주변에는 각양 의자들이 병사들처럼 도열한 가운데, 중앙에는 거대한 넓이의 경무대가 설치되고, 광장 바깥쪽으로는 기마술과 사격술을 보여줄 주로走路의 하얀 선이 유난히 돋보인다.
이른 새벽 잠자리에 일어난 조영은 몸을 씻고 하나님께 삼배를 올리며 잠깐 기도를 드린 후, <예수메시아경>과 <삼일신고>를 읽었다.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 후 가벼운 옷차림으로 무장한 조영은 조부 고승 및 몇몇 시종들과 함께 광장으로 나가 출전 무사석의 지정된 좌석에 앉았다.
출전 무사석은 황족들과 조정 대신들이 앉는 자리를 마주 바라보고 있는, 무대 건너편이었다. 북쪽 중앙의 맨 윗자리에는 무 태후가 황제 이단李旦(예종. 재위 684-690, 710-712)과 함께 나란히 좌정하고 있다. 그들의 좌우로 문무 관원이 앉았다.
무대의 동편에는 승려들과 도사들, 파사사의 대덕, 주변나라 관리들과 외국의 사절들이 자리를 잡았으며, 무대 서편에는 출전 무사들의 가족들과 지인들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뒤로는 일반 평민들이 사방을 구름 같이 둘러쌌다.
무예대회 출전자 총 스물네 명은 먼저 각자의 주특기를 선보였다. 어떤 이는 현란한 창술을 보여주고, 혹자는 권각술, 검술, 도법, 기타 무기 등을 만민 앞에서 차례로 시연했다.
한 사람의 시연이 끝날 때마다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음은 물론이다. 무사들의 무예는 하나같이 기기묘묘하고 웅위장쾌했으며 신법은 마치 바람 같이, 가랑잎 같이 가벼웠다.
새처럼 공중을 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땅에 구르거나 검 그림자 속으로 몸을 감추는 등 갖은 묘술이 다 펼쳐졌다.
신창 이해고의 창술은 신기神技 그 자체였다. “신창”이라는 별명이 그에게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가 창술을 구사하기 시작하자 창은 마치 그의 몸에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창술에 군중은 완전히 넋을 잃은 듯, 여름바람의 더운 대기를 타고 가끔씩 한숨 소리만 들려온다.
조영은 조부에게 전수 받고 각고의 노력을 다해 연마한 삼극팔괘검법을 선보였다. 그가 시연한 검법은 일정한 투로와 형식이 없었다. 이를 가리켜 삼극팔괘변검三極八卦變劍이라 한다.
즉 물처럼 담는 그릇에 따라 다양하게 변할 수 있도록, 다시 말해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자유자재로 검법을 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변검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정한 주로와 형세가 정해져 있는 정검正劍부터 배워야 한다. 정검에 통달할 경우, 변검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그것도 바로 들어가지 않는다.
먼저 다른 유파의 검법들, 예를 들어 태극검太極劍이나 삼재검三才劍 등등 여러 검법을 연구한다. 그리고 그 장단점을 파악한 다음, 본격적으로 변검을 배우는데, 변검이라 해서 검을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변검의 기초는, 정검의 각 동작을 상호 조합하는 원리와 방법부터 터득하는 것이다. 그래서 삼극팔괘검법의 여덟 가지 정형定形 검식이 상호 조합에 의해 육십사 종류로 바뀌고 이것이 다시 수백, 수천, 수만 종류의 형식으로 변화한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무형의 형식이 된다. 이를 오랜 세월 연마하면 바람 같이, 물 같이, 온갖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체득되며, 위급한 상황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동작이 연출되어 적을 제압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사통팔달, 천변만화, 만천화우滿天花雨, 자유자재의 검법이 구가된다.
