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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제4권-5
29독, 본원(本願)
오늘까지 하루 1독을 하신 분들은 누계 29독이 됩니다.
교토에 본원사(本願寺, 홍간지)라는 절이 있습니다. 둘 있는데, 동쪽에는 동본원사가, 서쪽에는 서본원사가 있습니다. 원래 하나의 본원사였으나, 동본원사가 분리독립하면서 본래의 본원사는 서본원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서본원사나 동본원사나 다 본원사라 부릅니다.
서본원사는 정토진종(통상적으로 ‘진종’으로 약칭함) 본원사파의 본산이고, 동본원사는 진종 대곡파의 본산입니다. 진종연합회에 가입한 파는 10개입니다만, 말사 수가 가장 많은 파는 본원사파입니다. 2만개가 넘습니다. 그 다음이 진종 대곡파인데, 1만 8천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약 2,000개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토진종에서 가장 큰 파들의 본사를 다 ‘본원사’로 부르는 데서도, 신란스님의 가르침에서 본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정토진종은 본원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탄이초 제2조에 보면, 신란스님은 그런 말씀을 하시지요. 극락이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법장보살이 세운 ‘본원의 진실함’은 안다고 말입니다. 그 본원의 진실함에 신앙의 목숨을 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 책 정토불교성립론(조계종출판사, 2020)의 두 번째 논문(「극락의 존재여부와 염불의 가능성」)에서 ‘본원의 진실함’을 논의한 적 있습니다. 책을 갖고 계시다면, 한 번 확인해 주십시오.
본원은 산스크리트로는 pūrva-praṇidhāna입니다. pūrva는 ‘앞의, 이전의’라는 뜻이고, praṇidhāna는 ‘서원’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산스크리트를 감안하고서 ‘본원’이라는 말의 뜻을 옮긴다면, ‘법장보살이 부처되기 전에 세운 서원’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 서원을 강승개 역본 무량수경에서는 48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문으로 보면, ‘본’에는 ‘본래’라는 뜻도 있지만 ‘근본’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정토사상가들은 그 ‘근본 본’이라는 뜻을 취하여 ‘가장 근본이 되는 서원’이라는 뜻으로 많이 썼습니다. 그래서 48가지 서원중에서도 가장 근본이 되는 서원이 무엇인지를 찾고 논의하였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제18원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합니다. 그래서 흔히는 ‘본원’이라 하면 제18원을 가리키게 됩니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선생이 일본 정토문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떠받드는 안심결정초(安心決定鈔)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정토진종의 행자는 먼저 본원의 일어남을 알아야 할 것이다. 홍서(弘誓)는 마 흔 여덟이지만, 열여덟 번째의 원을 본의(本意)로 삼는다. 나머지 마흔 일곱은 이 (열여덟 번째의 -인용자) 원을 믿게 하기 위해서이다.
안심결정초는 정토종 서산파 겐니(顯意)의 저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렌뇨(蓮如)에 의해서 정토진종의 성교(聖敎)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현재도 정토진종의 성전에는 안심결정초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본원이라는 제18원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신란스님은 정신게(正信偈)에서 어떻게 ‘본원’을 노래하고 있는지 ‘오늘의 1독’을 함께 하겠습니다.
