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운데 저의 가정을 위해 기도를 아끼지 아니하시는 형제자매님들께 좋은 칼럼을 하나 소개합니다. 감사합니다.
작성자 shyang(양승훈) 작성일 2004-01-17
제목 : 개인적인 관심과 사랑의 중요성
별세하시기 몇 달 전 어느 주일 저녁, 대천덕 신부님께서 VIEW 소망관에 오셔서 말씀을 전하셨다. 팔순이 넘으신 분께 멀리 한국에서 오셔서 아직 시차도 적응이 안 된 상태에서 집회를 부탁드리는 것이 무리인 줄 알면서도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 같아 강청을 드렸다. 그리고 강의 외에 꼭 한 가지만 더 부탁을 드렸는데 그것은 VIEW 학생들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주시는 것이었다. 주일 저녁에 모이는 VIEW 교제 모임에는 아이들도 많이 오기 때문이었다. 물론 부탁드릴 때는 강의가 끝날 즈음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한꺼번에 축복 기도를 해 주시기를 기대했다.
강의가 끝나자 신부님은 아이들을 모두 앞으로 나오게 했다. 젖먹이들은 엄마에게 안겨서 나왔다. 그런데 신부님은 우리들의 기대와는 달리 한꺼번에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30여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의 머리에 일일이 손을 얹으시고 기도를 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저렇게 하시면 이 많은 아이들을 위해 언제 다 기도하실까... 많은 시간이 걸릴 텐데 건강은 괜찮으실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염려와는 상관 없이 신부님의 기도는 계속되었고 아이들은 차례로 한 사람씩 나와서 기도를 받았다. 꽤 오랜 시간동안 신부님은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어눌하고도 불편한 한국말로 다 다르게 기도해주셨다. 그것은 한 사람도 소홀히 대하지 않으시는 평소 신부님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귀중히 여기는 것은 예수님의 기본적인 가르침이었고 예수님의 삶의 모습이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세 사람의 병자가 예수님으로부터 병 고침을 받은 기사가 소개되어 있다. 처음에는 문둥병 환자가, 두 번째는 중풍에 걸린 백부장의 종이, 세 번째는 열병에 걸린 베드로의 장모가 예수님으로부터 병 고침을 받았다. 이 외에도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온갖 병자들을 고쳤다는 얘기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지만 예수님은 한 사람도 동일한 방법으로 고치신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어떤 소경은 침을 진흙에 이겨서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여 고쳐주셨고, 어떤 앉은뱅이는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심으로 고쳐주셨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는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시면서 고쳐주셨다(마9:2).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쳐주실 때는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에바다”라고 하심으로 고쳐주셨다(막7:32-34).
이것은 죽은 사람을 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사로의 경우, 예수님은 일부러 그가 죽기를 기다린 후에 찾아가 살려주셨고, 회당장의 딸은 제한된 몇 사람 외에는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신 후에 살아나게 하셨으며, 나인성 과부의 아들은 상여를 메고 가는 도중에 일으키셨다. 예수님은 한번도 동일한 방법으로 고쳐주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든 병자들을 모아놓고 한꺼번에 고치신 적도 없었다.
아마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실 때마다 “달리다굼”이란 말을 사용하셨다면 사람들은 이 말을 금방 암송해서 주문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일단 기도가 주문화 되면 그 속에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감이나 기도를 받는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보살핌의 의미는 사라지게 된다. 주문은 무당들이 산신령이나 물귀신 같은 비인격적인 신들의 비위를 맞추고 그들의 힘을 빌리려고 할 때 외우는 것이다. 이에 반해 예수님의 사역은 바로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 출발하였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도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독특하고도 고귀한 존재이다. 같은 수의 양성자, 중성자, 전자를 가진 원소라면 모두가 똑 같은 특성을 갖지만 사람은 모두 세포로 되어 있더라도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동일한 DNA를 공유하고 있는 일란성 쌍둥이도 동일하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애드빌이 효능이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타이레놀이 효능이 있듯이 같은 약이라도 사람마다 효능이 다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율과 비용절감이라는 자본주의의 지상명제를 실현하기 위해 사람들은 무엇이나 표준화, 획일화 하려고 하며, 경쟁력 제고를 위해 온갖 업종에서 프렌차이즈가 성행하고 있다. 음식점이나 수퍼, 학원만이 아니라 이발소, 병원, 치과, 부동산 중개업도 프렌차이즈를 하는 경우가 늘어가고 있다. 이처럼 획일화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현대 산업사회는 사람조차 데이터베이스의 한 아이템으로 축소시키려는 끝없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심지어 그렇게 하는 것만이 대형교회를 만들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교회 지도자들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DRG(Diagnosis-Related Group)를 정하여 치료하는 제도, 즉 의료비 “포괄수가제”라는 것도 기계화 되어가는 의료 서비스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물건값을 정하듯이 맹장염 수술 얼마, 제왕절개 얼마 등 특정한 병의 치료나 수술에 대한 정가를 매겨놓고 치료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그렇게 하면 환자는 의료비 바가지를 쓸 위험이 줄지만 반면에 의사는 환자마다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치료하기도 어려워진다.
기계와는 달리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획일화 될 수가 없다. 일반 의학에 정신요법을 활용한 '대화'를 통하여 환자들을 치료하는 내과의사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 1899-1986)의 인격의학이라는 것도 결국 환자 개개인의 독특함을 고려하여 치료하는 의학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상식이나 시장경제 논리가 무엇을 말 하든지 성경은 변함없이 개인적인 관심과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그런 뜻이라고 믿는다(마25:40). - 040110/0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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