바람에 먼지 일고 구름 일 듯 이리저리 휘날리던 조영의 검이 동작을 멈추자 숨을 죽이고 있던 청중들이 함성과 박수로 화답했다. 하지만 그가 고려인임을 알고 개중에는 야유를 퍼붓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조영이 처음 등단할 때부터 그를 유심히 노려보던 눈길들이 있었다. 몇몇 남정네들 말고도, 송막도독 이진영의 딸 이루하와 그녀 곁에 있던 여미아, 그리고 당 고종 이치의 딸 태평공주였다.
또 한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바로 당나라 최고 실권자이자 이 대회를 연 장본인, 금년 예순세 살의 무 태후였다.
각종 권각법과 무기 시연이 끝나고 이차로 일대일 권각 대결이 시작되었는데, 여기에서 최종 승자 다섯 명이 가려졌다.
신창 이해고, 그리고 사비우四比羽라는 청년이 맨 먼저 다섯 명의 승자 가운데 이름을 올렸다.
사비우는 말갈족이었는데 당나라에 투항한 말갈족 추장의 아들이다. 또 한 사람은, 역시 조문홰의 부장인 서연이었다.
대강 남북의 무림 명문가 제자들은, 각기 특장을 지니고 있었으나 이들과의 힘든 접전 끝에 차례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출전 무사들 가운데는, 몸을 가랑잎 같이 가볍게 쓰는 중원의 무사가 하나 있었는데, 그는 무대 위에 올라올 때 먼 거리에서 새처럼 날아 올라왔다.
모든 사람은 그의 놀라운 경신술輕身術에 탄복을 금치 못했다. 그가 맨 나중에 상대한 인물은 바로 조영이다.
조영은, 그와 권각 대결을 나누면서, 그의 몸이 흡사 솜처럼 부드러워 소스라치게 놀랐다. 강력한 타격을 가해도 솜을 치는 것처럼 힘이 번번이 무산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는 무궁무진한 힘을 가진 듯 전혀 지치지 않았다. 조영은 내심 초조해하고 있을 때, 마음속에서부터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당혹해하지 말고 그의 허점이 무엇인지를 찾으라.’
조영은 깜짝 놀라 정신을 가다듬고 그의 권각법을 자세히 관찰했다. 과연 그는 주로 손을 사용하고 발을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조영은, 발을 풍차같이 돌리며 몸을 날려 그에게 연속 공격을 가했다. 손을 위주로 사용하던 중국의 무사는, 조영이 발을 손처럼 사용하기 시작하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조영은 특유의 삼극팔괘신법으로 몸을 바람개비 같이 회전시키며 때로는 손, 때로는 발로 적을 압박했다. 경신술에 탁월한 상대 전사는, 조영의 기이한 신법에 놀랐으나 용케도 잘 피하고 수시로 풍차 같은 공격을 맹렬히 퍼부었다.
관중은 손에 땀을 쥐고 구경하다가 함성을 지르는 등 요란을 떨었다. 무대 위의 무사를 직접 응원하는 가족 등 관계자들은 무슨 조언과 훈수를 주는 듯, 시끄럽게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그 소음들 가운데서, 어디선가 조영에게 고려어로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 목소리다. 비교적 작은 목소리였으나 조영은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을 원수처럼 증오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세요. 증오하면 그가 두려워지고, 불쌍히 여기면 천장天將 같은 지혜와 용기가 생깁니다.”
조영은 깜짝 놀랐다. 분명히 자기에게 하는 말 같았다. 얼핏 듣기에 그것은 여미아의 목소리와 매우 흡사했다.
크게 깨달은 조영은, 질풍노도와 같은 공격을 멈추고 조용히 서서 상대를 응시했다. 상대가 공격할 때 주로 받아넘기기만 하고 공격을 자제하면서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려 애를 썼다.
그렇게 한 동안 마음을 부드럽게 유화시키려 하다 보니, 갑자기 일반 상식과는 달리, 들려온 그 음성처럼 과연 상대가 두려워 보이는 게 아니라 매우 작아 보이고, 조영 자신의 가슴 속에서 용기가 샘물처럼 솟아나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 가슴 속에서는 마치 강물이 도도히 흐르는 듯 묘한 평화가 든든하게 와서 자리를 잡았다. 두 다리는 태산 같았고,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듯했다.