귀명무량수여래(歸命無量壽如來) ⟶
나무불가사의광(南無不可思議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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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보살인위시(法藏菩薩因位時) ⟶
재세자재왕불소(在世自在王佛所)
도견제불정토인(都見諸佛浄土因) ⟶
국토인천지선악(國土人天之善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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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무상수승원(建立無上殊勝願) ⟶
초발희유대홍서(超發希有大弘誓)
오겁사유지섭수(五劫思惟之攝受) ⟶
중서명성문시방(重誓名聲聞十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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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방무량무변광(普放無量無邊光) ⟶
무애무대광염왕(無碍無對光炎王)
청정환희지혜광(淸淨歡喜智慧光) ⟶
부단난사무칭광(不斷難思無稱光)
초일월광조진찰(超日月光照塵刹) ⟶
일체군생몽광조(一切群生蒙光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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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원명호정정업(本願名號正定業) ⟶
지심신요원위인(至心信樂願爲因)
성등각증대열반(成等覺證大涅槃) ⟶
필지멸도원성취(必至滅度願成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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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소이흥출세(如來所以興出世) ⟶
유설미타본원해(唯說彌陀本願海)
오탁악시군생해(五濁悪時群生解) ⟶
응신여래여실언(應信如來如實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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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발일념희애심(能發一念喜愛心) ⟶
부단번뇌득열반(不斷煩惱得涅槃)
범성역방제회입(凡聖逆謗齊回入) ⟶
여중수입해일미(如衆水入海一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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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취심광상조호(攝取心光常照護) ⟶
이능수파무명암(已能雖破無明闇)
탐애진증지운무(貪愛瞋憎之雲霧) ⟶
상부진실신심천(常覆眞實信心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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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일광부운무(譬如日光覆雲霧) ⟶
운무지하명무암(雲霧之下明無闇)
획신견경대경희(獲信見敬大慶喜) ⟶
즉횡초절오악취(卽橫超截五惡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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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선악범부인(一切善惡凡夫人) ⟶
문신여래홍서원(聞信如來弘誓願)
불언광대승해자(佛言廣大勝解者) ⟶
시인명분타리화(是人名分陀利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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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불본원염불(彌陀佛本願念佛) ⟶
사견교만악중생(邪見憍慢悪衆生)
신요수지심이난(信樂受持甚以難) ⟶
난중지난무과사(難中之難無過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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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서천지론가(印度西天之論家) ⟶
중하일역지고승(中夏日域之高僧)
현대성흥세정의(顯大聖興世正意) ⟶
명여래본서응기(明如來本誓應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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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여래능가산(釋迦如來楞伽山) ⟶
위중고명남천축(爲衆告命南天竺)
용수대사출어세(龍樹大士出於世) ⟶
실능최파유무견(悉能摧破有無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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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설대승무상법(宣説大乘無上法) ⟶
증환희지생안락(證歡喜地生安樂)
현시난행육로고(顯示難行陸路苦) ⟶
신요이행수도락(信樂易行水道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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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념미타불본원(憶念彌陀佛本願) ⟶
자연즉시입필정(自然卽時入必定)
유능상칭여래호(唯能常稱如來號) ⟶
응보대비홍서은(應報大悲弘誓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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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친보살조론설(天親菩薩造論說) ⟶
귀명무애광여래(歸命無碍光如來)
의수다라현진실(依修多羅顯眞實) ⟶
광천횡초대서원(光闡橫超大誓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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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유본원력회향(廣由本願力廻向) ⟶
위도군생창일심(爲度群生彰一心)
귀입공덕대보해(歸入功德大寶海) ⟶
필획입대회중수(必獲入大會衆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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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지연화장세계(得至蓮華藏世界) ⟶
즉증진여법성신(卽證眞如法性身)
유번뇌림현신통(遊煩惱林現神通) ⟶
입생사원시응화(入生死園示應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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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담란양천자(本師曇鸞梁天子) ⟶
상향란처보살례(常向鸞處菩薩禮)
삼장류지수정교(三藏流支授淨教) ⟶
분소선경귀락방(焚燒仙經歸樂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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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친보살론주해(天親菩薩論註解) ⟶
보토인과현서원(報土因果顯誓願)
왕환회향유타력(往還廻向由他力) ⟶
정정지인유신심(正定之因唯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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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염범부신심발(惑染凡夫信心發) ⟶
증지생사즉열반(證知生死卽涅槃)
필지무량광명토(必至無量光明土) ⟶
제유중생개보화(諸有衆生皆普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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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작결성도난증(道綽決聖道難證) ⟶
유명정토가통입(唯明浄土可通入)
만선자력폄근수(萬善自力貶勤修) ⟶
원만덕호권전칭(圓滿德號勸專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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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삼신회은근(三不三信誨慇懃) ⟶
상말법멸동비인(像末法滅同悲引)
일생조악치홍서(一生造悪値弘誓) ⟶
지안양계증묘과(至安養界證妙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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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독명불정의(善導獨明佛正意) ⟶
긍애정산여역악(矜哀定散與逆惡)
광명명호현인연(光明名號顯因緣) ⟶
개입본원대지혜(開入本願大智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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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정수금강심(行者正受金剛心) ⟶
경희일념상응후(慶喜一念相應後)
여위제등획삼인(與韋提等獲三忍) ⟶
즉증법성지상락(卽證法性之常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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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광개일대교(源信廣開一代教) ⟶
편귀안양권일체(偏歸安養勸一切)
전잡집심판천심(專雜執心判淺深) ⟶
보화이토정변립(普化二土正弁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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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악인유칭불(極重惡人唯稱佛) ⟶
아역재피섭취중(我亦在彼攝取中)
번뇌장안수불견(煩惱障眼雖不見) ⟶
대비무권상조아(大悲無倦常照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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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원공명불교(本師源空明佛敎) ⟶
연민선악범부인(憐愍善惡凡夫人)
진종교증흥편주(眞宗教證興片州) ⟶
선택본원홍악세(選擇本願弘惡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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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래생사륜전가(還來生死輪轉家) ⟶
결이의정위소지(決以疑情爲所止)
속입적정무위락(速入寂靜無爲樂) ⟶
필이신심위능입(必以信心爲能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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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대사종사등(弘經大士宗師等) ⟶
증제무변극탁악(拯濟無邊極濁悪)
도속시중공동심(道俗時衆共同心) ⟶
유가신사고승설(唯可信斯高僧說)
모두 7번 '본원'이 나옵니다.
