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액전왕(額田王)은 누구?
아스카(飛鳥)에 있는 액전왕(額田王)앞으로 요시노에서 소나무 가지 하나가 선물로 배달되었다.
가지에 비취옥 같은 진녹색 이끼가 망울진 아름다운 소나무 즉 옥송(玉松)이었다.
10장생(해· 산 · 물 · 돌 · 구름 · 불로초 · 거북 · 학 · 사슴) 중 하나인 소나무였으므로 당연히 액전왕의 장수 무병을 축원하는 선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액전왕은 그 선물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노래 한 수를 지어 답장 삼아 보냈다.
그 시가 「만엽집」 권2-113번의 노래다(「만엽집」의 편찬자는 그 시가 ‘액전이 소나무 가지 선물을 받고 지어서 올린 노래’라고 앞글을 보태 넣었다고 한다).
편찬자도 누가 보냈는지 밝히지 않은 이 선물에 대해 액전왕은 곧장 보낸 사람을 파악하고 시를 지어 답장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 이영희 선생은 일본의 「만엽집」에서 우리의 옛말을 찾아내고 있다.
여기 <玉>의 음훈은 <구슬 옥>이다. 옛날엔 <거실 옥> 또는 <거시 옥>이라 발음했다고 한다.
이것은 ‘거스르다’의 뜻인 ‘거스르’의 옛말 ‘거실’, ‘거시’와 통한다고 한다.
<松>은 음독으로 ‘송’이다. 여기서 받침 ‘ㅇ’이 퇴화하면 ‘소’가 된다.
그래서 두 글자를 합하면 <거시소>, 현대어로 옮기면 <거스리시오?> 즉 ‘반역하겠다는 말이요?’라는 물음이다.
다시 말해 이 옥송 선물은 요시노에 칩거하며 대권을 노리던 문무왕이 액전왕에게 부탁의 뜻으로 보낸 것이고 액전왕은 그것을 알아채고 시로 답장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액전은 천무왕의 첫 번째 여인이다.
둘 사이의 아들이 궁삭인데, 액전과 궁삭이 反 지통, 反 문무왕 라인에 서는 것처럼 보이자 문무가 옥송으로 모양 좋게 하소연한 것이라 한다.
“나를 도와주시지 않고 그럴 수가 있소?”
문무왕이 신라-가야계인 것처럼 액전도 가야계 여인으로 보고 있다.
액전(額田)씨는 6세기부터 대대로 신라 사절을 영접하는 역할을 하던 신라계 일족이다.
액전왕은 왕궁에 입궐하기 전, 야마토군(大和郡) 누카다베(額田部)에 살았다고 전해지며 그곳 지명 액전( 額田 )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태어난 지를 왜가 모르는 것처럼, 이 수수께끼의 여인도 어쩌면 한반도 도래인 1세인지도 모를 일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천무는 문무왕의 아버지였고, 액전은 그 천무왕의 애인이었기에, 문무왕은그녀를 무시하기 어려운 존재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어쨌든 그녀가 지어 보낸 노래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싸움에 지려오,
거스르려는 내 생각을 부스러뜨릴 수도 있소.
다만 (지통여왕에게) 기댔다가 욕보고 대사를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하오.
이렇게 이끼 낀 소나무 가지 하나에도 이와 같은 극비의 메시지가 담기어 오고 갔다.
암살과 정변으로 얼룩진 왜 땅에서의 동족 간 패권 다툼의 7세기.
그러나 서로 말을 알아듣는 동족끼리의 싸움이었기에 암호는 더욱 성행할 수밖에 없었다.
7세기 후반에 집중적으로 읊어진 「만엽집」에 야한 성애의 노래로 가장된 정치 지령문이나 체제비판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일 것이라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이분이 액전왕이 지은 시의 겉으로 읽히는 내용을 우리 옛말로 풀어주는데 그 내용을 차마 옮길 수는 없다.
다만 우리나라에선 이미 사라진 옛말, 그러나 현대 언어로 사용해도 여전히 싱싱한 생명력을 지니는 우리의 옛말을 일본의 고전 「만엽집」속에서 속속 캐어내는 기쁨으로 예로 든 낱말의 해석을 옮겨 본다.
「만엽집」의 노래에서 Y자 모양의 세 갈래 길목을 표현한 이두식 한자를 <길갈비>, <질갈비>라고 발음할 수 있다.
우리 말에 <책갈피>라는 말은 원래 책의 낱장과 끝부분이 닿는 어름을 말했고 그것을 옛말로 <책갈비>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길과 길의 어름, 즉 세 갈래 길의 끝이 서로 맞닿는 부분을 우리 조상은 <길갈비>라고 부르고, 이두식 표기로는 한문으로 도행피(道行疲)라고 표기했다.
‘道’는 새김으로 ‘길’, ‘行’도 새김으로 ‘갈’, ‘疲’는 음독으로 ‘피’, 그래서 세 글자를 합해 ‘길갈피’라고 발음했을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식이다.
작가는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하면서 글을 맺는다.
이 글은 1993년 5월 30일부터 조선일보 일요판에 연재된 기획물 ‘노래하는 역사’를 간추린 내용이다. 더불어 스크랩한 신문의 뒷면에 실린 30년 전의 사회 실상을 추억하는 내용을 덧대었다.
작가 李寧熙(1931-2021) 선생은 이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화작가, 한국일보 기자, 논설위원을 역임하였다.
만엽집(萬葉集·まんようしゅう /만요슈)
8세기 나라 시대에 편찬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 모음집( 20권 4,516수).
5세기부터 8세기까지의 시가이지만 대부분 7세기 초반에서 8세기 중반에 지어짐.
당시 일본에는 문자가 없어 우리의 향찰(이두 문자)와 비슷하게 일본어 발음을 한자로 표기.
그러나 문자에 대한 해석이 완전하지 않아,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현재도 정확한 의미가 불분명한 것들이 있다. 만요슈의 많은 노래는 중국, 한반도(특히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30년 전쯤에
책 광고: <나, 高銀>
그야말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온 나라가 기쁨에 빠져 서점마다 난리가 났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 중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가 기억에 새로운데, 우리나라 작가로는 고은 작가가 해마다 유력한 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곤 했었다.
국어 선생님, 주지 스님에 교수까지 역임하신 분이지만, 그분의 책 몇 권 속에는 몇 년 전 성 추문이 아니더라도 놀랄만한 자전적 기행이 적나라했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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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원조형예술학교
지금은 계원예술대학교이다.
○ 회사 사원모집 광고
모두가 지원 서류를 사서함으로 받는 것을 30년 만에 알았다^^ 지금도 사서함이 운용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