그 순간, 상대방은 기합을 지르며 연속공격을 가해왔다. 조영은 마치 어린애를 다루듯 가볍게 그를 방어할 수 있었다. 자기 속에서 무궁무진한 힘이 아침 해처럼 솟아오르는 듯 했다. 그의 연속공격이 거의 끝날 무렵 조영은 뱃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용솟음쳐 오르는 것을 감지하고, 마치 하늘의 신장神將처럼 우레 같은 기합을 내질렀다.
그 때 얼마나 강력한 힘이 솟구쳐 오르는지, 거대한 바위 덩어리라도 손에 잡히기만 하면 부서뜨릴 것 같았다. 조영이 몸을 팽이처럼 돌림과 동시에 신체를 허공에 날려, 뒤로 연신 물러서는 상대 무사의 어깨를 발과 온 몸으로 가볍게 내질렀다.
조영은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치명적인 급소를 노리지 않고 어깨를 찼던 것이다. 상대 무사는 조영의 발길질이 가벼워 보여 무쇠 같이 단련한 그의 어깨로 그의 발을 우악스럽게 고스란히 받아 냈다.
조영은 자신의 발길질이 그의 어깨에 닿는 순간, 전과는 다른 감촉을 느꼈다. 매번 솜을 치는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촉감이 아주 좋았다. 흡사 바위 결을 찾아내, 단 한 방의 망치질로 거대한 바위를 두 쪽으로 쪼갤 때와 유사한 어떤 통쾌하고 상쾌한 감각이 느껴졌다.
다음 순간, 상대 무사의 몸은 마치 가랑잎인 듯 삼장 밖으로 나뒹굴더니 결국 무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역시 대단한 무술가였다. 근 일장 높이의 무대 아래로 몸이 떨어지는 순간 몸을 뒤집어 균형을 잡으며 발을 땅에 안전하게 착지시켰다.
그러나 무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패배를 의미했다. 관중들 가운데서 우레 같은 박수가 터지는가 하면 한쪽에서 야유소리도 크게 들려왔다.
조영에게 이렇게 패배한 무사가 바로 우림군 장수 이기원이었다. 그도 조영에게 지기는 했지만, 조영과 더불어 다섯 사람의 패자覇者 가운데 포함되었다. 하지만 그는 순수 중국인이 아니라, 말갈 출신 고려인 이다조 장군의 아우였다.
두 사람의 투쟁을 흥미진진하게 관전하던 무 태후가, 조영의 승리로 시합이 끝나자, 긴 한숨을 내쉬었다.
“중원의 장사들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 이는 단 한사람도 없고, 죄다 동이북적東夷北狄이니 부끄럽기 짝이 없소.”
무 태후가 곁에 앉은 황제 이단과 대신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중국의 청년들이 이따위 약골이니, 우리가 동이북적을 복속시킨 것은 실로 하늘의 도움이 아닐 수 없소.”
“마마, 서연徐戀은 중국인입니다. 이번에 유수의 무림 자제들이 출전하려고 했으나, 회의대사의 위광을 두려워해 출전하지 못했다고 하옵니다.”
한 대인의 변명에 다른 이가 덧붙인다.
“어찌 우리 중원의 무사들이, 한낱 변방의 무명소졸보다 못하리이까?”
“흥! 입은 뻔지르르하구려. 누가 무명소졸이란 말이오? 게다가 서연은 성이 서 가이고 그의 고향이 그 옛날 서국徐國이 자리잡고 있던 회하淮河 변이라고 하니 혹시 저 동이족 서국의 후손인지도 모르지 않소?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고 했는데, 대보니, 우리 중국인은 단 한 사람도 없지 않아요?”