첫 번째 나오는 ‘본원명호정정업’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칭명염불이 정토진종의 수행(行)임을 규정하는 것인데, 이는 제17원의 취지라 합니다. 여기서 궁금할 수 있겠습니다. 앞에서 ‘본원’은 분명 제18원이라 해놓고, 왜 ‘본원명호정정업’이라는 구절은 제17원의 뜻이라 하는가?
무량수경에서는 제18원이 두 번 나옵니다. 상권에 나오는 것은 법장보살의 서원 속에서 나오고, 하권에서는 부처님의 설법 속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상권의 것을 인문(因文)이라 하고, 하권의 것을 과문(果文) 혹은 성취문(成就文)이라 합니다.
가령 제가 부처가 되더라도,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저의 이름을 듣고서 지극한 마음으로 믿어서 좋아하여 저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해서 (일념, 이념 … ) 십념 정도를 하고서도, 만약 태어날 수 없다면 정각을 취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오역 죄와 정법을 비방하는 죄를 지은 자는 제외합니다.
이는 상권의 인문입니다. 이 원의 이름을, 호넨스님은 ‘염불왕생원’이라 하였고, 신란스님은 ‘지심신요원’이라 하였습니다. 호넨스님은 칭명염불의 행(行)에 초점을 두었고, 신란스님은 지심신요의 믿음(信)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행과 신은 사실상 표리관계에 있으므로 그 이름들이 다 옳습니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권의 성취문도 살펴봅니다.
모든 중생이 그의(아미타불의 -인용자) 명호를 듣고서 신심이 나서 환희하며 일념 정도라도 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회향하면서 저 나라에 태어나기를 원한다 면, 곧 왕생을 얻어서 불퇴전에 머물 것이다. 다만 오역죄와 정법을 비방 한 죄를 지은 자는 제외한다.
인문은 법장보살이 세자재왕여래에게 올리는 서원이기에 존칭표현으로 옮겼고, 성취문은 부처님이 아난에게 하시는 말씀이므로 평어(平語)로 번역하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신란스님의 해석입니다. 성취문을 위와 같이 옮기는 것은, 한문 문법으로 보면 맞습니다. 그런데 신란스님은 그렇게 옮기지 않습니다. 밑줄 친 부분을 다르게 토를 붙입니다. 교행신증 신권에 보면, 그 부분만은 일본어 가타가나로 토를 붙여놓았습니다. 그 토를 현대어로 번역해서 옮기면, 그 부분은 “일념 정도라도 한다면, (저 아미타불께서) 지극한 마음으로 회향해 주실 것이니”입니다. 여기서 회향을, 신란스님은 아미타여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친보살 찬탄에서 ‘광유본원력회향’이라는 구절이 그런 뜻입니다. 천친보살은 ‘널리 (아미타불께서 보여주신) 본원력의 회향으로 말미암아서’, 널리 중생을 제도하고자 정토론에서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일심으로’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위도군생창일심’이 그 뜻입니다.