무후가 힐난하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 때 한 대신이 겨우 입을 열어 중화 청년들의 자존심을 세우려 했다.
“마마, 아직 무술대회가 끝나려면 멀었습니다. 무기대결이 남아있고, 기마 사격도 볼만할 것입니다.”
이튿날에는, 황궁에서 마련한 목제木製 무기로 서로가 쟁투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사 모두에게 특수하게 제작한 흰옷을 입히고, 무기에 인주를 발라 일정한 시간동안 겨루게 한 다음, 치명적인 급소 부위에 어느 정도 많은 인주가 묻었는가를 승패의 기준으로 삼았다.
각 무사는 원하는 대로 도검창봉刀劍槍棒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서로 겨루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제 최후 승자로 뽑힌 다섯 사람이 오늘의 병기술에서도 최고수들로 선정되었다. 이 다섯 사람 중 몇몇은 인주가 옷에 거의 묻어있지 않았다. 묻어 있더라도 옷 끝에 살짝 스친 정도였다.
오후에는 기마 사격이 있었다. 스물 네 명의 전사들은 하나같이 절묘한 기마술을 발휘했는데, 특히 동북방 이민족 출신, 이해고, 사비우, 조영의 기마술은 그야말로 현란하기 짝이 없었다. 화살은 모두 백발백중이었다.
화하華夏인과 동북방 이민족인들 사이에서 가장 현격한 차이를 보인 것은 기마술과 사격술이었다. 중국의 출전 무사들도 모두 내로라하는 명인들이었으나, 조영이나 이해고, 사비우와는 비견할 수 없었다.
이 기마사격술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 자가 또 하나 있었는데, 그는 바로 연개소문의 손자 연헌성이다.
무 태후는 기마사격술을 관람하고 탄식을 금치 못했다.
“내 일찍이 동북방 이족들의 기마술과 활쏘기가 뛰어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중국 젊은이들의 그것과 이렇게까지 큰 차이가 있는 줄은 몰랐소.”
그녀가 혀를 끌끌 차자 대신들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대회가 끝나고부터 당장 우리 군사들의 기마술과 활쏘기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를 취하시오. 그리고 이족 출신의 명장名將들을 무시하지 말고 그들을 데려다가 우리 중국인들의 무예를 지도하게 하시오.”
무 태후의 이 지시로 우위대장군 연헌성(651-692)과 우응양위右鷹揚衛대장군 이다조李多祚(654-707) 등은 당나라 조정에서 더욱 존중을 받게 된다.
사흘 째 되는 날에는, 연헌성을 포함한 최후 패자 여섯 명이 마상에서 각자의 무기로 겨루는 시합을 했다. 중앙에 놓였던 무대는 치워지고 드넓은 광장 한 복판에서 기마전이 벌어졌다.
서연과 이해고가 함께 대결하고, 사비우와 이기원이 짝을 이루었으며, 조영은 연헌성과 우열을 다투었다.
마상에서 신창 이해고는 오히려 맨바닥에서보다 물을 만난 고기처럼 더욱 자유롭게 노는 것 같았다. 자루가 긴 언월도를 쓰는 서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지쳐가는 것 같았으나 이해고의 용맹은 시간의 경과가 오히려 더욱 돋보이게 했다.
무려 근 한 시간 동안의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기진맥진한 서연이 말 아래로 떨어짐으로써 두 사람의 승부는 끝났다.
이어서 이기원과 사비우가 역시 장창을 들고 대결을 펼쳤는데, 두 사람의 시합도 한 시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무 태후는 곁을 돌아보다가 말했다.
“이 시합은 중지시키는 게 좋겠소. 두 사람 다 너무 아깝소. 힘으로 승패를 가릴 필요가 없겠소이다.”
무 태후의 말에 이기원과 사비우의 마상 대결은 중단되었다.
오후에는 조영과 연헌성의 비무比武가 시작되었다.
조영이 허리를 굽혀 고려어로 인사했다.