이러한 것이 제18원입니다. 18원을, 행을 중심으로 볼 것인가, 신을 중심으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은 별도로 하더라도, 그 안에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칭명염불을 의미하는 ‘내지 십념’이나 ‘내지 일념’이라는 말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원효스님 역시 ‘내지 십념’을 ‘나무아미타불’ 열 번을 칭명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그 ‘나무아미타불’ 명호야말로 법장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호넨스님 찬탄에 나오는 ‘선택본원홍악세’라는 뜻이 그것입니다. 아미타불께서 제18원을 통해서 중생제도의 방법론으로 선택해 주신 ‘나무아미타불’ 칭명염불을 호넨스님께서는 오탁악세에 널리 홍포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신란스님은 제18원을 지심신요의 원이라고 했기에, 제17원에서 칭명염불에 대한 강조를 읽어냅니다. 제가 작년에 쓴 편지 제3권 9 「무량수경의 제17원」에서 자세히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간략히 그 원문(願文)을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령 제가 부처가 되더라도, 시방세계의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들께서 다 감동 하시어 저의 이름을 칭찬하지 않는다면 정각을 취하지 않겠습니다.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아미타불의 이름을 찬탄합니다. 이는 곧 우리 중생들에게 그 명호(이름)를 외라는 권유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17원이 ‘나무아미타불’의 행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17원에서는 제18원을 통해서 선택된 칭명염불을 모든 부처님께서 중생들에게 외라고 권유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본원명호정정업’을 제17원의 뜻이라고 렌뇨(蓮如)스님이 규정했던 것입니다. ‘본원(제18원 -인용자)에서 말씀하신 명호는 정정취에 이르는 업이고’라고 할 때, ‘정정취’는 극락에 가면 얻게 되는 경지입니다. 깨달음을 얻을 수밖에 없음이 결정된 지위를 정정취라고 합니다.
‘유설미타본원해’는 바로 앞 구절 ‘여래소이흥출세’와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여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신란스님은 이 ‘여래’를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이라 해석합니다. 아마도 제17원을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 모든 부처님의 존재이유는 아미타불의 본원 - 이 본원이 얼마나 넓고 깊은 것인가 하는 점을 ‘바다 해’로 비유하였습니다 –을 알려주시는 데 있습니다. (신란스님은 ‘바다 해’를 즐겨 쓰시는데, 좋지 않은 중생들의 현실을 말할 때도 씁니다.) 아미타불의 본원을 설명하는 것이 다른 부처님의 존재 이유라는 이야깁니다.
흔히 이러한 존재의 이유를 말할 때, 불교에서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라고 합니다. 법화경에서는 그 일대사인연을 중생들의 불성, 즉 불지견(佛知見)을 열어서 보여주고 깨닫고 들어가게 하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개시오입(開示悟入)이라고 한 것이 그것이었지요. 그런데 정토신앙에서는 아미타불의 본원을 해설하는 것이 제불의 일대사인연이라고 합니다. 선도대사 찬탄에 나오는 ‘개입본원대지혜’에서도 그런 뜻을 말씀하셨습니다. 선도대사는 아미타불의 본원이 갖는 큰 지혜를 중생들에게 열어서 보여주신 분이라고 찬탄하신 것입니다.
이런 정도의 설명은 다른 정토사상가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란스님의 특유한 사상은 ‘억념미타불본원’에서 나옵니다. 아미타불의 본원을 억념(憶念)하노라면, ‘자연즉시입필정’한다, ‘저절로 즉시에 필정지(환희지 -인용자)에 들어간다’고 말입니다. 필정지는 10지 중에서 첫 번째 환희지(歡喜地)를 말합니다. 이 필정지에 들어가는 것은 앞에서 말한 정정취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보통 정정취에 들어가는 것은 다음 세상에 가서의 일입니다. 무량수경 제11원의 뜻도 사후 정정취입니다.
그런데 신란스님은, 이를 금생의 일이라고 ‘미타의 본원을 억념하기만 하면’ 곧 즉시에 필정지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용수보살을 찬탄하는 맥락에서 나옵니다.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이행품(易行品)에 그러한 논리가 있는데, 신란스님이 이를 인용한 것입니다. 이것이, 스승 호넨스님의 정토사상과 차이 나는 지점입니다. 요컨대, 호넨스님은 「이행품」을 그렇게까지 중시하지 않은데 비해, 신란스님은 용수보살을 그렇게까지 의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정토진종 스님들은 곧잘 “우리는 용수불교다”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들은 바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미타불본원염불’은, 아미타불의 본원이신 염불(을 하라는 가르침을) ‘사견교만악중생 신요수지심이난 난중지난무과사’입니다. 사견을 갖고 교만하며 악을 행하는 중생들은 이 아미타불의 본원염불을 신요하기 대단히 어렵습니다. 어려운 일 중에서 특별히 어려운 일이니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신요수지심이난 난중지난무과사’는 무량수경 하권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상으로 ‘본원’에 대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지만, 이 본원을 정신게에서는 ‘서원’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다음 편지에서는 ‘서원(誓願)’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2021년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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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한 글씨, 칼라로 처리한 것은 동행이인의 개인적, 주관적 판단입니다.
김호성 선생의 '편지 제4권ㅡ5' 원문에는 이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