“형님! 형님의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손에 사정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연헌성의 부친은 연남생이며 조부는 연개소문이다. 연남생은 자신의 동생인 연남건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고 당나라에 귀부한 인물이다.
연남생과 마찬가지로 아홉 살 나이에 본국에서 조의선인皁衣先人,仙人이 되었던 연헌성도<연남생묘지명><연헌성묘지명>, 그 후 십대 후반의 아주 어린 나이에 고구려가 망하는 현장에서 부친 연남생의 지시에 따라 당나라에 일조한 명장名將이다.
연헌성은 속으로 이를 부끄럽게 생각했으나, 조국이 이미 망한 마당에 달리 어떻게 처신하랴? 당나라에서 한직에 머무르며 세월을 한탄하는 한편, 조국을 다시 일으킬 기회가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무 태후에 의해 무예시합에 불려나왔지만, 실은 무예시합에 응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동생의 헌헌한 풍채는 내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오늘 이렇게 만나 보니,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나네. 오히려 봐달라고 부탁할 사람은 나네.”
연헌성은 어떤 오해를 받기 싫었는지 일부러 한어로 크게 대답했다.
두 사람은 마상에서 장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마상 전투 역시 한 시간 이상을 끌었다. 조영은 그 유명한, 고구려 태대막리지 연개소문의 손자인 연헌성을 차마 이길 수 없었으므로 많이 양보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시합도 무후의 제지에 따라 한 시간 후에 중단되었다.
승부가 나지 않았지만, 채점관들은 만장일치로 조영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최후 승자 일인을 뽑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기원과 사비우의 대결에서는 이기원이 채점을 통해 이겼다.
이렇게 해서 승자는 이해고, 이기원, 조영으로 압축되었는데, 먼저 이기원과 이해고가 승패를 겨루어 한 시간의 접전 끝에 이해고가 간신히 이기원을 지운다.
조영은 이기원과의 맨손 대결에서 그를 패배시킨 적이 있으므로, 이해고와 조영이 마지막 마상대결을 펼쳐야 했다.
어느덧 중천의 해는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신정시辰正時(오후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직 뜨거운 초가을의 태양은 광장 안에 가득 차고, 이따금씩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구경꾼들의 이마에서 땀을 식혀 주었다.
두 사람의 접전은 도무지 끝날 줄을 몰랐다. 둘 다 차분하면서도 용맹하게, 힘이 무궁무진한 듯, 전혀 지친 기색이 없이, 그대로 놓아두면 몇 날 며칠이라도 싸움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고요한 광장에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기합소리, 말들의 울음소리만이 난무했다.
관전하던 무 태후가 탄식했다.
“마지막 최후 패자 두 사람이 동이와 북적이오. 두 사람의 시합을 중지시키고 두 사람에게 공동 우승을 안겨주도록 하오.”
잠시 하늘을 우러러보던 무후가 가까이에 있던 승려 회의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사흘 동안의 무예 대회는 회의대사와, 고조영이나 이해고 둘 중 한 사람의 대결로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좋겠소.”
주위에 이렇게 말한 후 그녀는 환관을 시켜 회의대사를 자기 곁으로 데려오게 했다.
회의가 오자 무후가 물었다.
“아사! 오늘 이해고와 고조영 두 사람 가운데 누구와 함께 무예를 겨루기 원합니까?”
회의가 두말 않고 대답했다.
“두 사람 다 좋습니다. 먼저 두 사람의 의견을 물어보십시오.”
“그건 이미 확인했소. 둘 다 양보하길래, 대사의 의견을 묻는 것이오.”
회의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고조영과 겨루어 보고 싶소.”
이해고의 풍채는 보기에도 위풍당당하고 키가 칠척이나 되어 보여 보는 사람마다 질릴 정도였다.
이해고보다는 조영이 더 만만해보였는지도 모른다.
(다음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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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3. 9.16. 가을비내리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